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윤동주를 둘러싼 논쟁은 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쟁점은 단순해 보인다. 윤동주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조선족인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이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정확한 정체성인 ‘조선인’이 논의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윤동주를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출생지가 중국이고,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 체계 안에 조선족이라는 범주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주장은 결정적인 사실을 외면한다. 윤동주가 태어난 1917년 당시에는 조선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행정적으로 형성된 민족 분류다. 현재의 제도를 과거에 소급하는 전형적인 오류다.
이에 맞서 일부 한국 측 전문가들은 윤동주를 “한국인”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사실과 맞지 않는다. 윤동주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그가 사망한 뒤에 수립됐다. 윤동주는 생전 단 한 번도 ‘한국인’이 될 수 있는 법적 조건을 갖지 못했다. 이는 현재의 국가 개념을 과거 인물에게 투영한 결과다.
결국 양측의 주장은 닮아 있다. 중국은 현재의 민족 분류를, 한국은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과거에 덧씌운다.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논리 구조는 같다. 현재의 개념으로 과거를 재단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실 답은 복잡하지 않다. 윤동주는 분단 이전 인물이며, 국가를 상실한 시대를 살았다. 그의 생전 정체성은 분명하다. 조선인이었다. 중국인도 아니었고, 조선족도 아니었으며, 생전의 의미에서 한국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인’이라는 표현은 논쟁에서 사라졌을까. 정치적 이유가 크다. 한국 사회에서 ‘조선’이라는 명칭은 북한을 연상시키는 불편한 언어가 됐고, 중국에서는 ‘조선인’이라는 범주가 현재의 민족 정책과 맞지 않는다. 그 결과, 가장 정확한 표현이 가장 먼저 배제됐다.
이 공백 위에서 논쟁은 극단화됐다. 중국은 ‘조선족’을, 한국은 ‘한국인’을 고집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 한국이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고집할수록, 중국은 “그렇다면 조선족”이라는 주장을 강화할 명분을 얻는다. 반대로, 조선인이라는 정확한 개념을 유지하면 조선족 주장은 출발점부터 설 자리를 잃는다.
정확한 표현은 방어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논리가 된다.
“윤동주는 조선인이었고, 그의 문학은 오늘날 한국 문학사에서 계승되고 있다.”
이 문장은 감정도, 과장도 필요 없다. 동시에 중국의 소급 논리와 한국의 과잉 귀속을 함께 차단한다.
윤동주 논쟁은 한 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역사를 말할 때 정확성을 선택할 것인가, 편의적 정체성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다. 가장 정확한 이름을 지우는 순간, 논쟁은 늘 불리해진다. 역사는 편을 들지 않는다. 정확한 말만이 힘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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