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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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관계개선을 약속하는 대선후보
    한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거에서 당선되면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문재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조선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고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에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대표들의 상봉을 마련하고 양측이 보유하고 있는 중무기들을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이동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 대통령선거는 12월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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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0
  • 중국 반일시위자 20여명 구속
    중국 광주시와 청도시에서 반일시위과정에 20여명이 구속되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공안당국이 발표한데 의하면 일본자동차를 부수고 일본상점과 식당을 파괴한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최근 중국의 100여개 도시에서 반일시위가 진행되고 있다.일부 도시에서는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탄가스를 사용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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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0
  • 중국 세계 최대 의료보험네트워크 구축
    [CCTV.com 한국어방송] 국무원보도판공실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개혁의 새로운 진전에 대해 소개했다. 이날 위생부 천주(陈竺) 부장은 최근년 의료개혁의 성과에 대해 소개하고 나서 다음단계 의료개혁의 발전 규획과 관련해 기자들의 물음에 대답했다. 천주 부장은 중국의 새로운 의료개혁은 중대한 진전을 가져왔다며 2011년 도시 농촌 주민의료보험, 도시 진 주민의료보험과 신형 농촌합작의료보험에 가입한 인구가 13억 이상으로, 의료보험 보급률이 95% 이상에 달하는데 이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의료보험네트워크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신형 농촌합작의료보험의 일인당 보조 기준은 300위안이며 2015년에 가서는 이 보조기준을 일인당 매년 360위안 이상으로 제고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올해 부터 농촌주민들의 아동백혈병, 부녀유방암, 자궁암, 폐암 등 20가지 중대 질병을 큰 병 보장범위에 넣어 90%를 정산해줄 계획이다. '12차 5개년 규획'기간 정부는 의료개혁에 대한 재정투입을 늘리고 전민 의료보험체계 구축, 기본약물제도 강화, 공립병원 개혁 등 세가지를 개혁의 중점임무로 할 예정이다. 천주 부장은 큰 병 보장 메커니즘을 구축해 기본의료보험과 의료구조제도를 잘 결부시키고 상업보험의 참여 우세를 발휘시켜 농민들의 큰 병 보장수준을 최대 한도로 제고시키는 한편, 이를 통해 중대 질병환자들의 병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는 실질적 문제를 착실히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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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0
  • 하늘나라에 계신 내님께 삼가 올립니다
    그립고 그리운 빈이 아빠. 그새도 안녕하셨습니까!당신이 가신지도 어언 8년 7개월하고도 이틀이 지났습니다. 세월이 참 유수같다는 말이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봅니다. 아니 당신이 한국으로 떠나던 2002년의 8월 12일부터 계산한다면 당신과 갈라진 나날이 10년하고도 일 개월 일주일이 지난 것입니다. 참 세월이 많이도 흘러갔지요........저는 그새 아이들을 거느리고 당신이 살아계서서 보신대도 흡족해 하리만치 열심히 살았습니다.홍매는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점을 꾸려서 그럭저럭 괜찮게 장사하고 있는듯하고 훈이는 북경에 집도 장만하고 직장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벼슬까지 하는데다 얼마전에는 딸도 낳았습니다.