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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고향’ 연변, 축구 열기 뜨겁다”

  • 화영 기자
  • 입력 2024.11.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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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7일 제2회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축구대회가 길림성 연변조선자치주 용정시에서 막을 올렸다.(사진/신화통신)

 

[동포투데이] 장백산 기슭에 위치한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축구를 시작한 지역 중 하나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최초 '축구의 고향'으로서 연변은 오랫동안 축구를 중점 프로젝트로 추진해 왔으며, 2015년 '중국 축구 개혁 발전 총체적 방안'이 공포된 이래 사회 축구 대회 시스템, 시민 중심의 축구 경기장 건설, 도시 축구 개선 등 축구 관련 문화 관광 산업 및 기타 분야의 메커니즘 개발과 포괄적인 탐구를 진행해 왔다. 


현재 연변에서는 매년 평균 2천 회 이상의 축구 경기가 개최되고 있으며, 인구 만 명당 축구장 1.42개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전국 234개 초중등 학교 중 122개교가 국가급 축구특화학교로 설립됐다.현지에서는 동북아, 동남아 등에 축구 동호인 이벤트 러브콜을 꾸준히 보내 '축구+문화여행'으로 소비성장을 견인하며 '축구의 고향' 명함을 빛내고 있다. 


중국·한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 8개국 대학생 12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24일 연변 용정시에서 8일간 일정으로 열린 제2회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축구대회가 막을 내렸다.


연변을 처음 찾은 알·마사리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집행위원은 "연변 사람들의 눈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과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열띤 교류를 하는 것을 보았다"며 "연변처럼 축구를 사랑하고 보급하는 중국 내 많은 도시가 대회를 개최한다면 중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제고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해외 참가자들에게는 이번이 첫 중국행이다. 도하과학기술대학교의 타밈 모하메드는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30분 동안 많은 축구장과 많은 청소년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렇게 많은 관중이 경기를 보러 올 줄은 몰랐다"며"카타르 사람들에게 생소한 연변 이곳에 와서 보니 이 땅의 축구 열기가 예상보다 훨씬 뜨겁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축구는 내가 세계를 알아갈 수 있는 열쇠이자 세계가 연변을 알 수 있는 열쇠이다" 21세의 연변대학교팀 골키퍼 김유성은 "고향의 축구문화가 유구할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까지 아우른다"며 "그동안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축구대회, 동북아 국제 청소년 축구 초청 대회, 중국-러시아 청소년축구리그 등 국제 대회를 연이어 개최해 연변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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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부덕 팬들이 현장에서 응원하고 있다 (자료사진)

 

연변은 중국 축구 역사상 독특한 존재로 1956년에 전국 '축구의 고향'칭호를 얻었고, 1979년에는 국가 최초의 축구 중점 도시가 되었으며, 1994년에는 전국 축구 실체화 개혁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지금까지 각 구단에 500여 명, 각급 대표팀에 40여 명의 선수를 보냈다. 국가대표 부자(父子) 고종훈·고준익도 '축구의 고향' 연변 출신이다.


올해는 중국 축구 프로화 30주년이다.  연변은 30년간 연변오동, 연변부덕, 연변용정 등 3개의 프로팀을 국내 1부 리그와 2부 리그에 진출시켜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국인 고 최은택 감독이 연변오동 감독을 맡아 중국 리그에 한국식 축구를 처음 도입한 이후 많은 팀들이 한국 감독과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 박태하 감독은 연변부덕을 슈퍼리그로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후 중국 여자 19세 이하 대표팀의 감독으로 영입되기도 했다.


'축구의 고향'에는 국제적 우정에 대한 좋은 말들이 부족하지 않았다. 올해 54세의 콩고(김) 은퇴선수 졸라 키냠비는 중국 프로클럽에서 가장 오래 뛰었던 용병으로 갑A 시절 연변오둥에서 이름을 날렸고, 은퇴 후 온 가족이 연변주 연길시로 이사했다. 졸라의 중국 축구 경험은 아프리카 선수들이 중국의 '인연'을 맺는 데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 역시 콩고(김) 출신인 오스카는 한때 중국 남자 축구 귀화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축구는 연변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김국범 연변주체육국장은 올해도 전주사회축구 열기가 지속되고 있으며, 연변에서는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축구대회 외에도 6~60대를 아우르는 동북아 국제 청소년 축구 초청 대회, 중국-러시아 청소년축구리그 등  등 20여 개의 축구경기를 개최하여 대내외적으로 연변축구의 영향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둠이 내리자 연변대학교 교문 맞은편에 위치한 '왕홍챵'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연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피컵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있다. '십일' 골든위크 기간 연길은 관광객 약 91만 3000명을 유치하며 관광종합소득 약 19억 위안을 달성해 전년 동기 대비 7.2%, 7.6% 성장했다. 이 왕훙 도시는 민속 풍습과 특색 음식뿐만 아니라 축구, 커피, 공룡 문화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연길은 중국 축구가 30년 동안 프로 축구를 시작한 이후 연변 3개 팀의 본거지이다. 이 현급 도시는 커피의 발상지는 아니지만 등록된 커피숍이 577개에 달해 네티즌들로부터 '커피의 도시'로 칭송받고 있다. 2016년, 현지의 한 돌 애호가가 조양천 태양강에서 '이상한 돌'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전문가들에 의해 백악기 초기 공룡 화석으로 감정됐고, 이후 보호 발굴로 중국 최동부의 백악기 공룡 화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 커피, 공룡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연길의 문화 관광 체크인 요소로 융합되고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연변에 오면 축구를 보거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공룡왕국 테마파크와 공룡 박물관을 둘러보는 일정을 계획한다. 현지 상인들도 사업 기회를 노리고 사과배맛커피, 콩가루빙수, 명태전, 명태궈바오러우 등 지역 특색과 인플루언서 요소를 고루 갖춘 먹거리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 최대 1,200잔까지 팔 수 있다" '왕홍챵(网红墙)' 근처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리준은 어렸을 때부터 연변팀의 팬이었고 1990년대 축구계에서 활약한 미드필더 고종훈이 그의 팬이었다. 그는 연길문화관광산업의 융합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고 서울에서 배운 기술을 고향으로 가져와 매장을 열었다. 리준은 "아무리 바빠도 축구 관람을 멈출 수 없다"라며 "연변용정의 홈경기는 한 번도 놓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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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 역사상 유명한 '나무걸이'(자료 사진)


