•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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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간
    오늘도 여섯시에 잠에서 깨여났다. 일어 나면 첫 번째 일과는 컴퓨터를 켜고 제가 제일 사랑하는 카페에 출석 신고를 하고 짤막한 글을 올리기도 한다. 그다음 오늘 할 일을 간단히 구상해 본다. 오전엔 시간이 있기에 간단히 신문도 보고 일어 공부도 잠간 한다. 나이 먹고 웬 공부냐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겨울에 <노인 심리 상담사>란 민간 자격증을 따고 보니 그건 한 장의 종이일 뿐이고 그 학원들은 돈벌이로만 활용하지 실제 배양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노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 대해 알고 싶고 노인 복지에 대한 글을 읽고 싶고 하여 2월 하순부터 <히라가나>로부터 시작하여 <가타가나>를 한자씩 배워 인젠 상용 단어를 익혀가고 있으며 며칠 후면 회화로 들어 가려고 한다. 하루 24시간, 그 누구에게도 차레진 시간이지만 시간을 쪼개고 시간을 알맞게 사용하니 그 의미또한 깊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사회가 발전하는 이 시대에 발 맞추어 이미 쓰던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처음이라 사용법을 몰라 전화 번호가 시도 때도 없이 걸리는 일도 있었지만 아들들과 카카오톡으로 교제하니 기쁘고 친구들과도 교제하니 이처럼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도 건강함에 감사하며 제 철에 맞는 이쁜 옷들도 입고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저의 년령에 맞는 일거리, 노인 복지 사업에 한 몫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맡은 일을 정성껏 일하며 제가 설계한 노후 준비를 완성한 후에는 언제나 듬직하고 미더운 남편과 같이 해외 여행도 가려는 계획도 갖고 있으며 인생의 천륜지락도 누리고 싶다. 오늘도 아름다운 구상을 무르익히며 인생의 발걸음을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
    • 독자기고
    2012-09-17
  • 피할수 없는 생존경쟁 돌입
    □ 리영수 피할수 없는 생존경쟁이 시작됐다. 대 성도셀틱전을 0대1 패배로 마친 김광주감독대행이 “매 경기를 강급보위전 같은 각오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갈길이 바쁘다. 올시즌 최하위 두개 팀이 강등된다. 현재 연변팀은 15위 팀과 승점 3점 차이로 언제든지 희비가 엇갈릴수 있다. 팀 매각, 을급리그 전전 등 아픈 력사가 있는 연변팀이여서 생존을 위한 부담이 더욱 크다. 연변팀은 이제 북경리공, 광동일지천, 중경력범, 심수홍찬, 심양심북 등 팀들과의 5껨 경기를 남겨두고있다. 상황이 썩 좋지 않다. 중경력범팀은 슈퍼리그 진출을 내심 노리는 팀이고 기타 4개 팀은 강급권에서 허덕이는 팀들이다. 경기마다 고전이 예상된다. 북경리공, 중경력범, 심양심북 등 팀들과의 홈경기가 있게 되는데 이 3껨 경기에서 2승을 거둔다면 갑급리그 잔류는 물론 여유있게 시즌을 마무릴수 있다. 이제부터 최소한으로 상병을 줄이고 선수들도 반칙에 상당히 조심해야 할것으로 보인다. 생방송도 안되는 갑급리그인만큼 상상 이외의 일들이 모두 발생할수 있다.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원정에서의 점수 챙기기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인만큼 홈에서의 세 경기에 큰 중시를 돌려야 한다. 한편 성세호대한 응원전을 펼쳐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아주는것도 십분 필요하다. 연변축구팬협회 류장춘회장 등이 올시즌 남은 3껨 홈경기에서 굵직한 응원을 윽벼르고있어 기대가 된다.서로의 책임소재를 묻기에 앞서 이제 모두가 단합해 난관을 타개해나가야 한다. 우선 살아남아야 후일도 도모할수 있는것이다. 프로 축구팀이 없는 연변은 너무나 슴슴하다. 연변일보
    • 스포츠
    2012-09-17
  • 연변팀 0대1로 성도셀틱팀에 분패
    —연변팀 0대1로 성도셀틱팀에 분패 연변장백호랑이팀(이하 연변팀)이 15일 오후 3시 30분 성도 쌍류기지 스포츠쎈터에서 열린 2012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25륜 경기에서 전반전 39분경 성도셀틱팀 왕개선수에게 결승꼴을 내주며 0대1 분패를 당했다. 이날 승리로 성도셀틱팀은 승점 34점으로 8위권에 진입, 강급권에서 완전히 해탈됐다. 반면 연변팀은 강급권 수렁에 깊숙이 빠져들게 되였다. 경기초반부터 량팀은 경기의 중요성을 감안해서였던지 득점사냥에 열을 올렸다. 25분경 이반 보직선수의 강슛이 성도팀 꼴문 기둥을 살짝 비켜가 아쉬움이 컸다.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지며 “중원”싸움이 매우 치렬했다. 39분경 빼여난 움직임을 보여주던 성도셀틱팀의 외적용병 요한슨(20번)이 연변팀 좌측변선을 허물며 문전에 공을 올렸다. 문전에 대기해있던 왕개선수(6번)가 득점으로 련결, 이날 결승꼴을 터뜨렸다. 전반전은 성도셀틱팀이 1대0으로 앞선채 마감됐다. 후반 시작과 함께 연변팀은 필승 의지를 드러냈다. 상대를 몰아붙이며 경기를 펼쳤다. 59분경 최영철선수가 강홍권선수 대신 투입되며 공격력량이 강화됐다. 64분경 상대 키퍼와 1대1 슛기회가 주어졌지만 득점이 무산돼 땅을 쳐야 했다. 76분경 김광주감독대행은 이반 보직선수를 빼고 쿠리바리선수를 출전시켰다. 85분경 쿠리바리선수에게 절호의 득점기회가 있었지만 상대 꼴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후 4분간의 경기보충시간까지 파상공세를 펼친 연변팀이였지만 굳게 잠긴 성도셀틱팀의 꼴문을 열지는 못했다. 경기결속뒤 김광주감독대행은 “경기 흐름상, 내용상 비교적 만족할만한 경기였지만 결과가 패전으로 이어져 매우 아쉽다”고 말하면서 “남은 5껨의 경기를 한껨한껨 잘 치러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오는 22일 오후 3시, 연변팀은 북경리공팀을 룡정시해란강경기장에 불러들여 일전을 펼치게 된다. 연변일보 리영수기자
    • 스포츠
    2012-09-17
  • 독도(다께시마)지위와 관련하여 혼돈하는 한국과 일본
