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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서 세계 여성운동의 상징으로…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남긴 92년

  • 허훈 기자
  • 입력 2026.09.0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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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 여성운동의 상징이자 세계적인 작가·언론인·사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때 취재를 위해 플레이보이 클럽에 직접 들어갔던 젊은 기자는 이후 미국 여성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했다.


스타이넘은 지난 2일 미국 뉴욕에서 별세했다.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태어난 그는 스미스대를 졸업한 뒤 인도에서 약 2년을 보냈다. 이 경험은 훗날 풀뿌리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기자로서의 취재였다.


1963년 스타이넘은 여성 종업원들의 노동환경을 취재하기 위해 뉴욕의 플레이보이 클럽에 이른바 ‘버니’로 위장 취업했다. 직접 경험한 내용을 기사로 공개하면서 주목받았지만, 이후 오랫동안 진지한 기자보다 ‘버니 기자’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어려움도 겪었다.


1968년에는 「뉴욕」 매거진 창간에 참여해 정치와 사회문제를 취재했다.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꾼 시기는 1969년이었다. 여성들이 낙태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하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말하는 것의 힘을 깨달았고, 이후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1년에는 다른 여성 언론인들과 함께 여성의 시각에서 정치와 사회, 직장, 가족 문제 등을 다루는 「미즈(Ms.)」 창간에 나섰다. 이 잡지는 이듬해 독립 잡지로 출범했고 미국 여성운동을 대표하는 언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타이넘의 활동은 언론에 머물지 않았다.


전미여성정치회의(NWPC) 창립에 참여해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에 나섰고 여성미디어센터와 미즈여성재단 등 여러 단체 설립에도 힘을 보탰다. 여성의 재생산권과 동일한 기회, 성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미국 전역의 대학과 집회 현장을 누볐다.


활동 무대는 미국 밖으로도 넓어졌다. 80대가 된 뒤에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성 인권과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냈으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 문제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영향력은 미국 정부도 인정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스타이넘에게 미국 최고 민간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스타이넘은 90대까지 글을 쓰고 다음 세대와 소통했다. 별세 직전까지도 자신의 삶을 돌아본 회고록 출간을 준비했으며, 마지막 회고록 「An Unexpected Life」는 오는 22일 출간될 예정이다.


기자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여성운동가가 된 스타이넘.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한 사람의 유명세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그것을 사회 변화로 연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60여 년간 이어진 그의 긴 여정은 끝났지만 그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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