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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투사, 양이원영 의원
    [동포투데이] 탈원전 운동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양이원영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아 이 방면의 대표적인 국회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이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해 의정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이다. 양이 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 저지 대응단을 조직하여 4월 6일 일본을 방문했다. 대응단은 “오염수 방출하면 우리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방문을 두고 여권에서는 ‘빈손 외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양이원영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국회가 나선 것”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계획을 발표한 이후 줄곧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사회적으로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승인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지지도 찬성도 한 적이 없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찬성한 적은 없으나 침묵해 온 것은 사실이다. ‘침묵은 오염수 방류 공범’이라는 것이 양이 의원의 생각이다.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방류 저지 대응단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노하여 이번에는 머나먼 유럽 영국에 날아갔다. 런던 현지 시간으로 9월 16일(토) 오후 4시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대책총괄위원회 우원식 의원, 송기호 정책기획 본부장은 국제해사기구(IMO) 방문하여 현직 임기택 사무총장과 차기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아르세뇨 도민게즈 국장을 1시간 40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대응단은 “미래세대와 해양 생태계를 위해 일본 정부가 허용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사성 폐수 투기는 런던의정서 법률 체계에 따라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서한을 전달하고 또 다음과 같은 우려 사항을 말했다. 먼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최소 30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투기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간 해양투기에 의한 누적 영향으로 먹이사슬을 통한 생태계 피해를 우려. 두 번째로 바다에 방사성 오염수를 투기하지 않는다는 대안 즉 육상에 보관하거나 수증기 증발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수 해양투기는 나쁜 선례가 되어 인류와 미래세대 모두의 자산인 바다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대응단은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한국과 일본이 협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해사기구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단이 이렇듯 동분서주하면서 적극 나설까? 만약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더라면 야권 의원들이 ‘설자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양이 의원을 비롯한 야당 대응단의 동분서주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전력 1차 오염수 방류 3개월 전쯤 한국 정부는 사회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시찰단을 일본에 보냈다. 5월 21~2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시찰단은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까지 총 21명으로 구성되었다. 정부 시찰단 인원수는 방대하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이 의문을 표할 정도로 말 타고 꽃구경하다 온 것 아니냐는 시선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시찰단 명단조차 밝히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쉬쉬하면서 일본 방문을 진행했으니 국민들의 비판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도쿄전력은 10월 5일부터 2차 방류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지난 9월 28일에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차 방류 때와 같이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을 통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전문가를 후쿠시마 현지로 파견한다.’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지난 1차 방류 때와 마찬가지로, 방류 관련 실시간 데이터와 도쿄전력이 시료 채취 및 분석 후 공개하는 정보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한다.”고 말했을 뿐 방류 자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내지 않고 있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두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반대는 고사하고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수산물 오염은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비롯한 관료들이 수산시장을 방문하여 회를 먹는 쇼까지 벌이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는 정부 차원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입장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에 오염수 방류 반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호랑이와 가죽 흥정을 벌이는 것과 같이 황당한 짓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 전체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다. 양이 의원 같은 분들을 비롯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공조가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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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단독 인터뷰] 강창일 전 주일대사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내주는 나라가 아니야”
    [동포투데이] 얼마 전 G7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개최국인 일본의 초대를 받아 한국도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회복 및 정상화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쌓여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한일관계를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생겨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약 130만 톤의 해양 방류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 기업 없이 마련하겠다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 갈수록 도가 지나치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슈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해묵은 역사문제부터 최근 있었던 G7을 주제로 일본에 정통한 강창일 전 주일대사(현 동국대 석좌교수, 4선 국회의원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역임)와 일문일답을 진행하며,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검증, 피해국도 포함되어야 -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오염수 방류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므로 바다 환경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해사기구(IMO), 그린피스 등 환경 전문가가 오염수 검증에 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객관성이 담보된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만 검증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을 보낸다? 결과에 대한 신뢰도 어려울 뿐더러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등 많은 국가가 피해를 입을 걸로 예상되는 국제적인 문제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일본에서는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인체에 해를 줄 수준은 아니라고 하던데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신뢰 가능한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미국, 캐나다에서 검증할 게 아니라 피해국의 전문가가 검증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일본은 IAEA 외에 특정 국가에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데, 한국의 시찰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찰이야 누구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료 채취도 못 하는 시찰은 의미가 없다. 시찰이 아니라 ‘검증'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중요한 자료를 절대 내놓지 않아서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다. - 이번 시찰단 구성, 어떻게 되는지? 정부 기구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누군지 구체적으로 명단 공개도 안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지금 제일 문제인 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방류를 전제로 하고 시찰단 파견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국이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어 들러리 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 그렇다면 이번 시찰, 신뢰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기대하기 어렵다. 시찰 결과도 분명 큰 이상 없다고 결론지어질 것이 뻔하다.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이 다녀와서 발표하는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나. - IAEA에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 중이다. 이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는지?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없다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 발표를 보면 결과는 나온 것 같다. ▶ 강제 징용 배상 문제, 멀티 트랙 접근법 필요 -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기로 했다.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보나. 잘못된 행보라고 본다. 일본 정부를 동참시켜서, 일본 기업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제3자변제 방식을 통한 배상은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일본 가해 기업이 아닌, 제3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인데 일본의 자발적 사과를 끌어내긴 커녕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과 원만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말이 안 된다. -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도 좋지만 이런 역사 문제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나. 피해자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그러니 여론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 강제 징용 배상 해법에 피해자가 빠져선 안 된다. 해법 마련,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꾸준히,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물밑 작업을 지속해 일본 기업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 매국과 다를 게 없다. - 국익과 역사 문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몇십 년 동안 역사는 역사,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 이렇게 각각 멀티 트랙으로 접근했다. 