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많은 사람들이 중국 유명 무용가 김성(金星)을 알지만, 그녀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 무용수 중 한 명인 김성은 25세의 나이에 벨기에 왕립 무용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1995년 이미 유명해진 김성은 군구(軍區)예술단에서 퇴직하고 북경향산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은 장원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김성'으로 촬영되었다.
23세에 장가들어 28세에 여자로 태어난 김성은 38세에 독일인 한스와 결혼했다. 현재 54세인 그녀의 인생에는 전설로 가득 차 있다.
김성은 1967년 선양의 한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남자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시키자 김성은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이때부터 김성은 자신의 성 인식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아홉 살 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학교 문예선전대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군구(軍區)예술단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로부터 김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던 미에 대한 향수가 늘 여성스러움을 깨닫게 되었다.
1985년 군사훈련 멘토 송소원이 제1회 전국 타오리컵(桃李杯) 무용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대회 경험이 전무했던 김성은 탄탄한 기반과 뛰어난 재능으로 400여명이 출전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용 ‘목가’로 청소년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에서는 최초로 발레화 없이 발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됐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겠다는 결심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성별의 정체성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내가 언제 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1986년 광둥현대무용학교에서 국비유학생을 미국에 보내려 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그는 무작정 광둥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2년 뒤 뉴욕으로 건너가 무용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캐롤라인과 첫 결혼을 했다.
1993년 김성은 귀국 후 중국문화부가 주최하는 전국 현대무용수련반에 초빙되어 중국 현대 무용의 창시자가 되었다.
1995년 영혼과 육체의 분열은 그에게 큰 문제를 가져왔다. 김성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장악하기로 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결심 했다.
김성의 결정은 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같은 자식이라며 수술이 건강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말했다.
1999년 김성은 개인의 이름을 딴 중국 최초의 민간 무용단인 '상해김성무용단'을 창단했다. 중국에서 국제 공연 티켓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은 '상해김성무용단'과 '중국곡예단' 두 곳뿐이다.
2004년 무용단을 이끌고 유럽 순회공연을 마친 김성은 귀국길에 독일 신사인 한스를 만났다. 한스는 독특한 동양 여성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다. 1년간의 소통 끝에, 그들은 결혼의 궁전에 들어갔다. 결혼 후 세 아이를 입양한 김성은 이젠 엄마와 딸, 그리고 아내가 되어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성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는 심리적 인내를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지침을 제공하는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심리의사와 같다. 김성은 오직 실력만이 유언비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진지하게 춤을 추고 있으며 그녀의 유럽공연 티켓은 구하기 어려울정도다.
BEST 뉴스
-
허영만, 중환자실 이송 두 달 만에 전해진 근황…“병원서 천천히 회복 중”
▲ 낙상 사고 이후 병원에서 회복 중인 허영만 화백을 형상화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낙상 사고로 중환자실에 이송됐던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근황이 약 두 달 만에 전해졌다. 방송 등 대외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이어온 허 화백은 현재 병원에... -
LA 한인 이민자 가정서 우주까지…한국계 조니 김, NASA 떠나 美해군 복귀
[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해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과 의사, 조종사를 거쳐 우주까지 다녀온 한국계 미국인 조니 김이 약 10년간 몸담았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떠나 미 해군 현역으로 복귀한다. NASA는 27일(현지시간) 조니 김이 NASA 근무를 마치고 해군 ... -
[중국 외교 인물열전 ⑯] 1925년 ‘북극 입장권’ 처리한 천루…14년 뒤 왜 ‘한간’으로 암살됐나
▲ 중국 근대 외교관 천루(陈箓·1877~1939). 그는 주프랑스 공사로 재직하던 1925년 중국의 스발바르조약 가입 절차를 처리했다. 그러나 중일전쟁기 일본이 난징에 세운 친일 괴뢰정권인 중화민국 유신정부의 외교부장을 맡으면서 중국에서 ‘한간’으로 지목됐고, 1939년 상하이에서 암살됐다. 사... -
외교관에서 한미 법률 현장으로…권성환의 새로운 도전
▲ 권성환 UC어바인(UCI) 법대 코리아 법률센터 신임 사무총장이 LA총영사관 부총영사로 재직하던 당시 공식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 사무총장은 20여 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한 뒤 미국에서 국제관계와 법학을 공부했으며, 9월 1일부터 UCI 코리아 법률센터 사무총장으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자... -
네이비실에서 의사·우주비행사까지…조니 김, 끝없는 도전의 인생
[인터내셔널포커스] 전쟁터를 누비던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은 의사가 됐다. 다시 조종석에 앉았고 마침내 지구를 떠나 우주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출발점이었던 미 해군으로 돌아간다. 한국계 미국인 우주비행사 조니 김의 이야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7일(현지시간) ... -
무릎 꿇었던 NFL 스타 캐퍼닉…10년 뒤 ‘올해의 인도주의자’로
▲ 미국프로풋볼 경기장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선수를 형상화한 이미지. 콜린 캐퍼닉은 2016년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항의하며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어 세계적인 논쟁의 중심에 섰다. [AI 생성 이미지·인터내셔널포커스] [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프로풋볼(NFL) 경기장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