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금으로 공관을 짓고, 금융으로 모국을 도왔다
[인터내셔널포커스] 재외동포의 손으로 세워진 외교 공관이 있다. 일본 고베에 자리한 주 고베 대한민국 총영사관이다. 이 공관의 출발점에는 재일동포 1세대 기업인 故 황공환(1921~1986)이 있었다.
황공환은 1921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 1세대다. 고베에 정착해 신항(神港)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5년 관광기업 ‘미리온 관광’을 창업했고, 1986년 별세할 때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전후 혼란과 차별 속에서도 사업을 일군 그는 고베상은 이사장, 재일민단 중앙고문 등을 맡으며 재일동포 사회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의 얼굴을 이렇게 둘 수는 없다”
1960년대 초, 당시 고베의 대한민국 공관은 협소하고 낙후된 건물에 머물러 있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얼굴인 공관을 이렇게 초라하게 둘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1962년 재일동포 기업인 서갑호가 주일 한국대사관 건물을 기증한 사건은 이 같은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
황공환은 1960년 ‘주 고베 대한민국 공관 옥사 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모금 운동을 주도했다. 효고현 한신 지역의 재력가 30~40명은 물론, 지역 민단 단원과 동포들이 십시일반 참여했다. 1965년까지 모인 금액은 약 3,500만 엔. 위원회는 이 자금으로 메이지 시대 유명 료칸으로 쓰이던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다.
1967년 8월, 이 건물과 토지는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됐다. 주 고베 총영사관은 이곳으로 이전했고, 현재까지 공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재외동포들이 스스로 외교 거점을 마련해 정부에 기증한 드문 사례다.
재일동포 사회의 구심점 만들다
황공환의 기부는 공관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동포들이 모이고 배울 공간이 필요하다”며 효고 재일한국인회관 설립을 추진했고, 개인 자금 6천만 엔을 내놓았다. 이 회관은 현재도 지역 재일동포들의 한국어 교육과 각종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모국의 어려움도 외면하지 않았다. 1960년대 전후 복구와 농촌 근대화가 진행되던 시기, 대한민국 경찰에 125cc 오토바이 15대를 기증했고, 고향인 경북 선산군에는 농기구를 전달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재일동포 사회의 후원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 1억 엔을 기탁하며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뒷받침했다.
금융으로 모국과 동포를 잇다
차별적인 금융 환경도 그의 관심사였다. 1950~60년대 일본 내 재일동포 상공인들은 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황공환은 민족금융기관 ‘고베상은’ 이사장을 맡아 동포 기업인들의 금융 기반을 강화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는 재일동포 자본의 모국 진출을 뒷받침하는 금융 인프라 구축에 참여했다. 1981년 교민은행 설립 발기인으로 나섰고, 이 과정은 1982년 신한은행 설립으로 이어졌다. 재일동포 자본만으로 세워진 첫 민간 은행이었다.
황공환은 또 한일경제협회 감사, 한일우호친선협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한·일 경제 교류와 민간 외교에도 힘을 쏟았다.
세 개의 훈장, 한 사람의 삶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 1978년 모란장, 1986년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재일동포 사회와 모국 경제, 그리고 외교 현장을 잇는 그의 행보는 지금도 고베 총영사관 건물에 남아 있다.
재외동포가 ‘해외 거주자’에 머물지 않고 국가의 기반을 세울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 황공환은 그렇게 재일동포 1세대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외교사의 한 장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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