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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조선족은 없다 ⑩] 같은 중국동포인데 왜 서로 멀어졌나

  • 허훈 기자
  • 입력 2026.10.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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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 사람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로…30년 한국살이가 바꿔놓은 중국동포 사회의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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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서로 다른 경제적 위치에 놓인 중국동포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같은 고향에서 출발했지만 직업과 생활환경에 따라 달라진 현실을 담았다.(인터내셔널포커스)


한국에 먼저 들어온 중국동포들은 고향 사람이 찾아오면 일자리부터 알아봐 주곤 했다. 공장에 빈자리가 있는지 수소문하고, 당장 머물 곳이 없으면 숙소를 소개했다. 친척의 친척, 같은 마을 출신이라는 인연만으로도 도움을 청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 한국은 낯선 땅이었다. 한국말이 통한다고 생활까지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일부터 집을 얻는 일까지 고향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중국동포 사회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한때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모은 돈으로 식당이나 회사를 차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건설현장과 공장을 오가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경제적 격차가 생겼다.


고향에서는 형님, 동생 하던 사이가 한국에서는 사장과 직원으로 만나는 일도 낯설지 않다.


문제는 돈이 오가는 순간부터다. 사업주에게 인건비는 줄여야 할 비용이지만 노동자에게는 가족의 생활이 걸린 문제다. 일이 없으면 쉬어야 한다는 사장과 하루라도 더 일해야 한다는 직원의 사정은 다르다. 임금이나 근무시간을 놓고 다투기 시작하면 고향 인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였기에 서운함이 더 커질 수 있다. 고향 사람인데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과 친분을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불만이 맞선다.


중국동포 사회 내부의 변화는 일터 밖에서도 나타난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거래처와 사업 관계자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넓혀간다. 노동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여전히 동료들과 어울린다. 경제적 형편이 달라지면서 만나는 사람도, 주고받는 이야기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반가웠지만 이제는 직업과 생활 수준이 관계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해졌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 잘되면 기쁜 일이지만, 그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 섭섭함이 생긴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사람은 옛 인연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 취업 소개, 사업상 편의 요청이 반복되면 친했던 관계마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중국동포 사회의 단체와 모임도 이런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향 친목을 위해 시작한 모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운영 방식이나 대표성을 놓고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사업하는 사람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임에 기대하는 역할도 같지 않다.


물론 모든 중국동포 사회가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랜 세월 서로를 도우며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도 많다. 다만 같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해관계의 차이까지 덮을 수는 없게 됐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시선도 한몫한다.


한국에서는 중국동포를 여전히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중국동포 사업가와 건설노동자, 대학 교수와 식당 종업원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외부에서는 모두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갈등이나 계층 차이는 좀처럼 관심을 받지 못한다. 중국동포 사이의 분쟁이 알려지면 개인 사이의 문제보다 집단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국동포 사회 역시 한국 사회의 일부다. 돈을 벌어 계층을 이동한 사람이 있고, 오랜 노동에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 사업에 실패해 다시 일터로 돌아간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들의 관계를 고향이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서로에게 의지했던 사람들은 이제 각자의 생활을 꾸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향 인연보다 경제적 형편과 이해관계가 앞서는 순간도 생겼다.


같은 중국동포인데 왜 서로 멀어졌을까.


고향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한국에서 보낸 세월 동안 서로의 처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때 서로를 붙잡아 주던 고향 인연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 인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아졌다. 같은 고향에서 왔다고 평생 같은 편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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