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3(목)
 


■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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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부 서쪽 동네에서 살 때 순자네는 연변의학원에 출근하는 정규창 교수네와 아주 사이가 좋게 지냈다. 가정과 가정 사이의 관계란 흔히 여인들끼리 가깝게 보내면 남정들도 따라서 친해지는 법이랄가? 당시 순자도 정규창 교수의 부인들 좋아했지만 정규창 교수의 부인 조분단 여사 역시 순자 친척 이상으로 좋아했다.

 

조분단 여사가 순자를 좋아하는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내포되어 있었다.

 

첫째, 직업이 없는 일반 가정주부였지만 여느 가정의 연인들에 비해 연박한 지식과 고매한 도덕수양을 겸비하고 있었다.

 

순자네와 처음 알게 되였을 때 조분단 여사는 순자의 높은 지식수준과 도덕수양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위생학교 김용환 선생의 부인이니 당연히 현모양처일 것은 물론 일정한 지식수양을 갖췄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신문을 읽고 일기를 쓰고 가정규칙제도 같은 것을 세우는 것을 보면 여느 가정의 주부들에 비해 너무나도 돋보였던 것이다. 헌데 의문스러운 것도 있었다. 이렇듯 지식이 있고 도덕수양까지 겸비한 여성이 왜 직업이 없이 그냥 가정주부로 남편을 섬기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담?…

 

후에 조분단 여사는 순자가 연변에서도 유명한 용정 명신녀자중학교를 졸업한 뒤 화룡현 서성구소학교의 교원으로 배치받았으나 단연히 그것을 포기하고 고아로 의지가지가 없는 김용환한테 시집가 남편의 뒤바라지를 하여 이젠 떳떳한 연변위생학교의 교단에까지 서게 했다는 사연을 알고는 더없이 감탄하였다고 한다.

 

둘째, 순자는 남한테는 하냥 선량한 마음으로 베풀고 쓰다듬어주고 하였으나 자기 자신과 자녀에 대해서는 항상 엄하게 요구하고 단속하였다.

 

그 사례로 순자는 자신과 가정구성원들한테 많은 공약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 중 돈에 대한 공약은 다음과 같다.

 

1. 아무리 간고하고 어려워도 우리보다 더 힘들게 하는 사람과 가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활적 여유가 있은 뒤 남을 도우려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남을 도울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만다.

 

2. 아무리 어려워도 남한테 손을 내밀지는 말아야 한다.

 

3. 남들이 주는 것을 받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것을 무엇때문에 받아야 하고 받아도 될 것인지를 잘 생각해보고 받아야 한다.

 

4. 주은 돈이거나 물건은 꼭 임자에게 돌려줘야 하고 가령 주인을 찾지 못해 돌려주지 못하면 반드시 조직에 바쳐야 하며 백화상점 등에서 돈을 더 받았을 경우 당장 돌려주어야 한다. 

 

5. 남의 돈이거나 물건을 훔치면 절대 용서못할 범죄행위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상의 5가지 내용인즉 남을 도와주고 사랑해주되 절대 남의 도움을 바라거나 탐욕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말로 귀납된다.

……

사실 그 당시 순자네 가정을 놓고 보면 남편 김용환의 많지 않은 노임에 매달려 순자와 자식 셋 영남이, 영순이, 영옥이 이렇게 다섯식구가 호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950년대 초기, 넉넉하지 못하기는 여느 가정도 마찬가지었지만 남편 한명의 노임으로 살림을 조직하는 순자네 가정은 더욱 풋돈도 쪼개써야 하는 형편이었다.

 

거기에 남편이 자주 어렵게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와 밥술을 들게 하는데다 고향인 시골에서도 문턱이 닳게 손님이 찾아오군 했다. 말그대로 남편이 의지가지없이 살면서 공부할 때는 옆에 친척이라고는 볼 수 없던 것이 이른바 출세하여 도회지인 연길에서 교편을 잡게 되자 서로 촌수에 걸리는 친척이라며 많이도 찾아왔다. 어제는 6촌형제라고 찾아왔고, 오늘은 7촌 숙부라는 분이 찾아왔으며 올 때마다 “옛날 용환이가 공부할 때 동정을 많이 했고 도와주기도 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순자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의 집에 손님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모두가 우리를 믿고 찾아온다”고만 여겼다. 없는 살림에 손절구로 떡가루를 내서는 색다른 음식을 만들었고 식품상점에 달려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서는 소주라도 받아서는 대접했으며 돌아갈 때는 노비도 얼마간씩 장만해드리군 했다.

