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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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험상궂고 무뚝뚝”? 아니, 마음은 따뜻한 남자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지난 세기 90년대부터 한국 영화 혹은 뮤직비디오에서 늘 조폭역을 담당하며 험상궂은 형상으로 우리 앞을 다가온 배우가 있다. 바로 전라도 출신으로 하냥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또한 전라도 사투리에 애정을 느낀다는 오상훈씨이다. 달갑지는 않았으나 영화나 뮤직비디오에서 늘 조폭이나 사회 최하층 인물로 등장해서인지 이것이 결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오상훈씨는 “조선명정탐”, “청담동에 살아요” 등을 통해서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전 이런 오상훈씨를 만나 무릎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아래의 것은 오상훈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 생년월일을 말씀드린다면? - 1966년 9월 1일이다. Q : 직업은? -영화배우 겸 무술감독 Q : 취미생활을 소개한다면? - 운동이다. Q : 자신의 특기로는? -합기도 7단 Q : 어릴 때는 어떤 소년으로 자랐고 어른이 돼서는? -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경기도 안성에서 체육관을 운영하였다. Q : 배우로 된 계기를 소개한다면? -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특기인 무술을 보여줄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 이소룡과 성룡, 황비홍 그리고 이연걸 등이 우상이었다. Q : 영화배우로 데뷔는 언제었고 출연작품으로는? - 1993년 영화 싸울아비 신인공채 모집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데뷔하였다. Q : 현재 가장 갖고 싶거나 원하는 것은? -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것 Q : 처음 촬영할 때의 기분은? - 처음엔 영화가 아주 낮설었다. 신인은 아마 다 그랬을 것이다 많이 긴장되고 NG도 많이 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거리이다 그 때 같이 영화에 출연했던 개그맨 서인석 형님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서인석 형과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Q : 배우로써 항상 마음(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항상 연기에 배고프다. 작은 배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배우만 있을뿐이다. 지금도 항상 연기에 목마르다. 어떤 역이든 주어지면 최선을 다한다. Q : 배우를 하면서 하길 잘했다 싶을 때는? - 배우는 거울이다. 배역에 충실해서 시나리오에 맞는 그 역할을 거울처럼 똑같이 연기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을 때 비로소 배우로서의 직업에 만족한다… Q : 반대로 가장 힘들 때는? - 역시 배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배역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난 메니저나 소속이 없어 배역이 오길 기다리는 형편이다. 물론 많은 출연을 하지 않기에 항상 배고프고 목마르다. 큰 영화든 작은 영화이든 내가 필요하다고 부르면 두말없이 달려간다. 그게 배우의 일이고 사명이다. 배우는 항상 남의 인생을 연기한다. 가끔씩 나 자신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배역에 심취하다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Q :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는(제목, 역)? - MBC 드라마 “태양의 도시”중 소영 아빠로 출연중이다. 수많은 배신속에 그도 점점 배신자로 변해가는 역으로 출연한다. Q : 지금 가장 갖고 싶거나 원하는 것은? - 결혼해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Q :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으로는? - 하하하… 난 늙다리 총각이다…사실 지금껏 여자 한번 변변히 사귀어보지 못했다. 얼굴이 험악하지도 않는데(사실 실제로 보면 귀엽게 생겼다)…그동안 배역이 그래서인가? 아직 여자가 없다. 전라도 고창출신인데 사투리가 심하다.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난 내 고향 말이 정겹다. 귀여운 욕도 간간히 한다. 이왕이면 내 고향 사투라를 좋아하는 여성과 만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은 진짜 결혼하고 싶다. Q :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는지? - 없다. 하긴 이전에도 없었고 …… Q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나 캐릭터는? - jtbc 시트콤 “청담동에 살아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역할은 험상굳은 얼굴에 착한 캐릭터였다. 그 시트콤을 통해서 나의 연기의 폭도 많이 넓어졌다. 캐스팅해준 김석윤 감독에게 난 아직도 고맙다. 그러나 그 고마움을 아직 표현하지 못했다. 사실 난 그런 표현이 아직 서투르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드리고 싶다. 김석윤 감독은 영화 “각시꽃 투구”의 비밀에도 날 캐스팅해주신 분이다. 고맙습니다. 김석윤 감독님… Q : 이제 해보고 싶은 배역은? - 아직 제대로 나를 알릴 수 있는 배역이 없었다. 독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한 연기…그 배역에 빙의가 한번 되보고 싶다. 그리고 의리있는 건달역이나 충성스런 장군역이나… 연기는 역시 배역이 우선인가 본다. 취재후기: “대한민국은 편견이 심한 나라이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 옛날 양반과 상놈에 대한 편견, 팔자에 대한 편견, 직업에 대한 편견 및 남녀에 대한 편견 등으로 전통적으로 이에 대한 습관이 남아있는 나라이다. 오늘 취재한 오상훈씨는 열심히 노력하고 인생에 대한 자세도 흠이 없는 남자이다. 하지만 세속을 피하진 못하고 있다. 얼굴형상 때문에 자주 검문에 걸려 주민등록증을 늘 갖고 다닌다고 한다. 결혼추구도 걸림돌이 많다. “험상궂은 얼굴”? 결코 험상궂은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터푸하고 솔직하게 생긴 얼굴”이라 함이 더 알맞겠지만 세속은 그렇지를 아니하다. 편견을 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오상훈씨의 인생에 새로운 전성기가 도래하기를 기원해 본다.
