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25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마무리하며 발표한 공동 선언문은 단 다섯 조항. 그중 실질적인 내용은 “국방비를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5%로 끌어올리겠다”는 합의 하나뿐이었다. 단출한 형식 너머로 읽히는 건 나토 내부의 균열, 그리고 돌아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배려였다.
트럼프는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북약 정상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외신들은 일제히 이번 회의가 트럼프의 입맛에 맞춰 조율됐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은 “사실상 트럼프 맞춤형 회의”라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가 트럼프에게 보낸 사전 약속 문자와 회의 내내 이어진 예우에 “존엄마저 버렸다”고 평했다.
뤼터는 회의 직전, 나토 회원국들로부터 5% 국방비 목표를 미리 확보했고, 회의장에서는 “트럼프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미국 안보 전문가 토리 타우시그 전 국방부 고문은 이를 두고 “코를 틀어쥐고 참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나토는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로 증액하기로 했으며, 이 중 3.5%는 무기 등 핵심 국방비로, 1.5%는 인프라 보호와 사이버 안보 등에 쓰일 예정이다. 2029년엔 이행 점검도 예고됐다. 트럼프는 “아주 성공적인 회의였다”고 자평했다. 그동안 나토 집단방위 조항인 제5조에 의문을 표해왔지만, 이번엔 제5조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회의 직전까지만 해도 “제5조에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고 말해 여전히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중요한 건 선언문의 분량보다 내용이다. 중국 외교학원 리하이둥 교수는 “이런 짧은 선언문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나토가 더 이상 폭넓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 문서는 트럼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미국의 핵심 주장만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선언문은 38조였고, 2023년 빌뉴스 회의는 90조에 달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관련 언급도 거의 사라졌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나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표현도 빠졌다. 선언문에서 러시아는 그저 “유럽-대서양 안보에 대한 장기적 위협”으로만 규정됐다. 뉴욕타임스는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핵심 의제여야 했지만, 트럼프 중심 현실에서는 다른 우선순위가 적용됐다”고 지적했다.
국방비 5% 목표에 대한 이견도 뚜렷하다. 스페인은 “그럴 계획 없다”며 목표치를 GDP의 2.1%로 설정했고, 벨기에와 슬로바키아 등도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선언문이 ‘모든 동맹국’이 아닌 ‘동맹국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일종의 해석 여지를 남긴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스스로 이 목표에서 예외다. 트럼프는 “미국은 이미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며 자신들은 5%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중 잣대가 나토의 결속을 해친다고 우려한다. 브뤼셀의 싱크탱크 ‘에그몬트 연구소’ 스벤 비스코프 소장은 “트럼프가 말한 5%는 근거 없는 숫자”라며 “그가 정말로 만족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유럽이 국방비를 늘리면 트럼프는 ‘그럼 스스로 방어하면 되겠네’라고 말할 것이고, 늘리지 않으면 ‘너희는 방어할 의지도 없다’고 비난할 것이다.”
나토는 다시 돌아온 트럼프의 심기를 맞추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이 회의가 남긴 건 단순한 합의 이상의 불편한 진실이다.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국방비 증액이라는 역사적 기록 너머로, 흔들리는 가치와 미묘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선언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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