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4(토)

전체기사보기

  • [김혁 칼럼] 춘사(春史) 나운규
    ●김 혁(재중동포 소설가) 1 북간도 명동학교의 수업시간. 모두다 산수풀이에 열중하고있는데 맨 뒤에서 키득키득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수학선생이 이상하여 슬그머니 다가와 보니 맨 뒤에 앉은 학생이 책뒤에 거울을 숨겨놓고 비춰보며 벙긋벙긋 웃음을 웃고 있다. 그 모습이 한심하여 선생은 학교의 김약연교장에게 이 일을 고해바쳤다. 이에 김교장은 웃음으로 넘기며 말했다. “그 녀석이 장차 뭔가 되기는 될 거야”. 수학시간에 표정 연기에 열중하던 명동학교의 그 아이. 교장선생이 뭔가는 될 듯 하다고 “될성부른 떡잎”으로 예견한 그 아이가 바로 그후 불멸의 명화 “아리랑”을 제작한 한국영화계의 선두주자 나운규이다. 2 춘사 나운규는 1902년 10월 함경북도 회령에서 나형권의 셋째 아들로 태여났다. 한말의 풍운기에 태여난 나운규는 일제의 발길에 짓밟혀가는 한반도의 북녘 끝 회령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운규의 아버지 나형권은 구 한국군 부교(副校)로 지내다 군대가 해산당하자 집으로 돌아와 독학으로 한의학을 공부하여 한의사로 전신(轉身), 한약방을 하면서 후학들을 키웠다. 그는 아들 셋과 딸 셋 여섯 남매를 두었는 데 그중 셋째가 나운규었다. 나운규가 회령에서 신흥학교에 다니던 1915년 무렵은 개화기 신문화 류입의 한 물결인 신파극(新派劇) 운동이 한창 번져가고 있을때였다. 때때로 회령 읍내에도 이따금씩 신파극단이 찾아와 순회 공연을 했는데 나운규는 공연을 빠침없이 찾아 보며 이 신파극단에 흥미와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과 말투를 며칠씩 두고 흉내를 냈다. 나운규의 연기 재질은 아마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1916년 8월, 14살의 나운규는 윤봉춘 등 죽이 맞는 친구들과 더불어 회령 읍내 유일의 극장 만년좌에서 최초의 자작극 “2전 5리(二錢五厘)”를 공연하려했다. 공연허가 신청을 받은 일본 헌병대에서는 미성년자들이라고 집에 가서 부친의 도장을 받아 오라고 퇴짜를 놓았다. 이에 나운규는 아버지의 도장을 훔쳐 찍고 다른 허가를 받아냈다. 그런 다음 가두 선전을 한답시고 울긋불긋한 차림의 무대 분장을 하고 회령 읍내 번화가를 누비며 퍼레이드를 벌렸다. 우여곡절 끝에 연극은 막을 올렸다. 한창 신나게 공연중인데 갑자기 입구 쪽이 시끄러워지더니 나운규와 동인의 부형들이 달려 들었다. 집안 망신시키는 놈들이라며 매타작을 퍼부으니 극장 안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연극이고 뭐고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나운규 대본 연출 주연의 최초의 자작극 공연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운규는 15살에 마음에도 없이 결혼한 녀인과의 사이에서 이듬해 아들 종익을 낳았고 19세가 되던 해에는 딸 행자를 낳았다. 예고도 없이 학교가던 길에 붙잡혀 말잔등에 태워져 강제로 결혼식을 올린 혼인이 싫어져 나운규는 무단 가출을 했다. 고향을 떠난 나운규가 직행한 곳은 북간도였다. 1918년 두만강을 건너 북간도에 있는 명동학교에 입학했다. 북간도에서의 나운규의 행적은 동인들에 의해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북간도에서 나운규는 조선인들이 무은 간도국민회에 가입하였다. 북간도에서 발간하는 “독립신문”을 고향인 회령으로 배달하는 책임을 맡고 한 달에 몇 번씩 두만강을 은밀히 건너곤 했다. 그러다 도판부사건(圖判部事件)이라 불리는 사건에 휘말려 든다. 도판부 사건이라는 것은 북간도에 있던 반일독립군들이 두만강을 건너가 회령에 있던 경찰서와 수비대를 습격한 사건이다. 그 때에 나운규와 윤봉춘은 일제의 수비부대 간의 교통을 차단하기 위해 회령과 청진 사이에 있는 무산령 터널을 폭파하고 전신, 전화 시설을 끊는 일을 맡았다. 1919년 4월 초 나운규는 지인들과 함께 북간도 한인교회로부터 독립선언문과 태극기, 격문 수천장을 두만강을 넘나들며 회령을 비롯한 여러 고을에 잠입하여 나누어 주고 거사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예정시간을 눈앞에 두고 거사는 왜경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만세를 부르며 반일 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준비를 갖추고 있던 왜경의 총칼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피를 뿌리며 죽고 부상당하고 붙잡혀갔다. 나운규의 절친 윤봉춘은 이때 붙잡혀 치안유지죄 위반이라는 죄명을 쓰고 6개월간 징역살이를 하게 되였는데 민첩한 나운규는 용케도 왜경의 추적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 나운규의 정처없고 고달픈 방황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운규는 국자가(지금의 연길시), 두도구등지를 헤매다가 시베리아 연해주, 해삼위, 노령(露領)으로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다 겪어가며 돌다가 풍문이 가라앉고 거지꼴이 되어서 나운규는 다시 로령에 가까운 훈춘으로 건너왔다. 