    • 사람들
    2015-03-22
  • [인터뷰] “남도 웃기고 나도 즐겁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개그맨이란 남을 웃기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의 인생은 “웃는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웃는 인생 ㅡ 참으로 부럽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웃는 인생”으로 되기까지의 각고한 노력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다 알 수 없을 것이며 그 노력의 과정은 결코 웃어온 과정만은 아닌 것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개그맨 서인석씨의 인생을 살피어 보면 단연 그것을 알 수 있다. 일전 개그맨 서인석씨를 만나 그가 개그맨 스타강사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Q 개그맨으로 된 사연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 처음부터 개그맨이 될 뜻이 없었거니와 나 자신이 개그맨의 인생을 살게 되리라고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군 문선대 시절 MC를 보면서 개그맨으로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 1988년 KBS 신인무대를 통해서 자신의 개그 재질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1989년 KBS “스타탄생(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그램의 대상을, 1990년 KBS 대학 개그콘테스트의 금상을 수상하면서 KBS 공채개그맨으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Q 개그맨이 된 후에는? - KBS “유모번지”, “쇼비디오쟈키”, “명랑극장”, “한바탕 웃음으로” 등 간판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몰이를 했다고 할까요? 이어 1992년 KBS 연기대상 코미디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후 SBS 개국에 즈음하여 스카웃이 되어 창사공로상을 수상했다. Q 그렇게 잘 나가다가 갑자기 개그맨 활동을 접었었다고 들었는데 그 사연은? - 아이들의 해외유학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방송을 접었다. 그러다 현재는 NGO단체인 다문화행복센터, 해외봉사(캄보디아, 필리핀) 등을 하고 있다. Q 현재 여러 정부기관과 단체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TV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 예, 미국 스타폴리오 예술 체육대학 영화연기과 교수로 초빙받았으나 현재 고심 중에 있고, 강화군 홍보대사 및 해외봉사단장 등을 맡고 있으며. TV조선 황금펀치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시사매체인 파프리카TV의 대표를 맡고 있다. Q 다년간 각 분야의 대상을 여러번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상들을 받으셨는지? - 이렇게 저렇게 받은 상은 많지만 주요한 상들로는 “아름다운사람들” (2013년 수상 “사회공헌” 신문사),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100 인 대상”(2013년 수상), “평화봉사 사회공헌상”(2013년 수상. 국회 정무위원회), “사회 공헌대상”(2015년 1월. 국회문화관광 위원회)등 이다. Q 개그맨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개그맨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드릴 말씀은? - 개그맨은 남을 웃겨야 하는 직업이지요.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늘 노력합니다. 개그맨은 은퇴가 없다고 본다. 숨이 붙어 있는 순간과 숨이 멎을 때까진 늘 웃음을 만들고 웃음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Q 개그맨으로서 강조할 사항이 있다면? - 위의 내용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Q 이야기하고 싶은 스토리나 꿈이 있다면? -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잘한 것이 있다면 개그맨이 된 것과 현재의 아내를 만난 것,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는 내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는 점이다. Q 마지막으로 더 언급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은? - 대한민국 5000만이 활짝 웃는 그날까지 난 계속 웃길 것이다. 난 개그맨이다.우하하하하~^^
    • 사람들
    2015-03-22
