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례대표는 소외를 보완하는 제도… 이제는 다문화 사회의 목소리도 담아야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후보 명단에는 변화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충분히 담기지 않는다. 특히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여전히 미약하다.
우선 현실부터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다문화 가구원 수는 이미 123만 명을 넘어섰고, 이를 포함한 국내 이주민 인구는 250만 명에 육박한다.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규모다.일부 지역에서는 변화가 더 빠르다.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서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10%를 넘어서며,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다문화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풍경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광역의원 3,900여 명 가운데 이주민 출신 당선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권자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지방의회 안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비례대표 제도의 본래 취지는 분명하다. 지역구 중심 구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치 참여의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여성, 청년, 장애인,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 구성원인 이주민 역시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비례대표 공천 구조는 여전히 기존 정치권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고, 이주여성은 늘 후순위로 밀려난다.
문제는 숫자의 부족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이주민을 함께 살아갈 정치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기보다 노동력이나 결혼을 통해 들어온 주변적 존재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 이 인식은 정치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당 지도부와 공천심사 구조 안에서 이주여성은 ‘상징성은 있지만 당선 가능성은 낮은 카드’로 취급되기 쉽다.
특히 이주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와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장벽을 동시에 마주한다. 지역사회에서 자녀 교육, 돌봄, 학교 상담, 보건소 이용, 주민센터 행정, 통역 문제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주체 역시 대부분 이주여성이다. 다문화 가정의 일상이 가장 먼저 모이는 곳이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라면, 그 현장의 언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결국 이주여성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주여성이 제도권 정치의 문을 두드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총선에서 필리핀 출신 귀화 여성 헤르난데즈 주디스 알레그레가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됐고, 2010년에는 몽골 출신 이라가 지방의회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에서는 이자스민 전 의원이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상징적 장면 이후 제도적 후속은 거의 없었다.
반면 탈북민 출신 비례대표는 꾸준히 등장해 왔다. 이유는 분명하다. 북한 문제는 한국 정치에서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의제이며, 탈북민은 입국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되는 강한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다. 정당 입장에서도 국가 정체성과 안보 메시지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카드가 된다.
반대로 이주여성 문제는 다문화, 복지, 교육, 노동, 생활행정의 영역으로 분류되며 정당 전략의 중심에서 자주 밀려났다. 그러나 지방정치는 오히려 이러한 생활정치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다문화 가정 자녀 교육, 통역 지원, 국제결혼 가정 폭력 대응, 체류 행정 지원은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먼저 마주하는 과제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해외 주요국은 이미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독일은 지방의회에서 이주민 출신 의원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일부 의회에서는 10~20% 수준까지 확대됐다. 프랑스 역시 북아프리카계 이주 여성 의원들이 교육·복지 정책의 현장성을 높여 왔다.
일부에서는 아직 국적 취득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귀화한 이주여성은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역에서 세금을 내고 자녀를 키우며 주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정치 참여의 문이 좁게 남아 있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정당의 책임도 분명하다. 단순히 후보 명단에 이름만 올리는 수준으로는 달라질 수 없다. 비례대표 당선 가능 순번에 실제 배치해야 하고, 이주민 정치인 발굴을 위한 상설 인재 시스템도 필요하다.
비례대표는 단순히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들이는 통로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정당이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비어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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