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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 되고 싶다”

  • 허훈 기자
  • 입력 2025.06.2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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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을 잃은 스크린, 허상의 가난

● 허 훈 
 
가난한 사람을 다루는 드라마를 네 나라, 한국·미국·중국·일본의 작품을 함께 놓고 본다면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네 나라 중 유독 한 곳만, 가난이 너무도 ‘예쁘게’ 포장돼 있다. 바로 중국이다.

요즘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미드·한드·일드나 본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건 복잡하지 않다. 조금 더 현실적이기를, 조금 더 진심이 느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 드라마는 그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가짜 가난’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배경은 화려하고, 집은 넓으며, 옷은 명품이다. 현실이라면 하루 세 끼를 걱정해야 할 인물이, 정원 딸린 양옥에서 꽃차를 마시고 명품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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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폭격>의 남주인공은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대학생이다. 당연히 삶이 팍팍해야 하지만, 그는 선전 한복판에서 2층짜리 단독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다. 마당까지 있는 그 집의 시세를 생각하면, 이건 빈곤이 아니라 로망이다. 여주인공은 이 집을 보고 “아, 이게 진짜 가난이구나”라며 감탄한다. 보는 이들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환락송>이나 <겨우, 서른> 등도 다르지 않다. 갓 사회에 발을 들인 여성들이 고급 오피스텔에서 살고, 고가의 운동화를 아무렇지 않게 사고, 외제차 계약서에 단숨에 서명한다. 이들은 말한다. “나는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그 말이 전혀 설득력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서사가 젊은 시청자들에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인턴은 입사하자마자 고급 아파트에 살고, 쇼핑몰에서 수백만 원대 신발을 사고, 남자친구와 제주도 같은 곳에서 호화 휴가를 보낸다. 이를 보며 젊은이들은 착각한다. “나도 사회에 나가면 저렇게 살 수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갓 졸업한 이들이 마주하는 건 등록금 대출, 월세 압박,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전전이다.

이런 왜곡은 단순히 리얼리티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 회피'다. '드라마 속 현실'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하는 가난한 사람의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대사로는 가난을 말하지만, 배경은 부유하고 감정은 공허하다.

다른 나라 드라마는 다르다. 미국의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은 청소부로 일하면서도 천재성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일본의 <나기의 휴식>은 좁은 방, 전기 절약, 허술한 생활을 통해 ‘생존’의 감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국의 <기생충>은 지하방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화장실 위칸에 걸터앉아 있어야 하는 생활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미화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삶이 있다.

반면 중국 드라마는 ‘가난도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을 가졌다. 그 결과, 드라마 속 ‘가난한 자’는 고급 커피를 마시고, 패션을 고민하며, 감성적인 음악에 젖는다. 이쯤 되면 이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체험형 가난러’에 가깝다. 그 삶을 진짜로 사는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게 현실이라고?”

현실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의 첫걸음이라면, 지금의 중국 드라마는 그 출발선에서 이미 멀어졌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화려한 배경이나 눈물 연기에 감동하지 않는다. 진짜 공감은 디테일에서 온다. 샤워도 아껴야 하는 월세방,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춘, 퇴근길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엄마의 삶. 이런 장면 하나가, 말 한마디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현실은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삶이 초라한 것도 아니다. 그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담아낼 때, 드라마는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지금처럼 “나는 가난하다”며 대사만 외치고, 현실을 과잉 포장하는 ‘허상의 서사’는 누구의 삶도 대변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중국 드라마 속 가난한 사람이고 싶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슬픈 이유는, 그 안에 현실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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