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도지사나 시장, 군수, 구청장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행정 경험이 필요할까. 의외로 답은 ‘필수적인 행정 경력은 없다’에 가깝다. 법이 정한 피선거권 요건을 갖추고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면 행정 경험이 거의 없어도 지방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 선거제도의 장점과 동시에 약점이 존재한다.
민주주의에서 주민이 지도자를 직접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다. 관료 출신만 단체장이 될 수 있다면 정치의 문은 좁아지고 행정조직이 폐쇄적인 엘리트 집단이 될 위험도 있다.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시민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나 ‘누구나 출마할 수 있다’는 것과 ‘누구나 행정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도지사와 시장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다.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고 수많은 공무원을 지휘하며 도시개발과 교통, 복지, 재난, 산업정책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행정기관의 최고 책임자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에서는 행정능력이 반드시 당락을 결정하지 않는다. 정당 지지도와 정치적 바람, 인지도와 이미지, 언론 노출 등이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밀리고, 행정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당선되는 것도 제도적으로 가능하다.
선거에서 이기는 능력과 행정을 잘하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기업에서 수천 명을 지휘하는 최고경영자를 뽑으면서 경영 경험을 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병원장이나 대학 총장을 선임하면서 조직 운영 능력을 무시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큰 예산과 조직을 움직이는 지방정부 책임자는 행정 경험이 없어도 선거에서 승리하면 곧바로 조직의 정점에 선다.
장관 인사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정치인이나 교수, 법조인이라는 경력이 그 자체로 수천 명의 공무원과 복잡한 정책을 지휘할 능력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박사’나 ‘교수’라는 직함 역시 전문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자료일 뿐 행정능력의 자격증은 아니다.
중국의 지도자 육성 방식은 한국과 상당히 다르다. 중국은 경쟁적인 주민 직접선거가 아니라 당 조직의 간부 선발과 승진 체계를 중심으로 지도자를 충원한다. 상당수 간부가 현·시·성 등 여러 행정단위와 중앙·지방의 보직을 거치면서 경력을 축적한다. 젊은 인재를 선발해 기층에서 경험을 쌓게 한 뒤 단계적으로 간부로 육성하는 제도도 존재한다.
이 방식에서 눈여겨볼 것은 정치체제 자체가 아니라 ‘큰 조직을 맡기기 전에 작은 조직과 현장에서 경험을 쌓게 하고, 그 과정에서 능력을 검증한다’는 인재 육성의 원리다.
물론 오랜 행정경력이 반드시 뛰어난 능력과 청렴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당 조직 중심 인사제도 역시 주민이 경쟁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직접 선택하고 심판하는 한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치체제의 차이와 별개로 중국이 지방과 기층에서 행정 경험을 축적한 인재를 단계적으로 더 큰 조직의 책임자로 육성하는 방식은 한국도 참고할 가치가 있다.
민주적 선출이라는 한국 제도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보자의 행정 경험과 조직관리 능력, 정책 집행 성과를 보다 엄격하게 검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민주주의와 행정 전문성은 서로 충돌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다.
정당부터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누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공천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후보자가 어떤 조직을 운영했고, 어떤 정책을 직접 집행했으며, 예산을 어떻게 관리했고, 위기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
유권자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유명한가, 말을 잘하는가, 어느 정당 사람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우리 지역의 막대한 예산과 행정조직을 맡겨도 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국민에게 준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얻었다는 의미이지 행정능력까지 자동으로 인증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기와 인지도는 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시는 인기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한국 정치가 이제 ‘당선될 사람’을 찾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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