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20년 전만 해도 세계 응용과학 분야 상위 30개 연구기관이 모두 한 나라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이는 공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자연지수가 최근 처음으로 발표한 응용과학(Application Science) 분야 기관 순위에서, 세계 상위 30위가 전부 중국 연구기관으로 채워졌다. 31위에 이르러서야 싱가포르국립대(NUS)가 처음 등장했다. 중국은 1위부터 10위는 물론, 30위까지 사실상 ‘완전 독식’했다.
이번 순위에서 중국의 기여 점수는 2만2261점으로, 전 세계 응용과학 연구 성과의 **56%**를 차지했다. 2위인 미국은 4099점(10%)에 그쳤다. 단순한 선두 경쟁이 아니라, 격차 자체가 구조적으로 벌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문에서 실용으로’… 응용과학 실력의 민낯
자연지수는 『네이처(Nature)』 계열의 대표적인 학술 평가 지표로, 세계 주요 연구기관의 연구 성과를 계량화해 왔다. 이번 응용과학 순위는 최근 1년간 공학·컴퓨터과학·식품과학 등 응용 분야 25개 핵심 학술지와 국제 학술대회에 실린 논문을 기준으로 집계됐다. 약 4200명의 연구자가 “가장 중요한 연구를 발표하는 학술 무대”로 꼽은 저널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국과학원이 1위를 차지했고, 저장대·칭화대·상하이교통대·베이징대 등이 뒤를 이었다. 상위 30위 명단은 중국 주요 대학과 국책 연구기관의 목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미국·유럽과 다른 중국·아시아의 선택
국가별 비교에서도 격차는 두드러진다. 중국의 응용과학 산출량은 2~7위 국가(미국·독일·한국·영국·일본·인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반면 미국은 종합 과학력에서는 여전히 강점을 보이지만, 응용과학 비중은 전체 연구 성과의 17% 수준으로 낮았다.
특히 프랑스는 종합 연구 순위에서는 세계 6위이지만, 응용과학 분야에서는 12위로 밀렸다. 기초과학 중심의 연구 구조가 반영된 결과다. 반대로 한국은 종합 순위 7위, 응용과학 순위 4위로, 전체 연구 성과의 절반 이상이 실용·공학 분야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는 응용과학 비중이 90%에 육박했고, 싱가포르·중국·한국은 ‘응용과학 우선’ 국가군으로 분류됐다. 독일과 영국은 각각 27%, 23%에 그쳤다.
“전략의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전문가들은 이 격차를 국가 연구 전략의 차이로 해석한다. 도쿄의 학술 컨설팅 업체 ‘스콜러리 인텔리전스’의 수석 분석가 크리스토스 페트루는 “아시아 국가들의 응용과학 약진은 우연이 아니라, 실질적 혁신을 목표로 한 장기적 정부 지원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로버트 아트킨슨 회장은 “미국은 오랫동안 ‘과학을 위한 과학’을 중시해 왔지만, 중국과 한국은 과학을 산업과 국가 전략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냉전 시기 아폴로 계획처럼, 미국 역시 과거에는 응용과학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AI가 보여주는 중국식 모델
중국의 사례는 산업 현장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중국은 현재 세계 전기차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며, 배터리·모터·자율주행 알고리즘 등 핵심 기술 전반에서 방대한 응용과학 연구 성과를 축적해 왔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2014~2023년 사이 중국 발명가들이 출원한 생성형 AI 특허는 3만8000건 이상으로, 미국의 6배에 달한다.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실제 산업 적용을 겨냥한 연구가 집중됐다는 평가다.
‘과학의 무게중심 이동’ 신호탄
이번 자연지수 응용과학 순위는 단순한 랭킹 발표를 넘어, 글로벌 과학 패러다임의 이동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중국은 응용과학을 통해 연구–산업–정책을 잇는 구조를 구축했고, 이는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시스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선두가 곧 영구적 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방 국가들이 연구 투자 구조와 우선순위를 재검토하지 않는다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연지수의 이번 순위는, 세계 과학계가 ‘누가 더 많은 논문을 쓰는가’가 아니라 ‘누가 과학을 실제로 쓰는가’의 경쟁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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