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9년, 중국 대륙의 승부가 기울었다.
국민당 정부와 군대가 타이완으로 밀려났지만 국공 양측의 싸움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선이 바다를 건너면서 총성 뒤에 숨어 있던 정보전도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국민당에는 마지막 방어선이었고 중국공산당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다음 무대였다.
국민당보다 먼저 움직인 지하망
중국공산당의 타이완 지하활동은 국민당이 대륙에서 철수한 뒤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차이샤오첸(蔡孝乾)이 이끈 중국공산당 대만성공작위원회는 이미 타이완에서 조직을 확대하고 있었다. 학생과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사회로 연결망을 넓혔고 일부 지역에서는 무장조직 구축도 시도했다.
1949년 국민당의 대륙 패색이 짙어지면서 이 조직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중국공산당이 타이완까지 장악하려면 섬 안의 군사 배치와 방어계획을 파악할 눈과 귀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민당 정보기관도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를 잡자 조직 전체가 흔들렸다
1949년부터 국민당 당국의 추적이 본격화됐다.
지하조직 하나가 드러나면 연락책이 잡혔고, 그 뒤에서 또 다른 조직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망은 대만성공작위원회 지도부까지 좁혀졌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차이샤오첸의 체포였다.
그에 대한 조사를 통해 연결망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국민당군 최고위층에 가까운 예상 밖의 인물까지 수사선에 들어왔다.
우스(吳石).
국민당 국방부 참모차장을 지낸 중장급 장교였다.
우스는 군사정보를 다루는 핵심 위치에 있었다. 국민당 측 기록에 따르면 대륙 시절부터 중국공산당 측에 정보를 제공했고 타이완으로 건너온 뒤에도 군사자료를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는 중국공산당이 타이완 공격을 검토하던 시기였다. 군 배치와 방어 관련 정보 유출은 대륙을 잃은 국민당에는 정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우스는 1950년 체포돼 군사재판을 거쳐 그해 6월 처형됐다.
이번에는 국민당이 먼저 끊었다
대륙에서 공산당 지하망에 여러 차례 허를 찔렸던 국민당은 타이완에서 정보·치안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대만성공작위원회와 관련 조직들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중국공산당이 구축했던 현지 지하망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국민당의 반격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공산당 지하조직이 실제 존재했고 군 내부까지 침투한 사례도 있었지만, 색출의 범위는 빠르게 넓어졌다.
1949년 계엄체제가 시작된 뒤 실제 조직원뿐 아니라 정치적 반대자와 지식인, 학생까지 감시와 수사의 대상이 됐다. 체포와 장기 구금, 군사재판과 처형이 이어졌다.
훗날 타이완에서 ‘백색테러’로 불리게 된 시대였다.
간첩을 찾아내는 방첩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억누르는 정치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바다는 국공내전을 끝내지 못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미국이 타이완해협에 개입했고 중국공산당의 타이완 공격 구상에는 예상하지 못한 장벽이 생겼다. 타이완 내부의 공산당 지하망 역시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뒤였다.
1949년 대륙에서 끝난 것처럼 보였던 국공내전은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난징과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지하전은 타이베이로 옮겨왔다. 이후 한쪽은 타이완 내부에 사람을 심으려 했고, 다른 한쪽은 대륙 내부를 들여다볼 정보망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바다는 두 체제를 갈라놓았다.
그러나 비밀전쟁까지 끝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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