    2012년 여름에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오랜 력사를 가진 령토분쟁으로 급격히 악화되였다. 분쟁대상은 동해에 있는 바위섬이다. 유럽인들은 포경선《레 리앙쿠르》의 이름을 따서 이 섬을 리앙쿠르섬이라고 불렀다. 이 포경선 선원들이 1840년에 이 섬을 발견하고 지도에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유럽인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이 섬에 대하여 알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섬은 한국 경상북도 울릉도구에 속해있으며 한국식으로 독도로 불리우고 있다. 일본인들은 다께시마라고 부르면서 시마네현 오끼구에 속한다고 간주하고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섬을 관리하는것은 한국인들이며 여기에는 경찰과 행정당국, 등대지기들이 있다. 일본은 다께시마가 시간적으로 대부분 일본에 소속되여 있었다는 근거를 들면서 이 섬을 반환할것을 요구한다. 한편 한국은 일본과의 사이에는 독도와 관련한 그 어떤 령토분쟁도 없으며 있을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독도는 지금도 한국에 속해있으며 항상 한국에 속해있었기때문이라는것이다. 쌍방은 서로 령유권을 주장하면서 력사기록들, 지도, 조약들을 론거로 제시하고있다. 그러나 무소속 전문가들인 죤 반 다이크, 전갑영, 김영구는 이 문건들을 가지고서는 독도의 소속문제를 정확히 해명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요구는 부분적으로 력사기록들과 우산도가 있는 지도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우산도가 바로 독도, 혹은 리앙쿠르섬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에 더 가까이 있는 죽도이며 다께시마(독도)는 력사적으로 마쯔시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일본에 속해있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측은 섬의 명칭이 애매한것을 리용하여 12세기부터 벌써 독도에 대하여 알고있었다는 한국학자들의 주장을 의심한다. 문건, 지도, 사변들에 관해서도 두 나라 학자들의 견해가 어긋나는 것이다. 실례로 1905년에 일본은 리앙쿠르섬, 즉 다께시마를 그 주변에서 물고기잡이를 하던 일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시마네현에 소속시켰다. 이 사변에 대하여 일본과 여러 나라 언론들이 즉시 전했다. 일본은 국제공동체가 침묵을 지키자 그것을 이 령토에 대한 일본의 령유권을 인정하는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한국은 일본에 완전히 병합되였으며 따라서 독도지위와 관련한 문제는 사라졌다. 자주권을 잃은 한국은 섬의 반환을 요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으로 독립을 쟁취한후에야 한국이 그렇게 요구했다. 1951년 9월 미국주재 한국대사 유장연은 미국무장관 딘 에치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준비되고 있는 일본과의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의 령토, 그리고 합병전에 한국의 령토였던 섬들, 즉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 파랑도에 대한 령유권을 포기할데 대해 박아넣을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얼마후에 미국인들로부터 받은 회답에는 《미국정부는 일본이 포츠담선언에 지적된 령토들에 대한 주권을 공식 최종적으로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포츠담선언조항을 접수했다는 사실을 쌘 프랜씨스꼬강화조약에 박아넣어야 한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다께시마, 혹은 리앙쿠르바위로도 알려진 독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바위섬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이 섬들은 한국의 부분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1905년부터 일본시마네현오끼행정구의 관할하에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이 섬들에 대한 령유권을 제기한적이 없다.》라고 씌여져있었다. 사실 쌘 프랜씨스꼬강화조약에는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며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의 령토에 대한 려유권을 포기한다고 지적되여 있다. 그러나 문건에는 독도가 지적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일본으로 하여금 미국인들이 이 령토를 일본의 소속으로 남겨둔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몇년동안 미군은 다께시마를 시험장으로 리용했다. 그러다가 1954년에 미국인들이 독도를 떠난후 한국군이 이 섬을 차지했다./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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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2-09-16
  • 이해하면서 삽시다
