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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②] 도덕을 말하던 자들의 은밀한 향락

  • 김준하 기자
  • 입력 2026.01.2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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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대부 계층의 성(性), 위선의 구조

황제의 권력이 성의 방종을 제도화했다면, 그 권력을 일상 속에서 해석하고 정당화한 존재는 사대부 계층이었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사대부는 단순한 관리 집단이 아니었다. 이들은 지식의 독점자였고, 도덕의 해설자였으며, 백성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규범 생산자였다. 그러나 성에 관한 한,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공적 언설과 사적 행태가 극단적으로 분리된 이중 구조였다.


사대부는 스스로를 ‘유자(儒者)’라 불렀다. 그들이 내세운 핵심 가치는 예·의·염·치였고, 성은 언제나 절제와 통제의 대상이었다. 문헌과 강론 속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욕망을 억누르고 도덕적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존재였다. 성적 욕망은 수양의 대상으로 규정됐고,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는 소인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 도덕은 주로 ‘타인’을 향해 있었다.

 

화면 캡처 2026-01-21 210210.png

과거제는 능력에 따른 관료 등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권력 진입의 통로였다. 사대부 다수에게 학문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입신양명의 수단이었다. “만 가지 직업은 천하고 독서만이 높다”, “책 속에 황금과 미인이 있다”는 속담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지식은 곧 부와 권력, 그리고 성적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이미 굳어져 있었다.


출세한 사대부의 삶은 유교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관직은 재산으로 전환됐고, 재산은 다시 사적 향락의 기반이 됐다. “3년 청백리면 은 10만 냥”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로, 청렴은 오히려 예외적 미담에 가까웠다. 현실에서 다수의 관료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를 축적했고, 그 결과 가문 안에는 정실부인 외에 첩과 시녀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첩을 두는 행위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문의 번성과 남성의 능력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대부 사회에서 일부일처는 형식적인 규범에 불과했고, 실제 성 생활은 다첩 구조를 전제로 작동했다. 정실부인은 가문의 질서를 관리하는 존재였고, 성적 욕망과 감정의 분출은 첩과 기녀를 통해 해결됐다.


문인 사회에서 이러한 이중성은 더욱 세련된 형태로 나타났다. 기녀와의 교유는 노골적인 향락이 아니라 ‘풍류’로 포장됐다. 시와 술, 음악과 성적 교류는 교양인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로 미화됐다. 두목을 비롯한 당대 문인들의 일화와 작품은 방탕함조차 낭만으로 소비하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식 목적의 혼인이 제도라면, 감정과 자극을 추구하는 성은 문화로 분리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성은 이중으로 분할됐다. 하나는 가문과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적 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감정과 쾌락을 충족시키는 선택적 성이었다. 사대부 남성은 이 두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었지만, 여성에게는 그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정실부인에게는 정절과 순종이 요구됐고, 첩과 기녀는 감정과 욕망의 수용체로 기능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런 삶을 살면서도 백성에게는 훨씬 엄격한 성 윤리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사대부는 지방 사회와 가정에서 도덕 교사 역할을 자임했다. 평민에게는 일부일처와 부부 정절을 강요했고, 여성의 성적 일탈은 가문과 사회를 무너뜨리는 범죄로 규정됐다. 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질서의 문제로 관리됐다.


사대부는 스스로를 ‘깨인 지식인’으로 인식하면서도,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 위선을 감내했다. 자유로운 사상을 논하면서도, 그 자유는 언제나 자신들의 계층 내부에만 적용됐다. 성에 관한 한, 사대부는 가장 많은 언어를 생산한 계층이었지만, 그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가리는 역할을 했다.


이들의 성 문화는 중국 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이중 구조를 형성했다. 황제가 제도의 차원에서 방종을 누렸다면, 사대부는 문화와 미학의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했다. 도덕을 말하던 자들의 은밀한 향락은 개인적 타락이 아니라, 권력 유지에 기여하는 구조적 기능이었다.


결국 사대부의 성은 ‘위선’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스스로도 모순임을 알면서 유지된 체계였고, 질서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어진 선택이었다. 이 모순은 이후 지방 사회로 내려가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변형된다. 다음 회차에서 다룰 향신 계층은, 사대부적 위선이 현장에서 어떻게 폭력과 지배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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