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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투사, 양이원영 의원
    [동포투데이] 탈원전 운동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양이원영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아 이 방면의 대표적인 국회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이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해 의정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이다. 양이 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 저지 대응단을 조직하여 4월 6일 일본을 방문했다. 대응단은 “오염수 방출하면 우리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방문을 두고 여권에서는 ‘빈손 외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양이원영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국회가 나선 것”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계획을 발표한 이후 줄곧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사회적으로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승인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지지도 찬성도 한 적이 없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찬성한 적은 없으나 침묵해 온 것은 사실이다. ‘침묵은 오염수 방류 공범’이라는 것이 양이 의원의 생각이다.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방류 저지 대응단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노하여 이번에는 머나먼 유럽 영국에 날아갔다. 런던 현지 시간으로 9월 16일(토) 오후 4시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대책총괄위원회 우원식 의원, 송기호 정책기획 본부장은 국제해사기구(IMO) 방문하여 현직 임기택 사무총장과 차기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아르세뇨 도민게즈 국장을 1시간 40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대응단은 “미래세대와 해양 생태계를 위해 일본 정부가 허용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사성 폐수 투기는 런던의정서 법률 체계에 따라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서한을 전달하고 또 다음과 같은 우려 사항을 말했다. 먼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최소 30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투기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간 해양투기에 의한 누적 영향으로 먹이사슬을 통한 생태계 피해를 우려. 두 번째로 바다에 방사성 오염수를 투기하지 않는다는 대안 즉 육상에 보관하거나 수증기 증발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수 해양투기는 나쁜 선례가 되어 인류와 미래세대 모두의 자산인 바다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대응단은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한국과 일본이 협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해사기구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단이 이렇듯 동분서주하면서 적극 나설까? 만약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더라면 야권 의원들이 ‘설자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양이 의원을 비롯한 야당 대응단의 동분서주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전력 1차 오염수 방류 3개월 전쯤 한국 정부는 사회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시찰단을 일본에 보냈다. 5월 21~2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시찰단은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까지 총 21명으로 구성되었다. 정부 시찰단 인원수는 방대하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이 의문을 표할 정도로 말 타고 꽃구경하다 온 것 아니냐는 시선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시찰단 명단조차 밝히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쉬쉬하면서 일본 방문을 진행했으니 국민들의 비판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도쿄전력은 10월 5일부터 2차 방류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지난 9월 28일에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차 방류 때와 같이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을 통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전문가를 후쿠시마 현지로 파견한다.’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지난 1차 방류 때와 마찬가지로, 방류 관련 실시간 데이터와 도쿄전력이 시료 채취 및 분석 후 공개하는 정보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한다.”고 말했을 뿐 방류 자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내지 않고 있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두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반대는 고사하고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수산물 오염은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비롯한 관료들이 수산시장을 방문하여 회를 먹는 쇼까지 벌이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는 정부 차원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입장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에 오염수 방류 반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호랑이와 가죽 흥정을 벌이는 것과 같이 황당한 짓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 전체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다. 양이 의원 같은 분들을 비롯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공조가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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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단독 인터뷰] 강창일 전 주일대사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내주는 나라가 아니야”
    [동포투데이] 얼마 전 G7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개최국인 일본의 초대를 받아 한국도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회복 및 정상화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쌓여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한일관계를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생겨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약 130만 톤의 해양 방류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 기업 없이 마련하겠다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 갈수록 도가 지나치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슈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해묵은 역사문제부터 최근 있었던 G7을 주제로 일본에 정통한 강창일 전 주일대사(현 동국대 석좌교수, 4선 국회의원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역임)와 일문일답을 진행하며,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검증, 피해국도 포함되어야 -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오염수 방류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므로 바다 환경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해사기구(IMO), 그린피스 등 환경 전문가가 오염수 검증에 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객관성이 담보된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만 검증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을 보낸다? 결과에 대한 신뢰도 어려울 뿐더러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등 많은 국가가 피해를 입을 걸로 예상되는 국제적인 문제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일본에서는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인체에 해를 줄 수준은 아니라고 하던데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신뢰 가능한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미국, 캐나다에서 검증할 게 아니라 피해국의 전문가가 검증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일본은 IAEA 외에 특정 국가에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데, 한국의 시찰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찰이야 누구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료 채취도 못 하는 시찰은 의미가 없다. 시찰이 아니라 ‘검증'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중요한 자료를 절대 내놓지 않아서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다. - 이번 시찰단 구성, 어떻게 되는지? 정부 기구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누군지 구체적으로 명단 공개도 안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지금 제일 문제인 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방류를 전제로 하고 시찰단 파견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국이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어 들러리 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 그렇다면 이번 시찰, 신뢰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기대하기 어렵다. 시찰 결과도 분명 큰 이상 없다고 결론지어질 것이 뻔하다.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이 다녀와서 발표하는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나. - IAEA에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 중이다. 이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는지?