훈춘으로 온 운규는 친구 김용국과 함께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 소속 독립군에 가담하게 되었다. 여기서 인쇄물 운반,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던중1920년 10월, 나운규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부대가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접전해 3천 여 명을 사살하는 대첩을 거두였다는 승전보를 들었다. 또 서로군정서 사관양성소에서 생도 298명을 북간도 왕청현의 부대에서 배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운규의 가슴은 북치듯 뜨겁게 울었다. 나운규는 김용국과 함께 신흥무관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으면 광복군 소위로 임관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출발했다. 용정에서 약 200리 떨어진 명월구(明月構)에 다달았을 무렵 여로에 지친 두 사람은 다 지쳐 드러눕고 말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 나이 많은 독립군 선배는 “젊은이들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 학문에 힘쓰고 배운 지식을 이후의 독립을 위해 쓰도록 하는 게 좋겠네”하고 타일렀다. 나운규는 선배들의 충고에 따르기로 작정하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회령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운규는 돌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딸 행자를 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1921년 봄 중동학교 고등예비과를 거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영화의 전성시기였다. 단성사니 장안사니 연흥사니 하는 극장들이 서울 시내 여기저기에 세워졌고 “팔딱팔딱 뛰는 활동사진”이라 불리는 영화는 숱한 젊은 남녀들을 그 마력으로 현혹시켰다. 영화에 미치기 시작한 나운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날보다도 극장에 가서 활동사진 보는 시간이 더 많았으며 길을 가다가도 배우의 표정과 동작을 흉내 내기도 하였는데 이는 몇 년후 영화계의 혜성으로 등장할 나운규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는 방에 붙박혀 감상문을 쓰고 각본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영화에 심취되여있던 나운규에게 1922년 봄, 또다시 시련이 닥쳐왔다. 회령경찰서에서 파견된 형사에게 친구 윤봉춘과 함께 지명수배자로 체포되였던 것이다. 북간도에서 면목이 있는 사람 하나가 순사 시험에 응시하면서 “도판부사건”의 연루자로 나운규와 윤봉춘 등 옛동지들을 팔아 넘겼던 것이었다. 21살의 나운규는 윤봉춘과 함께 1년 6개월의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징역형을 선고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때 형무소에 함께 수감 된 이춘성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춘사(春史)라는 호를 지어 받았다고 한다. 감옥에서 치른 옥고는 북간도와 시베리아 벌판을 류랑하던 쓰라린 체험과 함께 그의 반일사상의 뿌리를 더욱 깊게 하였고 저항의식을 더욱 북돋아주어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도 이 극기의 고통은 여실히 반영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지칭되는 “아리랑”, “풍운아”, “사랑을 찾아서” 등이 모두가 그 소산이었다. 1923년 출감 이후 나운규는 조선키네마에서 단역배우로 배우 인생을 시작하였다.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에 대사조차 없는 가마꾼으로 출연했던 나운규는 이듬해 백남프로덕션의 첫 번째 작품 “심청전”에 심봉사로 출연하였다. 또 조선키네마에서 만든, 자유련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롱중조(笼中鸟)”에 조연으로 출연하여 연기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1926년 나운규는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의 지원을 받아 자신이 오랫동안 구상하고 각본을 쓴 “아리랑”을 제작했다. 자신이 감독하면서 1인 3역의 역할을 해냈다.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요즘의 형용어를 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영화는 192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청사 완공 기념식이 있은 뒤 같은날 오후 5시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영화가 끝나자 객석은 온통 눈물로 얼룩졌다. 