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 김철균
 
4
 
열차는 네시간 달려서야 서서히 돈화역에 멈춰섰다.
 
연길에서 열차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돈화에서 내릴 때 역시 순자네 내외간은 그 무거운 짐짝들을 등 뒤에 지고 손에 들고 하면서 맨 나중에야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순자는 열차에서 내리자 바람으로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문영이부터 찾았다. 그런데 문영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온다던 것이 오지 않으니 오늘도 아마 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고 마중 나오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순자는 저도 몰래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때 문영이와 한 단위에서 근무하는 시댁의 5촌 조카 창범이가 달려오면서 “아저씨, 아지미 오는 길에 고생이 많았겠소”하며 반겨주었다.  
 
순자는 “문영이가 나오지 않았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사위를 둘러 보았다. 순간 개찰구 배자 옆에 흰 꽃무늬가 돋친 죠세트 적삼을 입고 하얀 머리수건을 쓴 처녀가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옷을 본 순자는 그가 곧바로 문영이란 것을 알아 보았다.
 
그 죠세트 적삼은 큰 아들과 큰 며느리가 북경에 출장갔다가 어머니한테 선물로 사다준 것을 문영이한테 준 것으로 문영이는 그 때까지도 그 적삼을 시체옷으로 나들이를 할 때마다 입군 하였다.
 
문영이가 마중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열차에서 손님들이 거의 다 내리도록 순자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자 실망되어 머리를 수그리고 흐느끼는 모양이었다.  
 
“문영아ㅡ”
 
문영이를 알아본 순자는 다급하게 달려갔다.
 
“어머니, 마마ㅡ”
 
귀에 익은 부름소리에 정신이 든 문영이는 개찰구로 빠져 나오며 목이 빠지도록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왜 인제야 오세요? 전 어머니가 그리워 줄을 번 했어요.”
 
문영이는 순자를 끌어 안고 울다가는 다시 보고 또 보다가는 다시 끌어 안고 울음보를 터트렸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순자의 의복 앞 섶을 눈물로 흠뻑 적시었다.
 
전날부터 기다리다가 혹시 오늘도 오지 못하는 줄 알고 실망하여 울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눈물부터 앞섰던 것이다.
 ……
미구하여 문영의 거처에 도착한 순자는 문영의 결혼준비 상황부터 점검했다.
 
아니나 다를가 순자의 짐작대로 문영이는 거의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재료래야 달걀 10여 알에 달랑 시금치 한단뿐이었고 의복이래야 이전에 순자가 문영이한테 선물로 주었던 몇견지었으며 이불 또한 위생학교 기숙사 시절부터 덮어오던 색이 바랜 이불뿐이었다. 신랑켠에서 첫 날 옷, 옷장과 기타 가정기물들을 지참물로 도맡아 해온다는 한족들의 전통풍속이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신랑측 부모들은 워낙 살림이 풍족하지 못한 형편에 한해에 자식 셋이나 결혼시키다 보니 신부의 첫 날 옷 한견지밖에 마련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문영이의 해석이었다.
 
순자는 억이 막혔다. 자기네 내외마저 가지 않았더면 어쩌라 싶었다.
 
순자는 나들이 옷을 벗어 내치고는 다른 것으로 바꿔입었다. 우선 시장부터 다녀 와야 했다. 시장 또한 영감을 앞세우고 나섰다. 그래도 돈화시내의 지리엔 영감이 순자보다 더 밝았기 때문이었다.
 
“허허, 여태껏 짐군을 시키더니 이번엔 짐군에 길 안내까지 시키는구려.”
 
“바빠 죽을 지경인데 웃음이 나오우?”
 
“그럼 웃지 않구 울라우?!”
 
영감의 익살에 순자 역시 그만 웃고 말았다. 그랬다. 힘들고 답답할 때는 그래도 영감이 뒤심도 되고 버팀목도 돼주니 순자는 그만큼 힘이 생기기도 했다.
 
5
 
이튿날은 문영의 잔치날이었다. 전날 긴 노정에 지친데다 문영의 잔치근심으로 온밤 잠을 설치다 보니 순자는 몹시 피곤했다. 눈에 핏발이 서기도 했다. 하지만 자기가 늦장을 부리면 그만큼 잔치가 어수선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자 바람으로 팔소매를 거둬 올렸다.
 
한동안 지지고 볶고 하니 그래도 신랑의 첫날상과 둘러리로 올 손님들의 상에 올릴 음식 몇가지는 마련이 되었다.
 
미구하여 신랑과 신랑측 둘러리들이 도착했다.
 
순자는 검소하지만 신랑의 첫 날 상을 정성들여 차렸다.
 
드디어 첫 날 상에 마주 앉은 신랑은 웬간히 놀라하는 모습이었다. 문영이와 약속하기는 첫 날 상을 아예 차리지 않거나 그저 차리는 흉내만 내기로 했던 것이 생각 밖으로 음식가지수가 늘어 났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버지, 어머니 술 드세요.”
 
신랑은 술을 부어서는 먼 길에서 오신 조선족 장인과 장모한테부터 권했다.
 
