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출장길, 시속 300km로 질주하는 첨단 고속철에서 내린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잔상이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승강장을 가득 채운 매캐한 담배 연기가 밀려왔다. 줄을 선 승객들 사이, 열차 출입구 주변, 이동 통로까지 곳곳에서 당연하다는 듯 불꽃이 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라 생각했으나, 여러 도시를 거치며 마주한 반복된 풍경은 이 문제가 개인의 에티켓을 넘어선 ‘제도의 구조적 결함’에 있음을 시사했다.
중국 역시 실내 공공장소 금연 원칙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문제는 플랫폼처럼 지붕은 있으나 사방이 뚫린 ‘반개방 구역’에 있다. 현행법상 이곳이 실내인지 실외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단속의 손길이 닿지 않는 법적 회색지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단속 인력의 한계도 명확하다. 현장 요원들은 흡연을 제지할 수는 있어도 직접적인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처분 권한이 없는 경우가 많아, 강제성 없는 권고는 이용객이 밀집한 환경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명확한 기준과 집행력이 부재한 공간에서 금연은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전락한다.
반면 한국의 사례는 규정의 구체성이 현장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한국은 국민건강증진법을 통해 실내뿐 아니라 버스정류장, 지하철 출입구 10m 이내 등을 금연 구역으로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면적을 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반 시의 페널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현장 적용성을 높였다. 정책의 실효성은 규정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설계, 안내, 단속, 처분으로 이어지는 완결된 시스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 등 일부 대도시에서 고속철 플랫폼을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벌금을 부과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이러한 기준이 전국적 표준으로 통합되지 못한 점은 여전한 과제로 남는다.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개인의 기호와 타인의 건강권 사이에서 국가가 선을 긋는 작업이다. 특히 수많은 인파가 섞이는 교통 허브일수록 그 선은 더 굵고 명확해야 한다. 플랫폼에서 느꼈던 불편함은 단순한 후각적 불쾌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최첨단 하드웨어를 갖춘 사회가 그 공간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인 ‘공공의 질서’를 어떻게 정의하고 관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기술이 시대를 앞질러 가더라도 그 공간을 채우는 제도가 공백으로 남아 있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공공의 안녕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BEST 뉴스
-
“이웃을 미워하며 애국을 말하는 사람들”… 한국 사회의 위험한 혐오 정치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이웃 나라”를 향한 분노를 애국처럼 소비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정 국가 이름만 나오면 자동 반사처럼 욕설과 조롱이 쏟아지고, 그 나라 국민 전체를 하나의 적처럼 묶어 비난하는 일도 흔하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단순한 감정 배출 수준을 넘어 점점 하나의 정치 문화처럼 굳어지... -
신의를 저버린 대가로 돌아온 쓰라린 후과…미군 기지 ‘살아있는 과녁’ 전락
생성 이미지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동 타격했던 과거 군사 작전을 되돌아보면, 당시 페르시아만 상공에는 한때 전운이 짙게 감돌았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가 내세운 ‘대승적 성과’라는 전황 평가와는 달리, 걸프 지역에 주둔한 미군 기지들은 조직적인 공격에 노출됐다. 카타르 알우... -
조롱과 혐오의 정치에 칼 뺀 이재명…‘일베 폐쇄론’ 재점화
생성 이미지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일베 폐쇄 검토’ 화두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한국 사회에 던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호돼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사회적 참사와 민주화운동까지 조롱하는 혐오 문화 역시 무조건 자유라는 이름 ... -
겉으로는 선진국, 현장은 왜 아직도 후진국인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대한민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산업을 앞세워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첨단 기술과 AI 혁신을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부른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 화려한 외형과는 다른 장면이 여전...
실시간뉴스
-
겉으로는 선진국, 현장은 왜 아직도 후진국인가
-
조롱과 혐오의 정치에 칼 뺀 이재명…‘일베 폐쇄론’ 재점화
-
“이웃을 미워하며 애국을 말하는 사람들”… 한국 사회의 위험한 혐오 정치
-
신의를 저버린 대가로 돌아온 쓰라린 후과…미군 기지 ‘살아있는 과녁’ 전락
-
워싱턴으로 향하는 한국 정치…동맹은 전략인가, 도구인가
-
시속 300km의 고속철, 금연 정책은 정지궤도
-
“이 나라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한국에서 본 현실”
-
‘TACO의 순간’에도 물러서지 못하는 트럼프의 전쟁
-
“동포라 부르지 마라?”… 이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
다문화 사회 20년… 지방의회엔 왜 이주여성이 없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