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없다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 발표를 보면 결과는 나온 것 같다. ▶ 강제 징용 배상 문제, 멀티 트랙 접근법 필요 -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기로 했다.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보나. 잘못된 행보라고 본다. 일본 정부를 동참시켜서, 일본 기업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제3자변제 방식을 통한 배상은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일본 가해 기업이 아닌, 제3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인데 일본의 자발적 사과를 끌어내긴 커녕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과 원만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말이 안 된다. -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도 좋지만 이런 역사 문제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나. 피해자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그러니 여론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 강제 징용 배상 해법에 피해자가 빠져선 안 된다. 해법 마련,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꾸준히,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물밑 작업을 지속해 일본 기업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 매국과 다를 게 없다. - 국익과 역사 문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몇십 년 동안 역사는 역사,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 이렇게 각각 멀티 트랙으로 접근했다. 잘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멀티트랙으로 진행되♘어야 했는데 갑자기 모두 일원화시키며 과거 역사를 없애버렸다. 이는 결국 역사를 팔아버린 집단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국민에겐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잠재된 어떤 정서가 있다. 물론 일본 여행도 잘 가고, 일본 문화도 좋아하지만, 과거사는 다른 문제다. 그러므로 경제는 경제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G7 정상회의 - 의장국인 일본의 초청을 받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이 일본의 초청을 받은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도 G7 정상회의에 4번 참석한 이력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만 초대받은 게 아니라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코모로, 쿡 제도 등 엄청 많은 국가가 초대됐더라. 이번 정상회의 주인공은 일본의 기시다 총리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조연 그 어디쯤이었을 거다. - G7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제공됐다고 하던데.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산물은 잘 안 팔린다. 아마 방사능 전부 체크해서 안전한 음식만 갖다 놨을 거다. 술은 증류수라 괜찮다고 하는 술과 안전한 음식 몇 개만 준비한 걸로 알고 있다. 후쿠시마산 물도 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정상회의 식탁에 올라 안전하다는 식으로 어필하고 있다. - 원폭 희생자에 대한 참배 일정도 있었다. 한일 정상 참배는 처음이라던데. 이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통령이 가는 건 당연한 건데, 기시다 총리가 간 게 중요하다. 그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마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배려해서 원폭 희생자 참배 일정을 진행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참배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 14명이 히로시마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히로시마 참배 일정 때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부 쪽에서는 회신도 없고 가타부타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히로시마로 향했던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진행한 거였다면, 한국에서 온 원폭 피해자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성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G7 정상회의 후, 여당에서는 ‘국격을 높였다' 야당에서는 ‘들러리 선 꼴밖에 안 된다'라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의 위상을 높인 건 없고, 한미일 회담을 아주 짧게 약식으로 진행했는데 정식으로 길게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 G7 정상회의 참석이 한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나. 딱히 변할 건 없어 보인다. 얻은 것과 손해 본 것 모두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친미, 친일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 올해 상반기에 나타난 중국무역적자, 친일본 행보와 관련이 있나. 안보 문제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그런데 이번 회담과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경제마저도 친미/친일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신냉전체제의 구축이다’와 같은 비판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정상회의 때 중국에 원한 살 발언은 안 했지만, 국가 이익이 걸린 경제 문제이므로 항상 신중해야 한다. - 이에 대한 주변국의 견해는 어떤가. 주변국의 견해에 앞서 중요한 건 All of nothing이다. 경제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엮여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앞서 계속 말한 것처럼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성격에 따라 트랙을 나눠 멀티로 접근해야 한다. ▶ 독도 문제, 과잉 대응하지 않는 것이 답 -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일본 고유영토’로 지칭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독도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독도 문제를 시끄럽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게 바로 ‘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이슈화해서 세계에 알림으로써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이 독도를 지키기 위한 영유권 주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나치게 대응하지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반응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 자극을 하는데, 독도 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독도문제가 이슈화되면 전 세계 사람들은 사실관계 확인을 떠나 ‘독도는 일본 땅인가?’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독도 문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좋다. -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다행히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잉 대응을 하지 않는 것. 무시가 답일 수도 있다. ▶ 한일관계, 큰 문제는 없을 것. 다만… - 통큰 양보를 하고도, 일본 측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윤 정부가 일본을 몰라서 그렇다.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주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배 째라 버텼더니 이것들이 깨갱하는구나' 하면서 더 큰소리를 친다. 그러므로 일본과는 논쟁과 논의를 지속하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할 명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고, 일본의 입장도 헤아리는 식으로 가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문제만 없으면 된다. 인적 교류는 이미 잘 이뤄지고 있고, 일본과는 기술 등 협력할 여지가 많다. 일본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도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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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9
  • [인터뷰] 박동웅 구로구의장, “구민과 더불어 외국인 주민도 살기 좋은 구로 만들 것”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은 노동력 공백에 따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에 의한 결혼이민자의 증가로 사실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021년 6월 말 기준 1,981,035명이다. 그중 서울시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25,316명 외국인 주민 중 18,190명이 중국동포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구로구의회 7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또한 3선 의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이번 제8대 의회에서도 후반기 의장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 주민 민원이 발생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박동웅 의장을 만나 그동안 의정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동포 및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과 지원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동웅 구로구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현재 시행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중국동포 관련 사업은? A.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동포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 보육료를 전액 자비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에서는 아마 시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구로구도 내년부터 보육료 20%가량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주민 자녀들을 조사해보니 약 천명 조금 넘는데 그 아이들에 대해 우선 보육료 20% 정도 지원해주고 차후에는 그냥 100% 지원하는 쪽으로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을 준비하려고 한다. 한 해에 7억 정도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Q. 구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A.