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설이 오면 중국의 거실 풍경은 묘하게 닮아 있다. 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오르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차탁 위에 놓인 해바라기씨 한 접시가 있다. 손에 쥐고 하나씩 까먹는 이 단순한 간식은, 수천 년이 흐른 지금도 중국 설날의 배경음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의 화가이자 산문가 펑즈카이(丰子恺)는 한 수필에서 “중국인에게는 젓가락 박사, 성냥 불기 박사, 해바라기씨 먹기 박사라는 세 가지 박사 자격이 있다”고 썼다. 농담이지만 정확한 진단이다.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행위는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중국인의 생활 리듬과 인간관계를 설명하는 문화 코드다.
해바라기씨는 오래전부터 중국 사회에서 ‘모두에게 열린 음식’이었다. 한나라 무덤에서 씨앗이 출토되고, 송대 세시가요에 “정월엔 해바라기씨를 깐다”는 구절이 등장할 만큼 이 간식은 일찍부터 명절 풍경에 스며들었다. 명·청대를 거치며 거리의 장사꾼과 가정의 차탁을 동시에 점령했고, 『홍루몽』 속 임대옥이 씨앗을 까며 웃는 장면은 이 소소한 음식이 사교의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해바라기씨가 설날의 상징으로 살아남은 이유는 ‘역사’보다 ‘성격’에 있다. 값비싼 주연 음식과 달리, 해바라기씨는 많이 먹어도 부담이 없고, 적게 먹어도 허전하지 않다. 먹는 속도가 느리고, 반드시 껍질을 거쳐야 하며, 배를 채우기보다는 시간을 채운다. 이 특성은 설날이라는 시간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설은 원래 ‘빨리 끝내는 날’이 아니다. 농한기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늘어놓고, 특별한 결론 없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해바라기씨를 까는 ‘딱, 딱’ 소리는 대화의 공백을 메우고, 침묵을 어색하지 않게 만든다. 말이 끊기면 씨앗을 까고, 씨앗이 떨어지면 다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바라기씨는 설날 대화의 리듬을 조율하는 일종의 메트로놈이다.
이 음식에는 묘한 평등성도 있다. 누구도 독점하지 않고, 누구나 손을 뻗을 수 있다. 한 움큼 집어 옆사람에게 건네는 행동은, 말보다 먼저 관계를 연다. 그래서 해바라기씨는 ‘먹는 음식’이기 전에 ‘나누는 행위’에 가깝다.
오늘날 중국의 설은 과거보다 훨씬 화려해졌다. 수입 과자와 고급 견과류, 건강 간식이 차탁을 가득 채운다. 그럼에도 해바라기씨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은 씨앗은 명절의 본질이 ‘과시’가 아니라 ‘머무름’에 있음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연회는 끝나고, 방송은 꺼지지만, 차탁 위 해바라기씨는 남는다. 오가는 손길 속에서 반복되는 가장 소박한 소리는, 중국인에게 설이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임을 알려준다. 해바라기씨가 매년 설날에 돌아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가장 작지만, 가장 인간적인 명절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BEST 뉴스
-
사료 왜곡 논란 부른 《태평년》의 ‘견양례’
글|안대주 최근 중국에서 개봉한 고장(古裝) 역사 대작 드라마 《태평년》이 고대 항복 의식인 ‘견양례(牵羊礼)’를 파격적으로 영상화하면서 중국 온라인을 중심으로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여성의 신체 노출과 굴욕을 암시하는 연출, 극단적인 참상 묘사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과도한 각색”... -
중국의 도발, 일본의 침묵… 결승전은 반전의 무대가 될까
“일본은 코너킥으로만 득점한다.” “선수들은 어리고, 쓸모없다.” “일본은 이미 끝났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문제는 축구가 언제나 말과 반대로 흘러왔다는 점이다. 이런 발언은 종종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괜... -
[기획 연재 ④] 총과 권력이 만든 성의 무법지대
중국의 권력 질서는 단선적이지 않았다. 황제가 제도를 만들고, 사대부가 이를 해석하며, 향신이 지역 사회에 적용하는 동안에도, 제도의 균열은 늘 존재했다. 그 균열이 극대화될 때 등장하는 존재가 군벌이었다. 군벌은 법의 산물이 아니었고, 윤리의 결과도 아니었다. 그들은 오직 무력을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그 ... -
에프스타인 파일 공개… 300만 페이지로 가린 서구 체제의 불투명성
2026년 1월 30일, 미 법무부 차관 토드 블랜치는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30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와 2000여 개의 동영상, 18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대중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2025년 11월 ‘에프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 발효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의 기록물 공개로 알려졌다. 그러... -
7쌍 중 5쌍은 한족과 결혼… 조선족 사회에 무슨 일이
글|김다윗 중국 내 조선족과 한족 간 통혼이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조선족의 타민족 혼인 비율은 70% 안팎으로, 전국 소수민족 평균(약 25%)을 크게 웃돈다.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이례적인 수치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인의 선택을 넘어, 인구 구조·도시화·문화 적합성이 맞물린 ... -
[기획 연재 ⑤] 법 바깥의 세계, 강호…범죄와 결합한 성
황제의 제도, 사대부의 언어, 향신의 관행, 군벌의 무력은 모두 ‘공식 권력’의 스펙트럼에 속했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는 언제나 이 질서의 바깥에 존재한 세계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강호(江湖)’라 불렀다. 강호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비밀 결사, 범죄 조직, 유랑 집단, 무장 폭력배, 밀수꾼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