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결승전의 숫자는 잔혹했다. 일본의 완승 앞에서 중국 U23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 패배를 두고 좌절만을 말한다면, 지난 8년을 지워버리는 일이다. 중국 U23은 졌지만, 중국 축구는 방향을 확인했다.
다섯 차례 연속 조별리그 탈락. ‘성인 대표팀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말이 무색했던 세월이었다. 그 중국이 이번에는 결승까지 올라섰다. 단발의 행운이 아니다. 쌓였고, 버텼고, 결국 드러났다.
이번 팀의 뿌리는 2018년에 놓였다.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안토니오는 떠나지 않았다. U15·U16에서 시작해 U20, U21, 그리고 U23까지—한 세대를 8년 동안 붙잡은 집념이 결승 무대를 열었다. 선수들의 말은 간명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전술 변화가 통했고, 과감한 선택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장기 동행이 만든 공감대가 팀의 골격이 됐다.
반등에는 제도적 뒷받침도 있었다. U21 신정책으로 어린 선수들이 하부리그에 묶이지 않고 상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결과는 숫자가 말한다. U21 출전 선수 61명(전년 대비 +96.8%), 출전 경기 554경기(+172.9%), 총 출전 시간 2만8944분(+243.3%). 경험이 쌓이자 경기력이 따라왔다.
저변은 더 넓어졌다. 전국 단위 청소년 훈련센터와 권역 연계, 학교·클럽·사회가 맞물린 다층 구조가 자리 잡았다. 그 결과 청소년 등록 선수 10만9200명, 아마추어 98만 명. 숫자는 차갑지만, 의미는 분명하다. 선수층이 두터워질수록 대표팀의 질은 달라진다.
결승 진출이 곧 부활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국 축구의 난제는 여전히 체제·보상·경쟁·문화 전반에 걸쳐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번 준우승은 ‘방향이 맞다’는 증거다. 패배는 컸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 중국 U23이 남긴 것은 메달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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