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우리끼리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로벌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구로만, 구로구 사람들만 뭉치는 것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분들도 다 같은 한민족이고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차별 없이 함께 사회에 흡수돼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Q. 지역주민과 중국동포 간 소통과 화합에 대한 모범 답안이 있다면? A. 가리봉을 중심으로 구로구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구로구에는 다문화 정책과가 있는데 중국동포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라든가 필리핀 일본 등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명예 통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로구에는 봉사단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구로 4동 같은 경우는 다문화 봉사자들이 야간 순찰도 하고 있고 다문화 경노당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구로구가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산발적으로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상에서 동포들과 구청 간에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책은? A. 현재 구로구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가 추정할 수 있지만 정책은 정확한 수치를 갖고 하는 것이기에 다문화 정책과에서 우리 동포사회 실태 파악을 다시 해서 제도 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Q. 상호우호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문화교류 계획은? A. 한국의 수출 규모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또한 중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변과 교류(공무원 교류)를 했지만 사실 문화 교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향후에는 여러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서로 간 문화를 교류하고 우리 축제 때 해당 국가 도시의 전통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거꾸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축제라든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구로구에서도 문화예술단이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A. 현재로서는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안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체도 K-방역을 통해서 그냥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 구로구에서도 구로구만의 어떤 방향 시스템을 잘 구축해 구로구가 코로나19에서 좀 더 안전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야 구로에서 사업하시는 분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것이다. Q. 중국동포에 대한 이해정도는? A. 한 예로 아마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양꼬치와 고량주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젊었을 때 사실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어떤 사정 때문에 결국 못 들어간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계획 전공이다 보니 연변은 물론 선양,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다녀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많다고 생각하고 중국 양꼬치를 중국동포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는다고 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Q. 중국동포에 한 말씀 부탁한다면? A.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그냥 돈을 벌고 살다가 중국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보다도 역시 우리 조상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잘 돼야 동포사회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한민족으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주민들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제 동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도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다고 본다. 구로구의장으로서 향후 그 어떤 정책이나 개인적인 꿈도 있겠지만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에 와서 잘 살고 여기에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구로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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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9
  • 中, 98세 “쿵푸 할머니” 온라인 돌풍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최근 한 지역 모임에서 무술을 시연하는 98세 중국 “쿵푸 할머니”의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44만 번 이상 조회되고 4,5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쏟아지는 등 순식간에 히트를 치고 있다. “쿵푸 할머니”의 팬들은 “98세에도 걸을 수 있을까. 쿵푸가 장수의 관건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심지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 "쿵푸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주목했다. 본명이 장헥셴(張鶴仙)인 “쿵푸 할머니”는 2017년에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거의 10년 동안 고향인 저장(浙江)성 닝하이(寧海)현 장컹(張坑)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자 조카딸은 “할머니는 이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하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키는 약 1.5미터이다. 그의 쿵푸 동작은 유창하고 걸음걸이는 꾸준하다. 할머니의 마을은 쿵푸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할머니는 5살 때 중국 남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술 스타일인 장복싱의 6대 계승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는 매일 연습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아직 원기 왕성하다”고 말했다. “쿵푸는 폭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생 농부인 할머니는 이웃들과도 잘 지낸다. 막내아들인 펑은 “어머니는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돕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3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닝하이현에서 근무하고 있다. 닝하이현은 마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2012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삶은 평범하지만 잘 짜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매일 세 끼의 요리를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해산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끔 친구들을 찾아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후에는 쿵푸 연습을 한다. 장컹 마을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할머니의 집은 산비탈에 있기 때문에 식료품을 사러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등산이 필요하다. 언덕을 오르면서 꾸준히 하는 운동이 할머니가 정력이 왕성한 원인일 수 있다. 펑은 “어머니에게 도시에서 함께 살기를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즐겼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쿵푸 할머니”는 아버지의 장복싱 스타일을 주말과 휴일에 집에 오는 손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 이웃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무술 수업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자원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펑은 어머니와 가족들은 “쿵푸 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고 그것이 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사람들
    2021-08-16
  • 중국에서 캉테로 불리는 조선족 축구선수 김경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1992년 11월 18일, 김경도(진징다오·金敬道)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경도도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김경도는 축구에 대해 잘 몰랐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뛰어 노는 과정에서 축구에도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약간의 재능을 보였다. 연변은 축구의 전반적인 환경이 다른 곳과 다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방과 후 첫 오락으로 축구를 한다. 이러한 축구 환경에서 많은 우수한 축구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김경도는 2003년 옌볜(延邊)의 쑹칭링(宋慶嶺) 축구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축구 전문 훈련을 시작했다. 진징다오의 부모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떠났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김경도는 독립적이고 힘든 일을 잘 견디는 품성을 키웠다. 2008년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첫 국제대회를 치른 김경도는 눈부신 활약으로 그해 U-20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9년에는 U-20 대표팀 주장을 맡아 사상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소수민족 주장 자리에 올랐다. U-20 대표팀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09년 김경도는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김경도는 경기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니에스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이니에스타와 연락해 상대방이 사인 유니폼을 선물한 것도 김경도를 오랫동안 기쁘게 했다고 한다. 2010년 김경도는 연변FC에 입단해 클럽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곁에 안 계시고 이제 막 입단한 뒤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김경도는 늘 팀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만 했다. 