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수(郑毓秀: 1891년 3월 20일 ㅡ 1959년 12월 16일)는 광동성 광주부 신안현(지금의 심천시) 사람으로서 별명은 소매(苏梅)이다.
그는 청조말년과 중화민국의 혁명가이고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첫 여성박사였고 첫 여성변호사였으며 첫 성급여성정무관이었으며 첫 지방법원의 여성원장이기도 했다.
정육수의 부친은 청조의 호부관료인 정문치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정육수는 동년에 유학(儒学)을 배우고 “사서”와 “오경”을 읽었으며 후에는 천진교회의 숭실여자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05년(광서 31년), 정육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의 길에 들어섰으며 이 기간 그녀는 요중개의 소개로 중국동맹회에 가입한다.
1911년(선통 3년), 정육수는 귀국하여 혁명파(암살조직)조직의 연락원 등 직무를 담당, 경진동맹회에 참가하여 원세개를 암살하는 행동계획에도 참여한다. 1912년(민국 원년) 1월, 정육수 등이 원세개암살계획을 개시하기 직전, 경진동맹회의 긴급지시에 의해 이 계획이 취소되고 대신 정육수 등은 양필(良弼)암살행동에서 성공하며 그 행동에서 정육수는 중대한 공헌을 한다.
그해 여름 정육수는 프랑스로 건너가 근공검학을 하게 된다. 1914년 그녀는 파리에서 법률을 전공하기 시작, 1917년 파리대학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고 프랑스법률협회에 가입한다.
1925년 정육수는 파리대학에서 법학박사칭호를 수여받고 중국역사상의 첫 여성법학박사로 된다. 그뒤 그녀는 북경정부로부터 유럽주재 조사위원으로 임명받고 사업하다가 귀국하게 된다.
귀국후 정육수와 그녀의 유학시절의 친구인 위도명은 상해의 공공조계지에서 법률사무소를 차린다. 이것으로 그녀는 중국역사상의 첫 여성변호사가 된다. 1926년(민국 15년), 중국 남방정부파인 대학교수 양향불이 상해당국에 의해 체포되자 정육수는 양향불의 변호사로 되어 법정변론에서 승리해 양향불로 하여금 석방되게 한다. 그해 4월 그녀는 산서회의파의 국민당 제2기 후보 중앙감찰위원으로 된다.
1927년 4월, 정육수는 강소성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고 연말에는 상해임시법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상해법정대학 교장까지 겸하게 된다.
그해 8월 정육수는 위도명과 결혼하였다. 1928년, 그녀는 국민정부 유럽주재 특사로 파견되어 중국과 프랑스와의 쌍방우호사무를 주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해 11월 귀국해서는 국민정부 입법원 입법위원으로 된다. 그 기간 그녀는 민법편찬위원으로 민법초안을 작성할 때 몇가지 여성권리보호에 관한 조목을 제출해 증가하도록 했다.
그 뒤 정육수는 국민정부 건설위원회 위원, 재해구제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어 사업한다. 항일전쟁이 폭발한 후엔 국민정부 교육부 차장으로 되기도 한다. 1942년 남편인 위도명이 주미대사로 임명되자 정육수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중국지원다국회(各国援华会)의 명예주석으로 된다.
항전승리후 그들 부부는 귀국, 정육수는 재차 국민정부 입법위원으로 된다. 그러다가 대만성정부의 주석으로 있던 위도명이 사직하면서 1948년 그들 부부는 브라질로 이민가게 된다. 그 뒤 사업의 실패 등 원인으로 그들 부부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만년에 정육수는 암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가 1959년 12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향년 69세을 일기로 사망한다. <김철균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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