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육정산에서 발해의 역사를 돌아본 뒤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자 연변의 중심 도시 연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심으로 들어서자 교차로마다 조선어와 중국어가 함께 적힌 간판이 이어졌고, 버스 정류장에서는 조선어와 중국어 안내방송이 번갈아 흘러나왔다. 중국 동북지역의 도시를 걷고 있었지만, 거리에서 들려오는 조선어와 익숙한 간판 풍경은 마치 또 다른 문화권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전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중국어와 조선어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조선어로 손님을 맞이했고, 옆 테이블에서는 중국어 대화가 이어졌다. 두 언어가 특별한 구분 없이 일상 속에서 함께 사용되는 모습은 연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연길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행정 중심지이자 조선족 문화의 중심 도시다. 거리 곳곳에서는 조선어 표지판과 조선족 전통문양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언어와 생활문화가 거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은 연길만의 개성을 보여준다.
연변대학교 주변은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학생들은 카페에서 과제를 하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관광객들은 이른바 '왕훙챵(网红墙)'으로 불리는 조선어 네온사인 거리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골목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젊은 여행객들은 조선어 간판을 배경으로 여행의 추억을 기록하고 있었다.
연변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학교에서는 중국어와 조선어를 함께 사용하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대부분 조선어로 이야기한다"며 "두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연길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김치와 장아찌를 담그는 냄새가 골목을 채웠고, 숯불 위에서 고기를 굽는 소리가 식당 밖까지 흘러나왔다. 말린 명태와 고춧가루, 찹쌀떡을 진열한 상점 앞에서는 상인들이 조선어와 중국어를 오가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장은 관광지가 아니라 연길 시민들의 평범한 삶이 이어지는 생활공간이었다.
연길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조선족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연길시는 '식상연길·미동중국(食尚延吉·味动中国)' 행사를 통해 시민 투표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연길 10대 필수 음식'과 우수 음식점을 선정하며 지역 음식문화를 도시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연길의 진짜 매력은 유명한 맛집보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들은 단골 식당으로 향했고, 학생들은 냉면과 김치말이국수로 식사를 해결했다. 관광객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지만, 연길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한 끼였다.
거리에서 만난 한 조선족 주민은 "도시는 많이 변했지만 명절을 보내는 방식과 음식, 조선어는 지금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며 "젊은 세대도 부모와 조부모를 통해 전통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연길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도시다.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조선어 간판이 걸려 있고, 프랜차이즈 카페 옆에는 전통 떡집과 막걸리 가게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거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생활 속에서 이어가는 도시라는 점이 연길만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발해의 유적이 연변의 과거를 보여준다면, 연길은 조선족의 현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도시다. 역사는 박물관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거리의 조선어 간판, 사람들의 대화, 시장 골목의 풍경 속에서 조선족 문화는 오늘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연길 시민들의 부엌'이라 불리는 서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변을 대표하는 냉면과 숯불구이, 돌솥비빔밥, 그리고 '연길 10대 필수 음식'이 사랑받는 이유를 시장 골목과 노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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