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근대 외교사를 들여다보면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까지 격변의 시대를 외교 현장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다. 광둥성 싱닝(兴宁) 출신의 댜오쭤첸(刁作谦·1880~1974)이 그중 한 사람이다. 해외에서 서양 교육을 받은 그는 청 정부 외무부를 거쳐 중화민국의 직업 외교관이 됐고, 워싱턴회의와 중남미·동남아 외교 현장을 누볐다. 오늘날 칭화대의 전신인 청화학교를 잠시 이끈 이력도 있다.
댜오쭤첸은 10세 무렵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 호놀룰루로 건너가 공부했다. 귀국 후 상하이 세인트존스대학을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법조인 자격도 취득했으며 런던대에서 법학 박사과정을 밟다가 귀국했다.
1908년 중국으로 돌아온 그는 청 정부 외무부에서 근무하며 외교관의 길에 들어섰다. 해외 유학생 관리와 외교 실무 등을 맡았고 유학 출신 인재 선발을 거쳐 법정과 진사와 한림원 편수 직함도 받았다. 1912년 중화민국이 출범한 뒤에도 외교부에서 비서·참사 등을 지내며 경력을 이어갔다.
외교관이던 그에게는 독특한 교육 경력도 있다. 1920년 청화학교 이사회 책임자를 맡고 학교 감독을 겸했다. 당시 청화학교는 미국이 반환한 경자배상금 일부를 재원으로 미국 유학생을 양성하던 학교로 외교부와 관계가 깊었다. 해외 유학과 유학생 관리 경험을 갖춘 그의 이력이 학교 운영과 맞닿아 있었다.
본무대는 역시 외교였다. 1921년 미국에서 열린 워싱턴회의에 중국 대표단 사무총장으로 참가했다. 중국은 관세 자주권과 산둥 문제, 영사재판권 철폐 등 주권 회복과 관련된 문제를 국제무대에 제기했다. 그러나 요구가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자 댜오쭤첸은 량루하오(梁如浩), 저우쯔치(周自齐) 등과 함께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후 활동 무대는 중남미로 옮겨졌다. 쿠바와 파나마 주재 공사를 지내며 현지 정부와 교섭하고 화교 권익 보호 업무에 관여했다. 테니스와 골프에 능했던 그는 현지 인사들과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며 외교활동에 활용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30년대에는 싱가포르 총영사를 거쳐 외교부 양광지역 특파원을 맡았다. 중앙 외교부에서 국제회의와 조약 문제를 다루고, 해외에서는 화교사회를 상대했던 그의 경력은 당시 중국 직업외교관의 활동 영역을 보여준다.
중일전쟁은 그의 삶을 다시 흔들었다. 1938년 광저우 함락 이후 홍콩으로 옮겼고, 1941년 홍콩이 일본군에 점령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중국 내륙으로 빠져나가 충칭에서 국제법을 가르쳤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뒤에는 전후 처리 과정에 참여하고 외교부 고문을 맡았다.
국공내전 이후에는 홍콩에 정착했다. 오랫동안 정부와 해외 공관에서 일했던 외교관은 다시 교육자로 돌아갔다. 여러 학교와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 운영에 참여했으며, 홍콩의 객가 관련 단체와 고향 향우회에서도 활동했다.
말년의 생활은 화려했던 외교관 경력과 대조적이었다.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교육과 지역사회 활동을 이어갔고 1974년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댜오쭤첸의 이름은 구웨이쥔(顾维钧)이나 루정샹(陆徵祥)처럼 중국 근대 외교사의 대표적 인물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청 왕조의 몰락과 중화민국의 탄생, 주권 회복 외교, 해외 화교 보호,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이라는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겹쳐 있다.
하와이와 상하이, 영국에서 공부한 객가 청년은 반세기 가까이 외교 현장을 누빈 뒤 홍콩의 교실로 돌아갔다. 외교관과 교육자라는 두 길을 걸었던 댜오쭤첸의 생애는 중국이 전통 왕조국가에서 근대국가로 변화하던 격동의 시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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