  • 中 충칭, 세계최고 길이 5천 미터의 연을 날린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3월 22일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 “세계 연의 수도”산동웨이팡의 연의 달인들이 5천 미터에 달하는 연을 가지고 와서 충칭 베이베이 룽후즈타이에서 날릴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 화룽망(華龍網)이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길이 5천 미터에 달하는 이 연은 세계기네스북에 제일 긴 연으로 인정 받았으며, 2500개의 작은 연들이 하나가 되어 “중국용”을 이루고 있고, 5천 미터 길이의 연을 날리기 위해 1000근의 연줄이 사용되었으며, 일반 자가용을 매달고 하늘로 상승할 만큼의 큰 장력을 가지고 있다. 주최측에 따르면 당일 연이 하늘로 순조롭게 오를지는 일기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의 축복과 소원을 담은 길이 5천 미터의 초대형 연이 매시간마다 1천 미터씩 날아오른다고 계산할 때 모든 연을 다 날릴 수 있으려면 5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외에도 25미터 - 40미터의 높고 거대한 연(문어와 고래모양 등) 여섯 개를 날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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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제2차 재한 “지원군” 열사 유해 고국에 돌아와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3월 21일, 제2차 재한(在韩) 중국인민지원군(중국군) 열사 유해 안장식이 중국 심양 항미원조열사릉원에서 장엄히 거행되었다. 중국 신화망에 따르면 이날 68명의 재한 지원군열사 영혼들이 고국에 돌아와 안식하게 됐다. 중국 민정부, 총정치부, 심양전역부대와 “6.25” 전쟁에 참가했던 노병사들과 열사가족들, 그리고 중소학교 학생 등 각계 인사 근 400여명이 고국에 돌아오는 열사 유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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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푸틴 중국에서 펼치는 항전승리 기념활동 참가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0일 베이징에서 있은 중국 외교부의 정례브리핑에서 중국 외교부 훙레이 대변인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중국에서 펼쳐지는 항전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되며 이에 중국측은 환영을 표하는 것으로 밝혔다고 신화넷이 전했다. 이 날 한 기자가 러시아측은 푸틴 대통령이 오는 9월경 중국에서 거행되는 2차대전 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증실해달라고 했다. 이에 훙레이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는 중러 양국은 2차 대전 시기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전장이었고 파시스트와 군국주의를 전승하고 2차대전의 승리를 위해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고 수차 언급하였다. 올해 양국은 모두 해당 기념활동을 거행하는바 양국 지도자들이 모두 상대국의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된다. 어제 러시아 대통령 비서청 이만노브 주임은 재차 푸틴 대통령이 중국의 항전승리 70주년 기념활동에 참가하게 된다고 표했다. 이에 우리는 환영을 표한다.” 중국의 항전승리 기념활동에 어떤 국가들이 참가하며 이 기념활동에 열병식 외 어떤 다른 활동들이 있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훙레이는 다음과 같이 표했다. “최근 중국측은 2차 대전의 주요 참전국인 아시아 국가와 기타 나라 및 유엔 등 국제조직의 지도일군들을 초청했다. 기념활동은 기념대회, 초대회, 문예야회와 열병식 등으로 진행된다. 영국, 프랑스와 러시아 등 허다한 국가들은 5년 혹은 10년에 한번씩 2차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열병식을 거행해왔다. 중국측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한 작법에 따를 것이며 열병식은 이 기념활동중의 일환으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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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꽃이 피어야 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기자】 3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부장) 회의에 참가한 한국 외교장관 윤병세와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일본 외상 기시다를 회견하였다. 이 날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일간의 경제 상호의존 및 합작을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이 결속되고 한반도의 광복이 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이는 한·중·일 3국에 모두 역사적 의의가 있는 해입니다. 때문에 역사를 정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더욱 중요합니다. 한국 속담에 ‘봄이 있어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야 봄이라 할 수 있다’란 구절이 있습니다. 