    참 간사한게 사람마음인가 본다. 한국에 있을때는 불법체류자라고 쩍하면 단속이다 뭐다 우리를 들볶으면서 괴롭힌다고 한국정부에 그리도 불만이 많았던 나였다. 하지만 귀국해서 날이 갈수록 그게 아니다.고작 우리연변땅의 두배밖에 안되는 작은 땅덩이! 거기에 자국민 오천만도 인구밀도가 중국의 세배도 더 되는터에 탈북자들과, 교포들을 망라한 외국인 백만까지… 실로 골치아프지 않을수가 없으리라. 더구나 외국인 백만은 거의다가 노동력이니까 아무리 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해서 돈을 번다지만 취업율에도 막대한 손실을 주고 있는게 사실이다.한데도 한국정부는 그냥 공제의 목적으로 단속이다 그렇게 형식으로 소리만 높일 뿐, 진짜로 못살게 굴었던 적은 참말로 없었던것 같다. 체류법대로 엄격히한다면 이잡듯이 뒤지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을수도 있다. 여하튼 딱 잡자고만 맘먹으면 우리가 무슨 수로 숨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적은 참말로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잡혀서 귀국한 몇몇은 다가 술마시고 누구와 싸움질해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여자들은 또 못나게도 지들끼리 헐뜯고 싸우다가 누구에겐가 고발을 당해서 한꺼번에 쌍으로 잡힌이도 있으며, 돈있는 한국 남자를 꼬셔서 바람을 피다가 그 부인한테 잡혀서 개망신하고 귀국한이도 있고 또 누구는 같은 교포끼리 어느 하나가 한국인들한테 알랑방구로 달라붙어서 교포들을 왕따나 시키고 괴롭히다가 미움을 사서 제사람들한테 고발을 당한이도 있다.…..그러루한 일이없이 그냥 부지런히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착하게 열심히 일하고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은 십여 년씩 스스로 맥이 진해서 못할때까지 얼마든지 숨어 지내면서 돈들을 벌고 있는 것이다.민약에 중국땅의 1%도 안되는 그 작은 땅덩이에 우리교포들의 자유왕래까지 허용한다면 한국땅은 폭발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저애한다고 해도 사실은 약삭빠르고 갈만한 이들은 거의다 한국에 갔으니까. 지금 한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중국교포들만해도 수십만이 되는데 나처럼 한국가서 있다가 귀국한 이들 역시 적은 수가 아니리라고 본다.그러니까 사람은 냉정해야 한다고 했으리라. 생각할수록 한국정부의 시책이 난 그래서 이해가 된다. 이제는 덮어놓고 그들이 인정머리 없다고 그냥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게 잘못이라고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다.그냥 간단한 생각으로 우리집이 비좁은데 갑자기 손님이 많이 쓸어온다면 어떻겠는가 말이다. 그게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도, 제일로 가까운 친척, 그래 시집간 친딸이 손군들을 앞세우고 놀러 왔다고치자. 적어도 정상적인 생활리듬이 깨져서 오래되면 지겨울 때가 왜 없을까? 집이 널찍하고 인심이 나는 쌀독도 넉넉하고 그렇다고 해도 손님이 너무 많이 자주 다니는건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그러니까 그런 도리 아니겠는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이번엔 그 손님이 주인집의 경제래원에까지 영향을 준다면 손님 때문에 진짜로 못살 때를 만나는 게 아닐까 싶다.만약에 그렇게 못살때를 만나는 상황이 나한테 닥친다면 체면이고 뭐고 어디 있겠는가 몽둥이를 들고서라도 미운 손님을 얼른 쫓아내야지. 그런데도 대한민국정부는 우리한테 그런적은 없지 않는가? 그냥 문명하게 점잖게, 단속이라는 허울로 조금 자유행동을 구속하는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사실은 아니였다. 내가 알기로 해마다 돌아오는 연말연시 단속때면 그냥 외출을 조금 삼가면 그만이다. 찾아다니면서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게 어때서?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것도 재미였지 싶다. 우리가 어머니고국에 찾아갔으니 외가에 간 셈인데 외손녀 외손자들이 너무 설칠 때면 꽥 고함을 질러서라도 조금 기죽이는 일은 얼마든지 이상한게 아니잖은가. 그렇다고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가 외손군들을 미워서 그랬을까, 또 그랬다고 우리한테 외가집이 원쑤로 될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마냥 그리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 외삼촌과 이모들!!감사하면서 살면 행복하다고 했던가? 그래서 난 우리교포들께 권고하고 싶다. 지겹도록 많이 몰려간 우리들한테 한국정부는 그만하면 참말로 인도적으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리저리 숨어 지내면서도 그래서 한국간 우리동포들 어느 누구라도 돈은 벌지 않았는가. 그리고 솔직히 나도 불법체류자 되어보아서 알지만, 불법체류자들이 돈은 오히려 더 많이 모은다. 일체 연장수속이다 세금이다 교육이다 그게 없는데다 집에 올수 없으니까 적어도 몇 번의 비행기 왕복 티켓값에 남들이 집다니는 시간에 쉬지 않고 번 돈이라도 더 남지 않았는가 말이다.그런데 어쩌라고? 돈도 많이 모으고 그냥 합법적인 신분도 달라. 세상엔 그렇게 좋은일만 있는게 절대로 아니다 한쪽이 좋으면 어느 한부분은 조금 모자람을 참아야 하는법. 맛있는걸 배불리 먹고 운동도 안 하고 편히 지우면 뚱보가 되여서 미운 몸매로 살아야고 배고픔을 참고 이악물고 다이어트에 운동을 하느라 고생하면 또 예쁜 몸매로 살 수 있는것과 같이 고통과 향수는 언제나 반반이다.몰려간 인간이 하도 많으니까 밉게 노는 인간들도 사실은 적지 않다. 도둑질하는놈 강도질 하는놈에 심지어는 중국에서는 끔쩍도 못하던 성폭행에 살인까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잇발이 갈리고 등골이 써늘한터에 그래도 한국정부는 우리교포들한테 그렇다고 다 싸잡아서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일부 악의를 품은 한국인들이 듣기 구차한 욕을 해서 우리한테 상처는 주지만도 우리식구들이 잘못을 했으니까 욕만큼은 또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성문에 불이 붙으면 뒤뜰의 연못에도 화가 미치거늘 도리없이 한패거리라고 몰아서 족친다면 억울해도 하는수 없이 맞아 줘야 하는터에 그냥 욕만 먹으니까 그래도 맞기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맘속에 상처도 어쨌든 상처는 상처지만 몸에 생채기 나는것보단 구차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쩌겠는가 그게 우리 중국 교포인것을….. 내가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우리함께 간 일행 중 누군가가 그런 못된 짓을 했으니 욕할때는 그냥 아무개가 아니고 중국교포 네글짜가 앞에 딱 붙으니까 전체가 팔리고 욕을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손님이 손님을 더 싫어한다고 했으리라. 하지만 손님 가운데 미운 손님이 더러 섞이는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나쁜 사람은 인구비례로 어디나 다 존재하는 것이니까 체로 치거나 찍어서 맛을 보고 일일이 다 솎아내는 수는 없다.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로 다 이해하면서 살아야 한다. 세상은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는법이라고. 그러면 우리도 속편하고 기분이 많이 가벼워질 것이다.동포들이여! 넉넉한 마음씨와 이해는 우리 자신한테 행복과 편함을 주는 것이지 절대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훈이