잘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멀티트랙으로 진행되♘어야 했는데 갑자기 모두 일원화시키며 과거 역사를 없애버렸다. 이는 결국 역사를 팔아버린 집단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국민에겐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잠재된 어떤 정서가 있다. 물론 일본 여행도 잘 가고, 일본 문화도 좋아하지만, 과거사는 다른 문제다. 그러므로 경제는 경제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G7 정상회의 - 의장국인 일본의 초청을 받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이 일본의 초청을 받은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도 G7 정상회의에 4번 참석한 이력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만 초대받은 게 아니라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코모로, 쿡 제도 등 엄청 많은 국가가 초대됐더라. 이번 정상회의 주인공은 일본의 기시다 총리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조연 그 어디쯤이었을 거다. - G7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제공됐다고 하던데.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산물은 잘 안 팔린다. 아마 방사능 전부 체크해서 안전한 음식만 갖다 놨을 거다. 술은 증류수라 괜찮다고 하는 술과 안전한 음식 몇 개만 준비한 걸로 알고 있다. 후쿠시마산 물도 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정상회의 식탁에 올라 안전하다는 식으로 어필하고 있다. - 원폭 희생자에 대한 참배 일정도 있었다. 한일 정상 참배는 처음이라던데. 이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통령이 가는 건 당연한 건데, 기시다 총리가 간 게 중요하다. 그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마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배려해서 원폭 희생자 참배 일정을 진행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참배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 14명이 히로시마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히로시마 참배 일정 때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부 쪽에서는 회신도 없고 가타부타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히로시마로 향했던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진행한 거였다면, 한국에서 온 원폭 피해자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성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G7 정상회의 후, 여당에서는 ‘국격을 높였다' 야당에서는 ‘들러리 선 꼴밖에 안 된다'라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의 위상을 높인 건 없고, 한미일 회담을 아주 짧게 약식으로 진행했는데 정식으로 길게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 G7 정상회의 참석이 한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나. 딱히 변할 건 없어 보인다. 얻은 것과 손해 본 것 모두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친미, 친일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 올해 상반기에 나타난 중국무역적자, 친일본 행보와 관련이 있나. 안보 문제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그런데 이번 회담과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경제마저도 친미/친일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신냉전체제의 구축이다’와 같은 비판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정상회의 때 중국에 원한 살 발언은 안 했지만, 국가 이익이 걸린 경제 문제이므로 항상 신중해야 한다. - 이에 대한 주변국의 견해는 어떤가. 주변국의 견해에 앞서 중요한 건 All of nothing이다. 경제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엮여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앞서 계속 말한 것처럼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성격에 따라 트랙을 나눠 멀티로 접근해야 한다. ▶ 독도 문제, 과잉 대응하지 않는 것이 답 -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일본 고유영토’로 지칭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독도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독도 문제를 시끄럽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게 바로 ‘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이슈화해서 세계에 알림으로써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이 독도를 지키기 위한 영유권 주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나치게 대응하지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반응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 자극을 하는데, 독도 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독도문제가 이슈화되면 전 세계 사람들은 사실관계 확인을 떠나 ‘독도는 일본 땅인가?’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독도 문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좋다. -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다행히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잉 대응을 하지 않는 것. 무시가 답일 수도 있다. ▶ 한일관계, 큰 문제는 없을 것. 다만… - 통큰 양보를 하고도, 일본 측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윤 정부가 일본을 몰라서 그렇다.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주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배 째라 버텼더니 이것들이 깨갱하는구나' 하면서 더 큰소리를 친다. 그러므로 일본과는 논쟁과 논의를 지속하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할 명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고, 일본의 입장도 헤아리는 식으로 가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문제만 없으면 된다. 인적 교류는 이미 잘 이뤄지고 있고, 일본과는 기술 등 협력할 여지가 많다. 일본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도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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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9
  • [인터뷰] 박동웅 구로구의장, “구민과 더불어 외국인 주민도 살기 좋은 구로 만들 것”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은 노동력 공백에 따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에 의한 결혼이민자의 증가로 사실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021년 6월 말 기준 1,981,035명이다. 그중 서울시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25,316명 외국인 주민 중 18,190명이 중국동포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구로구의회 7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또한 3선 의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이번 제8대 의회에서도 후반기 의장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 주민 민원이 발생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박동웅 의장을 만나 그동안 의정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동포 및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과 지원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동웅 구로구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현재 시행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중국동포 관련 사업은? A.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동포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 보육료를 전액 자비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에서는 아마 시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구로구도 내년부터 보육료 20%가량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주민 자녀들을 조사해보니 약 천명 조금 넘는데 그 아이들에 대해 우선 보육료 20% 정도 지원해주고 차후에는 그냥 100% 지원하는 쪽으로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을 준비하려고 한다. 한 해에 7억 정도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Q. 구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A.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우리끼리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로벌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구로만, 구로구 사람들만 뭉치는 것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분들도 다 같은 한민족이고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차별 없이 함께 사회에 흡수돼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Q. 지역주민과 중국동포 간 소통과 화합에 대한 모범 답안이 있다면? A. 가리봉을 중심으로 구로구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구로구에는 다문화 정책과가 있는데 중국동포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라든가 필리핀 일본 등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명예 통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로구에는 봉사단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구로 4동 같은 경우는 다문화 봉사자들이 야간 순찰도 하고 있고 다문화 경노당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구로구가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산발적으로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상에서 동포들과 구청 간에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책은? A. 현재 구로구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가 추정할 수 있지만 정책은 정확한 수치를 갖고 하는 것이기에 다문화 정책과에서 우리 동포사회 실태 파악을 다시 해서 제도 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Q. 상호우호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문화교류 계획은? A. 한국의 수출 규모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또한 중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변과 교류(공무원 교류)를 했지만 사실 문화 교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향후에는 여러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서로 간 문화를 교류하고 우리 축제 때 해당 국가 도시의 전통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거꾸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축제라든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구로구에서도 문화예술단이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A. 현재로서는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안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체도 K-방역을 통해서 그냥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 구로구에서도 구로구만의 어떤 방향 시스템을 잘 구축해 구로구가 코로나19에서 좀 더 안전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야 구로에서 사업하시는 분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것이다. Q. 중국동포에 대한 이해정도는? A. 한 예로 아마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양꼬치와 고량주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젊었을 때 사실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어떤 사정 때문에 결국 못 들어간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계획 전공이다 보니 연변은 물론 선양,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다녀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많다고 생각하고 중국 양꼬치를 중국동포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는다고 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Q. 중국동포에 한 말씀 부탁한다면? A.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그냥 돈을 벌고 살다가 중국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보다도 역시 우리 조상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잘 돼야 동포사회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한민족으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주민들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제 동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도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다고 본다. 구로구의장으로서 향후 그 어떤 정책이나 개인적인 꿈도 있겠지만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에 와서 잘 살고 여기에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구로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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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9