마침 외사촌형인 박성(퍄오청·樸成)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생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퍄오청은 이때로부터 김경도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한국에 일하러 갔고 나는 연변FC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박성은 오래 전부터 축구를 했다. 그는 돈을 괜찮게 벌었고 보너스도 받았다. 그때 나는 그의 집에 짐을 풀었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주었고 체육관에 갈 수 있도록 돈도 대주었다. 그리고 내가 U-20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그는 다른 선수들이 좋은 휴대폰과 명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그것을 다 사주었다. 나중에는 또 휴대폰과 아이패드까지 사주며 축구를 잘하라고 격려 했다” 이는 사촌형인 박성에 대한 김경도의 평가다. 오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중국 슈퍼리그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1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김경도는 벤치에서 나와 성인 남자 국가대표팀 데뷔를 알렸다. 이번 국가 대표팀 경험으로 김경도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쟁탈하는 인기 선수로 됐다. 2013년 이 쟁탈전에서 승리한 산둥 루넝(山東魯能)은 연봉 100만 위안, 이적료 800만 위안에 김경도를 영입했다. 하지만 루넝 합류 이후 김경도는 그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궈안과의 첫 경기에서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결국 팬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를 격려했고 그가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익숙한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김경도의 플레이는 매우 어색했다. 김경도의 가장 좋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풀백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서도 김경도는 팀과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와 부상 스틸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많은 칭찬을 받았고, 팬들은 점차 그를 받아들였다. 그해 그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마가트 감독은 김경도를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마가트는 유명한 "악마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높았다. 그는 김경도가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풀백으로 변경 시켰다. 김경도는 당시 마가트 감독이 자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공을 빨리 잡아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온다며 볼을 잡으면 상대 측면 수비수를 상대로 돌파하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우싱한(吳興涵)이나 류빈빈(劉彬彬) 같은 빠른 스피드 돌파가 없었다. 나중에 하오준민(蒿俊閔)의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해 시즌 김경도는 윙백 포지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루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은사 마가트 감독은 안타깝게도 팀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해고되었다. 김경도 역시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ACL 8강 1차전 서울 방문경기를 앞두고 몸에 살코기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소변검사 양성 판정을 받아 60일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음식에 신경을 썼던 김경도는 충격도 컸지만 선수 생활과 컨디션 유지에는 큰 힘이 됐다. 그 해 김경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11월 13일 김경도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융퍼(王永珀), 왕통(王彤), 송룡(宋龍) 등 동료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하였으며 루넝도 공식 홈페지를 통해 결혼 축하와 함께 김경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했다. 김경도의 감정 또한 매우 로맨틱하다. 그와 그의 아내는 서로를 수년간 알아왔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들은 학교 다닐 때 사귀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겨 함께하게 되었다. 2017년 김경도는 징계에서 풀려나 팀에 복귀했고 루넝은 리샤오펑(李霄鵬)감독을 영입했다. 리샤오펑이 부임한 뒤 팀은 파격적인 변신을 하지 않고 마가트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을 이어갔다. 김경도 역시 익숙한 윙백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김경도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타르델리 및 펠레와 매우 묵계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종종 도움을 주거나 득점하며 루넝의 측면에서 날카로운 킬러가 되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18시즌 김경도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고강도 달리기, 스퍼트 횟수 1위, 경기당 평균 거리 2위, 가로채기 3위, 경기당 4위라는 맹활약으로 시즌 최고 인기 본토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김경도는 대표팀의 단골손님이 됐고 리피는 물론 가오훙보(高洪波), 리톄(李鐵) 등 본토 감독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되었다. 다만 리피 시절에는 김경도에 대한 요해가 부족해 기술적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김경도 역시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리피 감독 후임으로 2021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리톄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40강전 몇몇 경기에서 김경도의 활용에 신경을 썼다. 김경도는 움직임이 좋고 수비 면적이 넓으며 공격은 날카롭다. 현재 김경도는 대표팀 10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격을 갖춘 '프리 맨'이 됐다. 곧 카타르 월드컵 3차예선인 12강전이 시작된다. 12강전에서 절대 주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김경도는 계속 자신의 색깔을 살려 대표팀을 위해 몇 골을 더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스포츠
    2021-07-28

실시간 사람들 기사

  • 나눔을 실천하는 중국동포 사업가 - 한중식품 사장 김봉규
    [동포투데이] 지난 7월 17일, 중국식품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한중식품 김봉규 사장이 중국 음료(Wahaha) 80박스를 서울특별시 구로구 벛꽃로484에 위치한 (화원종합사회복지관, 관장 안병두)에 기증하였다. 김 사장은 "화원종합사회복지관은 노인복지사업부터 시작하여 여성복지사업, 장애인복지사업, 영유아복지사업, 아동청소년복지사업, 가족복지사업 및 지역사화복지사업 등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단체로 알고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 드리는 겁니다"면서 오히려 쑥스러워하였다. 김 사장은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지역사회, 동포사회를 위한 봉사와 기부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부를 생활화 하며 2013년부터 시작하여 매달 김치100kg을 화원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주변 무지개경로당, 행복경로당 등에 정기적으로 김치와 쌀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동포사회에서 진행하는 각종 행사에 차량도 무료로 제공하고 직접 스텝으로 나서기도 한다. 매달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봉사활동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불우이웃돕기 등 나눔행사에도 선뜻 기부금을 내놓기도 하였다. 김 사장은 동포사회에서 인정받는 훌륭한 젊은 사업가이자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한동포를 위하여, 지역사회발전을 위하여 묵묵히 봉사하고 있는 김 사장은 재한동포 젊은이들한테는 좋은 본보기이자 동포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김 사장은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동포사회가 서로 융합하고 화합하는 그런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봉사자로서 계속 노력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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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2
  • “천사의 조합” 쌍둥이 女 가수 김홍과 김향
    한국명: 김홍, 김향 중국명: 金虹,金香 민족: 조선족 출생연월일: 1988년 6월 2일 출생지: 길림성 연길시 취미: 노래, 무용, 피아노, 관광 등 좋아하는 색깔: 흰색, 분홍색 혈액형: B 2010년 5월, 중국 윈난성 푸얼시(普洱市)에서 있은 제 6 회 중국 머장(墨江)국제쌍둥이 및 하니(哈尼) 태양절 음악콩쿠르에는 멀리 길림성 연변에서 온 한쌍의 귀엽고도 아릿다운 여쌍둥이가 나타났다. 청수한 외모, 우아한 거동과 예의 바른 자태 등은 머장의 뜨거운 날씨에 일종 신선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들 여쌍둥이가 바로 조선족 쌍둥이자매인 김홍과 김향이었다. 이 날 김홍과 김향 이 쌍둥이자매는 가무표현 “덕담(吉祥话)”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물하였고 최종 대상을 획득하였다. 김홍과 김향 쌍둥이자매는 어릴적부터 노래 부르고 춤 추기를 즐겼다. 한편 쌍둥이자매를 둔 부모님은 이들 자매의 훌륭한 성장을 위해 막대한 대가를 바치었다. 쌍둥이딸 자매의 애호를 키워주기 위해 아버지는 5년간 한국에 나가 막일을 하면서 쌍둥이딸의 높은 학비를 보내주었으며 어머니 또한 쌍둥이자매의 곁을 지켜주면서 쌍둥이딸들한테 근검하고 노력하며 향상을 추구하는 습관을 키워주었다. 연변에서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마친 김홍과 김향 쌍둥이자매는 북경으로 진출, “천사조합”을 뭇고 수도권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후베이TV와 네멍구TV의 춘제야회에 출연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뒤 이들 쌍둥이자매는 몇년간 잠시 잠자코 있다가 최근 들어 중국 타이완과 한국 인사들의 지원하에 실력이 막강한 국제화출연그룹을 구성, 절주가 빠르고도 유쾌하고 선률이 아름다우며 청춘의 율동이 넘치는 EP음반 “대활보로(大步走)”를 발매하면서 제2차 도약을 실현했다. 주요 성과 2005년 길림시에서 개최된 “절대도전” 콩쿠르에서 10강 진입 2006년 전국 12개성 “연맹가요콩쿠르”에서 준우승 2009년 6월, 중국 CCTV “싱광다도우(星光大道)”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상 2010년 중국 CCTV “그대와 약속합니다(与您相约)”에 출연 2010년 4월 15일, 영화 “12 정감(十二情感)” 주제가 열창 2010년 5월 윈난 머장 “제6회 중국 • 머장 쌍둥이절 및 하니태양절 야회”에 참가해 대상 획득, 다음해에 있을 윈난 머허 대회의 대변인으로 선정됨 2011년 8월 26일, 중국 CCTV “유쾌한 사전(开心辞典)” 프로그램에 출연