    • 독자기고
    2012-09-16
  •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성명
    2012년 9월 10일, 일본정부는 중국측의 거듭되는 엄정교섭에도 불구하고 조어도와 그에 부속된 남소도와 북소도를 "구입"하여 이른바 "국유화"를 실시한다고 선포했다. 이는 중국령토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범이며 13억 중국인민의 감정에 대한 엄중한 손상이며 력사사실과 국제법리에 대한 엄중한 유린이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 이에 단호한 반대와 강력한 항의를 표한다.조어도와 그 부속섬은 자고로 중국의 신성한 령토로서 력사근거와 법적의거가 있다. 조어도 등 섬들은 중국인이 가장 일찍 발견하고 명명하고 리용했으며 중국어민들은 예로부터 이 섬과 그린근 해역에서 생산활동에 종사해왔다. 일찍 명나라때 조어도 등 섬들은 이미 중국해안방어관할범위에 들었으며 중국 대만의 부속섬이였다. 조어도는 종래로 그 무슨 "주인이 없는 땅"이 아니며 중국은 조어도 등 섬의 쟁론할 여지가 없는 주인이다.1895년 일본은 갑오전쟁말기에 청정부의 패전이 결정된 틈을 타서 조어도와 그 부속섬을 비법적으로 절취했다. 뒤이어 일본정부는 청정부를 강박하여 불평등 "마관 조약"을 체결하여 "대만 전반 섬과 모든 부속 여러 섬"들을 떼갔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까히라선언"과 "보츠담선언"에 따라 중국은 일본이 침점한 대만, 팽호렬도 등 령토를 회수했으며 조어도와 그 부속섬들은 국제법상 이미 중국에 귀속되였다. 력사는 뒤엎지 못한다. 조어도문제에서 일본의 립장은 세계반파쑈전쟁승리성과에 대한 공공연한 부정이며 전후 국제질서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다.1951년, 일본은 미국 등 나라들과 편면적인 "샌프랜시스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류뀨군도(지금의 오끼나와)를 미국에 넘겨 관리했다. 1953년, 미국 류뀨민정부는 제멋대로 관할범위를 확대하고 중국령토 조어도와 그 부속섬을 그 속에 넣었다. 1971년, 일미량국은 "오끼나와 귀환협정"에서 또 제멋대로 조어도 등 섬들을 "귀환구역"에 넣었다. 중국정부는 일, 미의 이와 같은 사사로이 중국령토를 주고받는 수법에 대해 처음부터 단호히 반대하고 승인하지 않았다. 일본정부의 이른바 조어도는 일본의 고유령토이며 일중간에 해결이 필요한 령토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완전히 력사 사실과 법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이다.1972년 중일관계정상화와 1978년 평화우호조약체결과정에 량국 로세대 지도자들은 대국에 착안하여 "조어도 문제를 잠시 보류하고 후에 해결"할데 대해 중요한 량해와 공동인식을 달성했다. 중일관계정상화의 대문은 이로써 열리였고 중일관계가 비로소 40년의 크나큰 발전을 가져오게 되였으며 동아시아지역에 비로소 40년의 안정과 안녕이 있게 되였다. 만약 일본당국이량국의 당년의 공동인식을 부인하고 말소한다면 조어도정세가 어떻게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중일관계가 금후 또 어떻게 순조롭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일본은 또 어떻게 이웃나라와 세인의 신뢰를 얻을수 있겠는가?최근년간 일본정부는 조어도문제에서 끊임없이 사단을 일으켰으며 특히는 올해 들어서 우익세력이 일으킨 "섬의 매입" 풍파를 내버려두고 방임하면서 저들이 나서서 "섬을 매입"하기 위해 포석했다. 사람들은 조어도문제에서 일본측의 수법은 절대로 우연한것이 아니라 그것이 반영한 정치적추향에 대해 큰 경각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리유가 있다. 우리는 자연히 일본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것인가? 일본의 미래발전방향에 마음을 놓을수 있겠는가고 질문하게 된다.중국정부는 시종 중일관계의 발전을 중시해왔다. 중일 량국과 량국 인민은 우호적으로 지내야지 서로 맞서서는 안된다. 중일전략호혜관계는 량국과 량국 인민의 근본적인 리익에 관계되며 본 지역의 평화, 안정과 발전의 대국을 수호하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중일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은 일본측이 중국측과 서로 접근하고 공동노력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섬 매입"행위는 중일관계대국을 수호하는 것과 서로 위배되는 것이다.중국정부는 다음과 같이 엄정하게 성명한다. 일본정부의 이른바 "섬 매입"은 완전히 비법적이고 무효한 것이며 일본이 중국령토를 침점한 력사사실을 조금도 개변시킬수 없으며 조어도와 그 부속섬에 대한 령토주권을 조금도 개변시킬수 없다. 중화민족을 제멋대로 릉욕하던 시대는 이미 영원히 과거사로 되였다. 중국정부는 령토주권이 침범당하는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측은 일본측에서 즉각 중국령토주권에 손해를 끼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고 쌍방이 달성한 공동인식과 량해에로 에누리없이 돌아오며 분쟁을 협상으로 해결하는 궤도에로 복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만약 일본측에서 자기고집만 부린다면 이로 빚어지는 모든 엄중한 후과는 일본측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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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6
  • 대다수 중국인, 대일본전쟁 찬성