  • 中, 98세 “쿵푸 할머니” 온라인 돌풍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최근 한 지역 모임에서 무술을 시연하는 98세 중국 “쿵푸 할머니”의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44만 번 이상 조회되고 4,5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쏟아지는 등 순식간에 히트를 치고 있다. “쿵푸 할머니”의 팬들은 “98세에도 걸을 수 있을까. 쿵푸가 장수의 관건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심지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 "쿵푸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주목했다. 본명이 장헥셴(張鶴仙)인 “쿵푸 할머니”는 2017년에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거의 10년 동안 고향인 저장(浙江)성 닝하이(寧海)현 장컹(張坑)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자 조카딸은 “할머니는 이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하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키는 약 1.5미터이다. 그의 쿵푸 동작은 유창하고 걸음걸이는 꾸준하다. 할머니의 마을은 쿵푸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할머니는 5살 때 중국 남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술 스타일인 장복싱의 6대 계승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는 매일 연습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아직 원기 왕성하다”고 말했다. “쿵푸는 폭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생 농부인 할머니는 이웃들과도 잘 지낸다. 막내아들인 펑은 “어머니는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돕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3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닝하이현에서 근무하고 있다. 닝하이현은 마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2012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삶은 평범하지만 잘 짜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매일 세 끼의 요리를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해산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끔 친구들을 찾아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후에는 쿵푸 연습을 한다. 장컹 마을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할머니의 집은 산비탈에 있기 때문에 식료품을 사러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등산이 필요하다. 언덕을 오르면서 꾸준히 하는 운동이 할머니가 정력이 왕성한 원인일 수 있다. 펑은 “어머니에게 도시에서 함께 살기를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즐겼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쿵푸 할머니”는 아버지의 장복싱 스타일을 주말과 휴일에 집에 오는 손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 이웃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무술 수업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자원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펑은 어머니와 가족들은 “쿵푸 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고 그것이 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사람들
    2021-08-16
  • 중국에서 캉테로 불리는 조선족 축구선수 김경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1992년 11월 18일, 김경도(진징다오·金敬道)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경도도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김경도는 축구에 대해 잘 몰랐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뛰어 노는 과정에서 축구에도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약간의 재능을 보였다. 연변은 축구의 전반적인 환경이 다른 곳과 다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방과 후 첫 오락으로 축구를 한다. 이러한 축구 환경에서 많은 우수한 축구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김경도는 2003년 옌볜(延邊)의 쑹칭링(宋慶嶺) 축구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축구 전문 훈련을 시작했다. 진징다오의 부모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떠났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김경도는 독립적이고 힘든 일을 잘 견디는 품성을 키웠다. 2008년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첫 국제대회를 치른 김경도는 눈부신 활약으로 그해 U-20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9년에는 U-20 대표팀 주장을 맡아 사상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소수민족 주장 자리에 올랐다. U-20 대표팀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09년 김경도는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김경도는 경기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니에스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이니에스타와 연락해 상대방이 사인 유니폼을 선물한 것도 김경도를 오랫동안 기쁘게 했다고 한다. 2010년 김경도는 연변FC에 입단해 클럽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곁에 안 계시고 이제 막 입단한 뒤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김경도는 늘 팀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만 했다. 마침 외사촌형인 박성(퍄오청·樸成)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생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퍄오청은 이때로부터 김경도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한국에 일하러 갔고 나는 연변FC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박성은 오래 전부터 축구를 했다. 그는 돈을 괜찮게 벌었고 보너스도 받았다. 그때 나는 그의 집에 짐을 풀었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주었고 체육관에 갈 수 있도록 돈도 대주었다. 그리고 내가 U-20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그는 다른 선수들이 좋은 휴대폰과 명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그것을 다 사주었다. 나중에는 또 휴대폰과 아이패드까지 사주며 축구를 잘하라고 격려 했다” 이는 사촌형인 박성에 대한 김경도의 평가다. 오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중국 슈퍼리그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1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김경도는 벤치에서 나와 성인 남자 국가대표팀 데뷔를 알렸다. 이번 국가 대표팀 경험으로 김경도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쟁탈하는 인기 선수로 됐다. 2013년 이 쟁탈전에서 승리한 산둥 루넝(山東魯能)은 연봉 100만 위안, 이적료 800만 위안에 김경도를 영입했다. 하지만 루넝 합류 이후 김경도는 그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궈안과의 첫 경기에서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결국 팬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를 격려했고 그가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익숙한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김경도의 플레이는 매우 어색했다. 김경도의 가장 좋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풀백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서도 김경도는 팀과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와 부상 스틸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많은 칭찬을 받았고, 팬들은 점차 그를 받아들였다. 그해 그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마가트 감독은 김경도를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마가트는 유명한 "악마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높았다. 그는 김경도가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풀백으로 변경 시켰다. 김경도는 당시 마가트 감독이 자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공을 빨리 잡아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온다며 볼을 잡으면 상대 측면 수비수를 상대로 돌파하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우싱한(吳興涵)이나 류빈빈(劉彬彬) 같은 빠른 스피드 돌파가 없었다. 나중에 하오준민(蒿俊閔)의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해 시즌 김경도는 윙백 포지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루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은사 마가트 감독은 안타깝게도 팀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해고되었다. 김경도 역시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ACL 8강 1차전 서울 방문경기를 앞두고 몸에 살코기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소변검사 양성 판정을 받아 60일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음식에 신경을 썼던 김경도는 충격도 컸지만 선수 생활과 컨디션 유지에는 큰 힘이 됐다. 그 해 김경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11월 13일 김경도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융퍼(王永珀), 왕통(王彤), 송룡(宋龍) 등 동료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하였으며 루넝도 공식 홈페지를 통해 결혼 축하와 함께 김경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했다. 김경도의 감정 또한 매우 로맨틱하다. 그와 그의 아내는 서로를 수년간 알아왔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들은 학교 다닐 때 사귀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겨 함께하게 되었다. 2017년 김경도는 징계에서 풀려나 팀에 복귀했고 루넝은 리샤오펑(李霄鵬)감독을 영입했다. 리샤오펑이 부임한 뒤 팀은 파격적인 변신을 하지 않고 마가트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을 이어갔다. 김경도 역시 익숙한 윙백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김경도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타르델리 및 펠레와 매우 묵계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종종 도움을 주거나 득점하며 루넝의 측면에서 날카로운 킬러가 되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18시즌 김경도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고강도 달리기, 스퍼트 횟수 1위, 경기당 평균 거리 2위, 가로채기 3위, 경기당 4위라는 맹활약으로 시즌 최고 인기 본토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김경도는 대표팀의 단골손님이 됐고 리피는 물론 가오훙보(高洪波), 리톄(李鐵) 등 본토 감독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되었다. 다만 리피 시절에는 김경도에 대한 요해가 부족해 기술적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김경도 역시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리피 감독 후임으로 2021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리톄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40강전 몇몇 경기에서 김경도의 활용에 신경을 썼다. 김경도는 움직임이 좋고 수비 면적이 넓으며 공격은 날카롭다. 현재 김경도는 대표팀 10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격을 갖춘 '프리 맨'이 됐다. 곧 카타르 월드컵 3차예선인 12강전이 시작된다. 12강전에서 절대 주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김경도는 계속 자신의 색깔을 살려 대표팀을 위해 몇 골을 더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스포츠