당신은 늘 입버릇처럼 외우셨지요 작은 아들은 너무 총명하니까 부모된 입장에서 유학을 보내서 더 창창한 앞날을 도모해 주지 않는다면 죄짓는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가서 돈을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일년 반 동안이나 야근을 하는 무리로 목숨까지 잃은 당신입니다. 한데 이제 당신도 시름놓으십시오. 금년 4월에 빈이는 몇 년을 근무했고 남들이 다가 부러워하는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그간 자기가 알뜰히 모아두었던 돈으로 일본에 유학을 갔습니다. 지금 그래서 빈이는 도꾜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시험마다 일등이랍니다. 저절로 알바해서 학비도 잘 벌고 있으니 일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죽는 날까지 원했고 부탁했었던 그 꿈— 연길에다 당신과 제가 함께 살집도 샀거든요. 이 모든것이 당신이 도우시는 덕분이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만치 집식구들한테 끔찍한 분이셨으니까 말입니다.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우리 애들이 공부를 유난히도 잘한다고 직장의 동료들이 우리 둘은 계획생육을 하는게 아깝다고 응당 낳는대로 다 낳아서 나라를 위해 인재들을 공헌해야 한다고 롱을 하더라면서 당신이 저한테 그 얘기를 할때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그 모습이............그리도 그 몇 년은 기분 좋아했었던 당신입니다. 홍매도 부잣집에 시집을 간데다 또 시집에서 기다리던 아들까지 낳았지 큰 아들이 대학에 붙어서 북경서 공부하고 있고 그 해는 또 작은 아들까지 전교는 물론 우리 흑룡강성에서 일등 성적으로 북경과학기술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또 남들처럼 큰돈을 들이지 않고 친척초청으로 한국에 가게되고...우리집 일은 참말로 잣대로 종이에 금을 긋고 줄을 쳐서 설계도를 그려내듯이 뭐나 계획대로 뜻대로 잘 풀리기만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그리 좋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래서 자랑하기를 즐기는 당신이 좀 입을 자제하고 참았으면 그런 생각이 늘 들었습니다. 왜 자랑끝에 쉬 쓴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살아가려면 행과 불행이 언제나 반반이라야 평형이 이루어지는거라고 전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좋은일이 자꾸 겹치니까 저는 말못할 불안감이 앞선 것입니다. 이리 많은 좋은일 뒤끝에 찾아올 그 절반의 불행은 무엇일까? 그렇게.... 당신은 그냥 덮어놓고 좋아만 하시지만 저는 그래서 그게 어떻다고 딱 찍어 말할수가 없이 조마조마 했었던것 같습니다. 그릇에 물이 가득차면 넘치고 달도 둥글면 이지러진다고 했던가요? 아 제가 그런 청승맞은 생각을 왜 했던지 참말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도 내내 그렇게 불안 불안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껏해서 한국에 계신 당신의 건강에나 이상이 생기지 말았으면 그냥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무사했으면 그런 생각을 했고 애들과 저도 그냥 건강하기만 하면 더 바랄게 없다고 생각을 했지 다른 생각은 꼬물만치도 한적이 없습니다.그래도 빈이가 대학에 붙어서 북경으로 떠난후 그 몇 달은 그럭저럭 홍매네 아이를 봐주면서 저도 집식구들도 당신도 무난히 지운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불행이 우리집을 덮친 것입니다. 매일같이 저한테 전화주시던 당신입니다. 그리도 기뻐서 어쩔줄 모르시던 당신입니다. 한데 그날도 저하고 통화한지가 두 시간도 되나마나 해서 갑자기 그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왔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떴다나요?! 아 세상에 이런법도 있습니까?! 매일 전화통만 지키고 있는 멍청하고 어수룩한 저더러 어떡하라고 애들을 다 맡기고 당신이 죽습니까?하늘땅이 캄캄하고 그래서 세상마저 마지막날을 맞이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도 울고 울고 또 울어서 정신마저 돌아버린 것 같았고요.....그 며칠은 그렇게 정신없이 출국수속을 했고 드디어 2004년 2월 27일 한국가는 비행기를 심양공항에서 탔습니다. 당신이 세상 뜨신지 꼭 열흘되는 날입니다. 아! 지금 생각만해도 잇발이 갈리고 치가 벌벌 떨립니다. 망할놈의 인간들! 무슨 사망비자에 그리 오랜 시간이 지체되는지? 추위를 무릅쓰고 매일 비자신청온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수십미터는 잘 되는 긴줄을 서서 내 순번이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다가 점심때가 돌아오면 또 개 몰듯이 밖으로 내 몹니다. 