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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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세기 1970년대는 미국과 구소련이 한창 군비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당시 이 두 초대국은 상대 국가에 힘을 과시하기 위해 가끔씩 엉뚱한 프로젝트를 고안해 냈는바 과학기술이 엄청 발달했다는 국가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과학기술이 보다 낙후했던 후진국의 입장에서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1980년대 당시 미국 대통령은 우주에서 군비경쟁을 벌여 핵폭탄을 우주로 보내겠다는 ‘스타워즈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자 구소련 역시 이를 따라잡기 위해 대량의 물자를 투입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고안했다. 사실 이 계획은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요구가 너무 높아 미국도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스타워즈 계획’을 홍보하는 것으로 구소련을 속여 경쟁에 가담시켰고 그들 자신들도 이를 실현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 시기 구소련은 미국의 ‘아폴로호’ 우주선이 달 착륙에 성공하자 국제사회에서의 자국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해 적절한 ‘심리 계획’을 내놓았다.

 

그 ‘심리계획’에는 막대한 양의 자원 즉 석유 및 각종 희소금속 등의 자원을 포함하고 있었다. 구소련의 이 계획은 전쟁을 지하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땅굴을 파고 핵폭탄으로 미국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듣기에는 거창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면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1970년대 구소련은 코라 반도와 로위의 접경지대에서 땅굴 파기 장소를 선택했다. 구소련은 20년 동안 이곳에서 1만2263미터를 많은 밑천을 쏟아 부으며 뚫었다. 그런데 인류가 발굴한 가장 깊은 기록에 이르자 그만 시추 드릴이 안에서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작업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당시 전 세계 모두가 구소련이 놀라운 새 기록을 세우려 한다고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구소련은 이 계획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으며 깊은 곳의 시추 장소를 철저히 감추었고 이 계획의 비밀도 영원히 봉인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소련의 시추발굴을 멈추게 했는지?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은 무엇인지? 어떤 이들은 당시 구소련이 발굴을 멈춘 원인은 땅속 깊은 곳에서 지옥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한편 구소련만 지구를 횡단하는 땅을 파고 있은 것이 아니라 미국도 그때 땅을 파고 있었다. 미국은 오클라호마 주에서도 초심시추 9583미터의 깊이를 파고 있다가 나중에도 원인도 밝히지 않고 멈춰 버렸다. 구소련이 공개한 대로라면 이번 시추의 목적은 지층 깊숙한 곳의 오래된 암반층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구체적인 형성 비밀을 밝혀내는 아주 순수한 연구 성격의 실험일 뿐이라는 것이 미국 측의 대외홍보였다. 어찌됐든 미국과 구소련이 모두 지구를 뚫는 첫 번째 국가가 되려고 했을 때 모두들 이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새로운 연구는 당시의 그 이론을 뒤집었다.

 

지구 평균 반경은 6731킬로미터에 이르며 당시 미국과 구소련이 지구를 뚫으려면 최소 1만 2000킬로미터 이상을 굴진해야 했다. 그렇게 미국과 구소련 양국을 모두 과대평가해 양국의 재력을 모두 소진해도 이는 이룰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구소련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자들에 따르면 공사가 중단된 것은 구소련 측이 궤변과는 무관한 헛수고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구소련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입했다. 수천수만의 과학연구 인력과 노동자들을 모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는 대학교수보다 더 많은 보수를 주는 한편 모스크바 집을 얻을 수 있는 특혜까지 줬다. 지구를 뚫어보려는 구소련의 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1만 2000미터 깊이까지 시추한 구소련은 당시 기술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달았다. 당시 1만 2000미터 깊이 지각의 온도는 이미 180도에 이르렀고 설비 파손도 심각해져 더 이상 시추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구소련이 시추한 깊이가 9킬로미터에 달했을 때 지각 샘플에서 발견된 금의 비율은 톤당 4그람으로 상업적으로 보면 금을 캐는 기준이었으며 9킬로미터 깊이의 지층에서는 채굴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것이 당시 구소련이 시추에서 발견한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다른 성과는 아직 러시아에서 더 이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당시의 이 프로젝트는 폐쇄적인 상태로 미소 패권시대를 각인시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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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지구 뚫기 프로젝트 갑자기 멈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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