    2021-07-28

실시간 사람들 기사

  • 한국의 밤거리를 밝히는 “외국인 자율방범대”
    (19명으로 구성된 시흥시 외국인 자율방범대(대장 오성호)는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주 2회 야간순찰하고 있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조선족을 비롯한 재한외국인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한국사회의 말밥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조선족들로 구성된 외국인자율방범대가 한국거리를 활보하며 담당구역의 치안유지에 협력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외국인 집거구(조선족 위주)의 밤거리 안전을 수호하면서 재한조선족의 이미지 향상에도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얼마전에는 영등포구에 조선족자율방범대가 활약하고 있다는 뉴스가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고 있더니 최근에는 또 시흥시 밤거리에는 일찍 2012년부터 야간순찰에 나선 조선족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가 나타나 주민들의 불안한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전 동포투데이는 시흥시 외국인 자율방범대장 오성호씨를 만나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대담을 나누었다. 문: 시흥시 외국인자율방범대의 설립 목적 및 그 기능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답: 우리 시흥시 외국인자율방범대는 2012년 4월에 외국인밀집지역인 정왕동 이주민단지 지역의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시흥경찰서와의 합동순찰활동 등 공동치안유지활동을 통하여 이국인밀집지역 내 치안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방범대는 주로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과 야간 범죄 가능성이 큰 지역을 위주로 도보순찰을 하며 자국민들에게 흉기소지 금지 등 외국인범죄의 심각성을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밤 10시부터 12시까지 경찰관들과 함께 범죄예방순찰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입니다. 문: 시흥시 외국인자율방범대를 이끌게 된 계기는? 답: 가끔씩 한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때문에 재한조선족 동포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기에 누군가는 앞장에 나서서 좋은 본보기를 만들어 나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 현재 하고 있는 사업 및 추진 중인 주요 사업에 대해 설명한다면? 답: 자율방범대 대장과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향 후 다문화 지역을 내국인이나 어린이들한테 외국의 음식이나 기타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제공하고 싶습니다. 문: 여러 차례 경찰청, 경찰서 등 기관으로부터 감사장, 표창장과 위촉장을 받으신 것으로 들었는데 이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답: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치안안정화를 위한 마음 하나로 모든 대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좋은 일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심과 격려에 부응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문: 현재 하고 있는 활동이 향 후 국내거주 조선족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 전망하시는지? 답: 조선족 력범죄 관련 언론보도가 나올 때마다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과 선입견이 더 심해지고 저희들조차도 범죄자 취급당한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런 범죄자보다 선량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조선족 들이 더 많은데 한 두 건의 범죄사건으로 인해 전체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것이 가장 속상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앞장서서 치안활동 등 봉사활동을 하면 조선족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도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조선족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시흥 거주 조선족 뿐만아니라 기타 외국인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문: 이러한 활동을 진행하면서(특히 방범대를 이끌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답: 특히 자영업을 하는 대원들이 많아서 한 번에 다 모여서 활동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중에는 활동 참여에 소극적인 대원도 있어 기타 대원들한테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달에는 앞으로 실질적으로 치안활동에 참여하고 봉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로 선정, 재정비하였습니다. 문: 어려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과 방안은? 답: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안전을 위해서 나부터 노력하자’라는 마음을 가진다면 활동 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들 한국에서 돈 벌기 힘들고 생활하기 어렵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여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는 단체로 발전해 나가고 싶습니다. 문: 조선족 강력범죄 사건으로 조선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바로잡을 수 있는 대책/방안과 정부적 차원의 예방책에 대해 밝힌다면? 답: 외국인, 특히 조선족이라서 더 큰 편견과 오해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런 편견이 난무하는 한국사회를 원망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금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도 너무 확대해 보도하여 조선족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문: 방범대(단체)를 이끌며 구성원들에게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면? 답: 스스로 본인의 이미지를 더 잘지키면서 다른 분한데 좋은 본보기가 되길 바랄뿐입니다. 문: 향 후 방범대(단체)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준다면? 답: 한국법률을 많이 알리면서 더 많은 분들이 스스로 좋은 사회 만들어 나가기에 동참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문: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씀이나 강조하고자 하는 사항이 있다면? 답: 앞으로 더 많은 동포 분들이 동참하면서 스스로 법을 지켜 나가는데 협조를 바라며 서로 조금만 참으면 좋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데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하나의 단체가 만들수 있는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참을 해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많은 동포 분들이 동참을 해 다음세대에 좋은 본보기로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많은 지도와 도움을 주신 시흥경찰서 외사계와 정왕지구대, 한마음 한 뜻으로 함께하는 방범대원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사람들
    2015-02-16
  • 김철균 특파원 연변주 보도사업 선진일군으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이며 연변 특파원인 김철균 기자가 2014년 연변 주 보도사업 선진일군으로 평선되었다. 1957년 생인 김철균 특파원은 일찍 문화혁명의 여파로 정상적인 대학진학의 기회를 놓치었지만 농촌의 집체호에서, 또한 공장 직장에서 생활하면서 열심히 문학창작에 정진하는 한편 자습하는 걸로 1984년 중국 연변대학 통신학부(지금의 성인학원)에 입학했다. 이 해에 김철균 특파원은 훈춘시 방송국 편집기자로 입문해 보도사업에 투신하였고 연변라디오방송국 청년부 기자, 연변일보 체육부 기자, 연변일보 종합신문 편집국장 등 직으로 활약하면서 수천편에 달하는 신선한 보도기사를 써내어 대중들의 환영을 받는 기자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1995년부터 스포츠기자로 되자 선후로 연변축구팀의 감독직을 맡았던 최은택, 고훈, 김광주, 이광호, 고종훈 등 감독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을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의 치우성(戚武生), 진즈양(金志杨), 츠샹빈(迟相斌) 그리고 한국의 차범근, 김정남, 이장수 등 감독들을 취재하는데도 성공했다. 김철균 특파원은 집착적이고도 끈질긴 기자였다. 한편의 “특종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서는 인물과 사건을 다루었으며 한편의 기사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2000년엔 베이징 둥팡병원(东方医院)에 입원한 원 길림오동팀 고훈 감독한테로 달려가 투병 중의 고훈을 위문하는 한편 “푸른 잔디밭에 쓰러진 사나이”을 써냈고, 2002년 초 중국 국가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한일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자 역시 베이징으로 달려가 원 중국축구협회 상무 부주석이던 남용씨를 취재해서는 “중국국가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까지의 내막”이란 기사를 써내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전국을급리그 8강전이 펼쳐지는 허난성 정저우(郑州)로 가서는 연변세기팀이 갑급진출에 성공하는 전반 과정을 몇편의 기사로 생동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이 외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에는 혼자서 베이징 올림픽이 펼쳐지는 몇개의 경기장을 돌면서 근 20편에 달하는 경기보도를 하는 한편 “올림픽 정신 협애한 애국주의 아니다”, “주최국 자존심 – 문명고국 중국의 올림픽 저력”, “베이징 올림픽 총결산 – 재래관념의 경신, 기록돌파의 새 풍경선” 등 특종을 만들어 재치있는 필치와 심도 깊은 분석력으로 베이징올림픽을 홍보하여 여러 노기자들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김철균 특파원의 끊임없는 노력과 쌓아올린 성과는 연변 주내는 물론 중국 국내와 한국의 매스컴들의 인정을 받았다. 2014년 중국의 성급 신문인 “길림신문”에서 중국에서 유일한 축구전문 사이트를 개설하자 김철균 특파원은 연변대학 체육학원 박사출신의 교수 김창권 선생과 더불어 이 사이트의 논평원으로, 한국의 인터넷신문 “동포투데이”의 논설위원으로 위촉받았다. 한편 기자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 김철균 특파원은 짬짬의 시간을 타서는 문학창작에도 꾸준히 노력해 단편소설 “수산나”, “배놈의 세계”, “얻은 것과 잃은 것”, “전쟁과 칠성영감의 여인들”, 장편실화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작품집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야망의 축구스타(합작)”,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번역작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오묘한 세계 대백과”, 수필 “꿈에 본 어머니”, “사향심” 등과 여 러편의 산문, 잡문, 만필 등을 창작하여 글집필에서의 다재다능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였으며 2003년에 연변작가협회 회원작가로 되기도 했다.
