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인도에서 유권자 명부 정비를 둘러싼 갈등이 거리로 번지고 있다. 선거관리 당국이 추진하는 대규모 명부 개편 과정에서 정상적인 유권자까지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청년과 시민단체, 야권이 잇따라 행동에 나섰다.
10월 4일 인도 현지 보도에 따르면 수도 뉴델리와 뭄바이에서는 갸네시 쿠마르 최고선거관리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이어졌다. 뉴델리에서는 시위 참가자들이 잔타르 만타르 일대로 진입하려다 경찰에 제지됐고 일부는 연행됐다.
갈등의 중심에는 인도 선거위원회가 추진하는 '특별 집중 개정(SIR)'이 있다. 중복 등록이나 자격이 없는 사람을 걸러내 유권자 명부의 정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야권과 시민단체의 시각은 다르다. 신분과 거주 사실 등을 입증하는 과정이 까다로워지면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소득층이나 이주 노동자 등이 명부에서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행정 절차의 문제가 실제 투표권 문제로 옮겨붙은 셈이다.
선거위원회는 이를 반박하고 있다. 명부 정비는 중복·부적격 등록을 찾아내기 위한 정상적인 절차이며 적법한 유권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조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집권 인도국민당(BJP)도 야권이 주장하는 정치적 개입 의혹에 선을 긋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청년층의 움직임이다. 높은 청년 실업률과 시험 문제 유출 등 사회 문제를 비판해온 젊은 층의 불만이 선거제도 문제와 맞물리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부 청년 조직도 거리 집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권도 공세 수위를 높였다. 뭄바이에서는 우다브 타케레이와 라지 타케레이가 함께 행진에 참여해 쿠마르 위원장의 사퇴와 SIR 중단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이 정당 깃발보다 인도 국기를 앞세운 것도 눈에 띄는 장면이었다. 정당 간 대결보다 유권자의 권리 문제로 전선을 넓히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뉴델리에서는 경찰과 참가자 사이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허가받지 않은 집회라는 이유로 주요 집회 장소 접근을 제한했고, 이에 반발한 학생단체와 야권 인사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유권자 명부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행정 자료에 불과해 보이지만 인도에서는 정치적 신뢰를 가르는 문제로 번졌다. 인구 14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느냐는 곧 투표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거위원회는 정확한 명부가 공정한 선거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반대편에서는 명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정당한 유권자라도 배제된다면 선거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맞선다.
행정 절차에서 시작된 충돌은 이제 거리 정치로 넘어왔다. 인도 정치권의 다음 싸움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누가 투표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먼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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