    중국의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현재 댜오이다오 열도(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을 종결지을수 있기 위해 보다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음이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Sina.com’가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서 밝혀졌다. 댜오이다오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해결 방안을 묻는 질문에 86% 응답자가 ‘전쟁’이라고 답변했고, 11.8%는 ‘타협’, 2.1%는 답변을 망설였다. 이 외에 84% 이상의 응답자가 열도분쟁으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답변했으며 87% 의 응답자는 일본상품 보이콧 관련 질문에 대해 동참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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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5
  •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녀성의 감동적인 사연
    영국 데일리메일을 비롯해 해외 주요외신들은 미국 텍사스에 거주 중인 리지 베라스케스(23세)라는 녀성의 사연을 보도했다. 리지의 외모는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외계인을 련상하게 한다. 몸매는 뼈가 드러날만큼 앙상하고, 얼굴 또한 전혀 살이 없어 안구가 돌출되는 등, 기이한 모습이다. 이런 리지의 외모는 지방질을 생성할 수 없는 희귀병 때문이다. 이 병은 눈동자의 색깔까지 바꿔버린다. 전 세계에서 리지를 포함해 단 2명만이 앓고 있다. 이 때문에 23세의 성인녀성인 그녀의 몸무게는 27kg에 불과하다. 한쪽 눈동자 또한 백탁현상이 생겨서 곧 시력을 잃게 된다. 이런 외모로 인해 리지는 길을 걷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심지어 인터넷등을 통해서는 그녀에게 악플을 남기는 네티즌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아름다웠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리지는 자신의 외모로 인한 좌절과 이런 역경속에서 가졌던 희망, 그리고 미래의 꿈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리지는 HNL채널의 '닥터 드루 핀스키' 쇼에 출연해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겪었던 고통을 털어 놓았다. 그녀는 "나도 사람이다. 당연히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녀성'이라는 별칭이 붙은 자신의 모습을 리지는 당당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이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는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진행자가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냐는 질문을 하자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하고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지에요. 노려보지 마시고 (병에 대해) 리해해 주세요"라고…" 그녀의 꿈은 이런 특이한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통을 나누는 일이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약간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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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2-09-15
  • 바보觉醒기
    처음 한국와서 사 년 동안은 돈이 아까워서 과일 한알 맘대로 사먹지 못했고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별의별 궁상을 다 떨었던 나였다.오죽하면 리발비도 아까워서 사년간을 저절로 머리를 깎았으랴! 중도 제 머리 저절로 못 깎는다지만 난 그러고 보면 대단한 재주를 갖고 있었던건가? 아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어차피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일만 하니까 구태여 머리모양을 뽐내며 자랑하러 다닐 일도 없거니와 혹시 외출 할 일이 있더라도 모자만 꾹 눌러 쓰면 되니까. 게다가 그깟 제일 간단한 스포츠머리 리발비가 만원(그 때 환률로 인민페 칠팔십원정도)씩이나 하는터에 아깝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얼마나 힘들게 버는 돈인데?!매일 매시각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상상할 수도 없으리만치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또 지친 제몸을 혹사해 가면서 힘들게 버는 실로 피같은 돈이 아닌가. 헌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도의 머리 스타일은 나 스스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였다. 사실 나한테는 우리 집에서 치매로 앓으시다가 세상 뜨신 어머니의 머리를 삼년 동안이나 잘라 드린 경험이 있었다. 자기 머리도 그렇게 깎으면 되리라. 그래서 난 겁도 없이 자작 리발을 시작했었다.모텔 청소아줌마로 일하는 나이고 모텔에 널린게 일회용 면도칼이므로 리발기구도 따로 마련할 필요없었다.잘 드는 면도칼을 오른 손에 들고 왼손으로 머리 두께를 골고루 가늠하면서 화장실 거울을 마주하고 자기 머리카락을 이리 저리 두께가 비슷하도록 쓱—싹!쓱—싹! 추려내고 나중에 날선 가위로 손거울을 이용하여 큰 거울 속의 자신의 뒤덜미를 들여다 보면서 목덜미 부분의 머리를 가쯘하게 마무리 하고 샤워로 머리꺼끄러미까지 싹다 처리 하면 그깟 미용사의 솜씨나 내 솜씨나 거기서 거기였다. 