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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되는 세계”…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영국 안팎의 딜레마

  • 허훈 기자
  • 입력 2025.06.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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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영국 지방정부 대표단이 지난 3월 중국 충칭을 찾았다. 산과 강을 따라 고층건물과 고가도로, 경전철이 입체적으로 얽힌 도시는 대표단의 눈을 사로잡았다. 일부 열차는 건물을 뚫고 지나갔고, 복잡하지만 질서 있는 도시의 리듬은 영국 정치인들에게 낯선 감탄을 자아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4일, “이번 방문은 현대 영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 방중 대표단”이라며 “영국 내에선 별다른 보도가 없었지만, 대표단은 충칭의 도시 계획과 빠른 발전 속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대표단은 귀국 후 중국 브랜드인 ‘아너’의 스마트폰을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불과 몇 해 전, 영국이 화웨이의 5G 장비를 전면 배제했던 기억과는 대조적이다.

 

대표단 일원인 나딘 피트피일 동미들랜드 부시장은 “영중 양국은 확실히 관계 복원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BBC는 이번 방중과 노동당 정부의 대중 협력 기조를 들어 “중영 관계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기후위기, 경제 협력, 무역 등 실리를 중심으로 한 관계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류에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영국 안팎에서는 여전히 “중국과의 협력이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 미·중 갈등의 여파 속에서 미국과의 ‘특별 관계’를 중시하는 흐름 역시 중영 관계의 진전을 제약하고 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중국 담당 연구자 윌리엄 매슈스는 “세계는 점점 더 중국화되고 있다”며 “서방이 이를 불편해하더라도, 이성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며,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는 건 21세기 지구정치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중영 경제 협력의 신호탄도 있었다. 지난 1월 11일, 중국 부총리 허리펑과 영국 재무장관 레이첼 리브스는 북경에서 열린 제11차 중영 경제금융대화를 공동 주재했다. 리브스 장관은 “향후 5년간 중영 협력은 영국 경제에 최대 10억 파운드의 성장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에너지 장관 에드 밀리밴드는 중국과의 기후협의 재개를 공식화하며 “중국과의 대화를 외면하는 것은 영국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회피”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 경제 회복 등 실질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그간 영국이 반복해온 인권·안보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인식 변화도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희토류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 구도에 주목한다. 중국은 희토류 광물 채굴과 정제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이는 AI, 반도체, 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의 필수 기반이다.

 

“팬데믹 이후 중국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현장을 직접 보는 건 당연한 선택”이라는 영국 중국 전국위원회 앤드루 케이니의 말처럼, 영국 정치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보는 만큼 이해하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런던 킹스칼리지 중국연구 교수 케리 브라운도 “중국은 오늘날 세계가 주목해야 할 정보, 방식,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며 “AI, 생명과학, 고등기술 등에서 중요한 교훈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 내부에는 정치적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부는 녹색 에너지 투자 유치 방침을 내세우는 동시에, 중국산 태양광 제품을 ‘강제노동’과 연관 지어 수입을 제한했다. 기업부 장관 조너선 레이놀즈는 “중국 기업은 다르게 본다”고 말하며, 사실상 중국을 투자 심사 기준에서 별도로 취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일부 보수 언론과 전직 관리들은 ‘중국 스파이’, ‘사이버 안보 위협’을 부각시키며 반중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주영 대사관은 “이는 무지와 오만에서 비롯된 왜곡된 상상”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압력은 노동당 정부의 고민을 복잡하게 만든다. 지난달 트럼프 전 행정부 인사 피터 나바로는 “영국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심화해서는 안 된다”고 노골적인 경고를 보냈다. 미국은 또 영국과 체결한 무역 합의를 “대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영국 전직 외교관 찰스 패튼은 “현재 다우닝가 10번지에는 명확한 대중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BBC도 “협력과 경쟁, 견제의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명확한 원칙 없이 기업과 공공기관에 결정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니 블레어 연구소의 중국 담당 분석가 루비 오스만은 “영국은 중국에 대한 정책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며 “정책 인력 양성은 물론, 대중 교류에 참여하는 싱크탱크와 기업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영 중국대사관은 “영국 내 중자본 기업은 합법적으로 영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며 “중영 관계를 정치화하지 말고 공정하고 비차별적인 협력 환경을 조성하라”고 촉구했다.

 

중국은 분명 불편한 상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회피하는 대신, 냉정하게 바라보고 실리를 중심으로 협력의 길을 찾을 때, 영국의 외교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세계는 점점 중국화되고 있다’는 말이 예언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시대, 이제는 선택이 아닌 대응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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