    • 사람들
    2015-02-15
  • 구련옥-조선족의 영원한 인기스타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988년 겨울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어느 한 극장무대, 당시 그 곳에서는 미국의 한인사회로 놓고 말하면 아주 “이색”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이른바 “공산국가”에서 온 중국 조선족예술단의 대형공연이었던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쟁쟁한 중견가수들인 유병걸, 김만, 최경호, 조옥형 등이 무대에 오른 가운데 한 20대 초반의 여성가수가 관중들의 이목을 잡았다. 이름은 구련옥- 연변구연단 소속의 가수였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흘러간 옛노래 “찔레꽃”과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잔잔하고도 애수가 잠긴듯한 구련옥씨의 노래에 미국의 한인 관중들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고 미국의 한인사회는 중국 조선족사회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자 미국의 한인들은 구련옥, 조옥형 등 가수들의 손을 잡고 “너희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빼빼 마르고 그런줄 알았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이쁘고도 착하게 생겼느냐?”, “어쩌면 우리네 자식들과 똑 같게 생겼느냐? 동족은 속일 수 없구나”하며 찬탄해 마지 않았다. 어떤 노인장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90년, 구련옥씨는 연변가무단의 홍인철 가수와 함께 한국 KBS방송국 “가요무대”에 서기도 했다. 당시 그녀가 부른 노래는 흘러간 옛노래 “꿈에 본 내고향”이었다. 그 때는 한중수교전이어서 한국인들한테 있어서 중국 조선족사회는 일종 미지의 세계, 당시 한국무대에 선 방초선, 구련옥, 유병걸 등 가수들은 중국 조선족사회를 한국에 홍보하는 작용을 했다. 그 때로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구련옥씨는 연변가요로 된 “오빠의 편지”란 음반을 내면서 중국 조선족가요계의 여스타로 일약 떠올랐으며 1990년 제 4 회 “오주배(五洲杯)” 중국 전국 청년가수TV 콩쿠르에서 통속창법 3등을 쟁취, 1994년에는 제6회 “통업배(通业杯)” 중국 전국청년가수 TV콩쿠르에서는 우승이란 월계관을 따냈다. 그뿐이 아니었다. 연변라디오 방송국의 “매주일가”를 통해서는 구련옥씨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고 연변TV방송국 무대를 통해서는 구연옥씨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며 그녀가 부른 “보리차”, “해바라기”, “추억” 등 노래들은 오랫동안 트롯트가요 청취(시청)에 갈증을 느끼던 중국조선족들한테 하나의 싱싱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세기 90연대 중반부터 자기가 근무하던 연변구연단을 떠나 연길시(연변병원 서쪽 노무시작 골목)에 “구련옥 미용원”을 오픈,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오던 미용업에 투신했다. 그러면서 남편한테는 현숙한 아내로, 딸애한테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되었다. 그 뒤 미용업에서 일정한 입지를 굳히자 대련으로 진출했다가 다시 몇년전부터 사천성 수부도시 성도로 진출해 대륙의 서부지구에서의 미용업개척자로 되었다. 그러던 구련옥씨가 일전 연길시 TV방송국이 개최하는 2015 연길시음력설야회 제작진의 부름을 받고 꿈에도 그리도 연변으로 달려왔다. 일찍 왕청현 천교령진의 상수촌이라는 오지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구련옥씨었다. 연변 조선족관중들의 사랑과 받들림 속에서 가수생활을 하며 스타로 떠올랐던 구련옥씨었다. 그리고 가수생활이냐 아니면 개인사업이냐를 놓고 방황하다 결국 가수생활을 포기했던 구련옥씨었다. 가수생활의 포기- 이는 그녀가 가수생활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두가지를 다 성공할 수는 없었던 그 시기, 구련옥씨는 마이크와 작별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한다. 성도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조선족 노래방에 가면 그제날 가수시절을 그리며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한껏 열창하며 그 무드속에 흠뻑 빠지군 했다는 구련옥씨, 그녀가 노래방 마이크가 아닌 무대의 마이크를 다시 잡아보려고 연변으로 달려왔다. 이제 오래지 않아 방영되게 될 연길시 TV방송국 음력설 야회에서 오랫동안 연변관중들과 정들었던 스타가수 구련옥씨는 “매화향기”란 신곡을 선물하게 된다.
