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현대 외교사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구웨이쥔과 그의 아내 옌유윈의 삶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격동의 세월을 건너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말년까지 이어진 동반자적 삶과 헌신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1985년 11월 14일 밤, 당시 98세였던 구웨이쥔은 미국 자택 욕실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평소처럼 목욕을 하러 들어간 남편을 위해 옌유윈은 문밖에서 따뜻한 차를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자 문을 열었고, 욕조에 기대 잠든 듯 숨을 거둔 남편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료진은 고령에 따른 심장 기능 저하로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판단했다. 주변에서는 충격 속에 옌유윈이 크게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침착하게 장례 절차와 가족 연락, 외교 관계자 통보 등을 직접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옌유윈은 32년 동안 홀로 생활하며 남편의 흔적과 생활 방식을 지켜냈다. 그는 생전 주변 사람들에게 “구 선생은 잠시 쉬러 갔다”고 말하곤 했으며, 편지에서도 자신을 1인칭 대신 제3자 표현으로 적었다고 한다.
1910~20년대 상하이 명문가에서 성장한 옌유윈은 중국 근대 실업가 집안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부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화려한 사교계 인물이었던 그는 훗날 외교관이자 국제법학자였던 양광성(杨光泩)과 결혼하며 외교가의 삶에 들어섰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의 필리핀 점령 과정에서 남편 양광성이 희생되면서 삶은 급격히 바뀌었다. 세 딸을 홀로 키우던 그는 이후 유엔에서 예빈 업무를 맡으며 국제 외교 현장에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재회한 인물이 바로 구웨이쥔이었다. 중국 외교사에서 전설적 존재로 평가받는 그는 파리강화회의와 국제연맹 무대에서 중국의 입장을 적극 대변한 인물이다. 영어 연설 능력과 국제 감각으로 서구 열강 사이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남겼으며, 북양정부 시절 외교총장과 주미·주영·주불 대사를 지냈다.
그러나 화려한 외교 경력과 달리 사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세 차례 결혼과 긴 외교 생활 속에서 늘 호텔과 해외 공관을 전전했고, 주변에서는 “엄격하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로 기억했다.
두 사람은 1959년 미국 뉴욕의 한 변호사 사무실 회의실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성대한 예식 대신 서로의 여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만 남겼다.
이후 옌유윈은 구웨이쥔의 생활 전반을 세심하게 돌보며 안정된 가정을 만들었다. 매년 1월 29일 그의 생일이면 가족과 지인들이 모였고, 노년의 구웨이쥔은 이전과 달리 한층 밝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언론은 70대에 스키복을 입고 손주들과 어울린 그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구웨이쥔의 장남은 훗날 “옌유윈이 없었다면 아버지는 20년은 더 일찍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남편 사후에도 옌유윈은 요양시설 입소나 간병인을 거부한 채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102세에는 회고록을 출간했지만, 개인적 감정보다는 외교 현장의 경험과 시대 변화에 대한 기록을 담는 데 더 집중했다.
그리고 2017년, 112세의 나이로 잠든 듯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오래된 사진 두 장과 찻주전자, 책 몇 권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외교사의 상징으로 남은 구웨이쥔과, 30여 년 동안 그의 빈자리를 지켜낸 옌유윈. 두 사람의 삶은 단순한 외교 비화를 넘어, 긴 세월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며 살아간 동반자의 이야기로 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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