아니 오히려 돈을 팔지 않았다는 자부심 때문이였던지 내 솜씨가 더 훌륭하다 여겨질 때도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머리 깎는 사람을 난생 처음 봤다면서 주인언니께서도 손재주가 있다고 늘 칭찬하셨으니까 이건 절대로 스스로의 자찬만이 아닐 것이라고 자만감에 들뜨기까지 했었다.그외 먹고 자고 쓰는 모든 것은 일하는 곳에서 해결하고 집에서 가지고 온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실로 돈 쓸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월급은 차곡차곡 모여 졌고 또 한 달에 두번씩의 휴식일도 쉬지 않고 일하면 십만 원(그때의 환율로 약 인민페 팔백원 좌우)더 모을 수가 있었다.그렇게 옹근 사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쓰지도 않고 이악스레 모은 돈이 어느 정도 되였을 때 큰 아들이 집 사겠다고 꿔 달라고 기별이 왔다. 솔직히 아무리 목숨같은 제 자식이지만 선뜻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으나 또 돈이 있는 줄을 뻔히 알고서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꿔 달라는 데 못 주겠다고 뻗댈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실로 부모된 죄가 그리도 클줄을 전에는 모르고 살았다. 자식으로 생겨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였다면 될수록 부모한테 돈 달라는 소리를 하지 말고 제 살 도리는 저절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가난한 부모가 자식을 어렵게 대학 공부까지 시켰으면 그걸로 된 것인데 내가 만약에 한국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어이하다 한국와서 돈벌게 된건 다행이지만 그 돈 벌어서 자신의 로 후대책을 연구하고 어째 보기도 전에 빌려 달라고 하다니? 이래서 자식 둔 부모는 남의 자식을 흉보면 안 된다고 했던가?몇 년 전 큰 언니네 아들이 모 해변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한다고 로부부가 많지 않은 월급으로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평생을 힘들게 모은 적금 전부를 협박에 가까운 언행으로 빼앗아 갔다는 말을 듣고서 격분한 나머지 우리 자매들은 한결 같이 입을 모아서 욕했었다.“망할 놈! 아예 제 부모 껍대기를 벗겨내고 말지! 에익 후레 자식 같으니….”아마도 남의 자식 흉본 벌을 받은 건가? 이건 집에서 편안히 월급을 모은 것도 아니고 이국 타향 남의 땅에서 힘들게 벌어서 이 악물고 모은 돈을…….몇 년 후 갚아 준다고는 하지만 허망한 그말이 믿어지겠는가. 차라리 호랑이한테 강아지 꿔주고 말지. 허지만 주고 싶지 않아도 주게 되는 게 자식이렷다. 함께 일하던 정씨 아줌마의 말이 인상 깊다.“자식이란게 말이요. 이름이 좋아 자식이지 실은 몽둥이를 들지 않은 강도라우!” 그녀도 몇 년을 이악스레 모은 돈을 자식한테 그것도 집 사는데가 아니라 남을 두들겨 패서 감옥에 가게 된 자식의 뒷처리에 몽땅 처 넣었다는 것이다.아! 슬플시고! 이런게 부모된 락인가? 그래도 난 아들이 남처럼 싸움으로가 아니고 집 마련하는 데 돈 넣어주니 영광으로 여겨야 하는 건가? 더구나 수도 북경의 다들 알아주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예쁜 색시감까지 생겨서 알콩달콩 연애하고 있으니 성공한 자식의 뒷바라지라 실로 비교가 되는 영광이 아닐까? 결국 그렇게 내 사년간의 고혈은 아들한테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 갔다.비록 영광이라 여긴 투자지만 주머니의 허전함은 영광으로 쉽게 메워지는게 아니였다. 일 하는데 힘이 빠지고 그래서 생전에 쉬지 않던 나도 한 달에 한두번쯤은 쉬면서 일하게 되였고 얼마쯤 더 지나니 조금 더 적응이 되여서 그럭저럭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다시 삼 개월의 월급이 모여지자 또 아들이 결혼식을 하겠다고 커플반지 살 돈이 어쩌고 저쩌고 한다. 맘이 약해진 난 이번엔 그래도 큰맘 먹고 반반한 옷이나 사 입으려고 오십만 원(그때 환율로 인민페 약 사천원 좌우)을 남기고 아들한테 다 보내 주었다. 사 년간 옷 한 벌 사지 않고 살아 온 나의 몰골은 얼마나 흉했던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불법체류냄새가 풀풀 심하게 풍기고 있는것 같았다. 실로 바보같이 살았던 나의 한국생활 사 년이였다. 하긴 바보같은 그 사년때문에 난 인생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게 되였으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지지만도……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어쩌다 큰 맘먹고 자기 몸에 투자하려던 그 오십만 원마저……이천팔년 삼월 칠일—죽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 오전 열한시, 나한테 오촌 조카뻘이 되는 군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날 보러 오겠다고….한국온지 사 년 만에 처음으로 되는 일이다. 타향에선 고향의 까마귀도 반갑다는데 나한테는 어찌하여 고향의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 한국 나와서 일하는 친척들은 조금 있지만도 서로가 돈 버느라 바빠서 도저히 만나지지를 않으니까 말이다. 헌데 모처럼 날 보러 찾아 오는 이가 있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어스름이 깃들 무렵 군이는 내가 일하는 가게로 용케 찾아 왔고 일 끝나기를 기다려 갖고 고깃집에 가서 맛있는 불고기를 사 주었다.그때까지도 난 그것이 잡아 먹을 강아지 머리 쓰다듬어 주기인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고맙고 감격스레 여겨져서 써비스로 나오는 밥에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맛있게 다 먹었다. 헌데 고기는 물론 밥도 시큰둥해서 잘 먹지 않고 애꿎은 담배만 태우면서 맛있게 먹는 나를 지켜보던 (실은 속셈이 따로 있어서 잔머리 굴리고 있은 건데 난 눈치없이 나더러 더 많이 먹으라고 그러는구나 고맙게 생각했었다.) 군이는 내가 수저를 내려 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 문을 연다.“고모한테 사정할 일이 생겨서 …..”