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정년 퇴직후 누구는 고독해서, 누구는 적막을 못이겨서 우울증이 온답니다.
하지만 저는 고독이 뭔지 모릅니다. 적막은 더더구나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만치 저는 혼자서도 잘 놉니다. 그게 아니고 고독을 하늘이 내려주는 혜택같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사람이 어찌 친구들과만 같이 놉니까? 살아가려면 고독하게 지내야 하는 날이 꽤나 많습니다. 그러니까 고독을 즐겨야 더 행복한 겁니다.

혼자면 일단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조용하게 고즈넉한 상태에서 저는 환상에 잠깁니다. 환상속에서 저는 신비하기 이를데 없는 다음 세상에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이생에는 유감스러운 일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런 유감들이 하나도 없어서 진짜로 참신한 새 인생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게 조금도 힘든게 아닙니다. 제 맘먹은 대로 다 되는 것입니다. 꼭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용한 상태에서 제 맘 먹기에 달린 겁니다. 그렇게 원없이 한번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아 본 후에 다시 현실로 돌아 옵니다. 환상에서 완전히 깨어나는 것입니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무정하다고 했던가요? 그 말을 환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이성적이여야 한다고 바꿔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 괜찮습니다. 뭣이든 조용하고 고즈넉한 상태에선 맘 먹은 대로 다 되는 일이니깐요.

깼으니까 먼저 샤워부터 해서 몸이나 맘속에 내려 앉았던 다른 세상의 먼지때를 깨끗이 씻어 냅니다. 밥솥에선 구수한 밥 냄새가 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김치도 있고 된장 찌게도 보골보골 맛있게 끓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 또 이생을 착실하게 향수 합니다.

식사가 끝이나면 혼자서 여행을 떠납니다. 교통카드를 챙기고 간편한 옷차림에 물 한병만 멜가방에 넣으면 다 됩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나가서 제일 처음으로 달려오는 버스를 잡아 탑니다. 저를 싣고 어디로 가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혼자니까 잘못 갔다고 나무라는 이도 없습니다. 저만 좋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아 시원하다! 감탄하면서 빈자리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봅니다. 아 여기엔 병원이 있었네. 아 여기엔 또 공원이 있고... 은행에, 시장에, 마트에...... 그렇게 언젠가는 자기한테 필요할 곳들을 하나씩 체크 합니다. 차암 여유로운 여행입니다. 기본 요금이면 됩니다. 종점역까지 그렇게 흔들흔들 가다가 피곤하면 살짝 졸아도 괜찮습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가 다 알아서 교통규칙을 지켜주니까 저는 졸았어도 안전하게 역에 대입니다.

작은 시가지인 저의 고향의 버스 종점역은 한결같이 파아란 산이나 들입니다. 꽃도 풀도 나무도 시냇물도 논도 밭도 다 있습니다. 그래서 경치 좋고 물좋은 거기서 혹은 나물을 캘 수도 있고 또 혹은 아이처럼 들꽃을 꺽으면서 놀 수도 있고 그늘 좋은 냇가에서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휴대용 녹음기로 노래를 들을수도 있습니다. 벌레소리 새소리가 반주 합니다. 그렇게 풀냄새, 흙냄새를 실컷 맡으면서 한참을 놀고나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탑니다. 저의 여행은 그렇게 세 시간도 안 걸려서 끝이 납니다.

집에 돌아오면 또 책을 봅니다. 책을 볼 때면 저는 꼭 책속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래서 책속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희한하게 잘 지냅니다. 그래도 저를 멍청하다거나 미쳤다고 비웃는 사람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끝이 나면 저는 또 저의 단짝 친구인 일기책을 마주합니다. 그한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맥이 진할 때까지 다 털어 놓습니다. 어떤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창피한 일도 잘못한 일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것도 그는 다 받아주고 용서해 줍니다.

그래도 아직 자기에는 일찍한 시간입니다. 텔레비를 봐야 합니다. 한데 텔레비를 마주하면 이상하게도 졸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해놓은 취침시간이 되기전에 자리를 마련해 누우면 또다시 말똥하니 잠이 깹니다. 그래서 뜨개감을 잡습니다. 예쁜 가디건이 요즘 마무리 단계에 왔는데 텔레비를 보면서 그걸 뜨면 졸리지도 않고 기분도 좋습니다. 내가 시간을 요리 알뜰하게 이용하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배나 더 잘 사는 셈이지 그렇게......

드디어 드라마도 끝이 났습니다. 포근한 잠자리가 저를 살며시 감싸 줍니다. 두 살잡이 아기 크기의 예쁜 곰인형을 안고 저는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습니다. 하나,두-울, 세-에-에..... 그렇게 몇 개 세기도 전에 저는 꿈나라에 갑니다. 거기선 또 하늘나라에 가셨던 울님께서 돌아 오셔서 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전자나깨나 늘 행복합니다.

아 고독은 하늘이 저한테 준 혜택입니다. 고독은 저를  행복한 여자로만 살게 합니다. 아 행복한 고독이여....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고독은 저를 행복한 여자로만 살게 합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