연변에서 축구는 스포츠 종목일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생활 내용이기도 하다. 갑 A시대에는 홈구장마다 4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 응원을 했고,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장외의 나무에 올라가 공을 보기까지 했는데—— 바로 중국 축구 역사상 유명한 '나무걸이'이다. 올 시즌 연변용정의 전적은 기복이 있었지만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16,000명을 넘겼다. 지난 2015년 74세로 월 퇴직금 2100원을 받은 이애신 노인이 구단을 위해 1000위안을 기부하고 선수들에게 수박을 사주기도 해 국내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연길시 아리랑축구공원은 2022년 연변주 설립 70주년을 맞는 중점사업으로 현재 랜드마크가 됐다. 14만9000제곱미터의 단지는 기능 구분이나 기구 명명 등 축구 요소가 풍부하다. 퇴근 후나 휴일에는 이곳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축구의 고장, 공을 쫓는 꿈'은 연일보와 연변조간의 올해 특집면 주제다. 국내 2부 리그 팀이 있는 지역의 종이 매체를 보면 특집판으로 축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드물다. 올해 4월에는 연중 '축구 고향' 문화 시즌을 공식 출범하고 '축구 문화 추진 담당관'을 그 자리에서 발표하고 '연변 축구를 따라가다' 계획을 발표하고 이벤트, 전시회 및 기타 활동을 동시에 개최했다. 


용정에 있는 해란강 축구문화산업단지는 이번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 축구대회가 열린 곳이다. 장원지 산업단지 회장은 2018년 단지가 완공된 이후 820개의 중대형 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총 수용인원은 50만 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방과 후에도 연길시 제5중학교 운동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중학교 1학년 두 반의 축구팀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경기장 주변은 관중으로 가득 찼다. 그중에는 다음 경기를 위해 대기하는 선생님과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이것은 이 학교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반마다 팀이 있어요" 김영철 체육교사는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 반까지 학교에서 축구 훈련을 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라고 말했다.


반마다 팀, 매주 축구 수업, 매달 축구 경기는 오늘날 연변 학교 축구의 일상이다. "연변에는 122개의 축구 특성화학교가 있으며, 이는 연변의 234개 초중등학교 중 52%를 차지한다" 연변주 교육국 체육건강부 치궈뱌오 부장은 지역 교육부와 체육부가 공동으로 19개의 축구 특색 유치원을 설립하고 학교 간·현(市)에서 전주까지 이어지는 4단계 청소년 리그를 구축했으며 올해로 주 전체 청소년 축구 리그가 열린 지 35년째를 맞았다고 밝혔다. 


정취안 연변주 부주장에 따르면 연변은 현재 전국 축구 발전 중점 도시, 국가 서부 지역 스포츠 교육 융합 축구 청소년 훈련 시스템 건설 시범 프로젝트 도시, 전국 최초의 유소년 캠퍼스 축구 수준 종합 개혁 시범지구 등 3대 축구 명함이 있다. 현지는 오랜 축구 역사를 바탕으로 인형부터 축구를 중시하고 있으며, 2015년부터 프로축구를 주축으로, 주·현(시) 체육학교를 리더로, 캠퍼스 축구를 기초로 사회력을 보완하는 단계별 연계 청소년 훈련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매년 80,000명 이상의 초등 및 중등학교 학생들이 축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2,500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프로 축구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연변주 체육국 장옌훙(張艳紅) 부국장은 "매년 리그 조직과 전국대회 유치 외에도 매월 및 법정 연휴, 여름·겨울방학에 유소년 축구캠프를 조직해 선발된 우수 유망주들은 남방도시에서 동계훈련, 해외교류 등을 통해 뜨거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예비인재 확보를 유도한다"고 밝혔다.


캠퍼스 축구의 성장에 힘입어 최근 몇 년 동안 지역 사회 청소년 훈련 기관이 점차 증가하고 아마추어 스포츠 학교의 인재 구조도 안정되어 매년 13~17세까지 5개 연령대, 연령대별로 30여 명의 축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한 "1956년 설립된 연변체육학교는 지금까지 꾸준히 축구 종목을 운영해 왔으며, 2015년 이후 초·중·고교·청소년훈련기관에서 선발한 좋은 꿈나무들이 양적·질적으로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국범 연변주체육국장은 건설된 경기장을 활용하고 대회 조직 메커니즘을 계속 최적화하여 연변 청소년들이 더 높은 수준의 국제 및 국내 대회와 교류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나가면 들어오는" 방식으로 청소년 훈련의 빛을 발하여 축구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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