집안에서 기다리지 말고 밖에서 나가 부스너털면서 기다려라! 그렇게 총까지 멘 공안일군들이 지키면서 악이나게 만듭니다. 어느 인면수심의 여자가 퍼렇게 살아있는 제 남편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비자 신청을 할 수 있을까요? 거기에 무슨 열흘씩이나 심사가 필요한데요?! 한데도 섭외결혼에 비지니스비자에 여행비자는 줄줄이 다 도장찍어 나오는데 매일 어두울 때까지 기다려도 또다시 내일 오랍니다. 제 인생의 가장 비참했던 그 며칠을 인간이하의 그 수모를 당하면서 저는 매일 심양주재 한국영사관 앞에서 슬픔에 떨고 치욕에 떨면서 울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날에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한국가면 장례때 걸어 놓으려고 크게 확대해서 준비해뒀던 당신의 영정사진을 안고 나갔습니다.또다시 줄을 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곱게 줄서서 기다렸습니다. 한데 점심때가 돌아오니 또다시 개 몰듯이 바깥으로 내 몹니다. 더는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는것이 아닙니까? 어찌 사람을 이렇게 한계로 내 몬단 말입니까? 당신이 냉동보관함에 들어가 있은지 벌써 열흘이 되어 오는데 그렇게도 사람을 악이 나게 만듭니다."야 이것들아 너무 심하지 않느냐! 내 남편이 죽었단 말이다. 네년 남편들이 만약에 죽어서 냉동실에 있다면 어떻겠느냐?! 주검을 뻗쳐놓고 여행을 가고 싶겠느냐? 결혼이 하고 싶겠느냐, 너들도 사람이냐? 이 짐승같은 인간들아! 대한민국이 지상천국이라도 사람을 이리 천시하면 못쓰느리라. 천벌을 받을 것이다. 네 년들한테도 그냥 이렇게 조선족이나 개무시하면서 으시대는 날만 있을줄 아느냐 행과 불행은 언제나 반반이라고 했으렷다. 네 남편이라고 그냥 무사할줄 아느냐! 당장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으면 네년들의 남편놈들이 오늘 내일중으로 내 저주가 맞아서 무리죽음을 당할 것이로다." 창너머로 보이는곳에 비자심사하는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인간들이 다가 여자들이라 내가 싸잡아서 그리 욕을 한 것인데 욕은 듣는 사람이 먹는다고 밖에서 질서유지를 시키던 중국여자가 내 욕을 다 먹은것입니다. 한을 품은 여자의 저주가 오뉴월에도 서리로 내린다 했거늘 그 여자 낯색이 댓바람에 하얗게 질리더니 자기를 저주한다고 야단을 칩니다. 그래 내가 저주를 했다. 어쩔 것이냐? 네년은 저주만 받고서도 그렇게 분하지만 내 남편이 죽어서 지금 이국 타향의 차디찬 냉동실에 홀로 누워 있는터에 그게 뭔 대수냐 네 남편이 이자리에 있으면 달려들어 찢어라두 놓을거다" 당신도 아시다 싶이 전 원래 그런 여자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근데 사람이 악이 나니까 눈에 뵈는게 없었고 무서운 것도 체면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밖을 지키고 있던 공안일꾼들이 폰으로 안과 연락을 합니다.그래서 옹근 아흐레 만에 여권에 도장을 찍은 것입니다.비행기에 앉으니까 악이나서 잠깐이나마 즘즉했었던 슬픔이 또다시 몰려 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시고 이렇게 제가 만약에 한국가는 비자를 받아서 비행기에 앉았다면, 공항에 마중나와 절 기다리다가 넓고 따스한 그 품에 포옹해 주실 당신을 눈앞에 그려보며 얼마나 기쁨에 들뜨고 행복감에 가슴이 설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내 생에 처음으로 탄 비행기입니다. 그것도 이런 기막힌 상황에 말입니다. 에라 미친년의 개 팔자!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뭘할까 그냥 확 죽어 버렸으면 차라리…. 저는 그래서 비행기 추락사고라도 콱 났으면 그런 되도 않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핑게좋게 당신을 따라 가게 되고 저는 그게 더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훈이는 졸업이 눈앞이니까 이제 홍매하고 둘이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 빈이를 어떡하나 책임지고 학업을 마무리하게 하겠지 그런 생각에... 그때는 그냥 제가 죽어서 당신한테 가는게 제일로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그래서 머릿속으로 유서 내용까지 다 작성해 놓았습니다."사랑하는 내 아이들아 엄마는 지금 아빠를 따라서 가니까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런즉 절대로 슬퍼 말아라. 홍매는 큰누나이니까 부모없는 두 동생한테는 엄마 대신이고 그래서 동생들은 누나말에 따르거라. 그리고 훈이는 형이니까 졸업을 하게 되면 엄마 아빠한테 효성하는 몫으로 빈이 공부 뒷바라지를 마저 하거라. 엄마가 긴말은 못하겠다. 각자가 우리집 상황이 갑자기 이리 되었으니 알아서들 양심껏 잘 살거라." 그렇게요...............하지만 비행기는 아무런 탈도 없이 얼마 안되여서 인천공항에 착륙을 했고 저 역시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비행기에서 내린 겁니다. 