정신을 놓아버린 청년, 그의 녀동생, 그녀를 사랑하는 오빠의 친구가 친일파의 횡포에 저항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식민의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안겼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수 이정숙은 울먹이며 아리랑을 불렀고 관객들 모두가 따라불렀다. 노래가 울려퍼지자 순경이 호각을 불어 상영을 중지시켰지만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라 잃은 슬픔은 한 편의 영화를 통해 그렇게 터져나왔다. 이렇게 해서 민족의 영화 “아리랑”은 서울뿐만이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상영되었다. 평양에서는 관객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극장의 들보가 부러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서울로 아리랑 구경을 가자”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영화의 주제가인 “아리랑”을 부른 가수 리정숙은 이 노래로써 하루아침에 유명해졌고 “아리랑”이라는 민요는 이때로부터 온 민족의 애창곡이 되었다. “아리랑”은 말 그대로 활동사진 영역에 머물러 있던 한국영화를 획기적으로 진전시켰다. 이전까지 신파물이나 외국 번안물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아리랑”은 영화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였다. “아리랑”이 상영되는 곳은 “의열단 단원이 폭탄을 던진것과 같은 열기가 감돌았다”는 등의 평가는 문헌이나 증언들 속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아리랑”은 일제시대 전 시기의 문화예술계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적 생산물이 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리랑”의 성공으로 조선 키네마는 계속하여 나운규에게 각색과 감독과 주연을 아울러 맡겨서 1926년에는 “풍운아”를 제작하게 하였는데 이 영화도 또한 조선 극장에서 13일 동안이나 공연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나운규의 영화 재능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1927년 나운규는 윤봉춘 등과 함께 “나운규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이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덕션에서 “옥녀”·”사나이”·”사랑을 찾아서”를 만들었고 1929년에는 한국 최초의 문예영화라 할수있는 “벙어리 삼룡”을 제작하였다. “아리랑”의 성공 이후 나운규는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될 시도를 하였다. 새로 제작하는 “아리랑 3편”을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발성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한국영화는 변사가 대신 대사를 말해주던 무성영화시대에서 벗어나 배우가 그대로 대사를 하면서 연기하는 유성영화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나운규의 개인적 인기와는 달리 “나운규프로덕션”은 경영이 순조롭지 못했다. 결국 영화사는 해체되었다. 1931년 나운규는 “임자 없는 나루배”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관객들의 가슴에 남을 좋은 연기를 보여주였다. 일제 강점기 배사공 부녀가 겪는 비극적 현실을 그린 영화는 “아리랑”과 함께 일제시대 문제작으로 손꼽힌다. 이후에도 나운규는 여러 편의 영화를 자신이 감독하고 직접 출연하면서 만들어 내며 내내 한국영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오래동안의 생활고와 작업의 과로 등이 겹쳐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면서 약관35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나운규는 영화계에 입문해 활동한 약 15년 동안 29편의 작품을 남겼고 2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 중에서 직접 각본·감독·주연을 맡은 영화가 15편이나 된다. 3 일전 ”2015 춘사(春史) 영화상”이 서울 한국언론진흥재단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국제시장”, “명량”, “끝까지 간다”가 각본상, 기술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하정우와 배두나가 남자 연기상과 여자 연기상을 각각 수상했다. “춘사 영화상”은 한국영화계의 선구자인 춘사 나운규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투혼을 기리고자 개최되는 영화제이다. 한국영화감독협회에서 제정, 지난 1990년 12월 24일 제1회 춘사영화예술상 시상식을 개최하면서 출범했다 만약 력사서술에 가정이 허락된다면 나운규가 빠진 일제강점기의 조선영화사는 대단히 빈약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한 예술테마는 식민통치의 억압과 수탈에 대한 저항, 통치권에 결탁한 자본가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투철한 민족정신과 자유로운 영화 예술관을 가진 최초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그리고 배우였으며 초창기 한국영화를 이끈 영화계의 선구자”였다. - “청우재(聽齋雨)”에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5-03-25