“그게 무슨 말인지?”마냥 들뜬 기분에 감격해 있던 난 갑자기 커다란 몽둥이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어정쩡해서 되물었다.“사실은 급하게 돈 쓸 일이 좀 있어서 고모님께서 이삼백만 원 돌려 주신다면 이달 말에 꼭 갚아 드릴 겁니다.” 난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얼굴 근육이 다 뻣뻣해지는 느낌이다.이래서 남의 걸 먹으면 입이 짧아진다고 했으렷다! 그럴 줄 알았더면 먹지나 말았어야 하는건데 눈치도 없이。 이미 먹은 걸 어쩔 수는 없고 그냥 돌려 보내려니 민망하고 나한테 남은 돈이란 딸랑 오십만 원이 전부인데…….“빈이가 집 산다고 다 보내고 요새 옷이나 사 입으려고 남긴 돈이 좀….”그렇게 난 군이한테 오십만 원을 은행 기계에서 다 빼주면서 통장까지 보여 주었다.“보다싶이 내 전 재산이니까 말일에 약속대로 꼭 갚아야 한다!?”“네!” 군이는 그렇게 시원스레 대답을 하면서 돈 봉투를 받았으나 난 어쩐지 요강뚜껑으로 물 떠 먹은듯 찜찜하다. 제발 고기만두로 개 친(육포자타구유거무회肉包子打狗,有去无回)격으로만 되지 말았으면….내 예감은 그렇게 틀림이 없이 맞아 떨어졌다. 그 돈을 갖고 튄 군이는 돈을 갚겠다던 그 달 말이 지나고 새달초가 다 가도록 전화 한 통이 없다.공교롭게도 내가 일하는 가게의 장사마저 덜 되여서 월급도 밀리다보니 난실로 돈 한푼 없이 억지로 버티는 판이였다. 돈을 두고도 아까워서 쓰지 않는 것하고 돈을 꼭 써야 하는데 없어서 못쓰는 것하고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을 난 참말로 몰랐었다. 환절기에 옷 사려고 애타게 기다리던 나는 사월 중순까지 참다가 할 수 없이 군이한테 전화 했더니 돈이 마련되지 않아서 다시 그 달 말에 준단다. 은행계좌번호까지 전화로 찍어 달라면서. 물론 문자 메세지로 은행계좌번호는 즉석에서 찍어 보냈지만 군이는 그후부터 아예 전화련락이 두절이다.전화가 오지도 않거니와 내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애초에 사기치러 맘먹은 것이지 돈을 꾼다는 건 빨간 거짓말이였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한국 온 지 십년이나 되는 피끓는 청년이 가정도 없는터에 그새 번돈은 다 어쩌고(후에야 안일이지만 실은 놀음으로 돈 다 날렸었다)이제 겨우 사 년 된 나한테 그것도 자식의 집 마련에 돈 다 보내고 없는 줄을 번연히 알면서 양심도 없이 손 벌리겠는가? 그 생각을 못하고 돈부터 덥썩 안겨 준 내가 잘못이지. 아! 피 같은 내 돈이여……더더구나 분하고 원통한 것은 내가 입지도 먹지도 않고 머리모양마저 돈을 아껴서 부스스하게 털 뜯긴 부엉이 상을 하고 있으니까 아예 바보천치로 알고 쉽고 만만하게 여겨져서 맘먹고 달려 든 거라 생각되는 그 점이였다. 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돈보다 멍청하게 흘러 보낸 지난 세월이 아깝고 후회스러워서 더더구나 미칠 것만 같았다.누구를 탓할까? 내가 바보였던 것을!!!그 몇 달을 난 그렇게 자책속에서 지냈고 후회로 가슴을 치면서 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웠었다. 나중에 문뜩 스스로도 위안 받을 수 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하고서 난 그런대로 고통에서 쉽게 헤여날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때 나한테 오십만 원의 돈이 전 재산이였던 그 사실이였다. 실로 불행중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아니라면 삼백만 원을 사기당할 뻔 했으니까 내 손실은 그런대로 많이 줄어든 셈이 아닌가 말이다.살다 보면 유실필유득有失必有得이라는 말이 참말로 일리가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한 것은 조금 잃는 과정을 통해서 더 큰 것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오십만 원을 수업료로 난 실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돈을 벌어서 앞날을 대비해 모으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만 자신을 위해서 조금씩 쓰는 것도 앞날을 위한 대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랑비를 제창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모으던 돈의 극히 적은 일부분이면 충족하다. 그렇게 하는 대비가 돈만 꼬박꼬박 모으기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전에는 잘 모르고 살아왔다.돈으로는 지난 세월을 살 수가 없고 후회를 미봉할 수도 없으며 또 돈으론 건강과 즐거운 마음을 살수가 없다. 허지만 그때 그때 조금씩 제 몸에 하는 투자가 건강을 지키고 후회를 막음으로써 앞날을 위해 한결 씩씩한 자신을 남길 수가 있으니 그게 그새 조금 써 버린 돈에 비하면 더 크게 남기는 장사가 아닐까? 만약에 내가 미리 이런 도리를 알고 자기 몸에 최저한도의 투자라도 하면서 살았더라면 오십만 원의 아프고 쓰린 여운이 그토록 오래고심하진 않았으리라! 멍청스레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다가 사기당하니 그 돈이 더구나 아깝고 꾸미지 않은 거칠은 모습은 제가 만들어 사기꾼한테 빌미를 준 것이니 더더구나 미칠듯이 분하고 그래서 수 개월간 속 썩이고 후회하고 잠도 못자고 했으니 정신 건강에 몸 건강에 오십만 원이 아니라 오백만 원 아니 그보다 더 큰 손해를 본 셈이다.그렇게 난 사기꾼한테 한번 당하고서 지금은 많이 똑똑해졌다.휴식을 제때에 취하면서 다이어트로 몸 관리를 철저히 함과 동시에 옷도 철따라 예쁘게 사입고 화장품도 적당하니 알맞는 걸 사서 쓰고 머리모양도 부스스 털 뜯긴 부엉 이상을 버리고 탐스럽게 개변시켰다. 과일도 냉장고에 종류를 자주 바꿔서 넣어두고 먹고 있으며 우유와 칼슘제를 비롯한 건강보양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지나가는 세월에 억울하지 않고 돌아오는 세월에 미안하지 않도록이 착실하게 살고 있는 나는 옛날의 바보가 절대로 아니다.그래서 지금은 이를 갈며 저주했던 사기꾼--날 도둑 같은 군이 한테도 욕만이 아닌 고마운 생각까지 들리만치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그런 나 자신이 미욱하게 살았던 예전의 나 보다 훨씬 더 현명한 것 같아서 기분이다!/훈이
    • 독자기고
    2012-09-15
  • 고독은 저를 행복한 여자로만 살게 합니다.
