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포투데이] 태국 사회의 도덕적 중심축이자 정신적 지주로 여겨지던 불교계가 대형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다. 태국 전역에서 존경받던 다수의 고위급 승려가 성추문과 금전 갈취 사건에 연루되면서, 국왕이 직접 공개 비판에 나섰고 정부와 의회도 종교 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는 등 전방위적 대응에 나섰다.
사건은 지난 7월 중순, 태국 경찰이 서른 살 안팎의 여성 위라완을 체포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에 따르면, 위라완은 최근 3년간 최소 13명의 승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뒤 이들을 협박해 약 3억8500만 바트(약 164억 상당)의 금전을 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녀는 승려들과 나눈 사진·영상 5000여 장을 저장해 두고 있었고, 이를 통해 협박을 지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승려는 자신이 소속된 사찰 계좌에서 거액을 인출해 송금한 정황도 드러났다.
해당 사건의 충격은 피해 승려 가운데 상당수가 태국 불교계 최상위층에 속한 고위급 승려라는 점에서 더욱 컸다. 이미 9명의 고위급 승려가 환속하거나 승적에서 제명됐고, 당국은 사진, 채팅 기록 등 디지털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 연루자를 조사 중이다. 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에 약 25만 명의 승려가 있으며 이 중 1만9000여 명이 고위직을 맡고 있다. 이번 사건에는 그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태국은 인구의 약 90%가 불교를 믿으며, 남성에게 출가 경험은 일종의 성인식으로 통한다. 고위급 승려는 신자들에게 도덕성과 청정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사찰과 승려의 삶은 지역 공동체의 중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깊숙이 사회와 연결된 불교계에서 벌어진 이번 스캔들은 단순한 종교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신뢰 기반을 흔들고 있다.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은 7월 중순,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통해 “승려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불교 신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불과 한 달 전인 6월에 고위급 승려 81명에게 수여했던 왕실 표창을 전면 취소하기도 했다. 태국 헌법상 국왕은 ‘불교 신자이자 모든 종교의 보호자’로 명시돼 있으며, 왕실은 전통적으로 불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번처럼 국왕이 직접 불교계를 질타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정부도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 품탐 웨차야차이 총리 대행은 관계 부처에 승려와 사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으며, 특히 재정 투명성 확보를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의회는 승려의 성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 초안을 마련 중이며, 향후 종교기관에 대한 입법적 개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태국국립개발관리대학(NIDA)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불교 위기’라는 이름의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60%가 “승려에 대한 신뢰가 줄었다”고 답했고, 90%는 “사찰 규율을 위반한 승려에 대한 형사처벌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국민 정서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제도적 정비를 요구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 단지 몇몇 승려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태국 불교는 국가 공인 종단인 ‘승가최고위원회’ 체계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지나치게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이 구조가 오히려 부패를 양산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 감시와 내부 견제 장치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 이번과 같은 사건의 반복을 부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마히돌대 종교연구소의 그리트 피리야타차굴 교수는 “승려 승진 과정이 불투명하고, 감시 기구도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근본적인 신뢰 회복을 위해선 외부 독립 기관의 감독을 포함한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 불교계는 더 이상 불투명한 구조 속에 숨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 왕실, 불교라는 세 축 위에 세워진 태국 사회에서 이번 고위급 승려 스캔들은 종교의 도덕성과 정치 권위의 정당성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신뢰의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필요한 건 ‘참회’가 아닌, 뿌리부터 되묻는 성찰과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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