  • 20억 뜯어낸 ‘몸캠 피싱’ 조선족 사기단 적발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최근 중국에 근거지를 둔 ‘몸캠 피싱’ 조직이 적발됐다. 경기지방경찰청(청장 김종양) 광역수사대는 국내 화상채팅 사이트에 접속한 불특정 남성들을 대상으로 음란행위를 유도하여 이를 녹화한 후, 해킹으로 입수한 휴대폰 주소록에 등록된 지인들에게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여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피해자 노모(36세)씨 등 763명으로부터 20억원 상당을 갈취한 조선족 사기단을 적발하였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은 같은 기간 위와 같은 방법 등으로 갈취한 금원 등을 환전상(국내총책)들이 국내 조선족 동포들을 통해 위안화로 교환한 후, 중국 은행 계좌를 이용하여 중국 총책에게 직접 송금(인터넷뱅킹)하는 방법으로 총 310억원을 빼돌린 피의자 신 某(36세), 진 某(26세)씨 등 14명을 적발하여 이중 5명을 구속하고 7명을 불구속 입건하였으며, 중국으로 달아난 2명을 수배하였다. 경찰조사결과 국내총책(환전상)들은 불법수익금을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을 상대로 현물 환치기를 통해 중국 총책에 송금했으며, 환치기를 통해 국외로 빼돌린 금액은 310억원 상당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몸캠피싱은 자신의 얼굴 및 나체가 드러나는 음란행위영상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유포되기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감추기 급급하고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피싱조직이 범행에 이용하는 악성어플 apk파일, 메일 등을 분석하여 피해자를 특정, 피해 진술을 꺼려하는 피해자들을 일일이 설득하여 피해사실 확인한 후 수사에 착수 하였다고 말했다.
    • 뉴스홈
    • 국내뉴스
    • 사회
    2015-03-25
  • 북한 탈영병 중국경내서 인질 납치극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3월 24일 북한 탈영병이 중국 단둥경내에서 중국인 여자 한명을 납치해 인질로 삼았다가 중국공안에 의해 잡힌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새벽, 북한 신의주의 황금평에서 밀항한 북한 탈영병 한명이 중국공안의 추격을 받게 되자 중국인 여자 한명을 납치해 인질로 삼고 중국공안과 대치상태를 이루었으며 중국공안은 오랫동안 그 여인의 안전때문에 저격하지 못하고 우회전을 벌이다가 최종 그 중국인 여인을 구출하고 그 북한 탈영병도 포로하는데 성공하였다. 전하는데 따르면 이번에 압록강을 밀항한 북한 탈영병은 도합 2명으로 한명은 이미 중국공안에 의해 포로되었고 다른 한명은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 탈영병 한명이 중국 연변의 화룡현 경내에 넘어와 4명의 평민을 살해하여 중국당국의 고도로 되는 중시를 일으켰으며 3개월 후인 최근 재차 북한 탈영병이 중국경내로 넘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공민들의 인신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5-03-25
  • 중국인들 음력설 기간 도쿄서 물건구입에 60억위안 퍼부어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올 음력설연휴 일주일간, 46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도쿄에서 물건을 구입하는데 인민페로 도합 60억위안을 썼다고 중국경제주간이 24일 보도했다. 값싼 일본 상품 중국의 한 여행사에 근무하는 오양은 올 음력설 기간, 일본 도쿄에 관광갔다. 이번이 세번째인 도쿄관광에서 그녀는 일본 도쿄 상품들이 너무 값싸다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됐다. “해마다 더욱 값이 싸져요”. 물건 구입은 오양의 도쿄관광의 주요 내용이었다. 도쿄 상점들에서는 한국 관광때와는 다르다. “한국인들은 흔히 중국인들을 업신여기는 눈빛이인데 일본인들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점원은 깍듯이 예의를 차린다. 그리고 도쿄에서 사치품을 비롯해 허다한 물건들이 중국 국내가격의 1/5, 1/3밖에 되지 않고 화장품은 1/2 가격으로 너무 쌌다.” 