비행기 사고도 그렇게 그냥 아무렇게나 나는게 아니더라구요....그게 어제일 같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친척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었고 저를 안내해서 서울 성심병원의 영안실에 갔습니다. 딱 3년간만 애들을 지키고 있으면 돈을 이따만치 벌어다가 나를 호강시키겠다던 당신입니다. 그 약속을 어이하고 그렇게 차거운 냉동실에 제가 온것도 모르고 누워계십니까?! 제가 왔습니다. 제가 왔다니까요. 당신이 늘 시름못놓고 어디든 데리고 다녀야만 하던 한심한 길치 이 아내가 왔단 말입니다. 그리도 아기같이 보살피면서 평생을 사랑했었던 아내가 왔다고요! 불러도 대답없이 당신은 이미 차디찬 냉기를 뿜고만 계십니다.냉동보관함에 누워계신 열흘이라는 간 시간에 당신은 이미 얼음덩이 같이 싸늘하게 변해 버린 것입니다. 할빈공항에서 저를 마지막으로 포옹해주시던 당신 특유의 체취가 아직도 제 코끝에서 맴돌건만 당신은 이미 굳어진 상태고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도 그래서 인제 다신 들을수가 없습니다. 아 제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혔는지 당신은 아시기나 하십니까? 아이구 찢어질듯이 아팠던 내 가슴아-아-아!! 수년세월 저한텐 늘 따스하기만 했던 당신, 지금은 차디차게 굳어버린 당신한테 떨리는 내 손으로 상시옷 입히고 장례해서 벽제화장터에 싣고가서 화장을 했고. 다시 바다장례식장 녹색17번부표를 찾아서 하얗게 재가루로 변해 버린 당신을 모실 때까지, 제가 겪었던 인생 최악의 무서운 그 아픔과 슬픔, 그리고 무더기로 흘렸던 가슴 쓰라린 피눈물, 하늘에 닿는 그 처량함이 어찌 당신이 잠들어 있는 그 바다의 깊이보다 못하다고 할수가 있을까요? 아! 생각하면 지금도 살이 떨리고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그칠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살다가 그런 끔찍한 일이 없어야 하는건데!!!...............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갔습니다.저도 당신을 바다장례식장에 맡기고서 한국에서 열심히 벌었고 한푼도 낭비하지 않고 알뜰히 모았습니다. 이제 그래서 우리도 가난에서 완전 탈출을 한것입니다. 모든게 당신이 늘 꿈으로 넉두리하던 대로입니다. 그냥 단신만이 없어진 것입니다. 혹시 당신의 영혼만은 저와 함께 있는 겁니까?저는 해마다 설명절이나 음력 칠월십오일-한족들의 귀신절이 돌아오면 빠짐없이 당신한테 종이돈을 태워 보냅니다. 당신이 늘 제 곁을 지켜주고 계신다고 여겨져서 고맙고 든든한 생각에 말입니다.이제 저의 꿈만 이루면 됩니다. 만약에 그 꿈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옛날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당신도 되살릴수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냥 책속에서라도 당신이 살아 숨쉴 수 있는 그런 꿈입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백일몽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또 혹시 백일몽이라 하더라도, 저는 열심히 꾸고 또 꿀것입니다. 죽을때까지 그렇게 꾸다보면 언젠가는 뭐라도 되어지겠지 그런 생각입니다. 당신도 많이 도우시고 지켜보고 그러십시오.아 지금 당신이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생각해 봅니다. 당신이 늘 그렇게 외우셨듯이 연길에 집사고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시는 문구치러나 다니시고 저는 또 제가 좋아하는 책을보고 글이나 쓰고 그렇게요. 남에 없이 아이 셋이나 키우면서 어렵게 살았던 그 세월에 당신이나 저한테는 도저히 이룰수 없었던 환상같은 그 꿈이 지금 완전한 현실로 눈앞에 왔습니다. 한데......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은 늘 저의 곁에 계서서 매일 백번씩이라도 액자속에서 절향해 웃음짓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그냥 거기 그렇게, 그자리에 가만히 계셔도 좋습니다. 제 맘속엔 당신이 늘 살아 계십니다......지금 이 시각 창밖에는 어스름이 깃들고 있습니다. 제맘을 닮은 궂은비가 추적추적 슬프게 내립니다.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당신은 늘 제 꿈나라에 찾아 오셔서 절 위안해 주십니다. 오늘 밤에도 만날수 있을 겁니다.아 빈이 아버지, 저승과 이승은 이렇게 만날수가 없지만도 맘은 그냥 이어져 있는게 맞습니까? 대답을 좀 해 보십시오!!....이제 십년 세월이 되어오지만 저는 그냥 생각할수록 당신이 이리된 것이 기막힐 따름입니다................이제는 바깥이 완전히 어두워 졌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오늘은 그만 하렵니다.안녕히 계십시오!당신의 아내가당신과 나의 알뜰한 보금자리에서.이천 십이년 구월 십구일에…글/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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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20
