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국 자유로워졌지만, ‘생활 시스템’은 여전히 외국인에 닫혀 있다
[동포투데이] “중국은 편리하다면서요? 그런데 왜 증명사진 한 장이 이렇게 어렵죠?”
이탈리아 관광객 다니엘레는 베이징 호텔 프런트에서 2인치 사진을 요구받고 멍해졌다. 여권용 사진은 이미 가져왔지만, 중국의 ‘2인치 사진(49×35mm)’은 세계 대부분 국가의 ‘2×2인치’와 규격이 달랐다. 이 ‘밀리미터 단위의 차이’는 요즘 중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겪는 불편의 상징이 됐다.
최근 중국 정부의 무비자 정책으로 외국인 관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국가이민관리국에 따르면 2025년 1~8월 무비자 입국 외국인은 1,589만 명으로 전년 대비 52.1% 늘었고, 올해 전체 입국자는 3,5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일본이 30년 걸려 달성한 수준에 중국은 단 2년 만에 도달한 셈이다.
하지만 수치의 열광 뒤엔 ‘체험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외국인들은 ‘디지털 중국’의 화려한 이미지에 끌려오지만, 막상 현지에선 낡은 행정 체계와 비호환 시스템 앞에 번번이 막힌다.
“환영은 보이지만, 편의는 닿지 않는다”
다니엘레의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는 5G 휴대폰을 사는 건 문제없었지만, “외국인은 일반 민박 이용 불가”라는 규정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얼굴인식으로 고속철역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관광지 예매 사이트는 “중국 주민등록증(ID)만 가능”하다는 이유로 막혔다.
전국 66만 명의 공인 가이드 중 외국어 가능자는 8.4%에 불과해, 외국인 관광객 다수는 문화해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여행을 마친다. 한 외국인 관광 전문가는 “중국은 ‘정책 개방’엔 성공했지만, ‘시스템 개방’은 여전히 닫혀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결제 시스템도 여전히 ‘중국식’이다. 위챗페이·알리페이 등 모바일 결제는 중국 내국인에게는 일상적이지만, 외국인은 여권으로 계정을 개설해도 이용 횟수·한도에 제약이 걸린다. 일부 플랫폼은 국제 신용카드를 등록해도 월 30회 이상 결제하면 자동 잠금된다.
숙박 예약 역시 문제다. 정책상 외국인도 민박 이용이 가능하지만, 다수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여전히 “중국 주민등록증 보유자만 예약 가능”으로 설정돼 있다. 결국 외국인들은 ‘합법적’이지만 시스템상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2인치 사진”이 드러낸 중국식 불편의 민낯
수쑤는 쑤저우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통역사다. 매년 수백 명의 외국 고객을 도우며 느낀 ‘최대 난관’은 문화가 아니라 행정이다. “고객이 가져온 여권용 사진은 다 정사각형인데, 중국은 직사각형이라 전부 다시 찍어야 해요. 다들 어이없다는 반응이에요.”
이 사소한 규격 차이는 ‘중국 표준’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 시스템의 단면이다. 공공 와이파이, 관광지 예약, 교통카드 충전 등 일상 서비스 대부분이 ‘중국식 신분인증’에 종속돼 있어 외국인은 사실상 ‘디지털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베이징 한 명승지 관리자는 “비자 면제 외국인이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구매했는데, 검표 시스템이 여권번호를 인식하지 못해 수동으로 20분간 입력해야 했다”며 “시스템이 주민등록번호만 인식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털어놨다.
“면세에서 경험으로” — 진짜 개방은 시스템의 문제
전문가들은 “무비자 입국은 입구를 연 것일 뿐, 진짜 승부는 체류 경험”이라고 말한다. 외국인 관광객의 SNS에 “중국은 대단하지만, 호텔 예약이 불가능했다”는 글이 쏟아진다면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이 된다.
다행히 변화의 조짐은 있다. 국가세무총국은 올해 ‘즉시 면세 환급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했고, 베이징은 외국인을 위한 ‘통합 교통·결제 카드’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일부 도시는 외국인 전용 ‘관광 통합 앱’을 시험 중이다.
전문가들은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예약 페이지에 ‘49×35mm’ 규격을 명확히 기입하거나, 여권 인증으로 결제 한도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는 어렵지 않다. 중요한 건 “중국식 기준”에서 “국제적 사용자 경험”으로의 발상의 전환이다.
“다음에도 또 오고 싶은 나라”
외국인 관광객 3,500만 명은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니라,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는 지표다. 관광은 곧 국가 이미지다.
한 캐나다 기업인은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지만, 여권만 들고 다니면 기능이 반쪽짜리가 돼요. 마치 피처폰으로 스마트폰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죠.”
외국인 관광객이 여권만으로 고궁 예약을 하고, 국제카드로 커피를 사고, 모국어로 안내를 들을 수 있는 나라 — 그것이 진정한 ‘열린 중국’이다.
이탈리아 관광객 다니엘레는 귀국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중국의 고속철과 화끈한 훠궈, 그리고 한복(漢服)은 정말 멋졌어요. 하지만 다음엔 제발, 2인치 사진 때문에 기차를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중국의 ‘관광대국’ 꿈은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필요한 건, 문을 여는 것보다 ‘손님이 불편하지 않게 들어오게 하는’ 세심함이다.
진정한 매력은 바로 그 ‘밀리미터의 차이’ 속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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