    정년 퇴직후 누구는 고독해서, 누구는 적막을 못이겨서 우울증이 온답니다.하지만 저는 고독이 뭔지 모릅니다. 적막은 더더구나 느껴보지 못했습니다.그만치 저는 혼자서도 잘 놉니다. 그게 아니고 고독을 하늘이 내려주는 혜택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람이 어찌 친구들과만 같이 놉니까? 살아가려면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 날이 꽤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고독을 즐겨야 더 행복한 겁니다.혼자면 일단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조용하게 고즈넉한 상태에서 저는 환상에 잠깁니다. 환상속에서 저는 신비하기 이를데 없는 다음 세상에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이생에는 유감스러운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런 유감들이 하나도 없어서 진짜로 참신한 새 인생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게 조금도 힘든게 아닙니다. 제 맘먹은 대로 다 되는 것입니다. 꼭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용한 상태에서 제 맘 먹기에 달린 겁니다. 그렇게 원없이 한번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아 본 후에 다시 현실로 돌아 옵니다.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나는 것입니다.추억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무정하다고 했던가요? 그 말을 환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이성적이여야 한다고 바꿔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 괜찮습니다. 뭣이든 조용하고 고즈넉한 상태에선 맘 먹은 대로 다 되는 일이니깐요.깼으니까 먼저 샤워부터 해서 몸이나 맘속에 내려 앉았던 다른 세상의 먼지때를 깨끗이 씻어 냅니다. 밥솥에선 구수한 밥 냄새가 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치도 있고 된장 찌게도 보골보골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 또 이생을 착실하게 향수 합니다.식사가 끝이나면 혼자서 여행을 떠납니다. 교통카드를 챙기고 간편한 옷차림에 물 한병만 멜가방에 넣으면 다 됩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나가서 제일 처음으로 달려오는 버스를 잡아 탑니다. 저를 싣고 어디로 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혼자니까 잘못 갔다고 나무라는 이도 없습니다. 저만 좋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아 시원하다! 감탄하면서 빈자리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봅니다. 아 여기엔 병원이 있었네. 아 여기엔 또 공원이 있고... 은행에, 시장에, 마트에...... 그렇게 언젠가는 자기한테 필요할 곳들을 하나씩 체크 합니다. 차암 여유로운 여행입니다. 기본 요금이면 됩니다. 종점역까지 그렇게 흔들흔들 가다가 피곤하면 살짝 졸아도 괜찮습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다 알아서 교통규칙을 지켜주니까 저는 졸았어도 안전하게 역에 대입니다.작은 시가지인 저의 고향의 버스 종점역은 한결같이 파아란 산이나 들입니다. 꽃도 풀도 나무도 시냇물도 논도 밭도 다 있습니다. 그래서 경치 좋고 물좋은 거기서 혹은 나물을 캘 수도 있고 또 혹은 아이처럼 들꽃을 꺽으면서 놀 수도 있고 그늘 좋은 냇가에서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휴대용 녹음기로 노래를 들을수도 있습니다. 벌레소리 새소리가 반주 합니다. 그렇게 풀냄새, 흙냄새를 실컷 맡으면서 한참을 놀고나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탑니다. 저의 여행은 그렇게 세 시간도 안 걸려서 끝이 납니다.집에 돌아오면 또 책을 봅니다. 책을 볼 때면 저는 꼭 책속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래서 책속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희한하게 잘 지냅니다. 그래도 저를 멍청하다거나 미쳤다고 비웃는 사람이 절대로 없습니다.그렇게 하루가 끝이 나면 저는 또 저의 단짝 친구인 일기책을 마주합니다. 그한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맥이 진할 때까지 다 털어 놓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창피한 일도 잘못한 일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것도 그는 다 받아주고 용서해 줍니다.그래도 아직 자기에는 일찍한 시간입니다. 텔레비를 봐야 합니다. 한데 텔레비를 마주하면 이상하게도 졸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해놓은 취침시간이 되기전에 자리를 마련해 누우면 또다시 말똥하니 잠이 깹니다. 그래서 뜨개감을 잡습니다. 예쁜 가디건이 요즘 마무리 단계에 왔는데 텔레비를 보면서 그걸 뜨면 졸리지도 않고 기분도 좋습니다. 내가 시간을 요리 알뜰하게 이용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배나 더 잘 사는 셈이지 그렇게......드디어 드라마도 끝이 났습니다. 포근한 잠자리가 저를 살며시 감싸 줍니다. 두 살잡이 아기 크기의 예쁜 곰인형을 안고 저는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습니다. 하나,두-울, 세-에-에..... 그렇게 몇 개 세기도 전에 저는 꿈나라에 갑니다. 거기선 또 하늘나라에 가셨던 울님께서 돌아 오셔서 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전자나깨나 늘 행복합니다.아 고독은 하늘이 저한테 준 혜택입니다. 고독은 저를 행복한 여자로만 살게 합니다. 아 행복한 고독이여....
    • 독자기고
    201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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