  • 중국《9.18사변》반일시위 확대
    [동포투데이]중국에서 다오위다오(센가꾸)렬도를 둘러싼 정세가 악화되는 가운에서 반일시위가 확대된다고 중국언론들이 전했다. 반일시위는 이미 100여 개 도시에로 확대되었다.1931년에 일어난 《9.18 사변》 때문에 정세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때 일본 관동군이 중국 동북부 목단강(현재 명칭 심양)주변에서 철길을 폭파하고 중국군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만주가 강점하자 극동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폭발했다.반일시위가 진행되는 중국의 도시들에는 무장한 경찰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일부 시위참가자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창시자 모택동의 초상화를 들고 일본에 대해 강경조치를 취할 것을 당국에 강력히 요구했다.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앞에서는 1000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6개의 경찰부대가 동원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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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9
  • 중국 배우 255명 댜오위다오 사건에 대한 성명 발표
    [동포투데이]인민망(人民网)의 9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중국라디오TV협회 배우위원회 회원인 260명의 중국 배우들은 일본의 댜오위다오(钓鱼岛) 국유화 사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해 국가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당중앙,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국가해양국 등의 정부부서에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이번 성명에 따르면 조국의 존엄과 중화민족의 대의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의 배우들은 결단코 중국 정부의 영토수호 정책을 적극 지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국라디오TV협회 배우위원회는 중국 배우들이 자원해서 결성한 전문조직으로 비영리성 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12년 9월 10일 일본 정부는 중국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포했으며 이는 중국 영토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서 중국 측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게 됐다. 이는 중일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저촉되는 것이다. 중국 배우위원회는 이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분노를 표시하며 이 같은 성명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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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8
  • 中 전국적으로 9.18 망국의 한을 잊지 말자는 반일 시위 열려
    [동포투데이]9월 18일은 81년 전 일본이 중국 동북에서 침략전쟁을 벌인 날로서 81년이 지난 오늘날 중일 관계는 재차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원래 올해는 중일 양국이 수교를 정상화 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나 일본 정부는 중국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댜오위다오(钓鱼岛)의 국유화를 선포했다. 이는 중국의 영토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서 중국 국민들은 이에 강력한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로 인해 9.18 일본의 중국 침략 사건이 더욱 부각되게 됐다. 이 날 중국에서는 전국적으로 9.18 기념행사를 가지며 반일 감정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전세계에 있는 화교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본의 댜오위다오 쟁탈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중국 선양(沈阳)시 정부는 9월 18일 오전 9시 18분 경종을 울리는 행사를 가졌는데 방공경보를 3분간 울림으로써 81년 전의 치욕적인 망국의 한을 되새겼다. 