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안대주
국제 정치는 종종 사건 자체보다 ‘언제’ 벌어졌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전격 체포한 직후,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일정과 맞물려 북한이 고초음속 미사일 발사 훈련을 공개했다. 단순한 군사 훈련의 공개로 보기에는 시점이 지나치게 정교하다.
미국의 마두로 체포는 현직 국가원수를 군사력으로 압송한 이례적 장면이었다. 국제법과 주권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 장면은 먼 남미의 정치 뉴스가 아니라, 체제 안전과 직결된 현실적 경고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간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각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한 수단이 고초음속 미사일이라는 점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고초음속 무기는 단순한 사거리 경쟁이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상징성을 지닌 전략 자산이다. 북한은 이를 통해 미국식 군사 개입이 더 이상 일방적인 우위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려 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이 한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을 내부에 주입하고, 동시에 외부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 시점과 겹친 점도 의미심장하다. 한중 관계 복원과 동북아 외교 지형 재조정이 논의되는 국면에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한반도 안보의 중심 축이 여전히 자신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 했다. 한국이 중국과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과정에서 북한 문제가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을 경계하며,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는 테이블에서 북한을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 행동이다.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더 큰 흐름 속에서도 이번 발사는 읽힌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에서 군사력을 동원해 정권 교체에 나선 순간, 북한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였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부담을 여러 전선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기보다는, 미국의 압박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북한이 그 전선의 한 축을 맡고 있음을 드러낸 장면에 가깝다.
결국 이번 미사일 발사는 군사 훈련의 외형을 빌린 정치적 메시지다. 미국의 체제 압박 방식에 대한 경고이자, 한국의 외교 행보를 향한 존재감 과시이며,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북한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행동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이 특정 지역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한반도 역시 언제든 국제 전략의 중심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은 미사일 궤적으로 말하고 있다.
BEST 뉴스
-
에프스타인 파일 공개… 300만 페이지로 가린 서구 체제의 불투명성
2026년 1월 30일, 미 법무부 차관 토드 블랜치는 에프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300만 페이지 이상의 문서와 2000여 개의 동영상, 18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대중에 공개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공개는 2025년 11월 ‘에프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 발효 이후 이뤄진 최대 규모의 기록물 공개로 알려졌다. 그러... -
[기획 연재 ⑥] 가장 많은 규제, 가장 적은 선택―평민의 성 문화
중국 전통 사회에서 평민은 가장 넓은 계층이었지만, 성과 관련해서는 가장 좁은 선택지를 가진 집단이었다. 황제는 제도 속에서 방종을 누렸고, 사대부는 언어와 문화의 외피로 이를 합리화했으며, 향신은 지방 권력으로 도덕을 집행했고, 군벌과 강호는 폭력으로 성을 유린했다. 이 모든 구조의 비용은 결국 ... -
“여성을 수입품으로 부른 공직자, 그 말이 정책인가”
인구가 아니라, 사람을 모욕했다 정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사람을 모욕하는 순간, 그 정치는 이미 자격을 상실한다. 전남 진도군수 김희수의 발언은 그 선을 명확히 넘었다. “스리랑카나 베트남 쪽 젊은 처녀를 수입해 농촌 총각 장가를 보내자”는 말은 정책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폭언이다. 인구 소멸을 걱정한... -
야당이 된 보수의 기이한 충성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 날,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이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사과였고, 최소한의 거리두기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법부에 대한 공격과 “계엄은 곧 내란이 아니다”라는 궤변이었다. 보수 정당 대표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 -
[기획 연재 ⑦] 세 번의 성 인식 전환
중국의 성 문화는 단절된 역사의 파편이 아니라, 권력 구조의 변화에 따라 반복적으로 재편된 결과였다. 황제의 방종과 백성의 금욕, 사대부의 위선, 향신의 도덕 폭력, 군벌과 강호의 무법지대, 그리고 평민에게 전가된 규제의 무게는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성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선택’이 ... -
‘청와대의 저주’는 미신이 아니었다
글|안대주 무기징역.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게 내려진 형량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이보다 더 추락한 대통령은 없다. 흔히 ‘청와대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지만, 이번 사안은 미신의 영역이 아니다. 권력을 사유화한 결과가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준 정치적·사법적 결론이다. 윤석열은 끝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