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사회적 갈등이 커지거나 정치적 논쟁이 격화될 때마다 외국인 투표권 문제가 다시 소환된다. 그리고 그 화살은 어김없이 특정 국가 출신 외국인, 특히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향한다.
하지만 논쟁이 시작될 때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라진다.
외국인이 언제 대한민국에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했는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국가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대선과 총선에는 투표권이 없다. 오직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에 한해 제한적으로 투표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제도는 외국인 단체의 요구나 정치적 압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가 2005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도입했고, 2006년 지방선거부터 시행됐다. 한국에 장기간 거주하며 세금을 내고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영주권자에게 지방자치 참여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 당시 입법 취지였다.
당시 국회는 지방자치가 생활정치라는 점에 주목했다. 중앙 권력을 결정하는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는 실제 거주 지역의 행정과 복지, 생활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정 기간 지역사회에 정착한 영주권자에게 제한적 참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현재의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은 외국인이 요구해서 얻어낸 권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스스로 선택해 만든 제도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제도가 시대 변화에 맞는지 점검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외국인 유권자 수는 제도 도입 초기 약 6천700명 수준에서 최근 15만 명을 넘어섰다.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유권자 가운데 상당수가 중국 국적자인 것도 사실이다. 상호주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실거주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정책적 쟁점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제도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는 순간 일부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는 정책 논쟁보다 감정적 대립이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이라는 제도적 문제를 특정 국적이나 특정 민족의 문제로 바꾸고, 복잡한 정책 논의를 단순한 적대 구도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비판하는 것과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외국인 유권자가 많아졌다면 제도를 점검하면 된다.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면 된다. 실거주 요건이 부족하다면 이를 보완하면 된다. 민주주의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제도를 만든 정치권의 책임은 외면한 채 외국인 전체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간다면 문제 해결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책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기 때문이다.
더욱이 통계를 보면 외국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35.2%였던 투표율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13.3%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권자 수는 증가했지만 실제 정치 참여는 오히려 낮아진 셈이다.
그럼에도 외국인 투표권이 마치 대한민국 정치체제를 뒤흔들 거대한 위협인 것처럼 과장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에 근거한 정책 논쟁보다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정치가 더 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필요한 것은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은 대한민국 국회가 만든 제도다. 따라서 논쟁의 대상 역시 외국인 개인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이어야 한다.
외국인을 향한 분노를 부추기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외국인이 언제 투표권을 달라고 했는가.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도 있다.
제도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지금까지 제도 개선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외국인 투표권 논쟁이 진정한 정책 토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이, 혐오가 아니라 원칙이 중심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는 적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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