이외에도 란저우(兰州), 쿤밍(昆明), 청두(成都) 등 도시에서도 경종을 울리고 방공훈련을 하는 등 9.18 관련 기념행사를 가졌으며 광시(广西), 안후이(安徽), 산시(山西) 등에서도 방공훈련을 가질 계획을 세웠다. 9월 16일 약 5000명의 홍콩시민들은 9.18 기념행사를 열어 댜오위다오 수호를 위한 평화시위를 벌였다. 한편 9월 12일 타이완 노동당, 중국통일연맹 등도 망국의 한을 잊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일본의 댜오위다오 쟁탈 행위를 중단하도록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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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8
  • 어느 부부의 5년만의 만남
    철이른 장맛비가 쏟아지는 칠월 초 서울 종로 3가의 한식당에 갔다가 5년 만에 남편을 만나러 한국에 와 그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조선족 녀인을 만나게 되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그 여인은 중국 길림성 연변에서 왔다했다. 그 식당에서 홀서빙 일을 한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다 한다. 때 마침 점심시간이 지난 후였기에 우리는 잠시나마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우가 있었다. 초면이지만 외지에 나와 고생많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녀는 자기가 고생하는 것보다 한국에 먼저 와있는 남편이 너무 안타깝고 안쓰럽다는 말로, 며칠 전 공항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의 일을 슬프게 되뇌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오래동안 헤어져있던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출구를 나오니 북적이는 환영인파 속에서 한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어요. 날 부르는 사람앞으로 다가가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절하게 상봉을 갈망했던 내 남편이 너무 몰라보게 변했기 때문이었어요. 5년 전 남편이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청춘처럼 젊었던 얼굴이 검게 변하여 주름살도 많아졌고, 흰 머리도 많이 났어요. 거기다 튼튼했던 체구가 무척이나 수척해진 것이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변해있었어요. 5년 전의 내 남편 모습과는 너무 많이 달랐지요. 우린 5년만의 만남으로 간절한 감정이었지만, 남편의 변해버린 모습에 내 마음은 서글퍼졌고, 한국에 들어와 많은 고생을 한 남편이 측은하게 보였어요. 내가 가져온 짐을 끌고 앞서 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참으로 고생했나보구나’라는 생각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녀는 내게 손수 물을 따라주면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불과 며칠 전의 얘기를 풀어놓던 그녀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기자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요기를 떼우기 위하여 들어간 식당이었지만 그녀의 사연에 진한 감동을 느꼈다. 마침 점심시간이 지난후여서 손님도 별로 없는 시간이었기에 그 여인의 사연을 더 들어보고 싶었다. 그녀와 남편은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 시내로 들어와 다시 서울지하철로 갈아타고 20여 정거장을 간 후 안산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곳은 올망졸망 낮은 빌라들이 줄지어 있는 좁다란 골목의 반지하방이었다. 비좁고 어두컴컴한 방이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몇 년 동안 거처하고 있는 집이라 생각하니 그런대로 마음은 편해지더라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은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봉투를 손에 쥐어주던 남편은 한국돈 100만원이 들어있으니 한국에 있는 동안 알아서 쓰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몇 달만 더 벌면 중국에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 되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말하던 남편은 그제서야 허허 웃으면서《당신은 별로 변한 게 없구만. 아니 더 이뻐진 것 같아.》