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국말부터 나온다.
친구 이야기를 하고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휴대전화로 보는 영상도 대부분 한국 콘텐츠다. 집에 들어오면 말이 조금 달라진다.
부모가 중국어로 말을 걸기도 하고, 연변 출신 가정에서는 조선말이 자연스럽게 섞인다. 중국에 있는 할머니와 통화할 때면 평소 자주 쓰지 않던 중국어를 꺼내기도 한다.
중국동포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부모 세대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왔다면 자녀들은 다른 환경에서 컸다.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고,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온 아이도 있다.
부모에게 한국은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온 나라였다.
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몇 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한국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방을 얻고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흘렀다. 어떤 가정은 20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이 곧 성장기였다.
부모가 “고향에 간다”고 하면 연길이나 용정, 중국 동북지역의 어느 도시를 떠올린다. 아이에게 그곳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고 방학 때 찾아가는 곳일 수 있다.
자신이 매일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곳은 한국이다. 부모가 말하는 고향과 아이가 느끼는 고향이 꼭 같을 수는 없다.
말도 조금씩 달라졌다.
부모는 중국어와 조선말에 익숙하지만 자녀는 한국어가 훨씬 편한 경우가 있다.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한국 학교에서 몇 년을 보내고 나면 한국어부터 튀어나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중국의 친척을 만나면 반대가 된다. 중국어로 긴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 옆에 있던 부모가 말을 보태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는 이런 차이가 별일 아닌 듯 섞여 있다.
부모가 해주는 연변식 음식을 먹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이나 떡볶이를 시킨다. 중국의 친척과 명절 인사를 나누고 다음 날 아침에는 가방을 메고 평소처럼 학교에 간다.
아이들에게는 그게 그냥 일상이다.
학교에서는 시험과 친구, 진학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러다가 국적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해외에 나갈 때 친구와 다른 여권을 꺼내야 하고, 체류자격에 따라 준비하는 서류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학과 취업을 생각할 나이가 되면 어릴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국적과 체류 문제가 가까이 다가온다.
교실에서는 나란히 앉아 공부하던 친구인데 학교 밖에서는 준비해야 할 서류와 절차가 다를 때가 있다.
부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정이 있고 중국 국적을 유지하는 가정도 있다. 자녀의 사정 역시 모두 같지는 않다.
부모 세대가 한국에서 먼저 부딪힌 문제가 일자리와 체류였다면 아이들은 다른 고민을 한다.
어느 대학에 갈지, 무슨 일을 할지,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갈지를 생각한다. 부모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 이유도 없다.
연변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그 옆에서 자녀는 서울이나 수도권의 직장을 알아본다.
부모에게 한국과 중국은 오랫동안 오가야 했던 두 나라였다. 자녀에게 한국은 학교가 있고 친구가 있고 자신의 방이 있는 곳이다.
30여 년 전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 있었다. 몇 년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도 많았다.
예상보다 오래 머물렀고 그 사이 아이들이 자랐다.
부모는 한국으로 왔지만, 아이들은 한국에서 자라고 있다.
이제 그 아이들도 성인이 된다.
그때부터는 국적이 훨씬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한국 국적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국적을 바꾼다고 어제까지 살아온 삶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여권이 바뀐 뒤에도 어제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다니던 직장에 출근하고,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주변의 시선도 함께 달라질까.
그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이어간다.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연구자료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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