이번 3국 외교장관(부장) 회의를 계기로 3국 합작의 봄을 맞이하기를 희망합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따뜻한 문안을 전달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중·한 두나라 지도자들의 관심과 올바른 인솔하에 현재 중·한 관계는 신속하게 발전하면서 각 영역을 통해 중요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중·한·일3국은 가까운 인방이기에 3국은 거대한 합작 잠재력과 발전공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중·한·관계가 엄중한 교란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거행되는 3국 외교부장(장관) 회의는 쉽게 마련된 장소가 아닌만큼 이번 회의가 3국 합작의 새로운 계기로 되기를 희망하며 3개 측 모두가 역사를 정시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정신으로 해당 역사문제를 타당하게 처리하여 쌍변관계와 3국합작의 발전을 위해 토대를 마련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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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2
  • 중국과 세계에 영향력을 미친 마오저둥의 예언
    “학문이 있다는것은 마치 높은 산에 올라 남보다 더 많이 더 멀리 바라볼수 있는 것과 같으며 학문이 없다는것은 마치 암흑속에서 걷는 것과 같이 한치앞을 바라보기조차 힘들다! 마오저둥” 마오저둥의 예언은 억측이 아니였다. 우연의 일치는 더구나 아니였다. 그것은 풍부한 실천경험과 연박한 지식 그리고 비범한 통찰력과 현실속에 깊이 침투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쌓은 경험적 결론이였다. 중국공산당제7차전원회의에서 마오저둥은 이같은 발언을 했다. “지휘대에 올라서서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한다면 그는 진정한 영도가 아니다. 지휘대에 올라서서 수면우에 드러난 보편적인 상황들만 본다면 이 역시 진정한 영도자가 아니다. 문제가 발생하기전에 바야흐로 일어나게 될 상황들을 예견하고 멀리 내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영도자이다!” 1916년 7월 25일 예언 “앞으로 20년사이에 중국과 일본간에 큰 전쟁이 있을 것이다!” 1937년 7월 7일, 로구교사변을 알리는 첫 총성이 드디여 항일전쟁의 서막을 열어제꼈고 이 한방의 총소리는 20년전 24살난 한 사범생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증명했다. 1919년 7월 21일 예언 “20년후, 프랑스인들에게 골치아픈 일이 생길 것이다!” 그로부터 20년후, 프랑스인민들앞에 크나큰 치욕이 생겼다. 히틀러는1918년에 독일이 투항을 선포한적 있는 바로 그 지점, 같은 기차, 같은 차바곤에서 프랑스가 투항서에 싸인하도록 강요했던 것이다. 1919년 7월 28일 예언 “일본과 독일은 세계적인 화를 불러올 것이다!” 마오저둥은 놀랄만한 관찰력으로 일본과 독일의 관계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었다. 그는 장장 20년을 앞당겨 “추축국( 心 )”의 2대 파쑈마왕들이 한통속이 되여 세계에 위해를 끼치게 될 것을 예견했다. 제2차세계대전의 폭발이 바로 이러한 예언의 철같은 립증으로 되였다. 1933년 11월 예언 “우리는 제5차 포위토벌을 막을 절호의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장개석이 중앙쏘베트지구를 상대로 제5차 포위토벌을 발동하고 있을 때 마침 마오저둥은 정치생애의 궁지(低谷)에 처해있었다. 쏘베트구역과 홍군의 안위를 위해 마오저둥이 계략을 내놓았지만 중앙에서는 결국 마오저둥의 의견을 채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5차 포위토벌”을 막을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였던 것이다. 1934년 12월 12일 예언 “적들이 준비해둔 ‘주머니’속에 기여들어가서는 안된다! ” 마오저둥은 “주머니”전문가이다. 그는 항상 계략의 주머니를 풀어 장개석이 스스로 기여들어오도록 했었다. 그런 그가 어찌 달갑게 장개석이 풀어놓은 주머니에 기여들어간단 말인가! 류백승이 말했다. “마오저둥의 지략이 없었더라면 당시 3만홍군의 앞길은 훼멸밖에 없었을 것이다.” 1935년 5월 24일 예언 “석달개가 뚫지 못한 길, 우리가 반드시 뚫고만다!” 태평천국은 증국번(曾 藩)이 이끄는 상서군의 수하에 의해 최종패배를 당했다. 장개석은 증국번을 아주 숭배했는데 늘 증국번을 모방하기를 즐겼다. 장개석은 마오저둥이 “제2의 석달개”로 되기를 바랐지만 마오저둥은 홍군을 령솔해 겹겹한 포위를 뚫고 석달개가 뚫지 못한 길을 뚫는데 성공했다. 1935년 9월 예언 “남하하는것은 출로가 없다. 1년후 당신들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마오저둥과 장국도(   )는 함께 “중국공산당제1차대표대회”에 참석한적 있는 원로이다. 이들은 장정의 길에서 회합한후 다시 두갈래로 갈라져 각기 제 갈길을 갔다. 장국도와의 분렬로 인해 마오저둥은 장개석의 포위권을 뚫고난후 일생중 가장 암흑했던 시기를 보냈다. 1936년 10월 9일, 홍군의 3대주력이 합류하고 장정은 결속되였다. 1936년 7월 15일 예언 “중국은 독립된후 대규모로 외자를 끌어들일 것이다!” 새중국이 건립된후 처음으로 끌어들인 외자는 쏘련정부에서 제공한 정보대부금 3억딸라였다. 그후 중국인들은 국제적채무를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마오저둥의 영명한 예견은 후일 등소평에 의해 실현되였다. 1994년,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외자를 많이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1938년 5월 예언 “중국의 항전은 7~8년이 소모될것이다!” 