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서울 지하철 2호선 대림역을 나서면 서울의 다른 동네와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음식점과 식품점이 이어지고 양꼬치와 만두, 훠궈를 파는 가게들이 골목을 채운다. 한국말과 중국말이 함께 들리고 주말이면 장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중국동포들로 거리가 붐빈다.
대림동.
한때 가리봉동이 중국동포들의 ‘첫 번째 서울’이었다면 대림동은 그들이 한국에서 정착하며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생활 중심지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가리봉동에 모여들었던 중국동포들의 생활권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으로 넓어졌다.
재개발과 주거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쳤고, 한국에 장기간 머무는 사람이 늘면서 새로운 주거지와 사업 기회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2007년 방문취업제가 시행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중국과 옛 소련 지역 동포 가운데 국내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절차를 거쳐 취업 기회가 확대됐다. 이전에도 취업관리제와 특례고용허가제 등이 있었지만 방문취업제 도입으로 입국과 취업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
한국에서 몇 년 일하고 돌아가려던 삶도 조금씩 달라졌다.
대림동은 그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중국동포를 상대로 음식점과 식품점, 여행사와 직업소개소 등이 들어섰다. 사람이 늘자 미용실과 휴대전화 판매점, 부동산중개업소 등 생활에 필요한 업종도 따라왔다.
중국동포는 더 이상 손님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열고 사람을 고용하는 사업자가 됐으며 한국인 주민과 같은 시장을 이용하는 이웃이 됐다.
대림동은 중국동포가 노동자에서 생활자와 자영업자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리가 커질수록 또 다른 이름이 따라붙었다.
‘조선족 거리’.
그 이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었다.
중국동포에게는 고향 음식을 먹고 익숙한 말로 이야기를 나누며 일자리와 생활정보를 얻는 공간이었다. 한국인에게도 중국 현지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상권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림동은 어느 순간 범죄와 함께 언급되기 시작했다.
중국동포가 연루된 강력사건이 크게 보도될 때마다 인터넷과 대중문화에서는 ‘조선족’과 ‘범죄’가 반복해서 연결됐다.
2017년 영화 「청년경찰」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시선의 충돌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영화는 대림동을 배경으로 중국동포 범죄조직이 납치와 불법적인 인체 거래 등에 관여하는 모습을 그렸다. 중국동포 주민들은 영화가 대림동과 중국동포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며 반발했다.
논란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중국동포 주민 62명은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제작사가 부정적 묘사로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꼈을 원고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을 일으킬 표현이 없는지 살펴보라는 취지의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양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소송은 마무리됐다.
논란의 핵심은 영화 한 편에만 있지 않았다.
한 개인이 저지른 범죄는 언제부터 한 집단 전체의 얼굴이 되는가.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를 한국인 전체의 특성으로 설명하지 않듯 중국동포가 저지른 범죄 역시 한 개인의 행위와 공동체 전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가 관련된 사건에서는 국적이나 출신지역, 민족이 유난히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사람보다 이름이 먼저 보인다.
평범한 일상은 뉴스가 되기 어렵다.
대림동에는 식당 주인이 있고 회사원이 있으며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자가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가 있고 한국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도 있다.
실제로 당시 대림동을 관할하던 경찰 관계자도 다른 근무지와 비교해 이 지역이 특별히 흉악범죄가 많거나 출동이 잦은 곳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 대림동을 바라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중국동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거리에 중국어 간판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몇몇 범죄자의 국적을 수많은 중국동포의 얼굴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족 거리’라는 이름 뒤에는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려는 시선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중국에서 온 같은 민족을 ‘조선족’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그리고 중국동포들은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까.
다음 회에서는 그 이름의 역사와 의미를 따라가 보려 한다.
※ 이 연재는 정부·공공기관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연구자료 등 공개된 기록을 토대로 한국과 중국동포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는 사회문화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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