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국동포 사회에는 유난히 '대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정부기관과 만나도 동포 대표, 정치인과 자리를 함께해도 동포 대표다. 무슨 행사가 열리거나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면 동포 전체를 대표하는 듯 나서는 단체장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표로 뽑았다는 동포들은 어디에 있을까.
중국동포 단체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생활이 낯설었던 시절, 고향 사람들의 모임은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였다. 일자리를 소개하고 방을 구하는 일을 도왔으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해결책을 찾았다. 명절이면 고향 음식을 나누며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다.
그렇게 만들어진 향우회와 친목 모임 가운데 일부는 정식 단체로 발전했다. 문화행사를 열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동포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묵묵히 봉사해 온 사람들의 수고까지 부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단체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중앙회, 총연합회, 연합총회. 이름만 들어서는 어느 조직이 누구를 아우르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회장에 총회장, 명예회장까지 직함도 다양하다. 물론 규모와 활동에 걸맞은 이름을 사용하는 단체도 있다. 다만 이름이 커졌다고 그만큼 많은 동포의 뜻을 대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행사장에서는 내빈 소개와 축사가 길어지고, 단체장들은 정치인이나 기관 관계자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남은 사진은 홍보물과 온라인 게시물에 등장한다. 정작 그 자리에 모인 평범한 동포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들었을까.
선거철이면 이런 대표성 문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일부 단체 관계자들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중국동포 전체를 대표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는 각자의 정치적 선택이다. 문제는 그 선택을 동포 전체의 뜻처럼 내세우는 데 있다.
2025년 한 정치인 지지 모임을 둘러싸고 온라인 대화방에서 반발이 나왔다. 한 참여자는 조선족과 다문화가정을 대표한다는 표현을 문제 삼으며, 누가 그런 대표 자격을 부여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거친 표현까지 오간 논쟁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간단했다. 누가 그들에게 수많은 동포를 대신해 말할 권한을 주었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선거철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기관과의 간담회, 정치인 면담, 각종 협약식에서도 일부 단체장은 중국동포 사회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이끄는 단체의 의견을 전하는 일과 중국동포 전체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일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난 ⑩편에서는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중국동포들 사이에도 경제적 형편과 인간관계의 차이가 생겨났다는 점을 살펴봤다. 이제 중국동포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해졌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과 중국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의 고민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모임에 참석할 시간조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중국동포 사회에는 지금도 남을 돕는 일에 자신의 시간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동포의 민원을 듣고 해결책을 찾아다니는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단체의 이름이나 직함은 활동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반면 단체의 활동보다 회장의 이름이 더 앞에 나서는 모습도 눈에 띈다. 동포를 위해 일하다 보니 이름이 알려지는 것과 이름을 알리기 위해 동포를 앞세우는 일은 다르다. 높은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다고 동포들의 어려움까지 그만큼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중국동포 사회가 형성된 지 30여 년. 처음에는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서로를 찾았지만, 이제는 살아가는 형편도 생각도 달라졌다. 단체의 역할 역시 그 변화와 무관할 수 없다.
어느 단체의 회장이 되는 일은 가능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고 중앙회나 총연합회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모르는 동포도 있고, 그 단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선거철 지지 선언에 반발했던 한 동포의 질문이 오래 남는다.
“네가 뭔데 우리를 대표한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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