성사원의 회억에 의하면 마오저둥의 《지구전을 논함》이라는 문장이 발표되기전, 주은래는 이미 문장의 기본정신을 백숭희에게 소개했다. 백숭희는 문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는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이끌어내는데 있어서 최고의 전략방침으로 될 것이라고 했다. 《지구전을 론함》을 두고 백숭희는 “작은 승리를 모아 큰 승리를 이끌어내고 공간을 시간으로 바꾼다.”라고 규납했다. 이는 군사위원회를 통해 전국에 널리 전파되였고 항일전쟁중의 전략적지도사상으로 되였다. 과연 8년의 간고분투끝에 일본은 종국적으로 투항을 선포했다. 1938년 10월 예언 “장백륜은 반드시 돌멩이를 들어 자신의 발등을 깔 것이다!” 2차대전전, 영국의 수상인 장백륜은 정치가의 리성과 상인의 자사자리를 내세워 전쟁미치광이 히틀러를 대처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장백륜이 들어올린 돌멩이는 쏘련인들의 머리꼭대기에 던져진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등을 내리친격이 되고말았으며 그의 정치생명도 뿌리채 뽑히우는 격이 되여버렸다. 1939년 9월 23일 예언 “루즈벨트는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 참가하도록 할 것이다!” 연안의 작은 움막에서 마오저둥은 2년이나 앞당겨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 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다. 이는 중국인민들이 항전에 대한 필승신념을 수립하는데 중요한 의의로 되였다. 1959년 3월 16일 예언 “우리 군의 장래 출로는 중원에 있다!” 7년후, 마오저둥은 3갈래 대군을 중원에 파견해 정권쟁탈에 나섰으며 전국적인 전쟁의 승리를 확고히 다졌다. 1942년 7월 2일 예언 “제2전쟁터가 있으면 1년내에 독일을 물리칠수 있다!” 구라파대륙이 제2의 전쟁터를 개척하기만 하면 독일을 물리치는데 1년정도의 시간이 소요 될 것이라는 마오저둥의 예언대로 제2의 전쟁터는 1944년 6월에 개척되였고 독일은 이듬해인 1945년 5월에 패배를 당했다. 1945년 8월 13일 예언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히로시마(  )에 첫 원자탄을 투척한 7일후, 마오저둥은 단언했다. “원자탄은 결코 전쟁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마오저둥의 예언은 헛된 것이 아니였다. 오늘날까지 원자탄의 습격을 받은 국가는 일본이 유일한 나라이다. 1949년 12월 9일 예언“향항문제는 협상방법으로 해결 될 것이다!” 40년대부터 마오저둥은 향항과 오문 나아가서 대만문제를 해결할데 관한 기본사로를 세우고있었다. 즉 문제의 해결에 급급해하지 않고 향항과 오문의 력사와 현상태를 충분히 존중하는 전제하에서 협상을 통해 평화공존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였다. 오늘날, 향항과 오문이 순조롭게 회귀한 것은 마오저둥의 영명한 예견을 잘 반영하고있다. 1949년 3월 예언 “일부 공산당원들은 사탕포탄앞에 무너질 것이다!” 1952년 2월 10일, 사탕포탄의 유혹을 못이긴 류청산, 장자선이 드디여 정의의 총구앞에 쓰러졌다. 이는 수십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부패를 반대하고 청렴을 창도하는 전형으로 손꼽히고있다. 1955년 1월 15일 예언 “기본립자도 분해할수 있다!” 물리학에 대한 깊은 연구는 없었지만 마오저둥은 신기하에도 20년후 물리학의 발전추세를 예측했다. 1978년, 하와이에서 거행된 “제7기 세계립자물리학토론회”에서 노벨물리상획득자는 기본립자의 이름을 “모립자”로 지을 것을 제의했다. 1956년 6월 예언 “높은 협곡은 호수에서 시작된다!( 高 出平湖)” 마오저둥은 장강삼협에 관한 전망계획을 세웠지만 자신의 예언이 실현되는것을 보지 못한채 서거되였다. 1992년 4월 3일, 제7기인민대표대회 제5차회의에서는 절대적인 우세로 “삼협공사의안”이 통과되였다. 현재 삼협공사는 시공중에 있다. 1958년 6월 21일 예언 “원자탄, 수소탄, 대륙간유도탄은 10년내에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다!” 1960년, 쏘련에서 전문가를 철수하고 설계도를 가져가자 일부 외국인들은 “중국은 20년사이에 아무런 원자탄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중국은 10년사이에 원자탄뿐만아니라 수소탄, 중성자탄까지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1958년 9월 5일 예언 “대고락이 나서면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대고락(戴高 )은 경상적으로 프랑스의 해외식민정책을 위해 변호하며 적극적으로 랭전을 추동한 장본인이다. 때문에 국제여론은 보편적으로 이같은 정치국면의 변화에 의해 구라파가 우회전할것이라고 인정했지만 마오저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대고락이 나섬으로 하여 구라파중립주의의 발전을 추동하고 구라파가 미국을 떨쳐버릴수 있다고 단언했다. 역사의 발전은 드디여 마오저둥의 이같은 예언을 실증했다. 1962년 1월 30일 예언 “중국이 세계선진국을 따라잡는데는 백여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마오저둥이 1962년 “7차인민대표대회”에서 예견했던 발전속도는 제2대 영도자가 제정한“3보(三步走)”전략과 묘한 일치를 가져왔다. 동포투데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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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5-03-21