“아니 신랑이 상을 받소 아니면 우리가 상을 받소?”
 
순자는 한 옆으로 돌아 앉으며 거절했다.
 
“어머니가 문영이를 도와 나서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문영이가 없었을 것이고 또 그가 없다면 전 누구한테 장가를 듭니까? 그러기에 이 잔은 장인 어른과 장모님부터 받아야 한답니다.”
 
이렇게 말을 주고 받다 보니 푸짐한 음식 한점 없는 잔치었으나 웃음만은 차고 넘쳤다. 순자 역시 문영이가 드디어 결혼까지 하는구나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이윽고 혼례용 소형버스는 신랑 신부와 순자네 내외까지 싣고 문영네가 새 살림을 차릴 거처로 떠났다. 친정부모가 결혼하는 딸을 따라가는 법은 조선족은 물론 한족들의 풍속습관에도 없지만 문영이의 경우만은 특수하여 그런 풍속습관 같은 것은 아예 타파하기로 했다.
 
새집이라고 도착해 보니 신방이래야 한달에 37위안씩 세를 내고 드는 허술하고 비좁은 방이었다.
 
신부인 문영이는 자기가 가지고온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쌀함박이며, 사발, 접시, 숟가락, 국자 등이 나오다가 다음으로 보따리를 푸니 양말과 기타 식료품들이 온돌에 쏟아져 나오면서 쌓이었다.
 
이불과 요를 궤짝우에 올려놓으니 그제야 방안은 광채를 띄우면서 안온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 많은 물건을…”
 
“아니다. 이 엄마 역시 남들처럼 너한테 잘해 주지 못하는 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는구나.”
 
“어머니,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갖고 온 물건은 남들이 해주는 몇만위안 아니 수십만위안의 물건보다 더 가치가 있고 정성이 깃든 것이예요. 어머니 전 대 만족이고 더 이상 남들이 부러울 것이 없답니다.”
 
문영이는 자기네 생활 구석구석을 낱낱히 헤아려 보고 정성을 다한 순자의 소행에 다시 한번 목에 메였다.
 
그 날 점심, 신랑신부의 단위에서는 그들의 처지를 헤아려 공동으로 돈화시내의 어느 한 식당을 선택하여 그들의 혼례식을 치러 주었다.
 
결혼식 장소로 가보니 양쪽 단위의 손님외 가족으로는 진짜 사람이 적었다. 신랑 켠에서는 그래도 10여명 잘되게 친척들이 왔으나 신부 측에서는 문영이의 먼 벌수가 되는 숙부 1명과 순자네 내외뿐이었다. 진짜 간소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 역시 많은 절차를 취소하다 보니 매우 간단하였다. 결혼식을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 결에 신부측 가족대표가 발언할 차례가 되었다.
 
결혼 사회자가 “이번에는 신부측 가정대표의 말씀이 있겠습니다”라고 하자 순자는 문영의 숙부벌이 되는 손님을 건너다 보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문영이가 다가 오더니 “어머니, 어머니가 말씀하세요”라고 하며 순자의 팔을 잡아 끌었다.
 
순자는 아니 아니 하며 주저하다가 결국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상에 마주 앉은 손님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하지만 첫 날 신부옷을 입고 곱게 앉아있는 문영이를 보는 순간 순자는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이 메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여러 분 바쁘시겠는데 이렇게 찾아와 문영이에 혼사를 축하 해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측 단위에서 일부러 이런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고 하니 더욱 감사하며 신부의 친정 어머니인 저로서는 부끄러운 나머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전 오늘 저의 딸 문영이의 결혼에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는 한편 딱 한마디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문영아, 너희들은 맡은 사업을 잘하는 것으로 이 분들의 관심에 보답해 드리고 또 앞으로 화목하게 살면서 시 부모를 잘 모시고 형제 간에 사이 좋게 지내거라. 너 화목하지 않고 부부간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일이라도 있으면 이 어머니의 얼굴을 더럽히는 걸로 알고 있거라…”
 
한 쪽에서 용환 령감의 5촌조카 창범이가 한어로 통역하여 순자의 의사를 전달하자 장내는 일시에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문영이 시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좋아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좌석이 흥성거리자 신랑의 학교 교장 선생님이 순자네 쪽으로 찾아와 술을 따르며 말을 물었다.
 
“아니, 어머니는 딸이 없어서 한족처녀를 딸로 삼았습니까?”
 
“아닙니다. 나한테 딸이 셋이나 있습니다.”
 
“아니, 그럼 후일 신세를 보자고 그랬습니까? 이 집엔 돈도 없고 지도자 직위에 있는 친척도 없는데요…”
 
“어머니가 딸을 키울 때 그 무슨 보답을 바라고 키우겠습니까? 어머니란 딸을 키워 사회에 떳떳이 나서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다만 친 어머니가 없는 문영이한테 친 어머니다운 사랑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교장은 너무도 감동되어 연신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어냈다.
 
“대단합니다. 대단합니다. 세상에 이런 조선족 어머니가 있다니 정말 우수한 어머니입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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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실화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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