    • 사람들
    2015-07-14
  • 베이징이 낳은 한송이 아름다운 “예술의 꽃”
    중국명: 金海心 영문명: Hannah Kim 출생년도: 1978.10.30 출생지: 중국 베이징 직업 : 가수, 사회자 혈형: B형 언어: 중,영,한,일 소속: 김해심음악레이블 조선족 가수 김해심은 1978년 베이징의 음악인 가정에서 출생, 부모는 음악교수었으며 일찍 딸 김해심에게 고전음악을 가르쳐 주었다.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음악기초를 다져온 김해심은 1998년 부모의 학생인 저명한 음악가 싼보리(三宝力)의 추천에 의해 소니레코트회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생애를 시작했다. 이 해 김해심은 저명한 대만시인 리만팅(厉曼婷)이 작사한 “조금도 안남겨(毫无保留)”와 “잠들지 않는 바다(睡不着的海)”를 불렀다. 이 중 “잠들지 않는 바다”는 1999년 10대 골든곡으로 선정되었다. 2000년 김해심은 그녀의 두번째 앨범 “그렇게도 자호감 있어(那么骄傲)”을 출판, 직접 앨범의 노래를 제작하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이 중 3수의 노래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것이었다. 2002년 김해심은 중국의 유일한 대표가수로 상하이에서 펼쳐진 한류음악회에 참가햇다. 그 이듬해 김해심은 화나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앨범 “김해심”을 제작, 이 중 김해심이 선정한 주제곡 “대안(对岸)”은 연속 2주간 중국가요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김해심은 독립적인 앨범회사를 창립, 동시에 앨범 “독립일”을 제작했는데 이중 80% 이상의 작품의 작곡은 그녀가 직접한 것이었으며 이 앨범은 음악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8년 김해심은 국내사상 처음으로 있은 대형 패션오락프로 “아름다운 소가인(美丽俏佳人)”의 사회를 맡았으며 베이징올림픽을 맞으면서 “베이징은 그대를 환영한다(北京欢迎你)”를 부르기도 했다. 2009년 김해심은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을 출판, 동시에 음악드라마 “곧 사라지게 될 청춘(致我们终将逝去的青春)”에 출연, 정휘의 역을 맡았다. 2010년 김해심은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사랑은 그대와 나사이에”를 불렀다. 2013년 김해심은 김해심음악레이블 회사를 창립하고 경영주로 되었다. 김해심은 가수일뿐만 아니라 창작일군이며 또한 사회자기도 한 다면수이다. 거기에 중국어와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를 정통하고 있으며 중국의 7대 방언중의 하나인 광동어를 특히 잘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사람들
    2015-07-07
  • 미소가 아름다운 민요가수- 변영화
    한국명: 변영화 중국명: 卞英花 출생연월일: 1983년 7월 3일 민족: 중국 조선족 학력: 대학(연변대학 예술학원) 직업: 가수 소속: 중앙민족가무단 주요 성과 2003년 제2회 중화민요콩쿠르 우수상 2004년 CCTV 서부민요콩쿠르 생태 금상 2006년 청년가수 콩쿠르 원생태 은상 우리민족의 전통민요 “아리랑”이 아릿다운 조선족 신세대 여가수의 독특한 목소리에 실려 전 세계에 울려 퍼질 때, 익숙한 이름이 우리 눈앞에 선히 떠오를 것이다. 그가 바로 미소가 아름다운 중국중앙민족가무단의 민요가수 변영화, 그녀는 자신한테 주어진 매 하나의 기회를 빛내면서 10여년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우리 민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변영화가 걸어온 성장의 길을 보면 부모의 각고한 노력과 갈라 놓을 수 없다. 일찍 변영화가 어린 시절, 딸애한테서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부모는 딸애한테 정규적인 예술교육을 시키기 위해 변영화가 8살 나던 해에 연길시에서 10여평방미터가 되는 세집을 맡고 전문가 선생을 찾았고 임시일을 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감동된 변영화는 꼭 자기의 노력과 성과로 부모한테 보답하리라 결심, 12살에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 소학반에 입학, 고심참담하게 노력한 결과 순리롭게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기나긴 예술생애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어 변영화는 행운스럽게도 연변대학 예술학원 민족성악 교연실 부교수였던 강신자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당시 부분적 교원들이 변영화의 목소리를 듣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자 강신자 부교수는 “내가 이 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이 학생의 목소리에 대해 개발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란 우선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달리 개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앞으로 크게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 때로부터 강신자 부교수는 변영화한테 독특한 조선족풍격의 가창법을 주입, 음역에서의 한계를 벗어나게 했으며 독특한 남도민요의 풍격에서의 둘도 없는 가수로 자라게 하였다. 강신자 부교수의 정성어린 지도하에서 변영화의 가창수준은 놀라운 제고와 비약을 가져왔다. ▲민요가수 변영화 변영화는 피타는 노력으로 2000년부터 선후로 연변민족전통음악민요대회 소년조 금상, 전업조 금상, 2002년 8월, 제1기 전국 조선족성악콩쿠르 민족창법 특별상, 9월에는 중국국가민족위원회와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 조직한 중국조선족가수콩쿠르에서 민족창법 1등상을 받아안았다. 변영화는 또 2006년 7월 CCTV에서 주최한 CCTV 전국청년가수 콩쿠루에서 원생태조 민요 은상을 수상했다. 당시 평심위원들은 우리 민족복장을 입고 노래를 부른 변영화를 두고 "한국드라마에서 금방이라도 내려온듯한 변영화가수의 ‘아리랑’은 관람객과 평심위원들의 눈과 귀를 번쩍 트이게 하였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한 후 변영화는 중국 중앙민족가무단에 입문, 가요계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국내외 무대에서 관중을 흡인했는가 하면 각종 콩쿠르에서도 묵직한 상들을 받아안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월에는 SBS '스타킹'에 출연해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새타령'과 '아리랑', 조수미의 '나 가거든' 등의 무대를 꾸며 MC들과 게스트들을 전율케 했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변영화는 현재 중앙민족가무단 국내외 순회공연으로 분주히 보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저장예술직업학원(浙江艺术职业学院) 캠퍼스에서 열린 축제의 공연무대에서 익숙한 우리민요 “아리랑”“새타령”을 불러 관중들을 열광시켰는가 하면 또 중국대륙을 휩쓴 한국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제가 “My Destiny”를 불러 관중들의 공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 사람들
    2015-06-30
  • 몸매•인물•목소리 그 모두가 매력인 가수 - 김미아
    편집자의 말: 중국조선족은 근로용감하고 끈질기며 또 총명하고도 지혜롭다. 쪽박을 차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척박하고도 거친 땅에 보습날을 대기 시작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말, 우리글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왔으며 애초에는 그 거개가 농민의 후손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당정분야, 과학분야 군부대분야, 문화•체육•교육 및 기타의 경제분야를 비롯해 중국의 모든 분야에 분포되어 있다. 이 중 유명한 것은 대부분 우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변FC, 연변가무단 등이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동포투데이는 오늘부터 시리즈 형식으로 중국 대륙무대에서 활약하는 신세대 조선족 가수들을 소개하게 된다. 몸매•인물•목소리 그 모두가 매력인 가수-김미아 한국명: 김미아 중국명: 진메이얼(金美儿) 외국명: (M.KING / MAYER) 출생: 1984년 3월 27일 학력: 中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연학부 졸업 성좌: 양좌 혈형: O형 신앙: 불교 김미아는 2006년 1월, “환락의 중국행(欢乐中国行)”의 “멈추지 않는 환락(欢乐播不停)” 춘제 특별무대에서 “돌고 도는 행복(转动幸福)”을 열창해 일약 스타행열에 들었다. 이어 김미아는 2008년 1월, 중국 관영 CCTV가 주최한 스타탄생 프로그램인‘싱광다다오(星光大道)’에서 ‘아리랑’을 열창해 13억 대륙을 열광시키며 무려 3000여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 획득. 심사 위원들의 근래 보기드문 인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5월에는 한국에서 자신의 첫 음반 “위대한 사랑”을 출판했다. 이어 2010 제 14 회 중국 전국청년가수 대상콩쿠르 통속가요 경연에서 우승, 총결산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듬해 6월 13일, 김미아는 한국 “세계 신 7대 자연기적 평선” 추천위의 초청으로 한국에 가서 “제주- 세계 신 7대 자연기적 평선활동”에 참가, 중국지역 형상대사로 위촉받았다. 당시 김미아의 외국명은 M.KING / MAYER이었고 별명은 흰돼지었다. 2011년 김미아는 콘서트 “일찍 있었던 사랑(曾经的我)”을 대중들한테 선물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제 30 회 중국 CCTV 음력설야회에서 가요 “겨울의 홰불(冬天里一把火)”을 불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84년 3월 27일 생인 김미아는 일찍 5살 때부터 한대의 피아노를 갖고 음악의 꿈을 키웠으며 2000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했으며 졸업한 2005년 7월 북경백첩문화예술유한회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생애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김미아는 중국 국내는 물론 자주 한국으로 드나들면서 수많은 가요를 열창, 특히 2008년 제29회 북경장애인올림픽 폐막식에서 “멀지 않은 꿈(不远的梦想)”을 열창했고 한국의 사회자 강호동, 가수 인순이 등과 같은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최근년간 김미아의 활동이 어쩐지 즘즘해진듯 싶다. 예술분야의 일군들한테 탐문해도 그렇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점점 궁금해지기만 하다. 하지만 “호랑이가 움츠리고 있는 건 더 멀리 뛰기 위한 것이고 바다가 지나치게 고요한 건 폭풍우가 다가 올 징조”라고 요즘 김미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그가 새로운 “열풍”을 몰고 올 그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마지 않는다.
    • 사람들
    2015-06-22
  • 중국 가요계에 또 한명의 조선족가수 탄생?
    [동포투데이] 5월 28일 저녁, 안휘위성(安徽卫视) 농민노래자랑 리얼리티쇼 “중국농민가요대회(中国农民歌会)” 첫 회가 방송을 탔다. 북부 구역의 동북, 내몽골 등 지역에서 온 선수들 중 연변 화룡시 팔가자촌에서 온 조선족 박혜자(朴慧子)가 아담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왕봉의 “바람처럼 자유롭게(像风一样自由)”를 불러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박혜자의 뛰어난 가창력에 채국경(蔡国庆), 텅거얼(腾格尔), 봉황전설(凤凰传奇)등 맨토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텅거얼은 박혜자씨를 “작은 대포”와 같은 목소리를 갖고있다고 칭찬했다. 박혜자씨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졸업생이다. 2012년 음악교육전업을 졸업하고 예술양성학원에서 일년간 피아노를 가르쳤고 후에는 연변을 떠나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최근에 집안사정때문에 연변에 돌아왔다가 지인의 소개로 이 프로에 참가하게 되었다.