  • 경기도, 수도권 광역버스 요금 인상계획 당분간 연기
    [동포투데이]경기도의 수도권 광역버스 요금 인상계획이 당분간 연기됐다. 20일 오전 10시에 개최된 경기도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김희겸 행정2부지사, 이하 위원회)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요금 인상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하고, 경기도의 수도권 광역버스 요금 인상계획 연기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이날 요금 인상 계획을 4월중 다시 심의하기로 하고 ▲서울·인천시와 함께 인상시기협의, ▲실무위원회가 종합적인 검토 자료를 준비해 위원회에 제공, ▲요금인상폭은 가계경제 부담, 버스업계 경영 어려움. 서비스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 검토하겠다고 결정했다. 아울러, 버스 요금 인상 조정 이전까지 버스업계 손실 지원을 위한 도의회 차원의 예산 지원 노력을 주문했다. 앞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 위원장인 김희겸 경기도 행정 2부지사를 만나 “적자누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버스업계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버스 요금 인상 소식이 전해진 후부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라며 “적자누적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버스업계의 현실과, 도의회의 의견, 서민가계의 부담 등을 충분히 고려해 위원회가 인상시기 등을 포함한 심도 있는 심의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했었다. 경기도는 ▲2011년 11월 이후 버스요금을 3년 4개월 동안 동결, ▲좌석제 시행에 따른 버스업체의 적자 누적 등을 이유로 버스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광역버스 요금 인상을 우선 추진한 후 일반버스 요금을 서울시, 인천시와 함께 현실화할 계획이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버스업계의 경영상태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요금 인상 연기 결정을 내린 것은 도민들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하고 버스업계도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도지사와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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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
  • 한·중·일 외교장관, 3국 협력관계 복원 의지
    1. 한・일・중 3국 외교장관은 2015년 3월 21일 서울에서 제7차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를 갖고, 3국협력의 현황과 발전방향, 주요 지역 및 국제 정세 등에 대하여 심도있는 논의를 가졌습니다.2. 3국 외교장관들은 2012년 4월 3국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된 이후 약 3년만에 개최된 금번 회의를 계기로 3국협력 체제가 복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이를 통해 3국협력 체제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과 번영을 위한 중요한 협력의 틀로서 계속 유지・발전되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습니다.이와 관련, 일본 외무대신과 중국 외교부장은 그동안 한국측이 의장국으로서 금번 외교장관회의의 개최를 포함하여 3국협력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3. 3국 외교장관들은 3국협력이 최근 수년간 동북아 지역의 유동적인 정세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진전을 이루어 온 것을 평가하였습니다.3국 외교장관들은 최근 2년간 환경・문화・보건・재무・교통물류・감사・재난관리・지진협력・특허 등 분야에서 여러 3국 각료급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을 환영하였으며, 현재 3국간에 운영되고 있는 20여개 장관급 협의체를 포함한 50여개의 정부간 협의체 및 각종 협력사업이 보다 활발히 추진되도록 장려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또한, 3국 외교장관들은 3국이 통상, 투자 및 경제 관계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해 왔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2014년 5월 발효된 3국간 투자보장협정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된 것을 환영하는 한편, 3국 FTA 협상의 가속화를 위해 지속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2011년 9월 설립된 3국 협력사무국(TCS)이 3국협력 증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평가하고, 금번 회의에서“2015년 3국협력 주요 협의체 및 협력사업 목록표(Matrix of Major Events for Trilateral Cooperation 2015)”를 발표한 것을 환영하였습니다.4. 