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 별세와 함께 드러난 ‘극단적 반공 정치’의 민낯
글|안대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과 시민 사회 전반에서 애도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평가와 논쟁이 엇갈렸던 정치인이지만, 한 시대를 살아온 공인의 죽음을 두고 최소한의 예를 지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라는 인식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일부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고인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는 조롱, 시신을 특정 국가나 이념과 연결해 모욕하는 발언, 역사적 사건을 왜곡해 낙인을 찍는 표현들이 공개 댓글로 버젓이 게시됐다. 정치적 비판의 언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감정 과잉이나 일시적 분노로 설명되기 어렵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죽음조차 정치적 응징의 대상으로 삼고, 인간의 생애를 하나의 이념적 표식으로만 환원한다는 점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넘어, 정치가 인간에 앞서는 순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징후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런 언어가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자임하는 일부 강경한 반공 정치 담론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자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공동체 밖의 존재로 밀어내는 적대적 정서가 고착화돼 있다. 비판은 정책과 행위에 향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존재 자체가 공격의 대상이 된다.
보수 정치의 본령은 제도와 질서를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극단적 반공 정치는 이념을 절대화하며, 정치적 반대자를 ‘정정당당히 논박할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서 애도와 절제, 공적 평가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규범은 쉽게 무너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모습은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할 때 흔히 지적되는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념에 사로잡혀 인간을 먼저 보지 못하는 태도는, 정치 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사회를 황폐화시킨다. 민주국가의 시민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민주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은 언제든 평가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가 남긴 정책과 결정, 말과 행동은 역사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조차 조롱과 혐오를 멈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판이 아니라 정치의 실패다. 애도의 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는 토론의 선도 지키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이념이 인간을 압도하는 순간 사회는 무엇을 잃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애도의 언어를 잃은 정치 문화는 결국 스스로의 품위를 먼저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다.
정치가 인간 위에 올라서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절제,
그것이 민주사회의 마지막 방어선이다.
BEST 뉴스
-
중국인 무비자 논란이 던진 질문…개방에는 질서와 책임이 따른다
▲ 경기도 부천시에 설치된 무료 생수 나눔 시설. 폭염 속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생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인터내셔널 포커스]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고 외국인 입국심사와 범죄... -
“중국인 모욕하면 처벌?” SNS서 번진 논란, 법안을 들여다보니
“앞으로 중국인 욕하면 처벌받는다.”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국을 비판해도 처벌받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따라붙는다. 과장이라고 넘기기에는 실제 발의된 법안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SNS에 떠도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 -
확인보다 빠른 의심…한국의 ‘가짜뉴스 시장’은 왜 사라지지 않나
▲ 한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건강 이상설과 가짜뉴스 문제를 상징적으로 구성한 이미지. 실제 사건 현장 사진은 아니다. 사진=인터내셔널포커스 출처가 불분명한 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올라온다. 처음에는 몇몇 사람이 공유하... -
건보·국민연금 다음은 실업급여…왜 또 ‘중국인’인가
건강보험에 이어 국민연금, 이번에는 실업급여다. 논란이 생길 때마다 ‘중국인’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이번에 공개된 숫자도 눈에 띈다. 2025년 외국인 실업급여 수급자 가운데 중국동포와 중국 국적자가 77.9%, 지급액으로는 78.9%를 차지했다. 분명 높은 수치다. 그렇다고 ... -
청년은 34세까지 문화비 지원…중장년은 왜 대상 밖인가
361억 원에서 7,925억 원으로. 정부가 내년에 추진하려는 청년문화패스 예산이다. 단순히 조금 늘어난 정도가 아니다. 20배가 넘는다. 지원 대상도 기존 19~20세에서 19~34세로 크게 넓어진다. 공연과 전시뿐 아니라 영화, 도서, 체육활동에도 쓸 수 있다.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 -
중국인이 한인타운에서 태극기를 찢는다면
▲ 차이나타운 앞 오성홍기 훼손 논란을 계기로 ‘중국인이 한인타운에서 태극기를 찢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담아 표현한 일러스트. [인터내셔널포커스] 차이나타운 앞에서 오성홍기를 찢는 영상을 봤다. 중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려는 행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