정녕 쇼핑의 천당은 한국의 서울도, 더욱이는 미국이거나 유럽의 어느 도시도 아니었다. 오늘날 중국 소비자들이 쇼핑에 적합한 지역은 도쿄라고 오양은 말한다. 이같은 관점은 오양 한 사람뿐이 아니다. 올 음력설 연휴 일주일간, 46만명에 달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 물건을 싹쓸이해 왔다. 일본 엔화는 지난 2년간 30% 가량 평가절하돼 일본 물가가 30%나 인하됐다. 거기에 일본은 언녕 사치품 숭배시기를 지나왔는바 원래부터 유럽, 미국 등 국가의 사치품들이 고가로 팔 수 없는데다가 다년간 적체되어 창고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20년에 달하는 기나긴 경제의 하락, 통화긴축으로 하여 일본의 물가는 줄곧 높지 않았다. “싹쓸이” 물건구입은 2015년 이후 몇년간 일본에서의 중국 관광객들의 중요한 활동으로 될 것이라고 중국경제주간은 내다봤다. “백엔점”으로부터 사치품에 이르기까지 “30여년 전, 우리가 외국에 나갔을 때 주로 구입한 것은 사치품, 미술품들로 일용품을 사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일본 노무라증권회사의 한 분석사는 일본도 국외에 나가 “싹쓸이”하던 시대가 있었다면서 20세기 80년대였다고 말한다. 북경 13릉정릉박물관에서 근무했던 왕여사는 20세기 80년대 일본 관광객들이 중국에 와 상점의 서화작품을 싹쓸이해 가기도 했다면서 “그때 서화 한폭의 가격이 몇십원, 또는 몇백원으로 우리들 한달 월급에 해당했다”고 회억한다. 헌데 오늘날 일부 중국 관광객들은 도쿄에서 30년 전의 중국 서화작품을 보고 몇백위안 또는 몇천위안으로 다시 구입해 오기도 한다. 가치도 있고 무엇보다 중국 국내보다 훨씬 싼 가격이다. 한편 도쿄 “백엔점”은 늘 중국인들로 붐빈다. 100엔이면 중국의 5위안이다. 헌데 모든 물건이 100엔이란다. 문구, 휴대폰 부품, 일용품, 기름소금간장식초… 일률로 하나에 인민페로 5원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이런 상점에서 일부 중국인들은 수천엔어치 물건을 구입한다. 노무라증권의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들이 일용품보다 수년 혹은 수십년간 적치되어 있는 사치품들을 구입해 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관광객들은 물건 볼 줄을 알고 통이 큰 것으로 일본에서 정평나 있다. 경제거품 단계를 거친 후 일본인들은 손에 유럽, 미국의 명브랜드 핸드백을 드나 무명의 일본 국산 핸드백을 드나 큰 구별이 없으며 사치품을 휴대한다고 해서 심리상 큰 월등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고 인정한다. 이로 하여 상점에 적치된 명브랜드 상품들은 줄곧 누군가가 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무 싸다.” 중국 한 언론의 기자는 일본에 다녀와서 이같이 말했다. 도쿄의 한 가전제품상점의 한 층에는 몽땅 유럽과 미국의 여러 가지 명브랜드 제품들이이다. 여기에서 만보룡(万宝龙) 등 상품의 가격은 중국 국내가격의 1/3밖에 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어떤 명브랜드 사치품들은 중국 국내가격의 1/10로도 살 수 있었다. 중국 은행카드와 제품의 질 일본 도쿄에서 37만 개의 상점에서 직접 중국의 은행연합카드(银联卡)를 사용할 수 있는데 지난해보다 두배나 늘었다고 일본 경제산업성 관원이 소개한다. 길거리에서 기타 신용카드 표시에 비해 중국 은행연합카드 표식은 더욱 크고 선명했으며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은행연합카드를 사용하면 5%의 우대를 해주었고 대형상점들에서는 중국 은행연합카드 사용자들을 선호했다. 음력설 직후, 일본 언론에 중국 관광객들이 음력설 기간 일본 가전제품상점들에서 변기뚜껑을 싹쓸이해 갔다는 보도가 발표돼 중국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었다. 이처럼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에 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우선은 상품 가격이 중국 국내가격보다 싸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품질이 중국에서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일본 상점에서 품질이 차한 상품을 판다는 것은 스스로 파산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상가들마다 말한다. 한편 한 국가에서 제품이 극히 풍부해지면 명브랜드나 큰 브랜드나 모두 제품들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신부호들이 추구하는 대상으로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일본에서 사치품들의 가격이 중국보다 싼 것이다. 음력설 연휴 짧디잛은 일주일간,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도쿄에서 쇼핑에 인민페 60억위안을 쏟아부었다는 것은 중국의 소비정책과 소비자들, 그리고 생산기업과 상가들에서 개진해야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중국경제주간은 지적했다.
