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4(토)
 
■ 김철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는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세계적인 명곡이다, 또한 사상과 이념을 떠나 8000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2015년 4월 25일, 필자를 싣고 중국 연길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 z352 항공편은 요녕반도의 대련쪽까지 날다가 다시 기수를 황해(서해)로 돌리었다.
 
필자가 한국행을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지난 세기 90연대 초, 마도로스로 한국 선일해운의 송출선을 타고 선후로 부산, 울산, 인천에 상륙하여 ˝아시아의 4마리 용˚중의 하나였던 한국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이번의 한국방문은 20여년만에 다시 찾게 된 코리아이기도 했다.

한국속의 조선족
 
인천공항에서 내리자 공항의 규모에 재차 놀랐다. 공항규모가 무지무지 하게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깨끗했으며 공항직원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동행을 했던 연변일보 논설부 박정일 부장도 동감이었다.
 
우리는 공항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다. 경인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오는 동안 화창한 봄속에서 약동하는 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인천으로부터 서울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라 보는지라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한강다리를 건너면서 63빌딩을 볼 수 있었고 이어 한국 KBS방송국의 본관건물, 서울역 및 서울시청 등 낯익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명동이었다. 명동에서 내리자 박정일씨의 4촌형이란 분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명동은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특히 아까 명동에서 내릴 때 많은 중국인 여행객들이 내리었고 명동 골목에 들어서니 사처로부터 귀에 익은 중국말들이 들이었다. 화장품 가게를 찾는 사람들과 “싸구려¨를 부르는 목소리 중 자주 중국말들이 들리어 인상적이었다.
 
이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박정일씨의 4촌 형이 운영하는 부대찌개집 “송탄¨이었다. 한국의 연예인인 강호동씨가 추천한다는 식당이었으며 명동에서도 중심에 위치해있었다.    “송탄¨에 들어서자 몇개의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보이었는데 박정일씨의 4촌 형에 따르면 이 날은 일요일이기에 손님이 적으며 평소에는 손님들이 꽉 찬다는 것이었다. 또한 줄을 서서 남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부대찌개집 “송탄¨에서 한참 있을라니 서울에서 생활한다는 박정일씨의 친구 4명이 선후로 들이닥치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삼겹살을 구워먹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고향분들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니 감개가 무량했다.
 
한참 뒤 서울에서 사업하는 나의 아들이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나의 아들은 서울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고 있었고 며느리는 화장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박정일씨의 친구들은 나의 아들을 반겨맞아 주었다.
 …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서로 갈라지었다. 박정일씨는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다른 곳 으로 향했고 나는 아들과 함께 아들이 차린 사무실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아들이 차린 사무실은 서울 남대문 근처에 있는 삼신빌딩 10층에 있는 10호였다. 그러니 1010호인 셈이었다.
 
아들한테 절로 감탄이 갔다.
 
나의 아들은 올해 33살이다. 사실 아들은 공부를 많이 못했었다. 17살에 사회를 나와 를 나와 여러번 사고를 쳐 나로 하여금 무척 속을 썩이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살 좌우부터 셈이 들자 더는 나로 하여금 속타게 하는 일이 없었다. 절강 의오에서 힘든 한국회사생활을 견디어 냈으며 몇년 전부터 한국에 진출해서는 스스로자아창업에 나섰던 것이다. 이런 아들이 있음으로 하여 나는 몰래 자호감이 생겼다.
 
하지만 아들은 첫시작에 불과했다. 명동에서 생활하는 박정일씨의 4촌 형을 비롯해 한국에는 사업에서 성공한  조선족이 많았다. 특히 서울에는 성공한 조선족들이 많다고 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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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코리아와 함께 숨쉬는 사람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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