    • 사람들
    2015-06-02
  • 김순옥 화백, 휴머니즘과 자연주의 감성을 화폭에 담아 세계 일주
    [동포투데이] 휴머니즘과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행복을 표현해온 김순옥 화백은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파라과이를 중심으로 중남미 교류는 물론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면서 문화외교관으로 인정받아왔다. 김순옥 화백은 한국문화를 널리 알린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외 유명장소에서 김 화백의 작품 소장 김 화백의 작품은 해외의 국립미술관, 박물관 및 주요기관과 공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에도 서울시립미술관, 전주역사박물관, 국회, 청남대, 경희대, 서울대병원 등 주요장소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외교부에서 소장하여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인터뷰를 한 배경으로도 유명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 소나무(700호)는 청렴하고 강직한 공무원의 굳건한 의지를 표상한 것이다. 유연성 있게 상대와 협상하면서도 원칙 있게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관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이 그림 외에도 맥(脈 120호)은 썩거나 찢어지지 않는 전통소재인 닥나무를 활용, 자연주의 작가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휴머니즘 작가로 발전해 가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경희대에 소장되어 있는 이과수폭포(2000호)와 금강산(2000호)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웅장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재료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작품 활동 김순옥 화백은 오래전에 수년간 몰두하다 손목 인대손상으로 접어뒀던 입체작업을 최근에 다시 시작하였다. 재료의 벽을 뛰어넘어 평면과 입체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김 화백의 작품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게 스며 있다.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재료의 활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상을 참신한 소재를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키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는 김 화백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기본적인 베이스 아래 색의 조화 및 배려·존중을 통하여 작품의 완성미를 더하는데 노력해 오고 있다. ◇남미의 정열을 담은 대표작품 '이과수 폭포', 그림은 나의 운명이자 열정의 원천 평화의료재단 이사로 재직 당시 작품판매수익금을 바탕으로 스와질란드에 자선병원을 설립,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을 위한 무상 치료 환경을 마련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 특히 의미 깊은 활동이 되었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회 개최와 지난 2005년 대한민국 독도전 등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라고.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데 몰입하다 보면 자칫 주위에 소홀해지고 고립될 수도 있지만 김화백은 쉼 없이 움직이며 늘 주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림은 저에게 있어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일주하며 해외전시는 계속할 것 김 화백은 동양인 최초로 파라과이 대통령궁에서 초대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중남미 가장 큰 전시장소인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초대개인전, 뉴욕 유엔본부와 워싱턴 국립박물관 등에서의 초대개인전을 통해 세계에 널리 그의 작품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전시하며 한국문화를 알리겠다는 김 화백은 한류의 품격을 높이며 세계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순옥 화백은 Norte대학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경향신문사 갤러리관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서울시 미술심의를 맡고 있으며 해외교류작가회 대표로서 세계 일주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사람들
    2015-06-02
  • [재중동포 작가 김혁③]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 고양에 앞장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윤동주시인은 천고절창의 주옥같은 시들을 창작하여 우리한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윤동주의 삶과 그 작품은 시공간과 여러 계층을 초월하여 현대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 김혁은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윤동주에 심취되고 윤동주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두고 “생래적(生来, 天生的)”에 가깝다 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 연변 용정에서 태어나고 또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스무살까지의 많은 시간을 용정에서 보냈던 김혁,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후에 조선족 최초로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창작하고 윤동주 관련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그는 용정에서 어려서 신안소학교(지금의 북안소학교)를 다녔는데 그 전신이 바로 윤동주와 문익환이 다녔던 광명학교였다. 그후 용정중학에서 초중과 고중을 마쳤는데 용정중학교는 바로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 대성, 동흥 등 학교가 합병한 학교로 지금 교정에 윤동주의 시비가 우뚝 서있다. 이렇게 윤동주와 ‘지연’, ‘학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기자로 뛰면서 조선족 최초의 윤동주 학술회, 시비 건립, 윤동주 관련 학술저서 출간, 관령 활동들을 빠침없이 취재하였고 윤동주를 중국에 맨 처음 알린 오오무라 마스오,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번역한 아이자와 가쿠,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 녀사 등 관련 친지, 연구가들도 지난 세기90년대에 이미 만나 많은 교류를 했다. 시인에 대한 경모의 마음으로 오래전에 벌써 윤동주 관련 카페도 개설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윤동주 관련 논문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딴 된 사람만도 50명이 넘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론문도 수백편이 나왔다. 평전이나 위인전기물도 여러 권 나왔다. 이렇게 논픽션 작품은 많이 나왔는데 그에 비해 픽션작품 즉 소설과 같은 창작물은 전무했다. 너무나 알려져 있는 시인이었지만 그 높은 위상 때문이었던지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작품화한 사례가 극히 적었다. 소설로는 1992년 경, 한국에서 방송드라마의 시나리오를 개작하여 한부가 나왔다. 그후 구효서와 이정명에 의해 나왔지만 작가 김혁이 장편 “시인 윤동주”를 2010년에 발표한 후의 일이다. 그리고 윤동주의 숨결은 현재에도 용정의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이 곳에서의 윤동주에 대한 추모와 연구작업은 미비한 상태. 그같은 공백들은 시인 윤종주의 고향에서 태어나고 윤동주가 다녔던 학교에서 공부했던 작가 김혁에게 그 어떤 사명감과 창작의 충동을 주었다. 작가 김혁은 본격적으로 윤동주를 소설화 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연변작가협회에는 “계약작가”라는 창작제도가 있다. 작가들이 창작기획서(스토리와 창작취지)를 작성해 제출하면 연변의 유명 대학교수들과 평론가, 원로작가들로 구성된 평심단이 제출된 많은 기획서들 중에서 가능성 있는 작품을 엄선해내 1년간 창작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김혁은 윤동주에 대한 스토리만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조선족 작가들중 유일하게 두 차례나 이같은 계약작가에 선정되었다. 이렇게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가 2010년 조선족의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1년간 연재되었다. 한편, 지난해 9월에는 윤동주의 고향 용정에서 사단법인 “용정·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켰다. “용정·윤동주연구회”는 조선족의 작가, 학자, 교직원들로 무어졌으며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선양하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고고한 삶과 정신은 내 삶속에 깊게 들어와 있다”고 작가 김혁은 말한다.