3국 외교장관들은 양자관계가 3국협력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며, 3국협력의 심화가 결국 3국간의 양자관계 및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3국 외교장관들은 3국이 관련 문제들을 적절히 처리하고, 양자관계 개선 및 3국협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역내 협력 증진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평가하고, 역내 신뢰와 협력 구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중 양국 외교장관들은 한국의「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높이 평가하고 환영하였습니다. 또한, 3국 외교장관들은 동북아에서의 3국간 원자력 안전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핵안보, 재난관리, 환경, 청소년 교류 분야를 포함한 분야에서의 협력도 확대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3국 외교장관들은 한・일・중 대테러 협의회 및 아프리카 정책대화를 재개하고, 사이버 정책협의회, 3국 환경장관회의 산하 대기오염 정책 대화, 동아시아 문화도시 선정사업, CAMPUS Asia, 인문교류 포럼, 언론인 교류 사업을 지속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또한 3국간 청년 모의정상회의, 외교관 연수기관간 협력, 싱크탱크간 네트워크 구축, 중동 정책 협의회 등을 신규로 추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3국 외교장관들은 대도시간 협력 및 고령화 사회 사업 분야에서의 협력을 모색하기로 하였습니다. 5. 3국 외교장관들은 지역 및 범세계적인 다양한 사안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관련 안보리 결의 및 9.19 공동성명상의 국제적 의무와 약속이 성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아울러, 3국 외교장관들은 한반도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한 6자회담의 의미있는 재개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3국 협력이 동아시아 협력의 중요한 요소라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역내 대화 및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신뢰구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3국 외교장관들은 다가오는 ASEAN 공동체 출범을 환영하고, ASEAN, ASEAN+3,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ASEAN 지역안보포럼(ARF),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등 기존 지역협력체의 틀 안에서 3국협력 강화의 모멘텀을 구축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3국 외교장관들은 테러리즘 및 극단주의에 대한 대응, 우크라이나 정세, 중동 정세, 국제경제 등 범세계적인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앞으로도 국제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도전들에 관하여 긴밀히 협의하기로 하였습니다. 6. 3국 외교장관들은 금번 외교장관회의의 성과를 토대로 3국에게 모두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에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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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
  • 이민호 홍콩서 콘서트 개최, 수입 1600만 위안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한국 남신 이민호가 21일 저녁, 홍콩에서 “이민호 라이브 인 홍콩”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를 위해 이 “롱다리 오빠” 이민호는 20일, 홍콩에 도착했으며 팬 300여명이 공항에 나와 그를 열정적으로 맞았다. 이민호는 팬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들어 감사함을 표했고 팬들은 소리 높이 환호했다. “이민호 라이브 인 홍콩” 콘서트는 수많은 팬들의 요청으로 처음 홍콩에서 개최되며 이민호는 콘서트에서 자신의 앨범 수록곡 12곡을 부를 예정이다. 한편 이번 콘서트를 통해 이민호는 콘서트 티켓과 주위 상권 판매로 2000만 홍콩달러(인민페 1600만위안, 한화 28억원)을 수입하게 된다. 이민호의 이번 홍콩 콘서트의 티켓 가격은 각기 1580위안, 1380위안, 980위안, 780위안이고 객석은 도합 1만 4000개이며 티켓에서의 수입만 해도 1872만 홍콩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보도는 전했다. 주최측은 이번 콘서트 기간, 주변 상품 두 가지를 판매하는데 상품 판매 수입은 도합 110만 홍콩달러일 것으로 예상된다.
    • 연예·방송
    20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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