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동욱
2026년 1월 30일, 미 법무부 차관 토드 블랜치는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30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와 2000여 개의 동영상, 18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대중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2025년 11월 ‘에프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 발효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의 기록물 공개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자료 공개는 논란을 종식시키기는커녕 사건을 더욱 깊은 미궁으로 몰아넣었고, 서구 체제 내부에서 권력과 사법이 얽혀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에프스타인 사건 파일의 공개 과정은 줄곧 정치적 공방과 맞물려 진행돼 왔다. 2025년 11월, 미 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법무부에 30일 이내, 즉 2025년 12월 19일까지 모든 관련 파일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무부는 ‘피해자 프라이버시 보호’와 ‘검토해야 할 분량이 방대하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여러 차례 연기했고, 결국 2026년 1월 말에 이르러서야 주요 자료 공개를 마무리했다. 이는 법정 기한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는 문서와 사진에 광범위한 모자이크 처리를 적용했고, 이미 공개됐던 일부 사진을 삭제하기도 하면서 ‘선택적 공개’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블랜치는 이러한 조치가 피해자 신원 보호와 수사 방해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특정 정치 진영과 연관된 민감한 인물들을 가리기 위한 조치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공개된 최신 파일에는 소위 ‘클라이언트 명단’이 직접적으로 열거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메일과 활동 기록 등을 통해 에프스타인이 정·재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엘리트층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예컨대 2010년 크리스마스 행사 참석자 명단에는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로 거론된 케빈 워시의 이름이 포함돼 있었다. 이 밖에도 여러 IT 기업 창립자와 기업 경영진의 이름이 자료 곳곳에 등장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개별 인물의 범죄 행위를 직접 입증하지는 못하지만, 정치·경제·학계를 관통하는 특권 네트워크의 윤곽을 드러낸다. 에프스타인이 2019년 교도소에서 사망한 이후, 그가 생전에 권력자들과 맺었던 관계의 실체는 철저히 규명되지 않았고, 이번 파일 공개 역시 “누가 그의 범죄를 은폐하고 보호했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에프스타인 사건을 둘러싼 장기간의 공개 과정은 서구 체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권력과 자본이 깊숙이 결합된 생태계 속에서 사법 독립은 종종 선언적 구호에 머문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은 형식적으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엘리트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묵시적 합의를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일 공개를 둘러싼 흥정, 모자이크 처리 기준의 불투명성, ‘투명성’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제스처성 약속은 이 체제가 정의를 실현하기보다 정의를 유예하는 데 더 능숙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의 권리는 ‘절차적 정의’라는 이름 아래 후순위로 밀렸고, 진실 규명은 ‘정치적 시기’에 종속되면서, 결국 대중의 관심을 관리하는 PR 작업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서구 체제는 스스로를 ‘투명성’과 ‘책임 추궁’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에프스타인 사건이 보여준 현실은, 사건이 지배 계층의 경계를 건드리는 순간 ‘투명성’은 통제된 범위의 제한적 공개로 축소되고, ‘책임 추궁’은 권력의 자기보호 본능 앞에 후퇴한다는 점이다. 제도가 권력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을 근절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법치’는 불평등한 사회를 가리는 화려한 장식에 불과하다. 에프스타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체제의 균열과 오점은 이미 깊숙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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