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2024년 말 기준으로, 국내 외국인 유권자 14만 6천 명 중 11만 3천 500명이 중국인이다. 2006년 이후 귀화자 24만 명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 차지한다. 이러한 통계는 단순한 인구 비중을 넘어 문화 주권 분쟁부터 정치적 충성 문제까지 논란을 확장시키고 있다.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제기된 ‘중국인 투표권 박탈’ 요구는 정책 논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다문화 수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첨예한 대립을 초래하고 있다.
찬성 측은 “국방 의무가 없는 이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불균형하다”는 원칙을 주장한다. 김은혜 대통령실 수석은 “한국인은 중국에서 투표권이 없는데 10여만 중국인이 한국에서 투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하며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한중 간의 역사적·문화적 갈등이 정치 영역으로 확장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반대 측은 “소수자 권리 박탈은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경고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후보 시절 “광진구 조선족 유권자 90%가 친민주당” 발언이 정당 간 갈등으로 확대된 점을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이 문제가 특정 정당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악용되며 혐오를 확산시킨다고 비판한다. 중국인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한 적 없다”는 냉소적 반응도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 투표율은 2014년 17.6%에서 2022년 13.3%로 하락했다. 이는 12만 7천 명의 권리 행사자 중 실제 투표자는 1만 6천 명에 불과함을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은 “선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도입된 제도가 형해화됐다”며 폐지론을 제기하지만, 투표율 저조가 오히려 “소수이므로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져 역설적 논리를 만들어낸다. 현행법은 영주권을 3년 이상 보유한 외국인에게 국적을 구분하지 않고 투표권을 부여하지만, 청원과 정치인 발언은 명백히 중국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인권 차원을 넘어 한국의 다문화 정책 기조와 충돌하며, 특정 국적을 겨냥한 ‘선택적 배제’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국제적 맥락에서 외국인 참정권 제도는 각국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운영된다. EU 회원국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다른 회원국 국민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하고, 노르웨이는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방의회 선거권을 허용한다. 일본은 국적주의를 내세워 외국인 참정권을 전면 금지한다. 한국의 현행법은 이들과 달리 국적을 구분하지 않지만, 중국인 집중 현상이 정책 재검토를 촉발한 점이 독특하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투표권을 국가 주권의 영역으로 존중하되 차별 금지를 강조하므로, 중국인을 명시적으로 겨냥한 제한 조치는 국제적 기준과의 정합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독일은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강화하며 점진적으로 권리를 부여하는 사례가 주목받는데, 이는 포용적 정체성 구축의 일환으로 한국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논란의 배경에는 한복·김치 논란부터 중국의 내정 간섭 의혹까지 쌓인 감정이 참정권 문제로 표출된 중장기적 고민이 자리잡고 있다. 귀화자들의 ‘이중 충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지만, 이는 귀화 심사 강화나 사회 통합 프로그램 확대 등 구조적 해결이 필요한 과제이다. 95만 재한 중국인(2024년 기준)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사회 구성원이며, 이들이 지역 사회에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정책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외국인 참정권 논의는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한국이 지향할 사회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잣대이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한중 협상이나 귀화 절차에 사회적 기여도와 정체성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으나, 인종·국적을 이용한 갈등 조장은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확장성과 국가 정체성의 경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여정이다. 11만 표의 무게는 이 질문의 무게만큼이나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시험하고 있다.
BEST 뉴스
-
극우, 이제는 때려잡아야 할 때
극우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의 한 극우 청년단체가 미국에서 첫 공개 활동을 열었다는 소식은 가벼운 해프닝이 아니다. 그들이 쏟아낸 말은 정부에 대한 저급한 욕설, 선거가 조작됐다는 허무맹랑한 주장, 종교를 빌미로 한 선동뿐이었다. 사실은 실종되고 증거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음모론과 분열의 광기뿐이다. ... -
인천 앞바다의 선택, 인간애가 남긴 울림
며칠 전 인천 앞바다에서 있었던 구조 소식은 제 마음을 오래 붙들었습니다. 34살 해경 이재석 경장은 새벽 바다에 뛰어들어 위기에 처한 중국인 노인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밤중의 차가운 바다, 거센 파도 속에서 그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
“터무니없는 괴담, 정치 선동의 불쏘시개 될라”
글 | 허훈 최근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중국인 괴담’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인 2천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납치돼 장기 적출을 당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버젓이 퍼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에도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차례 공유하...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6일 아침, 백두산 자락은 맑은 하늘 아래 싸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카메라를 든 한국인 청년들, 러시아와 몽골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백두산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긴 오르막을 지...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동포투데이] 백두산 자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서면 용정시 명동촌이 나온다. 소박한 기와집과 푸른 담장이 맞아주는 이 마을은 시인 윤동주(1917~1945)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 시인의 생가를 넘어선다. 근대 조선 민족운동의 요람이자, 교육·종교·문화가 교차한 북간도의 심장부였다. 1906년 서전서...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5일, 기자는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을 찾았다. 이곳은 애국시인 윤동주(1917~1945)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복원된 생가는 소박하게 서 있고, 그 앞마당에는 여전히 들판에서 불어온 가을 바람이 머문다. 마을 입구의 표지석은 단순히 한 시인의 흔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명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