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국 전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부 정치권과 보수 진영이 반대 여론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관련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증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태가 미국 정치권과 싱크탱크, 기업 이해관계가 결합해 특정 서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근 미국에서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산업시설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생성형 AI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은 수십억~수백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AI 산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프라가 데이터센터인 만큼 미국 정부와 산업계도 이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근 미국의 투자 증가분 상당 부분이 AI와 데이터센터 건설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지역 개발 문제가 아니라 미국 경제 성장 전략과 직결된 사안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주민들은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하고 소음과 환경 부담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건조 지역에서는 지하수 고갈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 가능성도 논란거리다.
이 같은 갈등은 올해 5월 유타주에서 추진된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계기로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다. 총 투자 규모가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 승인되자 주민들은 환경 영향과 수자원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 시위에 나섰다. 반대 측은 승인 과정 역시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처음에는 지역 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였던 논쟁은 곧 정치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사업 투자자인 캐나다 출신 억만장자 케빈 오리어리가 시위 참가자들의 외부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뒤 일부 보수 성향 매체와 정치권 인사들이 잇따라 중국 연계설을 제기했고, 논쟁의 초점도 환경 문제에서 안보 이슈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후 논란은 빠르게 확대됐다. 일부 연구기관은 외국 자금이 반대 운동에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보수 매체들은 이를 집중 조명했다. 이어 정치권에서는 연방 차원의 조사 필요성이 거론됐고, 일부 AI 업계 인사들까지 중국발 온라인 여론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른바 ‘중국 배후설’이 전국적 논쟁으로 번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미국의 기술 전문 매체와 공영방송 등은 관련 의혹을 검토한 결과 중국 정부가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을 조직하거나 자금을 지원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특정 세력의 조작이 아니라 환경 문제와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실제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특히 이번 논란은 미국 싱크탱크의 역할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일부 연구기관들은 반대 운동과 외국 세력의 연관성을 제기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논쟁 확산에 불을 지폈다. 반면 비평가들은 이러한 보고서가 객관적 연구 결과라기보다 특정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싱크탱크는 원래 정책 연구와 대안 제시를 목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일부 연구기관들은 정책 개발보다 정파적 메시지 생산과 여론전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주요 싱크탱크들이 특정 정치세력이나 후원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한다. 과거 지역 개발 갈등에 머물렀던 사안이 이제는 AI 산업과 국가안보, 미·중 경쟁 구도와 맞물리며 전국적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주민들의 환경 우려와 생활권 문제는 어느새 지정학적 갈등과 안보 담론 속으로 편입됐고, 논쟁의 초점도 점차 이동하고 있다.
결국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중국이 아니라 AI 산업 확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지역사회의 수용성 문제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미국 내에서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외부 개입설이 갈등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센터 확대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환경 부담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향후 정책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개발 갈등을 넘어 미국 사회의 새로운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AI 산업 육성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는 연방정부와 빅테크 기업, 환경 부담을 우려하는 지역사회, 그리고 이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이다. 이번 논란은 미국의 AI 패권 경쟁이 기술 영역을 넘어 사회·정치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이터센터 논쟁이 향후 미국의 AI 경쟁력, 에너지 정책, 환경 규제, 지역 자치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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