    • 사람들
    2015-01-31
  • 조선족 김문원 김욱, 10대 “감동 길림” 인물로
    [동포투데이 김정 기자] “중국 인터넷이야기 감동 길림 2014” 인터넷인물 시상식이 1월 29일,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서 성대히 열렸다. 근 3개월간 수십만명의 길림성 네티즌들이 투표에 참가해 2014 감동길림 인터넷인물 10명을 선정한 가운데 조선족 김문원과 김욱이 선정되어 이날 수상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30일 보도했다. 보도는 이들 “감동 길림” 10명 인물들의 이야기는 진실하고 소박하며 사랑과 꿈이 있는 이야기들로 이날 대회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적혔다고 전했다. 이날 수상식에서는 “평범한 영웅” 장가록, “귀염둥이 집으로(宝贝回家)” 사이트의 창시인 장운호, “나무 사령원” 김문원, “몽골의 설창(琴书)예인” 고수자 바오차오거주, 길림의 “뢰봉” 초립문, “회선성류”의 고운홍, “환경보호의 선봉” 리회삼, “택배의 형” 두립국, 천가만호에 불 밝혀주는 송전인 왕염파, “장애인 창업모범” 김욱 등 10명의 감동인물들이 무대에 올라 수상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조선족 김문원은 연변군분구 전 부사령원으로 퇴직후 심산골에 들어가 고향사람들을 이끌고 치부했다. 8년 전, 그는 선후하여 홍송 11만그루, 낙엽송 4만그루를 심어 산골짜기에 푸른 색을 입히고 산야에 생기가 돌게 했다. 김문원의 인솔하에 전 촌은 이미 10가지 산업이 형성되고 인구당 수입이 6000여 위안에 달해 빈곤에서 해탈되고 치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김욱은 연길시 육룡컴퓨터강습센터의 교장이다. 23살에 남을 구하다가 하반신 고위 마비가 되어 평생 휠체어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는 견강한 의력과 인격으로 자기 인생의 가치와 사회적인 가치를 실현했는바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컴퓨터를 가르쳐 주고 컴퓨터강습반을 꾸려 모은 돈을 어려운 가정과 학생들을 도와왔다. 그의 감동적인 사적은 중국 각급 언론들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사회 각계의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10명의 “감동 길림 2014” 인터넷인물들은 모두 자기들의 실제 행동으로 성실, 책임, 견지, 효성, 열심, 선량, 정의 등 중화민족의 전통미덕을 전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 사람들
    2015-01-30
  • 한류를 만들어 가는 한복 명인- 이광희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언젠가 KBS TV에서 노랑머리에 코가 길쭉한 서양인들이 한복을 입고 한국의 전통명절쇼에 나온 모습을 보고 인상이 깊었다.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양인들이 잘 생겨서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브랜드 한복이 다른 패션에 비해 우수해서일까? 두 가지 요소가 다 있겠다는 생각, 한복의 우수성에 자호감을 느꼈다. 오늘날 한복은 우리 동양인은 물론 양복과 원피스에 습관된 서양인들마저 즐겨 입는 패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한복이 글로벌 브랜드로, 세계인들 속에서 인기가 오르기까지에는 수많은 한복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그들중의 한 사람으로 지난 24년간 전통한복 살리기에 앞장서온 “정민(姃玟) 이광희 한복•침구”의 이광희 원장을 기자가 일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광희, 그는 2013년 한국 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에서 시행한 한국예술문화 명인인증 행사에서 명인인증위로부터 한복명인으로 선정되었고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었던 한복의 복(福)자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이광희 여사가 태어난 곳은 경북 의성, 즉 금성면 산운리에 위치한 산운(山雲) 마을이다. 이 마을은 의성을 대표하는 고택촌으로 영천이씨의 집성촌. 자연의 부드러움과 색상, 그 은은함이 이광희 여사가 디자인하는 한복에도 나타나고 있다. 당시 어머니가 삼베로 길쌈을 하셔서 이광희 여사는 자연 어릴적부터 바느질을 익혀왔고 그 바느질 솜씨로 커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오로지 전통만을 고집하는 마을에서 “꿈”을 키울 수 없었던 이광희 여사는 21살에 달랑 보따리 하나를 들고 서울로 올라온다. 북아현동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원광대 한복복식학과를 졸업, 31살 때부터 등촌동 등지에서 가게를 얻어 한복을 짓기 시작했다. 물론 힘들었고 피고름을 짜내는듯한 실패의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집요함과 끈질김으로 견지했고 점차 운이 따라주는 쏠쏠함도 생겼다. 언젠가 50대 후반의 여의도 갑부로 돼보이는, 세련되고 점잖은 부인이 이광희 여사의 가게를 찾아왔다. 부인은 이광의 여사가 골라보이는 치마, 저고리 원단을 보더니 “학교는 어디를 나왔느냐”며 관심을 보였다. 물론 독학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 때로부터 이광희 여사의 한복 디자인이 흥행을 타기 시작한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2008년,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을 한복의 복(福)자를 디자인해 선물했고 그 “福”자에는 은은한 담백함이 돋보여 많은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해 그의 한복 디자인작품이 배재대 교재에 수록되었고 2009년에는 세계의상패스티벌에 참가한 주한 가봉대사 부부가 이광희 여사가 선물한 전통한복을 입어 한복은 일약 세계인들이 즐겨입는 브랜드로 됐다. 이광희 여사의 한복디자인은 2010년 서울 아트패스티벌과 2011년 중국 하얼빈에서 개최된 한중 문화박람회 등을 통해 세계에 널리 홍보되었으며 최근에는 한중 합작의영화 “한복 입은 남자”의 의상 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여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진 한복을 세계 으뜸의 패션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란다. 한류가 연예계에만 있는 것이 아닌듯 싶다. 한복을 세계적인 패션으로 부상시키는 것 역시 한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앞장에 이광희 여사가 있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 사람들
    2015-01-28
  • 2015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김진희 작가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국내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미학세계를 경주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다변적인 현대 미술계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정립해 가고 있는 김진희 작가가 그 주인공. 국내화단의 역량 있는 여류화가로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을 쏟으며 자신의 내면세계와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을 투영하고 있는 김진희 작가가 자신만의 예술적 감수성이 담긴 예술세계를 꽃피우며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는 작가의 독창성이 없으면 외면받기 쉬울 수밖에 없다. 김 작가는 이런 시점에서 바라면 그녀의 예술적 감성과 표현방법론상의 예리한 직관력은 다른 화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며 머릿속에 담겨진 정신적, 감성적인 느낌을 여성적인 시각에서 그대로 표현해 내는 창작에서는 또 다른 김진희를 만날 수 있다. 김 작가는 "예술이란 작가의 내면적 경험과 각성을 포함한 내면의 심상을 보여주는 형식적 창조다. 내면적 경험과 각성이라는 것은 작가의 실존적 위치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바라보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존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 말한다. 여성에서 어머니 그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자아의 존재감 표현하고 있는 김 작가의 작품 중 'Woman'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몰입은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스스로 머리를 풀고 세상으로 나오지만 아직은 웃을 수 없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의 변화가 보이는데 이는 'Life and Death'로 발전해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가며 희망과 소망의 상징인 정체성을 찾아 자유로워진 영혼은 새와 나비를 날리고 초록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 뒤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온다. 여성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다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긴 여정을 표현하는 김 작가의 그림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지난 상처의 극복 그리고 생명에 대한 억압을 극복하며 마침내 비상한다. 