    • 뉴스홈
    • 국제뉴스
    • 아시아
    2015-03-24
  • 재외동포재단 조선족 청소년 700명 요청
    [동포투데이] 재외동포재단은 세계 각국의 우리 민족 청소년을 한국으로 초청해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만 13∼23세인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700여명을 선발해 오는 7∼8월 7박 8일 일정으로 농촌 봉사활동, 전통문화 체험, 한국 청소년과 교류행사 등을 진행한다. 참가자에게는 숙식비, 경비, 의료보험 등을 지원한다. 신청 서류는 다음 달 17일까지 거주국 재외공관별 마감일에 맞춰 제출하면 된다. 문의는 코리안넷 웹사이트(www.korean.net)나 전화 82-2-3415-0175로 할수 있다.
    • 뉴스홈
    • 재외동포
    2015-03-24
  • 지자체들, SNS 소셜미디어 홍보… 교육 및 축제 '일석이조 마케팅'
    ▲ 지난 16일, 이희선 나비미디어 대표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경기도관내 홍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소셜 홍보 마케팅 특강을 하고있다. (사진= 경기도인재개발원) [동포투데이] 지자체들이 최근 소셜 마케팅 홍보에 팔을 걷었다. 이는 오는 봄.여름 다가오는 축제 마케팅과 더불어 지역주민과의 소통의 거리를 좁혀 시.군 정책을 널리 알리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경기도인재개발원은 용인시, 안산시 등 경기도내 시.군 홍보담당자 40여 명을 대상으로 홍보 및 소통 담당공무원을 통한 다양한 행정 사례 학습 과정 ‘나도 홍보전문가’ 교육을 운영했다. 이번 교육은 ▲광고, 홍보 전문가를 활용한 다매체 미디어 정책홍보 이론 및 실습 ▲SNS, 유튜브, 인터넷 등 뉴미디어를 활용한 Visual 정책홍보 전략 실습 ▲언론보도 대응 및 보도자료 작성 등 실무활용도가 높은 업무기술 학습 등 운영 방향으로 지난 16일부터 3일간 진행됐다. 천안시는 17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소셜미디어서포터즈 발대식을 갖고 시공무원들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시정을 홍보하고 시민과의 소통에 직접 나섰다. 시는 2015년도 SNS 등 뉴미디어 활성화와 시정홍보를 강화하고 직원들의 참여를 통해 소통행정을 이끌어 ‘시민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천안’으로 발돋음 하자는 취지에서 시정 홍보에 관심이 많고 재능이 있는 각부서 희망 직원 10명으로 구성됐다. 서산시는 시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seosancity1991)에 시민들의 참여 활성화를 위해 오는 27일까지 이벤트를 연다. 시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고, 이벤트 게시글에 시를 응원하는 댓글을 남기면 된다. 추첨을 통해 30명에게는 서산지역 대표 특산품인 뜸부기쌀 5Kg을 증정한다. 당첨자는 오는 30일 서산시 페이스북에서 발표한다. 경기도 연천군은 지난 18일 재난상황실에서 각 실.과 홍보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홍보실무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교육은 각 실과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20명이 참석해서 홍보의 필요성과 중요성, 홍보의 변화과정 등에 대해 사례 위주로 진행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보도자료 작성법, 기자 응대법, 언론활용법 등 홍보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홍보 실무로 진행됐다. 경남 진주시는 시민과 공무원 43명으로 구성된 진주관광 홍보 서포터즈단이 최근 구례 산수유 꽃 축제장을 찾아 첫 진주 관광 홍보에 나섰다. 서포터즈단은 홍보용 조끼를 착용하고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에게 진주의 관광명소 진주성과 진주논개제를 비롯한 5월 봄축제를 홍보했다. 이날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진주를 홍보하고 있는 진주시 SNS스포터즈단 20명이 처음으로 참가했다. 경기도인재개발원의 강사로 초빙된 소셜 홍보 전문가 이희선(사진) 나비미디어 대표는 "지자체들이 기존 고비용 저효율의 홍보 마케팅에서 전세계 20억 명 이상이 이용하는 SNS 소셜 마케팅이 저비용 고효율 소통의 도구를 바꾸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말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가 4천 500만명을 넘어 1인 미디어로서 시민과 소통의 역할을 기대하고 소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이 대표는 홍보 대행사 출신으로 SNS 소셜 미디어 마케팅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4월까지 경기도 시·군 홍보담당자, 충남도 시·군 홍보담당자 등 기업과 대학에서 1,000번의 강의를 진행했으며, 미디어 부문 신지식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 뉴스홈
    • 국내뉴스
    • 문화
    2015-03-24
  • 이재명 VS 홍준표 ‘한판 붙자!’ 세기의 최대 빅매치 성사될까?
