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의 이번 결정이 어떠한 후과를 초래할런지 잘 알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내가 감수 해야 할 그 부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는 상상만 해도 끔직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선택한것은 그가 내 인생의 소중한것들을 전부 걸고서라도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교적륜리도덕이 두눈을 새파랗게 뜨고 살아 있는 현 시대에 내가 일명 사랑이라고 들먹이는 이 불륜이 사회적으로 비난과 조롱을 받기는 쉽상이다. 그 누군가가 <바람난 주제에 어쩜 저렇게 뻔뻔스러울까>라고 말을 한다해도 나는 단지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그 사람이였다.
<잘 생각했어~ 정말 너무 고마워! 사랑한다~>흥분하다 못해 떨리기까지 하는 그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는듯 싶었다.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틈만 나면 벼룩시장이며 인터넷을 뒤지면서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사장님께 사람 구하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요번달부터 월급을 올려주려고 했는데 그냥 하라고 사정사정하시는것이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야간근무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것이다. 언니한테도 방을 얻어 나가겠다고 말했더니 펄쩍 뛰는것이였다. 여자 혼자 몸으로 어쩌냐구… 부모님도 소식을 전해들으시고 극구 말렸다. 그러나 나의 고집을 누구도 꺾을수 없었다. 다른것은 제쳐놓고라도 무엇보다도 이미 그 사람한테 약속을 했고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되돌이킬수 없었다.
며칠 뒤 그의 직장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모시에서 보증금 50만 월세 17만짜리 방 하나를 얻었다. 나는 식당일을 아무데서나 찾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는 연장근무할 때가 많기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 회사에서 연장근무를 하지 않으면 돈을 벌수 없었다.
3층짜리 단독주택이였는데 맨 윗층에서 주인량주가 살고 계셨고 1, 2층은 일부러 세를 놓기 위해 기숙사식으로 지은것 같았다. 1층에 있는 방이 좀 저렴하긴 했지만 나는 굳이 햇볕이 잘 드는 2층방을 고집했다. 총 10평방메터 되나마나한 다락이 달린 작은 방이 였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겸 샤워실이였는데 한켠에 일회용부탄가스가 놓여져 있었고 그 위로 널판으로 그릇같은것 올려놓을수 있도록 다락을 만들어놓은것이 보였다. 방은 비좁게 세사람까지는 누울 수 있을것 같았고 누우면 발끝이 닿을만한 너비였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좀 불편할것 같았다. 방이 비록 작긴 했지만 주인할머니가 깨끗하게 도배를 해서 그런지 그냥 아담하다는 그 자체였다. 주인할머니는 물건 많지 않으면 부부가 살기에는 괜찮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어느 중국부부도 이 방에서 돈 많이 벌고 나갔다고 말하는걸 잊지 않았다.
이사하는 날 언니가 몇가지 생활용품들을 트렁크에 챙겨서 넣어주고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나왔다. 쉬는 날이 아니라서 같이 와주지 못하는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면서 언니는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혼자서 힘들면 다시 돌아오라고 당부하는걸 잊지 않았다. 언니가 안쓰러워 하거나 말거나 나는 마냥 신나기만 하는걸 주체할수 없었다.
다행이도 원래 살던 부부가 버리고 간 물건이 있어서 쓸만한것들을 골라다가 깨끗이 닦아서 얹었더니 제법 그럴듯 하였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살림을 차리고 살다가도 귀국할 때는 다 버리고 가야 하는게 현실이기때문에 나같은 사람들이 그 덕을 보는게 아닌가 싶다.
길 건너에 있는 슈퍼에서 쌀이랑 야채 소금 간장같은것을 사왔다.
이불은 언니네 집에서 갖고 왔고 이제 그 사람이 퇴근하면 시장에서 베개랑 슬리퍼랑 당장 필요한 물건만 사기로 했다.
고작 방안 정리라고 해봤자 머 별거 없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주어다가 놓은 덕분에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듯 싶었다.
이렇게 나와 그 사람의 동거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였다.
ⓒ 동포투데이 & www.dspdaily.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이게 한국의 환영 방식인가”…이태원 식당의 ‘금뇨(禁尿)’ 표지판이 던진 질문
[동포투데이] 서울 이태원 한 식당 앞.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로 적힌 안내문이 서 있다. “길을 막지 마세요, 조용히 해주세요, 금연.” 얼핏 보면 평범한 문구지만, 중국어 문장에는 다른 언어에는 없는 단어가 하나 더 있다. ‘禁尿(소변금지)’. 그 한 단어는 마치 중국인만 따로 주의가 필요하다는 듯... -
“터무니없는 괴담, 정치 선동의 불쏘시개 될라”
글 | 허훈 최근 온라인 공간에 떠도는 ‘중국인 괴담’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내년까지 중국인 2천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납치돼 장기 적출을 당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버젓이 퍼지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임에도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차례 공유하...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6일 아침, 백두산 자락은 맑은 하늘 아래 싸늘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는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 카메라를 든 한국인 청년들, 러시아와 몽골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백두산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긴 오르막을 지...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동포투데이] 백두산 자락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서면 용정시 명동촌이 나온다. 소박한 기와집과 푸른 담장이 맞아주는 이 마을은 시인 윤동주(1917~1945)의 고향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 시인의 생가를 넘어선다. 근대 조선 민족운동의 요람이자, 교육·종교·문화가 교차한 북간도의 심장부였다. 1906년 서전서...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동포투데이] 2025년 9월 25일, 기자는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을 찾았다. 이곳은 애국시인 윤동주(1917~1945)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복원된 생가는 소박하게 서 있고, 그 앞마당에는 여전히 들판에서 불어온 가을 바람이 머문다. 마을 입구의 표지석은 단순히 한 시인의 흔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명동촌... -
백두산 현장르포② | 폭포 앞에서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포투데이] 백두산 천지를 마주한 뒤, 발걸음을 옮겨 백두폭포(중국명 장백산폭포)로 향했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길은 가파른 절벽을 타고 떨어지며 웅장한 포효를 만들어냈다. 높이 68미터, 너비 30미터에 달하는 폭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대자연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을 쏟아냈다. ...
실시간뉴스
-
백두산 현장르포④ | 용정의 새벽, 백두산 아래에서 다시 부르는 독립의 노래
-
[기획연재③]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북간도 교회와 신앙 공동체의 항일운동
-
백두산 현장르포③ | 지하삼림, 천지의 그늘 아래 살아 숨 쉬는 또 하나의 세계
-
백두산 현장르포② | 폭포 앞에서 듣는 사람들의 이야기
-
[기획연재②]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교육·신앙·항일의 불씨
-
[기획연재①] 윤동주 생가에서 보는 디아스포라 — 문학, 민족, 그리고 기억의 장소
-
백두산 현장르포① | 민족의 성산, 천지를 마주하다
-
“해방군인가, 약탈군인가”…1945년 소련군의 만주 진출과 동북 산업 약탈의 기록
-
“고층에 살면 수명이 짧아진다?”…연구가 밝힌 생활 속 건강 변수
-
여성 우주인, 왜 우주비행 전 피임약을 먹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