수년간의 변화에서 드러낸 작품은 이의 연장선으로 여성의 본질을 자연과의 조화 속에 알려가는 자신의 생각들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김 작가는 "인간의 삶은 자기를 둘러싼 주변 조건들과 자기 내부의 깊은 곳으로부터 발생하는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을 추구하는 힘든 과정"이라며 "내게 있어 작품 활동은 자기 내부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자연과의 지속적인 반응과 소통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철학"이라고 말한다. 전남대 예술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달, 해를 품다, 뉴 디스코 초대작가 전' 등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해 온 김진희 작가는 조형적인 형태에서 사유적 방향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실현의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해 오며 역량 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인간 내면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본성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몽상의 자유' 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예술적 성찰과 진정성 그리고 삶의 추상성이 스며들어 있는 작품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김진희 작가는 "작가라면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아 사물을 새로이 해석하고 다양한 표현방법을 통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화가를 꿈꾸다 보면 이상과 다른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정진과 도전으로 일구어내는 희열과 감동이야말로 화가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자 기쁨"이라고 전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든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작품으로 웃음과 여유, 휴식과 희망을 잉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녀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 사람들
    2015-01-28
  • 소품 배우 김문혁씨, 투병 의지 강해...현재 호전중
    [동포투데이] 20일, 연변에 거주 중인 김문혁 씨 인편으로 긍정적인 소식이 전달됐다. 지난 해 11월 17일 ‘동포투데이’를 통해 김문혁 씨의 안타까운 투병 소식이 전해진 뒤 중한 양국에 거주 중인 동포들의 따뜻한 정신적, 물질적 응원에 힘입어 김문혁 씨가 호전 기미를 보인다는 소식이다. 우선은 김문혁 씨 스스로가 투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김문혁 씨는 집에 80고령의 노모가 있어 연길지역을 떠나 더 큰 병원에 가 치료받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연변 지역의 의료기술과 약물로 치료를 받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치료 초기에 투병하던 때와 달리 투병 소식이 알려지고 팬들의 따뜻한 응원에 힘입어 김문혁 씨는 요즘에도 매일 반시간씩 운동을 견지하는 중이다. 최근 김문혁 씨에게 또 반가운 일이 생겼다. 연길 철남병원의 정원장이 무료로 치료를 돕겠다고 선뜻 나선 것이다. 김문혁 씨의 주치의인 김선생은 대개 두 개 료정의 치료기간을 거치면 상태가 많이 호전될 것이라며 ‘(김문혁 씨의) 체력상태가 많이 저하되어 치료에 어려움이 있으나 함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김문혁 씨는 열흘째 수면제 처방 없이도 잘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김문혁씨는 꾸준히 인편을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관심을 준 팬들과 후원자들에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현재의 진행상황을 알리며 치료에 힘써야 된다는 의지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팬 여러분 들 앞에 다시 서는 것만이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앞으로도 열심히 병마와 싸울 것입니다.” /전춘화
    • 사람들
    2015-01-22
  • 스케일이 큰 서사구조안에 우리 민족의 상흔을 보듬다
    [동포투데이] “역사라는 거대한 거푸집 안에 민족의 스토리와 애환을 무늬결 섬세하게 새겨넣은 력사물에 대한 작업이 요즘 내가 하는 전부의 일입니다.” 조선족문단의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이 새로운 판형으로 새해 첫기가 출싱, 그 중 압권으로 김혁 소설가의 새로운 장편 “춘자의 남경”이 눈에 띄였다. 소재 또한 특이하면서도 우리 문단에서는 독보적이다. 바로 일본군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이라는 소재를 한꺼번에 다룬다고 작가는 머리말에 밝혔다. 그 소재의 방대함과 시효성있게 이 다루기 어려운 묵직한 소재의 집필에 착수한 소설가를 만나보았다. 기자를 만나자 김작가는 하쿠다 나오키라는 작가를 아느냐고 선참 물었다. 일본에서 알아주는 베스트셀러작가인데 그의 대표작인 “영원의 제로”라는 소설을 해외에서 주문해 읽었고 영화로도 보았다고 했다. 일본의 자살특공대 소재를 다룬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소설이였는데 소설이 다룬 극우적인 경향은 물론 무엇보다도 이 작가가 도처에서 “남경대학살은 없었다”, “위안부는 거짓말”이다라는 망언을 서슴치 않는데서 경악을 느꼈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로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몇몇 일본 작가들의 극우적인 행보에 대한 유감과 작가로서의 책무감으로 이 소재를 다룰 생각을 갔게 됐다”고 김작가는 말머리를 열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 작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장순여(张纯如)라는 미국계 중국인 르포작가이다. 작가이자 사학가인 그녀는 남경대학살에 대해 저술한 르포로 유명하다. 그가 저술한 장편르포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는 해외에서 커다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1937년의 그 겨울, 남경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전대미문의 대학살 그 만행의 참상을 생생하게 되살린 보고서였다. 저자는 섬세한 필치로 남경의 대학살을 이야기했고 또 일본이 어떻게 역사속에서 대학살의 기억을 지우려 망녕되게 시도했는지 낱낱이 밝혔다. 하지만 그의 양심적인 집필은 일본 극우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들로부터 끈임없는 협박을 당해 왔던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못이겨 2004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 작가에 대해 중앙텔레비방송국 다큐프로에서 보고 그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문명(文名)을 알린 이 장편르포를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읽었다고 했다. 소설쓰기와 병행해 매체에서 20여년을 기자직으로 일해온 김작가로서는 르포가 갖는 매력에 대해 십분 잘 알고있었다. 르포의 매력에 푹 빠져 한때는 수천부가 팔려 당시 이슈로 된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를 출간한적도 있었기에 아직도 애대하는 쟝르라고 했다. 그 르포를 읽으며 저도모르게 혹한에 들린듯 부르르 진저리를 쳤었다고 했다. 이는 문단에서 “독서광”으로 알려진 김작가의 엄청 많은 열독리력중에서도 크게 경험하지 못했던 혹독한 떨림이였다고 했다. 그후로 cctv의 일곱시 뉴스에서 또 한번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길림성 당안국에서 소장한 일본 관동군이 작성한 10만건의 문서중에서 뒤늦게 발견된 기록에 대해 공개하는 뉴스였는데 뉴스에 의하면 남경대학살 기간 당시 "남경에 조선인 위안부가 36명 있었다”, “1명이 열흘동안 일본 병사 267명을 상대했다"고 한다. 그날 김작가는 이미 구상을 마무리한 다른 소재를 미루고 이 소재를 장편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소재를 장편화하기로 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차분하게 자료집필에 착수 했는데 뜻밖에 기성의 위안부 소재에 관한 작품이 너무나 적었어요. 관련 보고서나 르포, 론문들은 그런대로 적지않은데 예술적으로 재현한 픽션물이 적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많았지요. 그중 소설작품이 유독 적었습니다.” 몰아의 지경으로 하나에 몰입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는 김작가는 지난해 하반년을 옹근 위안부와 남경대학살의 사료를 뒤지고 수집하는데 시간을 바쳤다. 수십편의 문사자료집과 피해 당사자들의 진술서는 물론, 원체 영화수집에도 흥취가 있는지라 관련 다큐와 영화, 드라마도 수십편 보았다고 했다. 일본군국주의 실상을 깊이 료해하기 위해 수백만자에 달하는 대하실록소설 “태평양 전쟁”도 읽었다. 