라며 꼬옥 안아주더란다. 그녀는 5년 만에 만난 남편이었기에 술도 한잔 할 겸 반찬 몇 가지를 정성스레 요리하여 밥상에 올려놓았건만, 남편은 그 요리보다는 맨 밥에 고추장 한 숟가락 떠 넣어 쓱쓱 비벼대더니만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웠다. 다음 중국에서 가져온 술 한 병을 따더니 한국에 오느라 수고했다는 말과 고향 친척들 근황과 안부를 묻고 연거푸 몇 잔을 비우더니 술병 절반을 축냈다. 숟가락을 놓은 남편은 곧바로 드러누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피로에 지쳐 쓰려져 잠이든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볼에는 측은함과 고마움이 녹아있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설거지를 끝내고 남편 곁에 누운 그녀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몇 년간 집을 떠나 있는 남편 곁에 오고 보니 마음만 쓰라려 한없는 눈물만 나왔다. 깊은 잠에 빠져있던 남편은 이튿날 새벽 5시에 자리를 차고 일어나 대충 세수만 한 후, 집에서 편히 쉬고 있으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그 날부터 숨막힐 듯한 독수공방으로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틀 동안 그렇게 집에만 있다 보니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나간 남편은 한밤중에야 귀가를 했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곤했어요. 제가 중국에 있을 때는 남편이 돈을 보내오면 별 생각이 없이 받아 쓰곤했는데 직접 와보니, 정말 그 돈은 남편의 피땀으로 번 돈이란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어요. 매일 남편이 일하러 나간 후 저는 안절부절 못했어요. 도무지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집근처에 일자리를 찾던 중 이 식당에 오게 되었어요. 며칠 동안이라도 일해 비행기표 살 돈을 장만하려고요.》 그렇게 애틋한 사연을 정리한 그녀는 밝은 모습으로 설걷이를 해야 한다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저는 남편이 준 돈을 아직 한 푼도 쓰지 않았어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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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8
  • 고향 방문기
    지난 6월 11일, 오매불망 그리던 고향 방문의 길에 올랐다.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하는 길이라 별로 준비할 사이도 없었다. 한국에 배를 타고 온 저로서는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행운을 지녔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세시에 서서히 푸르른 하늘로 날아 올랐다. 뭉게뭉게 핀 구름들은 비행기 날개 밑에서 뒤로 미끌어질듯 멀어져 가고 저의 마음은 날듯이 개운하고 감개무량하기만 하였다.아~~ 사람들의 위대한 발명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고도의 과학과 문명이 발전한 세상에 살고 있음이 감사하기만 하다. 한 시간쯤 되여 연태 래산 비행장에 도착하니 귀에 익은 중국어방송이 울려 왔다. 마중나온 조카의 자가용을 타고 바다가의 도시를 신 나게 달렸다. 확트이게 뻗은 아스팔트길, 하늘을 치솟듯 일떠선 고층건물들은 즐비하게 들어섰다. 이튿날 시간상 관계로 조카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13일 밤 열시에 연길행 남방 항공에 탑승했다.연길에서 받은 첫 인상은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로와 보이고 자유로운 형상이 제일 유표하게 안겨왔다.고향의 한 그루의 나무, 한 채의 건물도 신선하고 멋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마음 속에 지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고향이라고 했는가 싶다. 연길에 도착하니 기온이 섭씨13도여서 긴팔 내의를 입고 다녀야 했다.연길은 중심 도로의 건물들은새옷단장 하느라 인테리어가 한창이였고 연룡 도로도 확장건설에 열을 내고 있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창립 60주년을 맞으며 일대 변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향이 이렇듯 흥성거리니 우리 고향을 온 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제가 살던 마을엔 하루밤만 묵었다.. 제집은 이웃이 봐주는 형편이라 앞집에 있는 한족 언니 집에서 맛나는 볶음채에 맥주를 마이며 그리운 이야기도 나누고 마을에서 생긴 일들 서로 간에 덕담들도 나누면서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웃 분들이 자기가 손수 낸 고추가루를 갖고 가라고 넣어주어 한국에 갖고 왔다. 