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과 대표성 사이… 설을 둘러싼 국제 외교의 셈법
[인터내셔널포커스] 유엔이 2023년부터 음력 설(Lunar New Year)을 ‘선택 휴일(floating holiday)’로 인정하면서, 아시아의 새해 명절은 국제기구의 공식 일정에 자리 잡았다. 뉴욕 유엔 본부에서는 사자춤과 전통 음악 공연, 서예·종이공예 전시가 열리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설을 맞아 중국어 인사말을 포함한 메시지를 전하며, 여러 언어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 2024년 12월에는 설(춘절)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공식 명칭은 ‘Lunar New Year’. 유엔은 특정 국가 명칭인 Chinese New Year 대신 포괄적 표현을 택했다. 한국·베트남·몽골 등 음력 새해를 기념하는 다양한 문화권을 고려한 결과다. 이는 다자주의 원칙에 따른 균형적 결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세부 장면을 보면 복합적이다. 유엔우편국이 2026년 발행할 ‘말띠(Year of the Horse)’ 기념우표에는 ‘Chinese Lunar Calendar’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더 중립적인 표기를 요구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공식 행사에서는 ‘Lunar’를 사용하면서, 상징물 일부에는 ‘Chinese’를 병기하는 이중 구조가 남아 있다. 외교적 상징이 가진 현실적 모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설(춘절)을 세계와의 교류 창구이자 자국 문화외교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등은 자국의 설·뗏 문화가 오랜 세월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하나의 국가 명칭을 공식용어로 사용하는 데 신중하다.
‘기원’과 ‘대표성’을 구분하는 시각이 중요하다. 음력 기반 역법 체계는 중국 문명권에서 발전했지만, 새해를 맞는 풍습과 의례는 지역마다 다르게 뿌리내렸다. 한국의 설은 조상 제사, 세배, 떡국과 같은 공동체 중심의 풍습을 통해 고유의 명절 문화로 자리 잡았다. 즉, 기원이 공유되더라도 문화의 전개 양상은 서로 독립적이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동아시아 설 문화의 폭과 깊이를 만든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이러한 복합성을 감안해 절충적 표현을 유지한다. 공식 명칭은 ‘Lunar’, 일부 상징에는 ‘Chinese’—역사적 배경을 완전히 지우지 않으면서도 다원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다자체제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이런 명칭 사용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는 ‘문화 잠식’의 신호로, 또 다른 일부는 국제사회가 중국 중심성을 인정한 사례로 본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설의 국제적 확산을 제로섬 경쟁이 아닌 문화공존의 과정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문화의 힘은 독점보다 공존에서 나온다. 설의 세계화는 특정 국가의 영향력을 확립하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전통이 교차하는 공간을 확장하는 일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명칭 논쟁보다 자국 설 고유의 유래와 현대적 의미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더 큰 전략이 될 수 있다. ‘Lunar’와 ‘Chinese’ 사이의 간극은 외교적 계산이 만들어낸 현실이지만, 그 간극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가 각국의 문화외교를 가른다.
설은 본래 재회와 화합의 명절이다. 이제 국제무대에서도 그 정신이 이어질 수 있을지, 이름보다 태도가 답할 차례다.
BEST 뉴스
-
모디가 두 번 물었다 “괜찮아요?”…시진핑 ‘건강 이상설’ 영상 확인해보니
▲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일 뉴델리에서 열린 제18차 브릭스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하고 있다. [사진=중국 [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건강 이상설이 다시 확산하고 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연... -
네팔 대홍수 사망 1,357명…실종 5천명 넘어, 한국인 9명 수색 총력
▲ 네팔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히말라야 산악지역에서 구조대가 실종자 수색에 나서는 모습을 형상화한 AI 생성 이미지. 실제 재난 현장 사진이 아니다. [AI 생성 이미지] [인터내셔널포커스] 네팔 히말라야 산악지대를 덮친 대홍수 발생 2주째를 맞았지만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
미중 정상회담, 무엇을 얻었나…새 합의 나왔지만 남은 숙제 더 크다
▲ 2026년 9월 24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양국 주요 참모들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중국 측에서는 왕이 외교부장과 허리펑 부총리, 미국 측에서는 J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콧 ... -
홋카이도 도카치다케 심상찮다…화산성 지진 늘자 경계레벨 ‘3’ 격상
[인터내셔널포커스] 일본 홋카이도의 활화산 도카치다케(十勝岳)에서 화산성 지진이 잇따르면서 일본 기상당국이 경계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지각변동과 화산가스 증가까지 관측되면서 화산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기상청 삿포로관구기상대는 12일 오전 9시30분 도카치다케의 분화경계레벨을 기존 2... -
영화가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나…‘암살자(들)’이 던진 불편한 질문
[인터내셔널포커스] 추석 극장가에서 흥행한 영화 한 편이 스크린 밖에서 더 시끄럽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다. 지난 23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끌어왔다. 당시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총을 쐈고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 ... -
혈맹이 적대 직전까지 갔던 1960년대…북중관계는 왜 얼어붙었나
[인터내셔널포커스] 한국전쟁에서 같은 전장을 누볐던 중국과 북한. 중국에서는 두 나라의 관계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순망치한(唇亡齿寒)’으로 표현했고, 양국은 오랫동안 ‘피로 맺어진 친선’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역사를 들여다보면 북중관계가 언제나 혈맹이었던 것은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