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둔화 시내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10여 분 정도 달리자 육정산(六鼎山)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일 오전이었지만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들어서 있었고, 입구 광장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산 위로 시선을 옮기자 숲 너머로 거대한 금빛 불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으로 여러 차례 봤던 금정대불(金鼎大佛)이었다. 실제로 마주한 불상의 규모는 예상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 연변을 찾는 관광객들이 육정산을 대표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육정산 문화관광구는 중국 국가급 풍경명승구이자 국가 4A급 관광지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에는 불교문화와 발해문화, 만주족 선조 문화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산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흔적이 차례로 나타난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은 금정대불이다. 육정산의 상징이자 둔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꼽힌다. 높이 솟은 청동 좌불은 멀리서도 눈에 띄며, 전망대에 오르면 웅장한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불상 아래 자리한 불교문화예술관으로 들어서자 만불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불상이 정연하게 배치된 내부 공간에는 경건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고 내부를 둘러보거나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현지 가이드는 "육정산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찾지만 단풍이 물드는 가을과 눈이 쌓이는 겨울 풍경이 특히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정각사(正觉寺)는 육정산을 대표하는 또 다른 명소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알려진 이 사찰은 화려함보다는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사찰 경내를 걷는 동안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와 새소리 정도였다. 관음전 앞에서는 향을 올리는 신도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춘 채 경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각사를 찾았다는 한 관광객은 "백두산은 여러 번 와봤지만 육정산은 처음"이라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조용해서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육정산의 매력은 불교문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청조 시조사당(清祖祠)은 만주족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이곳은 중국 각지뿐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만주족 후손들도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만주족의 생활상과 전통문화, 청나라 건국 이전의 역사 등이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물을 둘러보며 만주족의 생활 방식과 동북지역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산 정상 부근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역사 유적인 발해고분군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국무원이 지정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발해 초기 왕실과 귀족 계층의 무덤이 남아 있는 곳이다.
발해고분군 주변 분위기는 사찰 구역과는 사뭇 다르다. 화려한 건축물 대신 숲길과 봉분이 이어진다. 안내판에는 발해의 역사와 유적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고, 관광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내용을 읽으며 천여 년 전 이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발해의 역사를 되새기고 있었다.
발해는 한때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하며 당나라와 신라, 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다. 육정산에 남아 있는 고분군은 당시 발해의 정치와 문화, 장례 풍습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연변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은 백두산이나 연길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현지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육정산을 연변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소개한다. 한 공간 안에서 불교문화와 발해 유적, 만주족 관련 문화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육정산의 특징은 자연경관과 역사문화 유산이 비교적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울창한 숲과 산세를 배경으로 불상과 사찰, 발해 유적과 문화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걷는 동선에 따라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다시 바라본 금정대불 뒤로 둔화 시가지가 펼쳐졌다. 산 아래에는 현재의 도시가 있고, 산 위에는 불교 유적과 발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관광지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풍경이었다.
육정산은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둔화와 연변의 역사, 문화, 종교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둔화를 처음 찾는 여행객이라면 왜 이곳이 연변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꼽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다음 편에서는 발해의 옛 수도와 연결된 둔화의 역사 현장을 찾아 천년 왕국 발해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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