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 고양에 앞장서 용정윤동주연구회 회장으로서의 김혁은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윤동주가 선양하려 했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널리 계승, 발양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용정윤동주연구회를 설립한 후 짧디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들을 해왔다. 2014년 12월 20일,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서 윤동주 탄신 97돐 기념행사를 가졌고 2015년 2월 16일에는 윤동주 옥사 70주기를 기념하여 “항일 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행사”를 가졌다. 또 용정·윤동주연구회의 편찬으로 문화총서 “룡두레”를 출간하기도 했다. 용정·윤동주연구회의 년중행사의 중요한 일환으로 해마다 정기적으로 펴내게 될 이 문화총서 “룡두레”는 문단의 각 장르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린 작가들과 대학 교수들로 편집진을 뭇고 그 첫 기를 윤동주 추모특집으로 꾸몄다. 향후 지속적으로 출간하게 될 “룡두레” 총서는 윤동주를 연구하고 그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잇는 문헌들과 회원들의 다채로운 창작품들들을 게재할 뿐더러 용정의 역사, 룡정이 배출한 인걸들을 조명하고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이슈와 현안에 대해 진맥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비전에 대한 제안 등의 알쭌한 내용들을 여러 코너를 개설해 다양한 문체로 꾸며나갈 계획이다. 올 4월 4일, 청명을 맞아 장춘에서 꾸리는 조선족의 순수문학지 “장백산” 잡지사와 손잡고 윤동주의 묘소를 새롭게 단장했다. 이어 윤동주연구회 사무실을 윤동주의 자취가 서린 용정의 자택 자리에 오픈, 오픈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사무에 착수했다. 뿐만 아리라 용정·윤동주연구회에서 주관, 운영하는 사이트가 현재 개설중에 있다. 이 사이트는 윤동주에 대한 연구, 선양과 더불어 그 의미를 넓혀 용정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조명하고 오늘의 이슈와 뉴스를 시효성 있게 다루며 중국조선족공동체의 비전을 알리는 뉴스성, 전문성 종합사이트로 거듭나려 한다. 이제 용정·윤동주연구회 성원들로 구성된 역사답사팀이 본격적으로 역사답사에 나선다. 윤동주의 발자취가 어린 명동, 나아가 조선족역사의 “박물관” 격인 용정 유적지에 대한 계획적인 답사다. 보름에 한번 꼴로 정규적인 답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김혁은 밝혔다. 또 조선족문학의 순문학지인 “도라지” 잡지사, 문화종합지 “문화시대” 등 잡지들과 손잡고 용정·윤동주연구회 회원 특집을 마련했다. 금후에도 여러 간행물과 손잡고 회원들의 우수한 문학작품들을 그에 걸맞는 우수한 지면에 소개할 타산도 해본다. 현재 연구회 회장 김혁이 창작한 조선족 최초의 “윤동주평전”이 대형문학지 “장백산”에 연재중이다.올 하반년에는 윤동주를 위한 인물연구서 “윤동주 코드”를 출간하게 된다. 이 외에도 해당 부문과 손잡고 윤동주 백일장, 윤동주 시랑송대회 등 유익한 행사들을 대거 펼쳐 나갈 예정이다. 에필로그 현재 김혁은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지내왔던 자치주 수부 연길시를 떠나 고향 용정으로 돌아왔다. 윤동주 시인의 용정자택 자리에 앉힌 연구회 사무실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경쟁과 명리만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수십년 내내 문인들의 “문인상경”의 풍토로 얼룩진 문단에서 탈출해 참된 작가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고 싶었다. 또 중국조선족 역사와 문화의 발원지인 용정에서 조선족의 역사를 직접 밟아보면서 관련 연구물과 작품 쓰기를 창작성향으로 삼고 십여년간 매일 꼬박 십여시간 가까이 창작과 독서를 견지하고 있다. “종당에는 중국조선족의 생성에 대한 호흡이 긴 소설, 이주와 정착, 개척과 항일, 건국과 ‘문혁’과 개혁, 출국과 이산의 수백년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창작하는 것으로 만년을 장식하고 싶다”. “진정성을 가지고 영혼의 울림이 있는 큰 글을 쓰고 싶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닌 항상심(恒常心) 하나 가슴에 품고 길을 가려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민족작가’라는 타이틀로 남고 싶다. 단지 유행을 쫓는 소설가나 칼럼니스트가 아닌 역사에 천착하고 민족을 위해 한 목청 내였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의 창작에 대한 지론이다. 김혁 그의 30여년의 작가생애, 그간 그는 실로 우리들 앞에, 우리의 역사 앞에 너무나 많은 작품들을 펼쳐보였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해왔다. 또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쉼모르고 달리고 있다. 재중동포 작가 김혁, 조선족 문단의 갈피에 우렷이 남을 중후한 큰 작가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 사람들
    2015-06-01
  • 미소가 아름다운 김춘희! 그녀는 우리가 몰랐던 쥬얼리전문가
    [동포투데이] 20여년간 한길만 걸어온 김춘희! 그녀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족 쥬얼리전문가입니다. 조선족사회에서 외면당한 한 '우물'을 20여년간 파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의 이런 명언이 떠오릅니다. "성공은 높은 점프도 긴 점프도 아니다. 성공은 마라톤의 발걸음들이다.'...그녀 김춘희(41세)씨가 바로 이 성공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94년 연변대학 리공학원 기능학과 귀금속전문학과를 다닌 그녀는 그때 배운 전문지식을 이순간까지 놓은적 한번도 없습니다. 한창 려행업, 외국어학과, 컴퓨터학과, 회계학과 등등이 인기학과라고 온 중국이 떠들썩하는 90년대에 김춘희씨는 오히려 귀금속전문학과를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라 오늘까지 달려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100%의 확신이 선것은 결코 아니였습니다. 먼 바다길에 나선 항행사처럼 예측할수 없는 삶의 '바다길'을 그녀는 오직 성실, 노력, 근면함으로 선택을 반복하면서 조심스럽게 헤쳐나왔습니다. 언제 부딛칠지 모르는 삶의 "암초"를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한걸음한걸음 열심히 걸어왔습니다. 참으로 참답게 한발한발 걸어온 그녀였습니다. 2000년 류학 떠난 남편 따라 한국으로간 그녀는 자신의 배운 전문지식을 놓지 않았습니다. 대전세이백화점 쥬얼리전문점에 취직한 리유도 쥬얼리탐구를 위한것이였습니다. 귀금속세공, 보석감별을 배웠던 그녀였기에 대전세이백화점에서의 8년동안 근무에서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매니저직을 마무리로 그녀는 8년동안 머물었던 쥬얼리전문점을 떠나 2008년 귀국하면서 그녀는 차츰 작품연구에 몰입하게 되였습니다. "모든 준비는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작품만을 연구하고 진주리폼을 하면서 꾸준히 작품만 완성했습니다. 그러다가 번화한 백화점이 아닌 조용하지만 나름 공방으로 리용 가능한 신세기광장 11층 33호에 소은방쥬얼리디자인작업실을 오픈하게 되였습니다. 첨에는 아는 지인분만 찾아오는 작업실이였습니다. 지금은 동호회도 운영하면서 차츰 고객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습니다. 혼수장만하는 분들도 저의 작업실에 찾아오셔서 진정한 명품을 구입하시기도 하고 또 제가 여러가지 문의하신 전문지식을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돈보다는 쥬얼리에대하여 우리 조선족들이 좀 더 많이 알고 정확하게 알기를 바라는게 제 소망입니다. " 연변! 쥬얼리문화전파에 평생을 기여할터 "연변 쥬얼리는 아직 원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남방의 상인이나 한국인들이 하는게 그게 전부인데다가 연변조선족분들은 쥬얼리를 마냥 어려운 상식으로 알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알아야 하는 쥬얼리지식마저도 우리조선족들은 모르는 실정입니다. 비싼 진주목걸이는 좀 더 이쁘게 착용하면 미적효과를 극대화시킬수 있지만 그냥 년세가 지극한 로인분들이나 착용하는걸로 압니다. 안타까울때 많습니다. " 맹목적인 고가구입을 반대하는 리유도 바로 그것이였습니다. "기본상식이라도 알고 사면 사기를 당하는 일이 적지만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가격에 따라 맹목적으로 구입을 하면 손해를 보는것은 조선족들입니다. " "혼수구입하는 분들은 돈을 아끼지 않더라구요. 관련 쥬얼리지식은 거의 백지라고 봐야하죠. 거금을 쓰면서 준비하는 혼수쥬얼리인만큼 먼저 기본상식이라고 알고 구입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금만 신경쓰고 조금만 귀기울이면 충분히 가능한 지식습득이니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에 찾아온 고객들에게 커피 한잔 드리고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재를 방불케하는 그곳은 쥬얼리를 학습하는 공부방이기도 합니다. 진주관련에 질문을 하자 막힘없이 진주 종류와 간단한 구별법, 진주제품 관리방법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그녀입니다. 천연진주, 양식진주, 모패진주, 모조진주 우리가 일상에서 몰랐던 용어들이 쏟아져나옵니다. 김춘희씨는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설명합니다. "상식이 번거로운것 같지만 한번두번 자주 들으면 듣기만 해도 금방 알수 있는 상식들입니다. 