그 와중에 외려 위안부 소재의 소설작품이 일본 본토작가의 작품이 있는데 반해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없는데 대해 놀라움을 느꼈고 창작의 립지를 더 굳히게 되였다고 한다. “가와다 후미코라는 일본작가의 ‘빨간 기와집’ 그리고 한국작가 윤정모의 ‘에미이름은 조선빼였다’, 미국작가 모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등 이 소재 관련 몇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작가 엄가령의 남경대학살 소재 ‘금릉 13채’는 이미 몇해전에 읽었지요. 소설로서는 이 몇부가 작품성이 들쭉날쭉한 이 소재의 작품들중에서의 수작(秀作)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이 작품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작가적 시각과 의무감에 대해 다시금 깊이 느꼈습니다" 새로운 장편의 창작을 위해 김혁작가는 지난 가을, 남경을 다녀오기까지도 하였다. 사비를 팔아 굳이 남경으로 향했던것은 남경대학살기념관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고한다. 당시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중국인의 수자“300000”이라는 수자가 도처에 새겨진 기념관에서 일본군인의 극한적 잔혹성을 보여주는 만여점의 자료들을 둘러보면서 다시한번 이 소재 작품창작에 매진해야할 각오를 머금었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강제동원 역시 부인하고있다. 불과 수십년전 중국과 한국등지의 에 우리의 할머니 세대들은 수십만이나 일본군의 추악한 만행의 희생자로 전락되였다. 하지만 1992년 부터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위안부 배상촉구시위가 작되였으나 일본 정부는 이후 22년이 넘도록 이를 냉냉하게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성매매이다”며 그 오욕의 력사에 대해 세탁하려하고있다. 이러한 “역사를 왜곡하며 세계의 도덕적 심판을 벗어나려는 일본인들의 단체기억상실증”이 외려 그 역사를 다시 기억해 내고 기록하게끔 한 소설가의 창작충동을 건드렸다”고 김작가는 말한다. “역사의 질곡에 갇혔던 불운한 그녀들을 대상화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대미문의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반성과 공감과 치유를 부르는 그런 재현물을 쓰고자 합니다. 단지 상상해서 만드는 픽션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진술,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문서, 르포 등 갖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삼아 력사의 진실과 아픔을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근 십년사이에 김혁작가는 다섯부의 장편소설과 한부의 장편르포와 문화시리즈 그리고 두부의 인물전기를 펴냈다. 거의 한해에 한부꼴로 펴낸 셈이다. 게다가 칼럼, 명상록, 소설, 편찬저서들도 곁들면 이 동안 그의 창작량은 그야말로 문단의 원로들이 격찬할만큼 “전무”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중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문혁에 관한 기억을,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한 “시인 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 윤동주의 문학적 삶을,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흔들리고 있는 조선족공동체의 아픔속에 스러져가는 녀인들의 모습을, “완용황후”은 연변에서 숨진 청나라황후로부터 근대 동북의 근대사를 보여주고 있다. 또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는 “무성시대”는 중국영화황제 김염의 영화인생을 그린 장편소설로서 지난해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지지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평론가들이 평하다싶이 “묵직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서사적 사건 전개의 구조가 선명하고 극적인 이야기성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외 50여만자에 달하는 “일송정 높은솔, 해란강 푸른물”은 조선족문화의 발상지 룡정의 생성과 지금까지의 력사에 대한 완결판같은 작품이며 3년채 련재되고있는 문화 시리즈 “영화로 읽는 중국조선족”은 스크린의 각도에서 조선족의 백여년력사에 대해 다른 텍스트로 연구한 작품이다. 김혁 소설가가 들려주는 신작장편 “춘자의 남경”의 스토리만 들어보아도 주인공의 삶의 리력이 너무나도 장대해 “파란만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사적 개념이 우렷이 드러나 보인다. 자신의 근년래의 창작성과와 금후의 과제에 대해 김혁작가는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자신의 금후의 모든 창작성향이다”고 말했다. “소설의 본령이 곧 '허구적 사실성'의 설득력을 주요한 미덕으로 삼는것인데” 매체기자와 소설가로서의 병행된 삶을 수십년간 이어 왔기에 그 와중에 더듬어낸 이것이 바로 남보다 차별화되는 이러한 창작성향이라고 그는 말한다. “신뢰할 만한 소설 창작 기량을 발휘해 주제와 소재의 명징성, 소설적 사건의 이미지화와 깔끔한 흐름등이 잘 조합되여 있는 대서사적인 작품을 다루는것”이 그의 근년래 그리고 금후의 창작방향이라고 해석한다. “한 민족, 한 인물의 연대기적 사건에 대한 예술적인 재현만으로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인간 내면을 탐사할수 있다”면서 “민족의 역사에 대한 화두와 메세지”를 끈임없이 던지면서 그 안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면성과 입체성을 규명하는” 방대한 제재들을 성실하고 우직한 작가정신으로 밀고 나가고있는 김혁 작가, 그의 신작이 기대된다. 신연희
    • 사람들
    2015-01-19
  • 김명희 작가, 작품을 통한 자연과의 호흡
    [동포투데이] 개인전 7회 그리고 다수의 단체전. 김명희 작가(사진)의 이력이다. 작가로서 전시 횟수가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김명희 작가의 한 작품 한 작품에는 자연과의 호흡 그리고 소통이 담겨 있다. 자연을 보고 그대로 화폭에 담거나 또 다른 해석으로 추상적인 작품을 남기지도 않는다. 김명희 작가는 오로지 자연을 보고 뒤돌아서 그에게 다가오는 그 감정, 그 느낌만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색채와 빛의 하모니가 느껴지는 이유다. 기법 역시 단순한 붓 터치에 의지하지 않고 물감을 떨어트려 완성하는 드리핑 기법으로 마무리한다. 기법 차별화로만 김명희 작가를 평가하기에는 부족하다. 김명희 작가가 자연에게 던지는 친근감과 사랑 그리고 긴 호흡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전해주는 또 다른 힐링이다. 얼마전 '김명희 초대전 아름다운 순간'에서는 자연을 화폭에 담아 그녀만이 가진 색채로 연출해 냈다.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녀는 그동안 홍콩을 비롯한 김제 아리랑 문학관, 예술의 전당 등에서 5차례 개인전을 펼치며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김 작가는 "모든 작품은 내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풍경"이라며 "자연을 보고 돌아와서 느끼는 감정들을 색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추상과 비추상의 한계를 넘나드는 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연과의 대화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사람들
    2015-01-06
  •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허광옥 회장 ‘2014 글로벌 기부문화공헌대상’ 수상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허광옥 회장이 지난 27일(토) ‘2014 글로벌 기부문화공헌대상’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한중도시우호교류협회 허광옥 회장이 지난 27일(토) ‘2014 글로벌 기부문화공헌대상’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국제언론인클럽(GJCNEWS)과 사)GK희망공동체가 주최한 '2014 글로벌 기부문화공헌대상 시상식'이 27일 오후 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수상자와 연예인, 언론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이날 허광옥 회장은 그 동안 보이지 않게 베푼 선행과 나눔의 공적을 인정받아 기부문화공헌대상을 수상하였다. 중국 흑룡강 오상시 출신인 허광옥 회장은 KC회관 설립하고 지역 청소년, 다문화단체에 무료로 활동 장소를 제공하고 있으며 다문화단체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기부하는 등 선행은 모범사례로 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각분야에서 양국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2014 글로벌 기부문화공헌대상 시상식은 한국과 국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단체와 개인의 사회기여도와 공헌 정도를 심사해 그 노고를 격려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상이 이뤄졌다.
    • 사람들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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