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역사는 사람이 기록하고 세상에 남기기 마련이다. 태항산 조선의용군 항일투쟁사가 고 김학철 선생에 의해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졌다면 아직도 숨어있는 중국 조선족역사는 살아있는 우리가 가일층 발굴하여 밝혀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에 대한 더욱 큰 사명감을 갖게 된다. 나와 동령의 세대마저 사라지면 중국 조선족의 부분적 역사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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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연길시의 모 다방에서 커피잔을 기울이면서 이같은 얘기로 서두를 뗀 황범송 원로님이다.

 

장장 반세기 빛바랜 사진으로 중국 조선족 역사를 견증해온 저명한 조선족촬영가 황범송 ㅡ 그는 자신의 촬영인생을 주로 두가지 단계로 나눴다.

 

 

첫번째, 촬영업을 배우기 시작해서부터 불철주야로 사업하던 단계이다. 1930년 왕청현 팔과수(八棵树)촌에서 태어나 태를 묻은 황범송은 일찍 우급학교(지금의 소학교)시절에 첨단과학으로 불리우는 사진촬영과 접촉, 이에 대한 취미로 마음이 크게 동하게 됐다. 그래서 13살 되던 해에 촬영기술을 배운답시고 무작정 가출하여 목단강, 할빈 등 도회지를 돌면서 사진관 점원으로 취직하려 했으나 그것이 실패, 12월 엄동속의 유랑걸식 끝에 당시 흑룡강서 타래현의 만몽농업주식회사에서 개척단으로 농사를 하는 아버지한테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가 “8.15해방”이 되자 아버지와 함께 간난신고로 장춘을 거쳐 연길에 와서 정착, 후에 민주연군이 왕청현내의 마적을 숙청할 때 정보제공을 하면서 인생도리를 깨우치게 됐고 아버지가 일하는 연길유림상사(무역, 촬영 등을 겸영)의 주인 김몽훈의 눈에 들어 정식 촬영업에 종하하게 됐다. 그러면서 민주연군 종군기자의 신분으로 길동전선인 신개령, 로야령, 륙도하, 신참, 소구자, 강밀봉 등 많은 전투현장을 누비면서 수많은 역사적 장면을 렌즈에 담은 청년 황범송이었다.


그 후로 연길에서 열군속사진관, 복무청사 사진부 등을 경영하다가 1952년 “동북조선인민보(지금의 연변일보 전신)”에 전근되어 전업기자의 생애를 시작하면서 20대의 청년 황범송의 촬영인생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 때로부터 50여년간 그는 많은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가 있는 사진을 촬영, 선후로 300여차나 백두산을 오르내리면서 나무 한그루, 흘러가는 구름 한조각, 한줄기의 시내물 등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부동한 각도로 렌즈에 담았고 일찍 연변을 다녀간 팽진, 등소평, 강택민, 이붕, 양상곤, 만리 등 국가급지도자와 시하누크 등 외국수뇌자들을 촬영하여 보귀한 역사적 서류로 되게 했다.

 

두번째, 황범송 원로가 자기가 찍은 사진과 타인이 찍은 사진을 대량 수집정리하면서 항일투쟁, 해방전쟁 및 사회주의 건설시기에 있은 중국 조선족의 역사적 기여를 견증한 단계이다. 지난 세기 70연대초 주박물관으로 발령받은 황범송 원로는 1년간 국내의 많은 박물관과 유적지들을 순회하면서 역사적 자료를 찾는 동안 동북의 현대사에 대해 전문적으로 접촉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중국혁명에 대한 조선족인민들의 기여를 두눈으로 똑똑히 보아온 그는 이런 중요한 역사적 자료들이 박물관을 벗어나 더욱 폭넓게 알려줘야 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중화민국연대 및 일제와 위만주국 시대의 신문과 당시의 기존서류들을 번져가면서 주로 항일전쟁시기 조선인투사들의 활동에 대해 치중하여 수집, 심양과 무순에 있는 동북문헌보관국, 무순탄광 문헌보관국을 통해서는 19세기 말엽, 상투머리를 한 조선인 농민이 땅을 개간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항일전쟁시기 안도현 대사하에 주둔한 일본군수비대가 관동군사령부에 전보를 친 전보문 등을 얻어냈고 북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보중 장군의 부인 왕일지 여사를 연속 3차나 찾아가 장군이 생전에 쓴 70여권의 일기책 중 항일투쟁에서의 조선인 지휘관들의 성명, 직무, 전투성과 등을 밝힌 부분을 몽땅 복제했으며 관련사진 251점도 얻어냈다.

 

역사자료를 찾아낸 뒤 그것을 정리하는 작업도 간고했다. 그 사례로 1930년 남만에서 조선혁명군 총사령으로 활동하던 양세봉 장군의 사진을 처음 찾아냈을 때 그것은 어느 한 단체사진 중에 있는 양세봉 장군의 얼굴이었는데 머리와 턱 그리고 한쪽 귀가 타인한테 가리워졌거나 선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양세봉 장군의 세상에 남긴 유일한 사진이라 황범송 원로는 그걸 꼭 잘 재현해내리라 작심했다. 그래서 장군을 본 적이 있는 노인들을 통해 그의 모습을 파악하고는 장군의 머리와 귀, 턱 그리고 옷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걸로 대체하면서 수십차의 가공 끝에 드디어 양세봉 장군의 원 모습을 재현시키기에 성공, 지금 연변은 물론 한반도 남과 북 모두 역사속의 양세봉 장군을 언급할 때면 황범송 원로가 가공해 제공한 사진을 이용한다고 한다…

 

황범송 원로님이 반세기에 거쳐 지금까지 직접 촬영했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수집한 사진은 도합 10만여점, 그 중 현재 연변박물관에 3만여점, 주당위 서류실에 2만여점이 소장돼있고 그외 “조선족백년사화”(총 3권)에 31점, “중국조선족발자취총서”(총 7권)에 577점, 대형화책 “연변조선족자치주”에 311점, “중국연변조선족역사화책”에 149점, 중화인민공화국창립 50돐에 내놓은 “당대중국조선족화책”에 23점, “연변50년화책”에 20점 이렇게 널리 수록돼있다.

 

“내가 주보중장군의 부인 등 중국 조선족을 잘 아는 역사인물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많은 역사적 사실과 귀중한 사진들이 영영 자취를 감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기력이 있을 때 아직도 볕을 보지 못한 중국 조선족의 역사적 발자취를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는 나를 포함한 아직도 살이있는 우리 조선족 원로들한테 부여된 일종 사명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남기는 황범송 원로님, 그이는 요즘도 아직 채 파헤치지 못한 조선족 역사의 발굴작업으로 스케쥴이 늘 빽빽한 상황이다. 원로님에 따르면 지금 그이는 연변촬영가협회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10년전에는 “중국 연변”(합작)이란 책을 한국에서 출판했고 그 얼마 뒤엔 “항일전쟁과 중국조선족”(합작)이란 책을 출간하여 조선족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계속 발굴함과 아울러 이를 세계만방에 알리기 위한 사업에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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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조선족 역사 렌즈에 담은 산 견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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