    이재명 성남시장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져 누리꾼들 사이에 기대와 화제가 폭발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3일 오후 5시께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홍준표 지사님, 밥과 공부는 ‘선택’ 문제가 아닌 ‘능력’ 문제입니다. 공개토론 제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묵직한 돌직구와 함께 공개토론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 계정 캡쳐 이재명 시장은 제목에 이어 “아이들 밥 끊어 차별급식 하면서 교육지원사업 시작한다는 홍 지사님, 성남의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정책을 두고 ‘성남은 밥을, 경남은 공부를 선택했다’고 하신 모양”이라며 최근 홍준표 지사가 언론을 통해 성남의 무상복지를 폄훼한 사실에 대해 반론성 풍자를 잊지 않았다. 이재명 시장은 나아가 “애들 밥 끊는 것 외 공부예산 마련 방법을 못찾은 처지에서야 무상급식 확대하는 성남시를 보면서 ‘그 돈으로 공부예산 지원했으면...’했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그건 홍 지사님의 착각”이라고 날을 세우고 “성남은 무상급식 확대는 물론이고, 사교육비 절감과 창의교육을 위해 204억원을 ‘성남형 교육지원사업’에 투자한다. 그리고 무상교복에 무상산후조리원까지...”라며 홍준표 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을 실컷 꼬집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울러 “이걸 보고 성남시 예산이 남아돌아서 하는 일로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란다”며 “경남 성남 모두 세금결정권 없이 지출항목조정 권한뿐”이라고 지자체장으로서의 동병상련을 전제하고 “이러한 무상복지나 기초복지 확대 재원은 증세가 아니라, 부정비리, 예산낭비 없애고, 세금 철저관리와 마른 수건 쥐어짜듯 하는 알뜰살림으로 마련했다”고 그간 성남시의 다양한 복지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우회적으로 훈수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나아가 “공부와 밥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 예산 아끼고 가용예산 늘리는 능력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홍 지사님께 ‘선택’의 기술이 아닌 재원마련 ‘능력’을 발휘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비록 젊잖지만 상대 청자(聽者)에게는 자칫 자존심에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정문일침을 가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노선을 유사하게 유지하는 이들을 향해 “무상포퓰리즘 비난하는 분들 새겨들으시기 바란다”며 “4대강 바닥에 퍼부은 돈 수십조, 자원외교로 빼돌린 돈 100조원, 방위비리 등 온갖 부정부패로 날린 돈 수조원, 부자와 대기업 위해 부당감세 해준 수십조원... 이런 거 없애면 논란중인 모든 무상정책 다 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내공을 한껏 끌어올린 통렬한 돌팔매를 흩뿌렸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똑같은 예산으로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 늘려주는 게 포퓰리즘이라면, 소수 기득권자들에게 퍼주는 건 ‘선행’인가?”라고 따끔히 일침하고 “공공의료원부터 무상의무급식, 프로축구단까지 성남시와 계속 엇나가는 홍준표 지사님... ‘선택이냐 능력이냐 밥이냐 공부냐’ 가지고 공개토론 한번 하시겠습니까?”라고 제안하며, 이날의 고언과 풍자에, 도전장을 겸한 복지 최고의 성남자랑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이날 하필 한 언론매체에서 무상급식 철회 논쟁으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미국에서 백주대낮에 부부동반 고급골프를 즐겼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야당을 비롯한 재야권과 시민단체, 기타언론으로부터 종일토록 뭇매를 맞으며, 그 대응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실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이재명 성남시장의 도전장을 접수할 확률은 매우 적어보이지만, 이재명 성남시장으로서는 이번 ‘세기의 빅매치?’ 성사여부를 떠나 어떤 경우에도 관계없이 잃을 것이 없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경우, 악화된 여론에 밀려 공개토론 결정이 쉽지 않아보이고도, 만약 이재명 시장의 도전장을 거부할 경우엔 공연한 패자의 허물을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흔쾌히 도장장을 접수한다면 이재명 성남시장의 내공이 잔득 오른 복지결정타를 맞을 공산도 있고, 아울러 최근 일고 있는 무상복지 논란 관련, 이미 복지민생에 눈을 뜬 국민들의 응집된 집중타까지 곁들여 맞을 수도 있어 보인다. 한편, 지상파 방송매체의 한 책임자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빅매치가 성사될 가능성이 많지는 않지만, 성사만 된다면 중계권료는 천정부지로 뛸 것”이라고 진담과 농담이 공평하게 잘 혼합된 방송지론을 내놨다.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기사제공: 한국인터넷언론인협동조합>