저의 작업실이 신세기 11층 33호에 자리를 잡은것도 바로 그 리유입니다. 일보러 나오셨던 분들이 다리쉼도 할겸 물 한잔 마실겸 저의 작업실에 들려 쥬얼리관련 이야기도 듣는 기회를 교통적으로 보다 편하게 만들어들이고저 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젠 입소문을 타서 꽤 많은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쥬얼리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찾아오셔서 쥬얼리상식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어서 일상에 피해가 없고 더 잘 활용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작업실 이름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소은방이라는 이름에는 이런 뜻이 포함되여있습니다. "소박한 은혜가 사방에 날리다" 김춘희씨는 큰 욕심이 없다고 합니다. 또 실제로 소은방쥬얼리작업실에 다니셨던 고객분들과 상담을 받아본 분들은 그 부분에 대하여 인정을 합니다. "돈이라는데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그 분야를 즐기는 편이 더 적절한것 같습니다. 정직하고 따듯하게 알려주고 쥬얼리관련 무료상담도 해드립니다. 혼수예물과 진주제품 위주로 주로 맞춤 주문,판매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 맞춤 주문, 판매에 대하여 김춘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객들에게 거품가가 없는 가격을 제시할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름길입니다. 소자본창업이라는 장점도 갖고 있지만 깔린 제품이 많다보면은 거품가격을 선정할 확률이 높습니다. 금, 은, 보석쥬얼리 제품을 판매하지만 주료 맞춤 주문 판매를 하는 리유는 불필요한 자본류실을 줄여 고객부담을 확 줄일수 있을뿐만아니라 천차만별이 고객들에게는 맞춤제품이 최상의 선택이기때문이지요." 오도가다 한번쯤은 발길을 돌려 쥬얼리DTY설계,제작, 수리, 리폼, 리셋팅 분야에서 월등한 전문기술력을 지낸 조선족 그녀 김춘희 소은방쥬얼리작업실(위챗 18943365900)에 찾아가보세요. 누구든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쥬얼리DTY설계, 제작하여 나만의 쥬얼리를 만들어보는것도 삶의 묘미는 아닐까 생각듭니다. 한우물만 판 조선족쥬얼리전문가 그녀가 착한 심성으로 연변사람들에게 다가온건 우리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행운이고 행복인것 같습니다. 하물며 평생을 쥬얼리문화전파에 올인한 그녀이지 않습니까? 20여년전 확신이 서지 않았던 귀금속전문학과를 전공했던 20살 애숭이 처녀가 지금은 40대 아름다운 녀인이 되여서 조선족들에게 쥬얼리문화를 정확하게 전파하고 있습니다다. 긴 세월만큼 그녀의 노력과 인내가 오늘날의 쥬얼리전문가라는 막강한 초능력을 가져다준건 당연한 결과인것입니다. 그녀의 바램대로 조선족분들이 쥬얼리 진품명품에 관한 정확한 상식을 모두가 다 아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단비
    • 사람들
    2015-05-30
  • [재중동포 작가 김혁②] 필속에 살아 숨쉬는 역사와 인물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밑바닥인생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추구와 아픔에 대한 묘파는 지난 세기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때를 두고 작가는 다음과 같이 회억한다. “나의 육신밖의 아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면서 갓길에 섰던 나의 필봉은 새로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중국조선족 한국초청사기 사건을 다룬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다”, 도시와 외국으로의 진출 과정에서 조선족 여성들이 겪는 아픔을 다룬 장편소설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하에 변혁기 중국조선족의 고뇌를 취급한 작품들을 연이어 펴냈다. 특히 1990년대 말의 한국초청사기 사건을 전방위로 다룬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는 진부하기 그지없는 조선어 출판 풍토에서 가장 짧은 시간내에 수천권이 판매되는 기록을 냈다. 그 후, 조선족공동체의 정체성과 위기를 다룬 작품창작이 작가의 창작 주선을 이룬다. 십여년간 “중국조선족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 시리즈물을 수십편 펴냈다. 올해에는 그 특집을 한데 묶은 소설집이 발간된다. 작가는 여섯 부의 장편소설을 연재, 출간했는데 모두다 민족의 역사와 관련된 묵직한 소재의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서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문화대혁명에 관한 아픈 기억을,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는 흔들리고 있는 조선족공동체의 아픔속에 스러져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 조선족 최초 연변지역 위안부의 시선에서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제재를 다루고 있다. 김혁 작가의 상술한 작품들을 두고 평론가들은 “묵직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재로 서사적 사건 전개의 구조가 선명하고 극적인 이야기성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고 높이 평가했다. ↑김혁작가가 펼쳐낸 청소년을 위한 조선족인물전기 "한락연의 이야기" 작가의 필속에 살아 숨쉬는 역사와 인물들 김혁은 다각적으로 조선족공동체의 역사와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 창작 외에도 기행, 칼럼, 영화론문 등 여러 장르를 충분히 동원하여 수년간 관련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 5년간의 답사를 거쳐 용정의 역사를 60여만자로 다룬 장편역사기행 “일송정 푸른 솔, 해란강 깊은 물”은 조선족문화의 발상지 용정의 생성과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완결판 같은 작품이라고 격찬받고 있다. 이 작품은 이미 중문으로도 번역되여 출간을 앞두고 있다. 3년반 째 연재되고있는 문화역사시리즈 “영화로 읽는 중국조선족”은 스크린의 각도에서 조선족의 백여년 역사를 다른 텍스트로 연구한 작품이다. 2년째 연재되고 있는 “소설가 김혁의 인물시리즈”는 조선족 수십명 인걸들의 생애를 사전형식으로 가나다라 순으로 짧고 명료하게 다루고 있는 소전기물이다. 작가는 근년래 인물전기 창작에 거의 모든 시간을 바치고 있다. 민족의 정체성 확인과 자부와 비젼을 위한 작업—조선족인물전 시리즈를 사회와 약속하고 그 결과물들을 육속 펴내고 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제반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주덕해, 한락연, 김염, 김약연, 윤동주, 김학철, 리홍광, 리화림, 양림, 정판룡 등 우수한 인걸들의 전기를 이미 펴냈거니와 앞으로도 지속 펴내는 작업을 그의 창작스케줄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고 있다. 한편, 그는 기행문, 인물전이라는 논픽션물 외에도 소설이라는 픽션으로 조선족 인걸들을 조명하는 작업을 펼쳐나가고 있다.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한 “시인 윤동주”는 연변이 낳은, 겨레가 애대하는 시인 윤동주의 문학적 삶을, “완용 황후”는 연변에서 숨진 청나라 황후를 통해 근대 동북의 근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현재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는 “무성시대”는 “중국 영화의 황제” 김염의 영화인생을 그린 장편소설로서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 지지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체의 기자와 소설가로서의 삶을 병행해 살았던 김혁에게 있어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남들과 차별화된 창작성향이다. “대서사적인 작품을 다루는 것이 나의 근년래 그리고 향후의 창작방향”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끊임없는 창작과 그 작품들 작가 김혁, 올해만도 여러 권의 작품이 나오게 된다. 그의 수백편의 칼럼중에서 역사칼럼만 추려 묶은 칼럼집 “리얼하게 그리고 치열하게”가 곧 출판된다. 윤동주 연구서인 “윤동주 코드”의 집필을 이미 마무리했다. 조선의용대 분대장 김학철에 관한 청소년 전기도 년내로 출판되게 된다. 현재 연재중인 “윤동주평전”의 집필과 병행한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에 관한 평전 “규암 김약연전”도 집필중이다. 빠르면 년내로 출간되게 된다. 연변대학교 교수들과의 공저로 연변대학의 정초자 “정판룡평전”도 몇해 전에 이미 집필에 착수, 곧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10여년 지내면서 용정체험을 소설로 펴냈던 녀류작가 강경애의 일대기도 소설화하는 중이다. 연변의 첫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의 설립자이자 고종황제의 밀사였고 독립운동가였던 보재 이상설에 관한 장편소설도 그이의 타계 100주년을 맞아 출간 예정이다. 특히 지난 몇년간 김구의 비서로 지냈고 윤봉길과 이봉창의 작탄의거를 도왔지만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해외에 알려지지 못했던 의용대 출신의 여걸 리화림에 대한 전기물 집필작업을 몇해간 꾸준히 해왔다. “꼭 그 결과물을 내놓으련다”고 김혁은 말한다.
    • 사람들
    201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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