 

연길냉면이라면 그 때에도 연변내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음식이었다. 연길로 이사해온지 얼마 안되어 순자는 언제인가 온 가족의 생활개선으로 연길냉면 한그릇을 먹어보았는데 얼큰하고도 시원한 그 맛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으며 간혹 냉면집앞을 지나노라면 그 냄새만 맡아도 입안에서 군침이 스르르 돌군 하면서 참을 수 없는 허기를 느끼군 했다. 하지만 그 냉면 한그릇의 값이면 가정에서는 하루 세끼의 생활비가 된다는 생각에서, 또한 내가 오늘 냉면을 먹고 싶을 때면 아직 수수밥 한끼나마 배불리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며 그냥 지나치군 했다.

 

그렇듯 자주 냉면집 문앞을 그냥 지나치던 순자였으나 동네의 노인이거나 환자분 같은 이들이 혹시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면 지체없이 달려가 표를 사고 줄을 서서 냉면을 받아서는 대접시키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시골에서 친정아버지가 오래간만에 딸집으로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정아버지 ㅡ 뭘 대접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순자는 장마당에 가서 찰떡을 사다가 대접시킬까 하다가 다시 시원한 냉면을 친정아버지한테 대접시키기로 하였다. 농촌사람들한테는 찰떡보다는 그래도 시원한 냉면을 대접하면 더욱 즐거워할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순자가 냉면집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냉면을 사려고 길다란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당시 “줄서기문화”는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식당에서 냉면이나 기름튀기같은 것을 살 때만 줄을 서야 할뿐만 아니라 남새점에서 감자 몇알을 사도 줄을 서야 했고 배급소에 가서 배급을 탈 때도 줄을 서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공급이 시장경제를 대체하던 그 시기, “줄서기문화”는 계획경제시대의 일종 풍경선이기도 했다.

 

순자는 줄을 서서 40분 정도 기다려서야 냉면을 받아가질 수 있었는데 이 정도면 적게 기다린 셈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한시간, 심지어 두시간씩 기다려야 냉면을 받아가지는 경우도 허다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다 팔리면 그대로 돌아서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군 했다.

 

냉면을 그릇에 받아담은 순자가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헐떡거리며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문득 한 동네에서 사는 한 할머니가 순자를 보더니 알은체를 했다.

“김선생네 댁, 어디에 이렇게 급히 다녀오우?”

 

“예, 할머니구만요. 시골서 친정아버님이 오셨는데 냉면 한그릇 대접시키려구요.”

 

“쯧쯧 기특두 해라. 냉면 좋지. 나도 저런 딸이 있었으면 이 삼복철에 냉면 한그릇 시원이 맛이나 보겠는데…”

 

“…?!”

 

그냥 지나치려던 순자는 문득 멈춰서고 말았다. 냉면을 자시고 싶어하는 할머니를 제쳐놓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할머니 제가 왜 할머니의 생각을 못했을가요? 그럼 이 냉면은 할머니께서 그냥 드세요. 냉면이야 제가 다시 가서 사오면 될거 안예요?”

 

순자는 “괜한 소리를 했다”며 사양하는 할머니한테 냉면 그릇채로 맡겼다.

 

“에그에그, 고맙기도 해라. 색시 그럼 나 먹겠수다.”

 

할머니는 게눈감추듯 순식간에 냉면 한그릇을 다 비웠다.

 

할머니한테서 빈 냉면그릇을 받아쥔 순자는 부랴부랴 다시 냉면집으로 종종걸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 때는 식당의 냉면이 다 팔리고 일군들이 한창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고 바닥과 유리창문 등을 닦고 있었다.

……

순자가 어깨가 축 처져갖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친정아버지는 냉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자가 빈 그릇만을 들고 집안에 들어서자 친정아버지는 “뭐, 줄을 섰다가 냉면이 다 나간 모양이구나. 그러면 기다리지 말고 일찍 올거지 그랬구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다 딸집이라고 찾아온 친정아버지한테 냉면 한그릇조차 대접하지 못하게 된 순자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 그런게 아니예요. 기실은…”

 

순자가 자초지종을 여쭈자 친정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딸을 나무람할 대신 오히려 칭찬하는 것이었다.

 

“잘했다. 난 내일이라도 절로 냉면집에 가서 사먹으면 되지만 그 노인네는 그럴 수도 없는 게 아니냐? 잘했다. 아주 잘했다.”

 ……

이렇듯 순자네 가정의 일거일동을 주시해왔던 조분단 여사였다. 그래서였던가. 조분단 여사는 순자와 순자네 가족성원 모두가 맘에 든다면서 자주 마실도 다녔고 혹간 어디로 나갈 때면 순자한테 집을 봐달라기도 하였으며, 명절기간이 되어 2-3일씩 집을 비울 때면 아예 순자한테 열쇠를 맡기기까지 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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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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