    • 뉴스홈
    • 국내뉴스
    • 정치
    2015-03-24
  • 진천군수, 연변에서 전해온 뜻밖의 선물 받아 화제
    ▲23일 유영훈 충북 진천군수(우측)가 ‘중국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부 연변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이경호 회장(좌측)으로부터 집무실에서 감사패를 받았다.(사진제공=진천군청)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유영훈 진천군수는 23일 중국 연변에서 온 뜻밖의 선물을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경호 ‘중국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부 연변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회장이 유 군수 집무실을 방문해 감사패를 직접 전달했다. 군이 지난해 개최된 보재 이상설 수학캠프 시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학생 2명을 초청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뤄졌다. 특히, 유 군수는 수학캠프에 직접 참여한 방예경, 주윤희 학생이 정성을 담아 손수 쓴 편지 2통을 전해받자 크게 기뻐했다. 유 군수는 “어린 학생들이 캠프를 통해 시야도 넓히고 많이 배웠다는 편지를 받고 큰 보람을 느꼈다”며 “학생들의 요청대로 연변에 있는 조선족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진천군은 지난해 7월 28일과 29일 이틀간에 걸쳐 도내 중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에서 ‘보재 이상설 수학캠프’를 운영한 바 있다. ▲ 중국 조선족 여학생이 진천군수에게 쓴 손편지 전문. <사진제공 : 진천군청>
    • 경주문화엑스포
    • 사회
    2015-03-24
  • 중국 해커, 모친 보험금 수령차 입국했다 덜미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국내유명 온라인 문화상품권 발행회사 B사이트를 해킹해 상품권 금액을 변조한 뒤 변조금액 상당의 게임머니를 구매해 이를 재판매하는 방법으로 7억7천여만원을 챙긴 중국인 해커 등 3명을 검거, 2명을 구속하였고, 중국에 있는 공범 해커조직을 추적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결과 중국 해커조직은 피해 상품권 업체의 서버를 해킹하여 휴면 회원들의 상품권 충전금액 1만원을 100만원으로 변조한 후, 국내 인터넷 온라인 게임에서, 타인의 아이핀 등 개인정보를 구매하여 도용하거나 해킹한 아이디에 게임머니를 충전해 이를 국내 매매상에게 되파는 방식을 통해 현금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인 해커 J는 게임머니상 H를 검거하면서 메신져 대화내용을 확인하여 과거 출입국 날자와 이름이 확인되어 피의자로 특정 하였으며, 국내 거주 했던 어머니의 보험금 수령을 위해 일시 입국 하여 검거 다음날 출국 예정이었으나 끈질긴 출입국 조회 등 검거 기회를 엿보던 경찰에 검거 되었다. 경찰은 범행수익금 일부는 유학생이나 국내를 여행하는 중국인 등을 상대로 국내 대포통장에서 원화를 대신 송금하고 해당 금액은 중국에서 위안화로 거래하는 일명 ‘환치기’ 수법으로도 현금화하는 정황이 확인되어 불법 환전소 운영자에 대해서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경찰은 다량의 게임머니 거래 매물은 해킹 등으로 불법취득한 것을 처분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며 게임머니 매매를 업(業)으로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만큼 이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 뉴스홈
    • 국내뉴스
    • 사회
    2015-03-23
  • 중국 “가장 예쁜 여장 남자” 리위강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중국에서 “가장 예쁜 여장 남자”라고 불리우는 리위강(李玉刚)씨는 여성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여성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귀비취주(新贵妃醉酒)>와 <사미도(四美图)> 등의 작품을 통해 고대 중국의 4대 미인 즉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蝉), 양옥환(杨玉环) 등을 남 다르게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고, 전통 희곡 표현예술인 “반천(反串 : 다른 배역을 대역하기)”또한 널리 알려 주었다. 4월 16일부터 그가 감독, 주연을 맡은 동방 대형시적(東方大型詩的)무대극(舞臺劇) <소군출색(昭君出塞)>이 베이징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 연예·방송
    2015-03-2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