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쇄보다 더 센 카드… 호르무즈 ‘선별 차단’ 현실화
[인터내셔널포커스] 이란이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사실상의 ‘선별 통제 체제’를 선언하면서 국제 해상 질서가 중대한 분기점에 들어섰다. 전면 봉쇄는 아니지만, 특정 국가 선박의 통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는 25일 자국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란의 결단을 과소평가했지만, 결국 우리는 해협 통제 능력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은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라 적대 세력에만 닫혀 있다”며 “우호국 선박은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란은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인도 등 일부 국가 선박의 통과를 허용한 반면, 미국과 이스라엘 및 그 동맹과 연계된 선박에 대해서는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닫힌 해협 아닌 ‘선별 통행 체제’”… 해상 질서의 게임체인저
이번 조치는 단순한 군사 대응을 넘어, 국제 해상 통행 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성격을 띤다. 이란 군 당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통행 여부를 전적으로 이란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제 공해로 간주돼 온 해협을 ‘관리 대상 해역’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특히 이란은 “적대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국가”를 기준으로 통행 허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혀, 해협 이용이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기존의 ‘항행의 자유’ 원칙과 정면 충돌하는 개념으로, 글로벌 해상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로 평가된다.
“통행료까지 부과”… 해협을 ‘경제 무기’로
이란 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법안은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권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국가 재정 수입을 확보하는 동시에 ‘안전 보장 비용’을 명분으로 비용을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란 측은 “해협 안전을 유지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통행료 부과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상 ‘해상 통행세’ 도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스페인에는 ‘예외 허용’… 외교 카드로 활용
이란은 일부 국가에 대해 예외적 통행 허용이라는 외교 카드도 꺼내 들었다. 스페인에 대해서는 “국제법을 준수하는 국가”라며 통행 요청이 있을 경우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는 미국·이스라엘 군사 행동을 비판해온 스페인 정부의 입장과 맞물린 조치로 해석된다.
이란 대통령은 스페인의 태도를 “서방 내 양심의 신호”라고 평가하며 공개적으로 환영하기도 했다. 결국 해협 통행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외교적 ‘보상과 제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군사적 긴장 고조… 실제 통행 차단 사례도
현장에서는 이미 군사적 긴장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27일, 해협 진입을 시도한 컨테이너선 3척을 경고 후 되돌려 보냈다고 밝혔다. 해당 선박들은 지정된 통항로를 이용하려 했으나, 이란 측 경고에 따라 철수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련 항만을 오가는 선박은 전면 금지 대상”이라며, 무단 통과 시 강경 대응을 경고하고 있다. 반면 미국 측은 일부 유조선 통과 사례를 언급하며 “해협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의 인식 차는 뚜렷하다.
국제 에너지·물류 시장 ‘구조적 충격’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핵심 통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글로벌 경제 구조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파장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유가의 구조적 상승 압력이다. 단순 봉쇄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둘째, 해운 경로의 정치화다. 국가 간 관계에 따라 물류 비용과 리스크가 달라지는 ‘블록화’가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국제 규범의 약화다. 항행의 자유 원칙이 사실상 무력화될 경우, 다른 전략 해협에서도 유사한 선례가 확산될 수 있다.
“봉쇄보다 더 위험한 통제”… 새로운 충돌 국면
이번 사태는 전면 봉쇄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완전 차단이 아닌 ‘선별 통과’ 방식은 법적 책임은 회피하면서 실질적 통제력은 극대화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은 지금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라, 군사·외교·경제가 결합된 ‘전략 무기’로 전환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질서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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