고추가루를 먹을 때마다 자애로운 얼굴이 떠오르군 한다.시간을 아껴가며 볼 업무를 보고 년세가 지긋한 오빠를 만나고 석현에 있는 사촌 언니를 방문하고 도문에서 뻐스표를 떼고 검표를 하려는 순간 제 눈에 한 녀인이 보였다. 우리 중한의 무궁화님이였다. 사진으로 익힌 모습을 그리며 얼싸 안았다. 무궁화님은 훤칠한 키에 젊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잠간 말을 나누고 떠났었다. 한가지 유감인 것은 지기님과 전화 통화만 하고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후에 기회가 되면 회포를 풀어 보고 싶다.그리운 고향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예약이 돼 있어 17일 오후 4시 30분에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장백산을 경유하는 지라 손님들이 오르는데 사람들마다 건장한 모습에 려행용 트렁크를 끌고 오르는데 편안한 모습, 여유 있는 생활이 발목 잡았다. 전 아직 멋진 여행을 향수해 못 보았다. 이제 몇 년 일해 저의 노후 계획을 실현하면 신 나는 여행 즐기려고 구상 중이다.우리의 수도 북경은 웅장한 모습으로 더욱더 생기 있고 발전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물가가 많이올라 있었다.중산 계층이 소비하는 물가지수, 그리고 명패 상품은 환률을 계산하면 한국과 비슷하였다.일본이 경영하는 华堂商场(화탕상점)에서 디자인이 마음 드는 원피스라면 500원이면 한국에서도 소화할 수 있었다. 하여 전 신이 해져 마트에서 싼다루 한 컬레 사 신고 말았다. 우리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 좋아지길 바램을 가져 본다. 기본 노임 2,000원으론 살기 힘들 거라 생각된다.북경의 부동산은 아직도 천문 수자이다. 5환 이내는 아직도 비싸다. 제 아들이 사는 대산자 구역도 침실 둘, 거실이 있는 집 한 채를 사려면 2백만이 된다고 한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은 힘들었다. 북경 사람들은 모두 백만 부자이니 자호감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언제면 부동산이 백성들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돌아 올지 모를 일이다. 아파트는 지은 다음에도 정상적으로 보수해야 그 수명이 길건데 쓰기만 하고 그렇지 않으니 마음이 좀 착잡해 났다. 저의 견해이니 참고로 해 주었으면 한다.짧은 여행에서 얻은 소감 이로써 끝내면서 문명하고 발전한 사회를 건설하려면 비교가 있어야 부족점을 알고 더 멀리 날 수 있다는 도리를 알게 된다고,, , /현만녀
    • 독자기고
    2012-09-17
  • 시 간
    오늘도 여섯시에 잠에서 깨여났다. 일어 나면 첫 번째 일과는 컴퓨터를 켜고 제가 제일 사랑하는 카페에 출석 신고를 하고 짤막한 글을 올리기도 한다. 그다음 오늘 할 일을 간단히 구상해 본다. 오전엔 시간이 있기에 간단히 신문도 보고 일어 공부도 잠간 한다. 나이 먹고 웬 공부냐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겨울에 <노인 심리 상담사>란 민간 자격증을 따고 보니 그건 한 장의 종이일 뿐이고 그 학원들은 돈벌이로만 활용하지 실제 배양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노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 대해 알고 싶고 노인 복지에 대한 글을 읽고 싶고 하여 2월 하순부터 <히라가나>로부터 시작하여 <가타가나>를 한자씩 배워 인젠 상용 단어를 익혀가고 있으며 며칠 후면 회화로 들어 가려고 한다. 하루 24시간, 그 누구에게도 차레진 시간이지만 시간을 쪼개고 시간을 알맞게 사용하니 그 의미또한 깊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사회가 발전하는 이 시대에 발 맞추어 이미 쓰던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처음이라 사용법을 몰라 전화 번호가 시도 때도 없이 걸리는 일도 있었지만 아들들과 카카오톡으로 교제하니 기쁘고 친구들과도 교제하니 이처럼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도 건강함에 감사하며 제 철에 맞는 이쁜 옷들도 입고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저의 년령에 맞는 일거리, 노인 복지 사업에 한 몫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맡은 일을 정성껏 일하며 제가 설계한 노후 준비를 완성한 후에는 언제나 듬직하고 미더운 남편과 같이 해외 여행도 가려는 계획도 갖고 있으며 인생의 천륜지락도 누리고 싶다. 오늘도 아름다운 구상을 무르익히며 인생의 발걸음을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이 더 아름답다고,,,,
    • 독자기고
    201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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