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중국 조선족 영화인 가운데 연변이라는 지역적 공간과 조선족 사회의 삶을 영상으로 꾸준히 기록해온 감독이 있다. 2007년 장편 데뷔작 〈궤도(轨道·Life Track)〉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받은 김광호 감독이다. 지역 방송국에서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그는 촬영과 드라마 연출, 영화와 문화콘텐츠 제작을 넘나들며 중국 조선족 영상문화의 영역을 넓혀왔다.
1960년 중국에서 태어난 김광호는 연변대학교 정치학부를 졸업한 뒤 베이징영화학원에서 촬영을 공부했다. 이후 연변TV방송국에 몸담으며 영상 제작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았고 방송 관련 책임자도 맡았다.
처음부터 영화감독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자료에 따르면 그는 〈초연 속의 수리개〉(1996), 〈여자는 무엇인가?〉(1998), 〈하얀꽃〉(2001) 등의 촬영을 맡았다. 이 가운데 일부 작품은 중국 소수민족 소재 TV 작품을 대상으로 한 ‘준마상(骏马奖)’을 받았다. 이후 연출로 활동 영역을 넓혀 2005년에는 〈춘하추동〉과 〈반지〉 등을 연출했다.
오랜 방송 경험을 영화로 확장한 전환점은 2007년 찾아왔다. 첫 장편영화에서 김광호는 두 팔을 잃고 외딴 산속에서 살아가는 남성과 청각·언어장애를 가진 여성의 만남을 통해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대사보다 인물의 눈빛과 몸짓, 자연의 소리와 풍경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절제된 연출이 특징이다. 김광호는 연출뿐 아니라 각본과 편집까지 맡으며 자신의 영화적 색깔을 드러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재외동포 저예산영화 제작지원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의 후반작업 지원도 받았다.
이 작품은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뉴커런츠상을 받았다. 아시아 신인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 부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김광호의 이름도 국제 영화계에 알려졌다. 이듬해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한국에서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통해 정식 개봉했다.
하지만 김광호의 영상세계는 한 편의 영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활동에는 오랫동안 몸담아온 연변과 조선족 사회가 중요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방송과 영화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역사와 음식, 언어와 생활문화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7년 선보인 〈연변의 맛(延边味道)〉이다. 연변의 음식과 지역문화를 카메라에 담아 조선족의 생활상을 보다 폭넓은 시청자에게 소개했다. 음식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 축적된 생활방식과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영상으로 남겼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김광호는 후배 양성과 지역 문화예술 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연변대학교 한·조선어 통역대회 결선 심사위원 등을 맡으며 젊은 세대와 교류했고, 방송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지역사회와 나누는 활동도 이어갔다.
2024년에는 활동 영역을 지역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넓혔다. 연길시 문학예술계연합회 제11차 대표대회에서 주석단 주석으로 선출돼 지역 문예인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영화와 방송을 넘어 문학·미술·음악·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을 연결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김광호의 행보는 중국 조선족 영상문화가 변화해온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연변TV 카메라 뒤에서 출발해 촬영감독과 드라마 연출자를 거쳐 영화감독으로 영역을 넓혔고, 지역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국제영화제의 스크린까지 가져갔다. 이후에도 자신의 활동 기반을 떠나기보다 연변의 문화와 사람들을 기록하고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참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카메라가 오랫동안 향해온 곳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감정, 조선족 사회가 이어온 생활문화와 기억을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국제영화제 수상 감독이라는 이름과 함께 연변에서 조선족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온 영상인이라는 점이 김광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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